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징역 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명한다! 탕! 탕! 탕!" 시간의 간극이 계절을 바꾸고 있던 구월 어느날 서초동 법원에서 일어난 작은 일이었다. 비틀... 수많은 인파가 드넓은 거리를 가득 메운채 오가는 그 한 가운데서 추림은 작은 현기증과 무기력증을 느끼며 잠시 신형을 휘청거렸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자동차들 그리고 자유로운 인파의 무리. 모든게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석방은 그에게 아무것도 준비할 기회조차 주지 못했다. 하다못해 이제 자유구나라는 기대감과 설렘마저도 실감할 여유도 없었다. 자유... 구속없는 허허로움의 현실! 하지만 추림은 자유롭지도, 도심을 태울듯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도 느낄수 없었다. 멍하니 길가 한가운데에 위치했던 추림을 수많은 사람들이 부딪히고 건들며 지나쳤다. 길 한켠으로 떠밀린 추림은 정신나간 얼굴로 가만히 쭈그려 앉았다. "......!" 십여분을 앉아있던 추림은 문득 어깨어림으로 싸늘한 기운이 전달되는 느낌에 몸을 잘게 떨었 다. 불과 몇 개월이었다. 그 시간의 간극을 추림은 지금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리감, 외로움이 정수리 한가운데를 통과해 심장 어림을 관통하는 순간 추림은 심한 이질감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크......!" 머리속을 마구 헤집는 수개월... 아니 수년동안의 영상들이 엄청난 시간차를 무시하며 지나치는 통에 현기증과 두통에 짧은 비음을 토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바보처럼 현실과 과거를 혼동하며 앉아있던 추림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추림의 얼굴이 들려지며 그림자의 정체를 올려다 보았다. "......?" 오후의 마지막 햇볕을 등지고 자신의 정면에 서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그는 정체를 확인하 려 했지만 검은 실루엣만 얼핏 살폈을 뿐이었다. 몸을 움찔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작으로 추림은 옆으로 이동했다. "어머? 그 얼굴은 뭐야? 겁먹었어?" 맑은 여성의 목소리를 발하며 추림을 향해 다가드는 여자를 추림은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이네? 이추림씨 나 모르겠어요?" 자신을 무척이나 잘 아는듯한 여자의 행동에 추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 "술을 상당히 잘 하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술을 마시는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처럼 추림은 엄청난 술꾼으로 변신 한것은 맞았다. "여기 술 더줘요!" 넓은 홀을 돌아다니며 분주한 종업원에게 또다시 술을 주문한 김민경의 눈빛이 그윽하게 변해 추림을 바라보았다. 안양 시내에서 길잃은 순한 양처럼 방황하는 추림을 택시에 태우고 달려 도착한 곳이 화곡동이 었다. 원래는 자신의 거처가 있는 양재동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지만 택시에 오른 추림이 이쪽으로 방 향을 선회한 것이다. 주점을 정하고 들른지 두시간쯤이 흘렀다. 그 후 추림은 술에 미친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대화... 한 사람은 떠들고 한 사람은 듣는지 마는지 모를 그런것이 대화라면 할 말 없지만 김민경 이 추림에게 구체적이고 말 같은 것을 들은것은 의미 모를 한 마디였다. '변한것은 시간인것 같아.' 그를 만난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출소할 날짜를 대충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르고 있었다. 퇴근길에 우연히 본 것 뿐이었다. 확실히 특이한 구석이 있는 사내였다. 사내? 그가 사내라 여겨진다면 그럴 터였지만 아직 민경 에겐 어쩌면 추림은 나이어린 동생의 의미 이상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의 이력은 아주 다체롭고 흥미로웠다. 극과 극을 산다면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순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야수의 기질을 지닌 사람이 그였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학창 시절과 사회에서의 행적 그리고 만나서 알게 되기까지의 그가 지닌 삶을 서류로나마 통해 알수 있었다. 그것은 별반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당사자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수감와중 내내 일으켰던 일은 결코 작지 않 은 일이었다. 거칠고 흉포한 이리들이 우글거리는 무리내에서 자신이 당하고 일으킨 일을 정작 당사자는 아무 런 의미없이 여길지라도 그 주위에 있던 이들에겐 아주 다채로운 일이었다. 