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을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으로 인해서 받은 상처들이 많은 것 같아 죄송할 뿐 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라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의인이기에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믿는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때론 목사가 범죄하고 교인이 죄짓고 저도 죄짓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 세탁소에 다녀온 옷처럼 깨끗하게 살수 있는게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에 매일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죄인이 아니고 죄를 짓지도 않을 것이라면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교회를 다녔지만 저희 아버지는 교회를 안다니시는데도 저를 때리면서 교회가라고 하셨습니다. 좀 모순된 모습이지요. 지금 나이가 30살인데 아직도 아버지는 교회를 안다니시네요.
모태 신앙이라고 교회를 다닌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도 그랬고요. 전 고3때 척추 디스크로 고생하다가 병원에서 못 고친다는 것을 우연히 기도원에서 치료 받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못 믿는 다고 했는데 의학이 못한 것을 치료 받고 보니 과학으로 신을 설명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과학을 포기 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이 신을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이 됩니다.
글들에 보니 자유의지 관련에 대해 또는 전지전능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대학 때 철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학도
신이 "있다" "없다" 아직 결정을 못 내렸고 합니다. 양단간에 의견만 팽팽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관점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대화들이 철학책에 있는 내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투와 말의 형식은 다르지만 아직도 계속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마음 아픈 것은 읽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
상처 또는 교만이나 겸손함으로 느껴지기에 글 쓰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ㅜㅜ
아래 글들 중에 의문을 가지고 말한 것이 몇 개 있기에
기독교 관점에서 아는 대로 달고 마칠까합니다.(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
*전지전능하심
전지전능한데 왜 사람이 악하게 사는 것을 두는가? 인간의 부조리함을 또는 안 믿는 것을 계획하고 창조한 것인가?
무수한 이론이 있는데 기독교 이론이라고 확실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아는 바에 의하면
전지전능하기에 선과 악을 동시에 인정한다고 합니다.
악이란 개념을 먼저 정의 한다면 윤리적인 죄를 악으로 정의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불순종을 죄악으로 합니다.(신의 법칙 무시, 사랑 하지 못하는 것, 미워하여 죽이는 등)
그러기에 인간의 윤리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십계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윤리)
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와 자연에 법칙을 부여 했으며, 인간은 그 법칙 안에서 활동 합니다.
이 법칙의 한계를 넘어서 응답되는 것을 특별 은총으로 정의 합니다.
일반은 총은 모든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들이 동시에 은총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인간에 주셨고 그 자유의지 또한 신이기에 공평을 위하여 준 것입니다.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욕심을 향하여 의지를 사용하였고
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 욕심은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한 것 입니다.
그것이 선악과 사건이고 그것으로 죄라는 것이 인류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죄가 인류에 들어 온 인간은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계속 사용하였고 신에 대해 대항하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신에게 올수 있도록 하기위해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완전하고 거룩한 신은 죄에 있는 인간을 받아들 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을 위해 죽어줄 대속물이 필요 했습니다.
그러나 대속물은 죄가 없는 대상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중에 그 누구도 죄가 없는 인간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 이후로 원죄라는 것이 인간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녀간의 정자와 난자가 함하는 순간부터 원죄는 성립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신 자신이 인간을 위해 죽어야만 했는데 신은 신의 형상 그자체로는 대속한다는 것은 전지 전능한신이란 명칭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 죄를 그냥 사해야지 죄를 대신 한다는 것은 신의 거룩성과 대치 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신은 완전한 인간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이자 인간이전에 신이기에 완전한 신의 성품도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은 남녀 관계가 되지 않은 처녀의 몸에 자신이 임신되어 완전한 10개월 후 잉태되어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신의 전지전능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자 신인 이가 바로 예수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단 한번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모든 인간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죄를 속했기에 그로 인해 수많은 대속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신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믿는 다는 것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인간이라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예수가 자신의 삶을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믿지 않는 다면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다른 종교나 믿음의 방법으로는 신에게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신을 대속한 그가 자신의 주인이고 신임임을 믿지 못한 자는 신 그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삼위일체론인데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간다하게 생각하면 손가락의 엄지, 검지 중지 이름을 명하듯
같은 신이고 하나이지만 성품이 달라 이름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부는 공의 하나님으로 심판을 하며
성자는 성령의 하나님으로 사랑을 하기에 이 땅에 온 예수를 표현합니다.
