내가 인정한 첫번째 대통령. 노무현, 그 사람.

김민석200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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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인정한 첫번째 대통령. 노무현, 그 사람.
  
 어제 아침 몽롱한 정신으로 TV에서 나오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속보를 보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동안 멍했었다. 이윽고 알게된, 자살로 인한 서거라는 말에 더욱 충격을 받았다. 최근 '자살'이라는 단어에 퍽이나 익숙해 있어 무덤덤한 나였지만, 대통령의 자살은 이 단어에 새로운 충격을 덧입혀주었다. 대통령의 자살이란 우리에게 생소할 뿐만 아니라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평소에 故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종종 입에 담던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라는 말이 새삼 나에게 다가온다. 여러 다양한 평가가 존재하겠지만, 역사의 평가란 것은 결국 집단적 산물이다. 일개 시민에 불과한 내가 그 역사적 평가에 참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느꼈던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살아생전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이 엇갈려나왔었다. 그 중에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굳이 동정적이면서 찬양조의 평가를 내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가지게 되는 객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이지 않은 집단적 기대와 개인에게 제도적으로 쏟아내는 욕구를 벗어나서, 한 인간으로서 나약함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낮게 내려져 왔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통령이라는 호칭을 달고서 살아갔던 앞선 인물들을 떠올려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통령'이라는 호칭에 첫고민을 안겨주었던 인물로 평하고 싶다. 근대 독립국가로서, 민주주의에 의한 초대 정치수장으로서 국민들은 대통령이라는 생소한 직위에 어떠한 이미지를 투영했을까? 조선이 무너지고 왕권을 잃어버린 민족이 수치스러운 얼굴로 엎드려야 했던 천황의 권위에서 이제 막 탈출했을 때, 대한민국의 지도자로서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제도의 수장은 국민들에게 자신의 '왕'을 가질 수 있게된 영애이자, 익숙치 않은 권력자였다. 천황 혹은 왕권의 권위에 익숙한 국민들은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집단적 욕구를 투영하기 마련이다. 본인이 전주 이씨 왕족 후손이기도 했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새로운 자주국가에 무언가 새로운 능력을 발휘해주길, 권위에 대한 찬양과 함께 무서운 기대로 쏟아 내었다. 부정선거로 얼룩지기까지 독재에 매달렸던 이승만이 국민으로부터 버림받고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스스로를 왕과 대비한 것이 지나치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윽고 우리나라 대통령의 가장 대표적 권위주의 모델인 박정희 대통령은 파시즘의 유령을 전국민에게 영매시킨 무서운 인물이다. 새마을운동 프로그램으로 기획된 '잘 살아보세'의 구호는 가장 못배운 농민들과 거지들의 입 속에까지 되뇌어지며, 농경사회를 한순간에 근대사회로 탈바꿈시켜 놓은 신화가 되었다. 평범한 경상도 집안의 내가 어쩌다 부딪히게 되는 가족과의 정치적 논쟁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부분은 박정희에 대한 평가이다. 한번은 고모에게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에 대해 박정희의 과실을 설파하였는데, 당혹스러운 분노와 함께 나를 질타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언젠가 박정희를 회상하며 고향을 방문하였을 때 박정희를 보자 고모는 눈물을 흘렸었다며, 평소 국민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면서도 남루한 옷을 입고다녔다는 박정희의 검소함에 대한 영웅적 일화를 구구절절 입에 담던 모습도 기억난다. 이러한 신화의 끝에는 항상 그래서 우리가 잘 살게 되었다는, 어쩜 그리도 새마을운동의 세뇌적 구호와 똑 같은 결론들만 끌어내어지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의 가족을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 기성세대의 대부분을 이루는, 경제적 욕망에 세뇌된 영혼이 박정희의 죽음이후에도 탈주술화될 수 없는 것은 철저히 영웅적 신화를 양산해낸 그의 행보에 있지 않나 싶다. 역대 대통령 그 누구보다 박정희는 권위(사실은 권력)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무서운 인물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이미지 이면에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적 기반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무시무시한 통치권력이 작동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은 바로 군사정권의 수족으로써 모세혈관과 같이 뻗어 국민을 감시해온 중앙정보부(이후 국가안전기획부)와 변함없는 권력의 개(이는 개인적, 감정적 평가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경찰이다. 1대 군사정권의 뒤를 잇는 전두환과 노태우는 신화를 잃은, 영웅이 사라진 뒤 나타나는 권력의 파편으로 존재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기에 껍데기를 유지하기 위해 통치의 물리적 수단, 안기부와 경찰권력을 끝까지 유지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그들의 대통령 임기를 시작하고 끝맺었다고 생각된다. 결국 인정받지 못하는 권위는 껍데기 뿐이어서 권력의 맛을 본만큼 그것을 내려놓았을 때의 대가를 받아야 했다. 임기를 마친 이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기관으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았던 것이다.