또한, 위험한 일이었으며 용감한 일이기도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해도 그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그가 당하고 행했던 일이 정당하고 옳았다 여기는 그 진실 하나로 거친 남자들과 맞섰던 그 순간 을 알았을 때 민경은 그를 향한 호기심 그 이상의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치료하는 와중에 보았던 그 끔찍하고 엄청난 상처가 아니더라도 그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느낄수 있었다. 당신은 사내다! 라는 정의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형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탁!" 거칠게 탁자위로 빈 술잔을 내려놓은 추림의 고개가 힘겹게 위로 들려졌다. 머리가 길게 자라 목 언저리 전체를 모두 가리고도 남아 얼굴의 절반을 가린 그 사이로 애잔하 게 무언가를 담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고맙고... 감사하고... 잊지 않을거고... 아무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취했다. 왜 취하지 않을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비워낸 술병이 여섯병이 넘었다. 생리학적이 아니더라도 한동안 금주하던 이가 갑자기 술을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되리라는것쯤 은 상식이고 더구나 김민경 그녀는 간호사였다. 추림은 술이 아닌 절반의 독을 들이마신 경우라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은 민경 그 자신은 처음 본 터라서 불안하기도 했다. "이제 다 마셨어? 고맙고 감사하고 잊지 않을거지? 그럼 미안하지는 않은거네?" 왠지 심술이 난 민경이 뾰로퉁하게 내뱉았다. 얼굴이 붉게 변한 추림은 반쯤 풀린 눈으로 민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그의 눈동자는 끝없이 흔들렸다. "미안...합니다." 결국 추림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에 민경의 고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진정 그 말을 원한것은 아니었다.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려 가장한 행동, 말이었음에도 그는 지금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듯했다. "믿겨지지 않아서요. 내가... 내가 있던곳은 참으로 차갑고 작은 공간이었는데, 훗! 정말 웃겨요. 겨우 이런것인데... 이런 것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슬펐을까!" 그의 끝말은 독백에 가까웠지만 민경의 귀에는 천둥처럼 들려왔다. "작은 댓가라 여기면 편하지 않을까? 추림씨가 원하지 않았어도 벌어진 일에대한 댓가." "댓가? 난... 잘살자 욕심내지 않았지만 열심히 살자 했고, 착하게 살자 하지 않았지만 선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쿡... 그래 댓가... 이리 살찌고 뽀얀 피부에 아까워 잘라내지도 못한듯한 머리가 전부인 댓가 말인가? 쿡쿡!" 자신의 머리를 감싼 추림이 억눌린듯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요.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요? 그렇지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언젠가 뚝 잘려진 내 무엇인가를 찾으면 그 뿐인거겠지요? 변한건 단지 시간... 시간뿐이니까 말입니다." "그건......!" 입을 열려던 민경은 순간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추림의 얼굴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습니다. 큰 것, 많은 것 바라지 않았는데 자신이 없어요. 어제까지 내 처지가 비관되고 부정되어서 서럽고 한스럽지는 않단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 여기안에 있 는 무엇인가가 편하지가 않아요. 여지껏 그리 순탄하지도 않았던 삶이 어느날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변할게 없다는건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변한 이시간까지 오는동 안 더욱 멀어진 것! 그것 하나가 진정 아프고 서러워요. 알아요. 참으려해도, 잊으려해도, 다독이 고 감추려해도 여기에 들어찬 무언가가 계속 힘들어하고 있어요." 자신의 심장어림을 움켜쥔 추림이 응어리진 숨을 토하는 내뱉는 말을 민경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를 모른다고 느낌마저 모른다면 그것이 사람이 아닐것이다. 진정 힘들어하고 서러워 하고 있는 추림의 모습이 눈으로 확대되고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원하는 것 단하나를 갖고 싶어 지나친 촌극의 시간만을 원하는 추림. 그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민경은 명확히 알수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있음은 분명했다. 