성령은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삼위일체설도 여러 이야기가 있기에 심각한 것은 저도 모르고..
그냥 아는 것만 써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오기로 된 메시야의 예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라보고 신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만 인간이 신을 몰라보고 인간으로 알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교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였고 메시야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까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의 제자들마저도. ..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였고
그로인해 제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자들은 증명하기위해 설명했고 말로 전한 것을 믿지 않기에 하나님은 때론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것을 허락하셔서 그것을 통해 믿는 자를 더하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치유는 간접적인 수단이지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기에 인간이 원할 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원할 때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으며 자신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부활 후에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 생선을 먹었고 창자국과 못자 국을 보여주었으며 40일간 동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모습을 모든 자들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과 3년간 동행하며 자기 말씀을 듣고 배운 자들이 배반했기에 그들의 믿음을 위해 자신의 제자들 12명 120명 500명 등의 사람에게 만 보이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소문의 형성은 두 갈래로 나뉜 것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꾸민 것이다.
하나는 정말 부활했다.
이 사실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죽은지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인들의 신앙은 의미가 없고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때는 일명 재림 하실 때지만 문재는 그 때를 하나님만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사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명 이단이라고 정의 하는 이들 중 다수는 자신들이 그때를 안다고 하는 이들이 이단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기에 그날과 그때를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아는 것은 심판과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인들은 죄가 있든 착하든 선하든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부활을 기대하며 믿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인들은 속임수에 속아가는 멍청한 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확률일수도 있지만 60억의 인구 중 20억 정도 되는 기독인들은 이 부활을 소망합니다. 일명 천국이지요...그래서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뼈대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2000년 전의 제자들이 순교하며 전한 그 의미는 "삽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병신이자 또라이인 예수를 따르고 죽은 샘이 되고 제자들의 제자들이 사자 굴에서 로마 광장에서 믿음을 위해 죽은 것도 다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부활도 없는데 예수도 하나님이 아닌데 죽기까지 믿는다고 고집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선택예정설
신은 자신의 백성을 미리 구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선택된 것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다만 죽은 후 인수 있으면 죽은 후 자유의지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동시에 심판이 주어졌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있는데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고생하다가
죽어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는데 지옥과 천국은 서로 왕래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산자를 위해 나타나서 예수 믿고 천국 가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단지 세상에 살아있는 교회나 교인이나 목사님들을 통해서 믿으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죽은 자를 통해서 믿게 해준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전도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그것을 강제로 하냐 선택으로 하냐에 따라서
당위성이 결정되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기에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사랑하기에 전도하기에 아들을 때린다거나 억지로 끌고 간다는 것은 사랑을 빙자한 악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반대하는 자들을 다 죽인 다면 아마 이 땅에 예수 믿고 기독교로 개종할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강요와 강제와 폭력 보다는 삶으로 본으로 보여야 하는 것인데 완전한 인간상이 없기에 예수를 믿어도 인간은 인가이기에 믿음만 변했지 삶이 한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기에 인격이나 삶의 표현 방식이 자신의 주변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주변 기독인이나 비기독인이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믿음과 삶의 방식은 따로 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일명 거짓이라고 하거나 위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나 그러기에 하나님이 오래 참음으로 우리의 죄에 징벌 안하듯 우리 주변 기독인들의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와 불안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인들안에서 강경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암튼 다시 예정설로 가서...
인간 중심 입장에서 본다면 신은 매우 무정하고 자신을 위해 창조하고 우리를 하나의 장난감으로 만든것으로 볼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서는 토기장이가 컵이나 대접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 듯
인간을 하나님이 쓰고자 하시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자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안 믿는 자녀로 만들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죽은 후 천국을 가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죽은 후 부활하여 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고, 믿지 못한 자는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도라는 사람들의 입을 통한 미련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이것을 통해 믿는 자는 의의 부활로 안 믿는 자는 사망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으로 종교라고 하는 이유는 말의 논리로 예수를 신이라고 인정 못하듯 노리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찾고 갈망하는 자에게 자신의 역사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기독인이 되는 대다수의 이유가 어떤 특정 체험이나 경험 등을 통하여 자신이 과학으로 설명 못함을 알게 되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로 방언, 치유, 예언, 영분별, 투시, 통변 기타 등등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은사 등입니다.