군사정권의 종료과 함께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라는 희망을 안고 시작했으나, 스스로 민주화의 장본인이라고 일컫는 만큼의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이미 대통령이라는 직위는 권위적이고 자의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권한으로 인식되었으며, 그에 취해 정치 서비스의 취지는 말아먹었으니 말이다. 조금은 완화된 통치의 수단과 행사는 완화된 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는데, 왜곡된 대통령의 권위가 대통령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한 세대를 학습되어 으레 자의적인 권력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이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는 김대중 대통령의 시절에도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듯 하다.
그런데, 故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나의 주변사람들(주로 경상도의 기성세대)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될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경상도 출신 대통령인데 말이다. 이는 물론 그가 경상도가 지지기반이 아닌 민주당의 정치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그의 정적이었던 이회창에 비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만큼 거물급 정치인이 아니었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상고' 출신의 대학도 못나온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은 지배세력의 입장에서는 충격이었고, 일부에게는 신선한 기대이자 일부에게는 걱정스러운 낙담이었다. '참여정부'를 내걸고 시작한 故 노무현의 행정부는 스스로 권위주의를 버리고 대화를 통한 국민자치와 국민참여를 외쳤다. 그러나, 故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행보는 순탄치 않았는데, 지배세력으로부터 대부분의 정책이 반발에 부딪혔고, 소위 '놈현'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다가 결국에는 초유의 탄핵 폭탄을 맞기도 하였다. 그의 정치기반인 열린우리당으로부터도 외면당하기 일쑤였던 대통령 임기는 본인에게도 적잖은 고통을 주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모습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보던 나는 그의 정치적 실패의 원인이 스스로 권위를 버린 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왔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사람들이 현직 대통령에게 '대통령'이라는 호칭를 떼어버리고 그냥 '노무현'이라는 이름만 부르던 대통령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걸핏하면 '놈현'이라는 우스갯말이 보통사람들의 입에서 쉽게 오갔으며, 정치기사를 통해 접하는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비아냥 거림과 가벼운 평가가 곁들여지는 모습을 참 이상하게 목격해왔었다. 대통령에 대한, 분명히 이전과는 다른 태도였다. 그것이 국민에 의해 생산된 것이든, 언론에 의해서 생산된 것이든, 이러한 현상은 명백히 故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 의도한 권위 타파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권위를 버린 대통령의 직무행사의 1차 반응은 의회정치에서 나왔고, 2차 반응은 언론에 의해 주조되었으며, 최종적으로 국민들에게 제대로 탈권위의 세상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행하게도 탈권위화된 대한민국은 참여정부의 국정운영에 예상치 못한 부담을 안겨주었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故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력이 없다는 평가를 내게한 한 요소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이었다. 주변에 대통령자문위원회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어 故 노무현 대통령을 곁에서 지켜보던 노교수님에게 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탈권위적 대통령의 이미지가 시기상조가 아니냐고, 그래서 실상 그것이 민주주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독이 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듣던 노교수님은 잠깐의 침묵이 흐르더니, 사실은 본인도 대통령께 너무 스스로의 권위를 버리지 말고 행사하시라고 한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이것이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나중에 역사가 평가해줄 것입니다'라는 말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노교수님을 통해 전해들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참 답답해서 말이 막혔다. 나 역시 그때 진보라고 하기에는 일관되지 않은 마지막 정책의 흐름이 못마땅하던 참이었으니, 차라리 그러다 레임덕에 빠지라고 악담까지 하고 싶을 때였으니 말이다.
근심과 함께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다시 권위주의가 머리를 드는 것을 보고 더욱 암담함을 느꼈다.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우리나라는 다시 권위적 권력이 지배하던 근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대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 참담함의 정점은 광우병 소고기 수입 문제로 다가왔다. 촛불을 들고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촛불을 들고 "MB OUT"이라고 외치는 나와 국민들의 모습에는 정치권력의 정당성이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들에 의해 행사되어야 하며, 국민들의 뜻을 위해 나아가야한다는 이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당히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에 대고 분노를 발할 수 있는 국민들을 보면서, "그래, 우리가 변했구나. 민주화의 완성을 위한 몸부림이 국민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살아있구나!"하는 것을 느꼈다. 권력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은 이명박 정권의 무례함에서도 기인했지만, 이미 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탈권위주의를 통해서 양성된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광우병 소고기 문제가 실은 故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절 FTA체결 결정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알고, 최근에는 박연차 게이트를 통해 실망을 넘어 권력의 어두운 모습을 피하지 못한 그에 대한 분노에까지 이른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의도적이기도 의도적이지 않기도 하지만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故 노무현 대통령, 역시 한 사람의 인간임을 인정하며, '대통령'이라는 호칭에 필요 이상의 기대심리를 부여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하고, 그 연약함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대통령 '노무현' 그 이름은 역대 대통령 그 누구보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태도에 민주주의(문화적 형태의 민주주의)를 심어놓은 역꾼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분명히 이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