그는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술에취해 아이가 투정부리듯 행동하고 감정에 이끌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에 빠지는 그런 졸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을 통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내면의 문제였다. 강하고 내적인 남자가 흘리는 눈물은 더욱 서럽게 느껴지는 법이라했다. 민경이 살아온 삶을 통해 배운 경험중 하나가 지금 추림의 모습이었다. 정말 서러운 자는 큰 소리로 울지 않는다. 정말 서럽게 우는 새는 한번의 긴 울부짖음을 토해낸다고 했던가! 바보 차라리 소리내어 울던가... 너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해줄게 아주것도 없잖아! 괜히 처연해진 민경을 앞에 두고 추림은 침묵을 일관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취해버린 추림을 바라보는 민경의 얼굴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미 밖은 짙고 무거운 어둠에 덥힌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었다. 원래가 말이 없는 사람처럼 추림은 상체를 휘청거리면서 지독히도 마셔댔다. "이제 그만! 제발 추림! 미쳤어!" 황당하기까지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일단의 손님들이 빠져나간 주점안에 드문 드문 앉아있던 손님들은 물론이고 종업원들까지 그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지 않은 테이블 위에 쌓인 술병을 보면 도저히 한 사람이 마신 술이라고 이해되지 않은 양이 었던 것이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득해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괴리를 혼동해가 는 와중에 추림의 눈에 끝없이 밟혀드는 단 하나의 영상만이 비춰들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를 않았고 불러도 대답해 주지를 않았다. 빌고 또 빌었고 때론 저주도 퍼부었다. 그가 내지른 고함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으려치면 다시 나타난 누군가는 웃으며 그를 지나쳤다. 그랬어. 원래 넌... 그랬어. 하지만... 내게 조금의 기회를 주어도 되잖아! 왜? 왜? 안되는건데? 내가 무엇을 바랬는데? 날 한번만 바라보아도 되잖아! 으아아!!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어떤 환상을 부여잡고 추림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절규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사라져주면 되는거니? 그런거였어? 쿡쿡쿡... 진작좀 말해지 그랬어. 나 너 무 힘들었어. 미치도록 힘들어서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영혼이 얼어붙는것 같았단 말 이닷! 크크... 내가 바보였던 거구나. "크큭. 크큭큭!" 문득 몸을 떨어대며 추림이 자조섞인듯한 웃음을 토해냈다. 말리지도 못하고 가슴졸이던 민경이 놀라 바라볼 때였다. "그래선... 안되잖아... 안되잖아......!" 알아듣지 못한 말을 웅얼거린 추림의 상체가 기우뚱 하면서 얼굴을 탁자에 처박으며 정신을 놓 아 버리고 말았다. "추림!" 놀란 민경이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다가 멈칫거렸다. 얼굴을 흥건히 적신 추림은 여지껏 소리없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50장에 계속) 추림의 변: 안녕하세요. 추림입니다. 이 글을 시작한지가 작년이었는데, 결국 이 핑계 저 일이 생겨 역속을 수번도 더 미루다가 슬쩍 나타났습니다. 돌 던지시고 욕 던지셔도 할 말 없음은 당연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유리사랑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일관하지 못한 저의 행동 많이도 부끄럽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일이라 고민되고 당시의 상항을 재현함은 물론 자료도 많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 긴 한숨만 나옵니다. 어여뿐 동생 지금처럼만...(정말 미안하다 네겐) 이 두탕을 하듯 글을 1회부터 다시 올리고 그 마지막이 끝날쯔음해서 나머지 분량을 끝내려 했는데... 이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노력은 할 겁니다. 이글을 기억하시는 님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지만 부디 이글을 다시 보시는 분이 계신다면 가감없이 돌을 던져 주시길... 유리사랑 주인장이었습니다! 꾸벅!!
유리사랑 (49장/ 홀로가는 추림) <실극화>
"...... 징역 시월에 집행유예 2년을 명한다! 탕! 탕! 탕!"
시간의 간극이 계절을 바꾸고 있던 구월 어느날 서초동 법원에서 일어난 작은 일이었다.
비틀... 수많은 인파가 드넓은 거리를 가득 메운채 오가는 그 한 가운데서 추림은 작은 현기증과
무기력증을 느끼며 잠시 신형을 휘청거렸다.
뜨거운 오후의 햇살. 도심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자동차들 그리고 자유로운 인파의 무리.