또는 다른 체험 등이 있습니다…….(꿈, 환상 등…….))_
이 부활의 형태는
첫째 심판은 믿느냐 안 믿느냐의 심판이고 (이 심판은 믿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재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죽음으로 이 심판의 최종 결정 내게 됩니다.)
두 번째 심판은 믿는 자들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믿는 자들이 악취나 행동이나 부정부패 등 기독인들만 받는 심판입니다.
예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잘 믿은 사람은 더 좋은 면류관을 가질 것이고
온전한 믿음이 행동을 못한 사람은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헌금으로 사기치고, 교회에서 나쁜 짓하고, 기타 등등으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등 예수님이 심판하시니 지금 억울해도 잠시 참아 주십시오.)
아직 궁금하고 의문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의문이 조금씩 벗겨진다고 해도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뜻은 모를 것 갔습니다.
그냥 단지 유추만 할 것 갔습니다.
왜 악인이 돈이 더 많이 벌고 더 잘나가는지.. ...
그런 것에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고 사회에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갔는지
기독인의 40%는 무엇을 하는지 기독인중 이혼과 간통과 그런 수많은 의문이 있지만
결국 의문을 해결 할 수 없고, 의문만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봅니다.
신 자신이 나타내지 않는 이상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박국서에 보니 이런 세상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답답해하며
글을 쓴 선지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대답한 내용을 봅니다.
그 내용은 내가 심판하리라하였으며 때와 기한도 그 심판의 목적도 신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만 바라보고 의지 하라였습니다. 2000년 전 이야기가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흘러서 선진국이지만 사회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같습니다.
아마 우리가 죽은 후에도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주님 보는 그날 물어 볼수 있게죠.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죄송한 것은 여러분이 기대하는 기독인의 모습을 가지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오히려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데 사회에 오히려 악한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도덕적, 성경적으로 정직한 모습을 우리 안에 담기가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좀더 나은 기독을 기대해주시고 성원해 주십시오.
긴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는데요. 정리된 신학을 배운 것은 아니니 좀 헛점이 보여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감사합니다.
기독 & 비기독 글을 읽고
오늘 시간이 있어 기독교 관련 글을 읽었습니다.
저는 철학자도 신학자도 아닙니다. 그냥 기독 청년 입니다.
그냥 글을 보면서 느낀 것은 사람으로 인해서 받은 상처들이 많은 것 같아 죄송할 뿐 입니다.
저 또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라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의인이기에 기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믿는다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때론 목사가 범죄하고 교인이 죄짓고 저도 죄짓습니다.
그러나 교회 다니면 세탁소에 다녀온 옷처럼 깨끗하게 살수 있는게 아니라
자신이 죄인이기에 매일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믿는 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죄인이 아니고 죄를 짓지도 않을 것이라면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저도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교회를 다녔지만 저희 아버지는 교회를 안다니시는데도 저를 때리면서 교회가라고 하셨습니다. 좀 모순된 모습이지요. 지금 나이가 30살인데 아직도 아버지는 교회를 안다니시네요.
모태 신앙이라고 교회를 다닌다고 다 믿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저도 그랬고요. 전 고3때 척추 디스크로 고생하다가 병원에서 못 고친다는 것을 우연히 기도원에서 치료 받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못 믿는 다고 했는데 의학이 못한 것을 치료 받고 보니 과학으로 신을 설명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과학을 포기 한 것은 아니지만 과학이 신을 담을 수 없다는 생각에 우선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지 10년이 됩니다.
글들에 보니 자유의지 관련에 대해 또는 전지전능함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대학 때 철학과 수업을 들었는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철학도
신이 "있다" "없다" 아직 결정을 못 내렸고 합니다. 양단간에 의견만 팽팽하더라고요.
그리고 그 관점에 따라 해석은 천차만별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대화들이 철학책에 있는 내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투와 말의 형식은 다르지만 아직도 계속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다만 마음 아픈 것은 읽는 이들의 입장에 따라
상처 또는 교만이나 겸손함으로 느껴지기에 글 쓰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ㅜㅜ
아래 글들 중에 의문을 가지고 말한 것이 몇 개 있기에
기독교 관점에서 아는 대로 달고 마칠까합니다.(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견해)
*전지전능하심
전지전능한데 왜 사람이 악하게 사는 것을 두는가? 인간의 부조리함을 또는 안 믿는 것을 계획하고 창조한 것인가?
무수한 이론이 있는데 기독교 이론이라고 확실하게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아는 바에 의하면
전지전능하기에 선과 악을 동시에 인정한다고 합니다.
악이란 개념을 먼저 정의 한다면 윤리적인 죄를 악으로 정의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불순종을 죄악으로 합니다.(신의 법칙 무시, 사랑 하지 못하는 것, 미워하여 죽이는 등)
그러기에 인간의 윤리와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십계명은 인간에게 주어진 윤리)
신은 우주를 창조하고 우주와 자연에 법칙을 부여 했으며, 인간은 그 법칙 안에서 활동 합니다.
이 법칙의 한계를 넘어서 응답되는 것을 특별 은총으로 정의 합니다.
일반은 총은 모든 믿는 자와 안 믿는 자들이 동시에 은총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신은 자유의지를 인간에 주셨고 그 자유의지 또한 신이기에 공평을 위하여 준 것입니다.
인간은 그 자유의지로 자신의 욕심을 향하여 의지를 사용하였고
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닌 인간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것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 욕심은 인간이 신이 되고자 한 것 입니다.
그것이 선악과 사건이고 그것으로 죄라는 것이 인류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죄가 인류에 들어 온 인간은 그것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계속 사용하였고 신에 대해 대항하거나 믿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런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신에게 올수 있도록 하기위해 통로를 만들 필요가 있었습니다. 완전하고 거룩한 신은 죄에 있는 인간을 받아들 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인간을 위해 죽어줄 대속물이 필요 했습니다.
그러나 대속물은 죄가 없는 대상이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중에 그 누구도 죄가 없는 인간은 없었습니다. 이유는 부모인 아담과 하와 이후로 원죄라는 것이 인간에게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남녀간의 정자와 난자가 함하는 순간부터 원죄는 성립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인해 신 자신이 인간을 위해 죽어야만 했는데 신은 신의 형상 그자체로는 대속한다는 것은 전지 전능한신이란 명칭과 맞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전지전능하다면 죄를 그냥 사해야지 죄를 대신 한다는 것은 신의 거룩성과 대치 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신은 완전한 인간이 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인간이자 인간이전에 신이기에 완전한 신의 성품도 같이 있었던 것입니다. 신은 남녀 관계가 되지 않은 처녀의 몸에 자신이 임신되어 완전한 10개월 후 잉태되어 인간으로 태어납니다.
(과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신의 전지전능한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자 신인 이가 바로 예수 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는 단 한번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모든 인간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죄를 속했기에 그로 인해 수많은 대속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신은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 믿는 다는 것은 예수가 완전한 신이자 인간이라는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예수가 자신의 삶을 주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믿지 않는 다면 구원을 얻을 수 없고 다른 종교나 믿음의 방법으로는 신에게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신을 대속한 그가 자신의 주인이고 신임임을 믿지 못한 자는 신 그 자체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것이 삼위일체론인데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간다하게 생각하면 손가락의 엄지, 검지 중지 이름을 명하듯
같은 신이고 하나이지만 성품이 달라 이름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성부는 공의 하나님으로 심판을 하며
성자는 성령의 하나님으로 사랑을 하기에 이 땅에 온 예수를 표현합니다.
성령은 우리와 동행하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삼위일체설도 여러 이야기가 있기에 심각한 것은 저도 모르고..
그냥 아는 것만 써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오기로 된 메시야의 예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몰라보고 신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는 것은 예정되어 있지만 인간이 신을 몰라보고 인간으로 알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유대교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였고 메시야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기 까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의 제자들마저도. ..