모든게 낯설고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석방은 그에게 아무것도 준비할 기회조차 주지 못했다.
하다못해 이제 자유구나라는 기대감과 설렘마저도 실감할 여유도 없었다.
자유... 구속없는 허허로움의 현실!
하지만 추림은 자유롭지도, 도심을 태울듯 내리쬐는 태양의 열기도 느낄수 없었다.
멍하니 길가 한가운데에 위치했던 추림을 수많은 사람들이 부딪히고 건들며 지나쳤다.
길 한켠으로 떠밀린 추림은 정신나간 얼굴로 가만히 쭈그려 앉았다.
"......!"
십여분을 앉아있던 추림은 문득 어깨어림으로 싸늘한 기운이 전달되는 느낌에 몸을 잘게 떨었
다.
불과 몇 개월이었다.
그 시간의 간극을 추림은 지금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괴리감, 외로움이 정수리 한가운데를 통과해 심장 어림을 관통하는 순간 추림은 심한 이질감에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크......!"
머리속을 마구 헤집는 수개월... 아니 수년동안의 영상들이 엄청난 시간차를 무시하며 지나치는
통에 현기증과 두통에 짧은 비음을 토하며 얼굴을 찌푸렸다.
바보처럼 현실과 과거를 혼동하며 앉아있던 추림의 몸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추림의 얼굴이 들려지며 그림자의 정체를 올려다 보았다.
"......?"
오후의 마지막 햇볕을 등지고 자신의 정면에 서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한 그는 정체를 확인하
려 했지만 검은 실루엣만 얼핏 살폈을 뿐이었다.
몸을 움찔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동작으로 추림은 옆으로 이동했다.
"어머? 그 얼굴은 뭐야? 겁먹었어?"
맑은 여성의 목소리를 발하며 추림을 향해 다가드는 여자를 추림은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
어디선가 본듯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말이네? 이추림씨 나 모르겠어요?"
자신을 무척이나 잘 아는듯한 여자의 행동에 추림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
"술을 상당히 잘 하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술을 마시는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말처럼 추림은 엄청난 술꾼으로 변신
한것은 맞았다.
"여기 술 더줘요!"
넓은 홀을 돌아다니며 분주한 종업원에게 또다시 술을 주문한 김민경의 눈빛이 그윽하게 변해
추림을 바라보았다.
안양 시내에서 길잃은 순한 양처럼 방황하는 추림을 택시에 태우고 달려 도착한 곳이 화곡동이
었다.
원래는 자신의 거처가 있는 양재동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지만 택시에 오른 추림이 이쪽으로 방
향을 선회한 것이다.
주점을 정하고 들른지 두시간쯤이 흘렀다. 그 후 추림은 술에 미친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대화... 한 사람은 떠들고 한 사람은 듣는지 마는지 모를 그런것이 대화라면 할 말 없지만 김민경
이 추림에게 구체적이고 말 같은 것을 들은것은 의미 모를 한 마디였다.
'변한것은 시간인것 같아.'
그를 만난것은 우연이었다.
그가 출소할 날짜를 대충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날짜는 모르고 있었다.
퇴근길에 우연히 본 것 뿐이었다.
확실히 특이한 구석이 있는 사내였다. 사내? 그가 사내라 여겨진다면 그럴 터였지만 아직 민경
에겐 어쩌면 추림은 나이어린 동생의 의미 이상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의 이력은 아주 다체롭고 흥미로웠다.
극과 극을 산다면 그처럼 살 수 있을까?
순한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야수의 기질을 지닌 사람이 그였으니까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었다.
학창 시절과 사회에서의 행적 그리고 만나서 알게 되기까지의 그가 지닌 삶을 서류로나마 통해
알수 있었다. 그것은 별반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당사자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수감와중 내내 일으켰던 일은 결코 작지 않
은 일이었다.
거칠고 흉포한 이리들이 우글거리는 무리내에서 자신이 당하고 일으킨 일을 정작 당사자는 아무
런 의미없이 여길지라도 그 주위에 있던 이들에겐 아주 다채로운 일이었다.
또한, 위험한 일이었으며 용감한 일이기도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려해도 그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는지도 몰랐다.