예수는 자신이 죽은 후 3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였고
그로인해 제자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제자들은 증명하기위해 설명했고 말로 전한 것을 믿지 않기에 하나님은 때론 제자들에게 병 고치는 것을 허락하셔서 그것을 통해 믿는 자를 더하였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치유는 간접적인 수단이지 근본적인 목적이 아니기에 인간이 원할 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원할 때 치유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자신의 부활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으며 자신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을 부활 후에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 생선을 먹었고 창자국과 못자 국을 보여주었으며 40일간 동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활의 모습을 모든 자들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자신과 3년간 동행하며 자기 말씀을 듣고 배운 자들이 배반했기에 그들의 믿음을 위해 자신의 제자들 12명 120명 500명 등의 사람에게 만 보이신 것입니다. 그로 인해 소문의 형성은 두 갈래로 나뉜 것입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꾸민 것이다.
하나는 정말 부활했다.
이 사실에 대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죽은지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인들의 신앙은 의미가 없고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 부활의 때는 일명 재림 하실 때지만 문재는 그 때를 하나님만 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천사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일명 이단이라고 정의 하는 이들 중 다수는 자신들이 그때를 안다고 하는 이들이 이단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기에 그날과 그때를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아는 것은 심판과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독인들은 죄가 있든 착하든 선하든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그 부활을 기대하며 믿는 것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인들은 속임수에 속아가는 멍청한 이들이 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확률일수도 있지만 60억의 인구 중 20억 정도 되는 기독인들은 이 부활을 소망합니다. 일명 천국이지요...그래서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뼈대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2000년 전의 제자들이 순교하며 전한 그 의미는 "삽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병신이자 또라이인 예수를 따르고 죽은 샘이 되고 제자들의 제자들이 사자 굴에서 로마 광장에서 믿음을 위해 죽은 것도 다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죠. 부활도 없는데 예수도 하나님이 아닌데 죽기까지 믿는다고 고집했으니 말입니다.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서는 하고 있습니다.
*선택예정설
신은 자신의 백성을 미리 구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선택된 것인지 아닌지 모릅니다.
다만 죽은 후 인수 있으면 죽은 후 자유의지는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과 동시에 심판이 주어졌다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있는데 거지 나사로는 세상에서 고생하다가
죽어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갔는데 지옥과 천국은 서로 왕래 할 수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죽은 자가 산자를 위해 나타나서 예수 믿고 천국 가라고 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단지 세상에 살아있는 교회나 교인이나 목사님들을 통해서 믿으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죽은 자를 통해서 믿게 해준다는 것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살아 있는 자들의 전도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데, 그것을 강제로 하냐 선택으로 하냐에 따라서
당위성이 결정되어지는데 성경에서는 사랑으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이기에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것을 말해야 하는데 사랑하기에 전도하기에 아들을 때린다거나 억지로 끌고 간다는 것은 사랑을 빙자한 악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반대하는 자들을 다 죽인 다면 아마 이 땅에 예수 믿고 기독교로 개종할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기에 강요와 강제와 폭력 보다는 삶으로 본으로 보여야 하는 것인데 완전한 인간상이 없기에 예수를 믿어도 인간은 인가이기에 믿음만 변했지 삶이 한순간에 변한 것은 아니기에 인격이나 삶의 표현 방식이 자신의 주변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주변 기독인이나 비기독인이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믿음과 삶의 방식은 따로 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일명 거짓이라고 하거나 위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누구나 그러기에 하나님이 오래 참음으로 우리의 죄에 징벌 안하듯 우리 주변 기독인들의 문제에 대해 반성하고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와 불안을 일으키는 것에 대해서는 기독인들안에서 강경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암튼 다시 예정설로 가서...