그가 당하고 행했던 일이 정당하고 옳았다 여기는 그 진실 하나로 거친 남자들과 맞섰던 그 순간
을 알았을 때 민경은 그를 향한 호기심 그 이상의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를 치료하는 와중에 보았던 그 끔찍하고 엄청난 상처가 아니더라도 그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느낄수 있었다.
당신은 사내다! 라는 정의 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형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탁!"
거칠게 탁자위로 빈 술잔을 내려놓은 추림의 고개가 힘겹게 위로 들려졌다.
머리가 길게 자라 목 언저리 전체를 모두 가리고도 남아 얼굴의 절반을 가린 그 사이로 애잔하
게 무언가를 담은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고맙고... 감사하고... 잊지 않을거고... 아무튼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취했다. 왜 취하지 않을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그가 비워낸 술병이 여섯병이 넘었다.
생리학적이 아니더라도 한동안 금주하던 이가 갑자기 술을 마시게 되면 어떻게 되리라는것쯤
은 상식이고 더구나 김민경 그녀는 간호사였다.
추림은 술이 아닌 절반의 독을 들이마신 경우라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은 민경 그 자신은 처음 본 터라서 불안하기도 했다.
"이제 다 마셨어? 고맙고 감사하고 잊지 않을거지? 그럼 미안하지는 않은거네?"
왠지 심술이 난 민경이 뾰로퉁하게 내뱉았다.
얼굴이 붉게 변한 추림은 반쯤 풀린 눈으로 민경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마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 그의 눈동자는 끝없이 흔들렸다.
"미안...합니다."
결국 추림의 입에서 사과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에 민경의 고운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진정 그 말을 원한것은 아니었다.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려 가장한 행동, 말이었음에도 그는 지금
자신을 오해하고 있는듯했다.
"믿겨지지 않아서요. 내가... 내가 있던곳은 참으로 차갑고 작은 공간이었는데, 훗! 정말 웃겨요.
겨우 이런것인데... 이런 것이었는데 뭐가 그렇게 힘들고 슬펐을까!"
그의 끝말은 독백에 가까웠지만 민경의 귀에는 천둥처럼 들려왔다.
"작은 댓가라 여기면 편하지 않을까? 추림씨가 원하지 않았어도 벌어진 일에대한 댓가."
"댓가? 난... 잘살자 욕심내지 않았지만 열심히 살자 했고, 착하게 살자 하지 않았지만 선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쿡... 그래 댓가... 이리 살찌고 뽀얀 피부에 아까워 잘라내지도 못한듯한
머리가 전부인 댓가 말인가? 쿡쿡!"
자신의 머리를 감싼 추림이 억눌린듯한 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흔들었다.
"좋아요. 다시 시작하면 되겠지요? 그렇지요? 처음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서 언젠가 뚝 잘려진 내
무엇인가를 찾으면 그 뿐인거겠지요? 변한건 단지 시간... 시간뿐이니까 말입니다."
"그건......!"
입을 열려던 민경은 순간 도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추림의 얼굴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 있습니다. 큰 것, 많은 것 바라지 않았는데 자신이 없어요. 어제까지
내 처지가 비관되고 부정되어서 서럽고 한스럽지는 않단 말입니다. 하지만 여기. 여기안에 있
는 무엇인가가 편하지가 않아요. 여지껏 그리 순탄하지도 않았던 삶이 어느날 조금 달라진다고
해서 변할게 없다는건 알아요. 하지만... 하지만 내가 이렇게 바보처럼 변한 이시간까지 오는동
안 더욱 멀어진 것! 그것 하나가 진정 아프고 서러워요. 알아요. 참으려해도, 잊으려해도, 다독이
고 감추려해도 여기에 들어찬 무언가가 계속 힘들어하고 있어요."
자신의 심장어림을 움켜쥔 추림이 응어리진 숨을 토하는 내뱉는 말을 민경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하지만 의미를 모른다고 느낌마저 모른다면 그것이 사람이 아닐것이다.
진정 힘들어하고 서러워 하고 있는 추림의 모습이 눈으로 확대되고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원하는 것 단하나를 갖고 싶어 지나친 촌극의 시간만을 원하는 추림.
그가 그토록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는 민경은 명확히 알수 없었다. 하지만 반드시 그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있음은 분명했다.
그는 작은 사람이 아니었다.
술에취해 아이가 투정부리듯 행동하고 감정에 이끌려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행위에 빠지는 그런
졸렬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기간을 통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내면의 문제였다.
강하고 내적인 남자가 흘리는 눈물은 더욱 서럽게 느껴지는 법이라했다.
민경이 살아온 삶을 통해 배운 경험중 하나가 지금 추림의 모습이었다.
정말 서러운 자는 큰 소리로 울지 않는다.
정말 서럽게 우는 새는 한번의 긴 울부짖음을 토해낸다고 했던가!
바보 차라리 소리내어 울던가... 너에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해줄게 아주것도 없잖아!
괜히 처연해진 민경을 앞에 두고 추림은 침묵을 일관하며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미 취해버린 추림을 바라보는 민경의 얼굴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이미 밖은 짙고 무거운 어둠에 덥힌 시간이 한참 지나고 있었다.
원래가 말이 없는 사람처럼 추림은 상체를 휘청거리면서 지독히도 마셔댔다.
"이제 그만! 제발 추림! 미쳤어!"
황당하기까지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일단의 손님들이 빠져나간 주점안에 드문 드문 앉아있던 손님들은 물론이고 종업원들까지 그
이상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작지 않은 테이블 위에 쌓인 술병을 보면 도저히 한 사람이 마신 술이라고 이해되지 않은 양이
었던 것이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아득해졌다가 다시 돌아오곤 하는 현실과 비현실의 괴리를 혼동해가
는 와중에 추림의 눈에 끝없이 밟혀드는 단 하나의 영상만이 비춰들었다.
손을 뻗어도 잡히지를 않았고 불러도 대답해 주지를 않았다.
빌고 또 빌었고 때론 저주도 퍼부었다. 그가 내지른 고함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으려치면 다시
나타난 누군가는 웃으며 그를 지나쳤다.
그랬어. 원래 넌... 그랬어. 하지만... 내게 조금의 기회를 주어도 되잖아! 왜? 왜? 안되는건데?
내가 무엇을 바랬는데? 날 한번만 바라보아도 되잖아! 으아아!!
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어떤 환상을 부여잡고 추림은 목이 터져라 외치고 절규했다.
그래. 알겠어. 내가 사라져주면 되는거니? 그런거였어? 쿡쿡쿡... 진작좀 말해지 그랬어. 나 너
무 힘들었어. 미치도록 힘들어서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고 영혼이 얼어붙는것 같았단 말
이닷! 크크... 내가 바보였던 거구나.
"크큭. 크큭큭!"
문득 몸을 떨어대며 추림이 자조섞인듯한 웃음을 토해냈다.
말리지도 못하고 가슴졸이던 민경이 놀라 바라볼 때였다.
"그래선... 안되잖아... 안되잖아......!"
알아듣지 못한 말을 웅얼거린 추림의 상체가 기우뚱 하면서 얼굴을 탁자에 처박으며 정신을 놓
아 버리고 말았다.
"추림!"
놀란 민경이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하려다가 멈칫거렸다.
얼굴을 흥건히 적신 추림은 여지껏 소리없이 울고 있었던 것이다.
(50장에 계속)
추림의 변: 안녕하세요. 추림입니다.
이 글을 시작한지가 작년이었는데, 결국 이 핑계 저 일이 생겨 역속을 수번도 더 미루다가 슬쩍
나타났습니다.
돌 던지시고 욕 던지셔도 할 말 없음은 당연합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유리사랑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에도 일관하지 못한
저의 행동 많이도 부끄럽습니다.
실화에 바탕을 둔 일이라 고민되고 당시의 상항을 재현함은 물론 자료도 많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 긴 한숨만 나옵니다.
어여뿐 동생 지금처럼만...(정말 미안하다 네겐) 이 두탕을 하듯 글을 1회부터 다시 올리고 그
마지막이 끝날쯔음해서 나머지 분량을 끝내려 했는데... 이것도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노력은
할 겁니다.
이글을 기억하시는 님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지만 부디 이글을 다시 보시는 분이 계신다면
가감없이 돌을 던져 주시길... 유리사랑 주인장이었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