인간 중심 입장에서 본다면 신은 매우 무정하고 자신을 위해 창조하고 우리를 하나의 장난감으로 만든것으로 볼수 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경에서는 토기장이가 컵이나 대접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만들 듯
인간을 하나님이 쓰고자 하시는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믿음의 자녀로 만들었는지 아니면 안 믿는 자녀로 만들었는지 우리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만 죽은 후 천국을 가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죽은 후 부활하여 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고, 믿지 못한 자는 고통 속에서 힘들어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전도라는 사람들의 입을 통한 미련한 방식으로 복음을 전하는데
이것을 통해 믿는 자는 의의 부활로 안 믿는 자는 사망의 부활로 나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체험으로 종교라고 하는 이유는 말의 논리로 예수를 신이라고 인정 못하듯 노리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을 찾고 갈망하는 자에게 자신의 역사를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기독인이 되는 대다수의 이유가 어떤 특정 체험이나 경험 등을 통하여 자신이 과학으로 설명 못함을 알게 되고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로 방언, 치유, 예언, 영분별, 투시, 통변 기타 등등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은사 등입니다.
또는 다른 체험 등이 있습니다…….(꿈, 환상 등…….))_
이 부활의 형태는
첫째 심판은 믿느냐 안 믿느냐의 심판이고 (이 심판은 믿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재 이루어지는 심판입니다. 죽음으로 이 심판의 최종 결정 내게 됩니다.)
두 번째 심판은 믿는 자들의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믿는 자들이 악취나 행동이나 부정부패 등 기독인들만 받는 심판입니다.
예수님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잘 믿은 사람은 더 좋은 면류관을 가질 것이고
온전한 믿음이 행동을 못한 사람은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헌금으로 사기치고, 교회에서 나쁜 짓하고, 기타 등등으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 등 예수님이 심판하시니 지금 억울해도 잠시 참아 주십시오.)
아직 궁금하고 의문인 것이 너무 많습니다.
아직도 도대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너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그 의문이 조금씩 벗겨진다고 해도 죽는 그날까지 하나님의 뜻은 모를 것 갔습니다.
그냥 단지 유추만 할 것 갔습니다.
왜 악인이 돈이 더 많이 벌고 더 잘나가는지.. ...
그런 것에 답답해하고 힘들어하고 사회에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갔는지
기독인의 40%는 무엇을 하는지 기독인중 이혼과 간통과 그런 수많은 의문이 있지만
결국 의문을 해결 할 수 없고, 의문만 품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봅니다.
신 자신이 나타내지 않는 이상 누가 하나님을 볼 수 있겠습니까.
하박국서에 보니 이런 세상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답답해하며
글을 쓴 선지자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대답한 내용을 봅니다.
그 내용은 내가 심판하리라하였으며 때와 기한도 그 심판의 목적도 신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만 바라보고 의지 하라였습니다. 2000년 전 이야기가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역사는 흘러서 선진국이지만 사회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가? 같습니다.
아마 우리가 죽은 후에도 이런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주님 보는 그날 물어 볼수 있게죠.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에게 죄송한 것은 여러분이 기대하는 기독인의 모습을 가지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오히려 사회를 바꾸어야 하는데 사회에 오히려 악한 모습을 보여 드려 죄송합니다. 도덕적, 성경적으로 정직한 모습을 우리 안에 담기가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좀더 나은 기독을 기대해주시고 성원해 주십시오.
긴 이야기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일수도 있는데요. 정리된 신학을 배운 것은 아니니 좀 헛점이 보여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감사합니다.
그리고 답답하고 문제도 많은데요. 한번 예수님 믿어 보세요.
그 기쁨과 그 감격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좋답니다.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다시 찾게 되어지고 알게 되어 정말 기쁘답니다.
아마 예수님 못 맞나고 그리고 아직도 척추를 치료 받지 못했다면.
아마 전 인생의 낙오자나 죽음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들 힘들고 괴로운 인생 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방법도 여러 가지겠지만
정말 희망의 빛을 본 것은 예수라는 2000년 전에 나보다 날 먼저 아셨던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새 힘을 얻고 지금도 살아갑니다.
그런 그 분을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한번 믿어 보시고요. 또는 믿었다가 믿음을 잃으셨다면
기독교의 종교형태든 사람이든 그런 것 다떠나서 한번 예수님을 마음에 초청해 보세요.
아마 당신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함께 가리라 생각합니다.
샬롬!!~ 사랑 합니다. 승리하세요. 부족하고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