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큰 아이> - (2부) 경미와의 약속시간까지는 20여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영이라는 이름의 아이 령(靈)을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일찍 연구원을 나섰었다. 그래서 맨 처음 아이 령(靈)과 만났던 아파트 현관 앞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문이 거의 끝나갈 즈음 아이 령(靈)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 어! 아저씨 또 오셨네요? ” -“ 아저씨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 뭔데요?........ 물어 보세요 그럼.” -“ 너 혹시........ 앞집 경미아줌마 뱃속에 있던 아기 말이야. 그 아기를 네가 잘못되게 만들었니? ” “ 우~웅? 내가 그런 거 아닌데........” -“ 정말 네가 그런 거 아니야? 경미 아줌마가 그러던데 꿈에서 너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자기 아기를 강제로 데려가려 했다고.........” “ 제가 안 그랬어요! 전 그냥 아기가 너무 예뻐서......... 그냥 한번 안아만 보려고.........” -“ 역시 그랬구나........ 네가 아무리 그 아기가 예뻤어도 그 아기를 안아주면 안 돼는 거였어.” “ 왜요?....... 왜 제가 예쁜 아기를 안아주면 안 돼나요? ” -“ 그건 말이다. 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 물론 아직은 네가 이해하기 힘든 얘기겠지만 말이야........” 아이 령(靈)은 아직도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나는 아이 령(靈)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한 뒤 경미의 집으로 들어갔다. “ 어서오세요. 법사님~” 경미는 어제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 법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예. 무슨 얘기신데요? ” “ 어제 저녁 때 앞집 부부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었어요.” -“ 네?....... 무슨 일로 왔는데요? ” “ 어제 법사님께서 앞집 여자한테 죽은 아이에 대해서 물어 보셨다면서요? ” -“ 예. 그냥 확인만 하려고 그랬던 건데........ 그래서 뭐라던가요? ” “ 다짜고짜 제게 법사님에 대해서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제 법사님이 제게 해 주셨던 죽은 앞집 아이에 대한 얘기는 안하고 그냥 법사님이 어떤 분이시다 라고만 얘기해 줬죠. 그리고 오늘 또 오실 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 그랬더니요? ” “ 그랬더니 글쎄, 오늘 법사님이 오시면 꼭 자기네 집에도 좀 들렀다 가시게 해 달라고 저한테 통 사정을 하더라고요.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정말! 아니~ 인사도 안받으면서 사람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염체로 부탁을 하고 있어! 아주 더럽게 뻔뻔한 것들..........” -“ 하하하........ 경미씨! 너무 화내지 마세요.” “ 그럼 제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요? ” -“ 경미씨! 이따가 부적 붙이는 일이 끝나면 저랑 함께 앞집으로 가시죠? ” “ 어머! 싫어요. 제가 그 집구석을 왜 간데요? ” -“ 어차피 앞으로도 얼굴 마주치고 사실 건데 아예 이번 기회에 서로 정식으로 인사도 나누고 하시면 되겠네요.” 경미는 내 설득에 조금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집요하게 경미를 설득했고 한참 뒤 결국 나와 함께 앞집을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나는 준비해 온 부적을 가방에서 꺼내어 한 장씩 한 장씩 집 안에다 붙이기 시작했다. “ 이제 다 끝났습니다.” -“ 이제 우리 집에는 어떤 귀신도 못 들어오는 거죠? ” “ 예. 맞습니다. 그러니 이제 맘 편히 사셔도 됩니다.” -“ 와~~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네요.” 경미는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한대로 함께 앞집으로 향했다. 경미가 앞집의 벨을 누르자마자 마치 현관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앞집 여자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했다. “ 새댁~~ 정말 고마워요.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 아주머니! 저 새댁 아니거든요? 이래보여도 저 결혼 5년차에요.” “ 으이그~ 별걸 다 갖고 그러네. 그 쪽이 워낙 젊고 예쁘니까 내가 새댁이라고 그런 거지! ” -“ 호호호........ 정말요? 제가 좀 어려보이긴 하죠. 제 친구들도 다 부럽다고 그래요.” 경미는 앞집 여자의 새댁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화가 바로 풀려버렸다. 역시 앞집 여자의 노련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앞집여자는 우리를 소파에 앉힌 뒤 곧바로 마실 것을 내왔다. “ 제가 좀 성격이 급해서........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을 드리죠. 혹시 법사님께서 저희 아영이를 보셨나요? ” -“ 예. 그 아이 령(靈)이 확실히 아영이라는 건 모르겠지만 그 아이 령(靈)의 말대로라면 그렇습니다.” 여자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 큰 사진액자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액자 안에는 아영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 이게 우리 아영이 사진이에요. 어서 한번 보세요. 법사님이 보신 아이가 이 아이인지.......” -“ 맞네요. 이 아이가 맞습니다. 큰 눈에 동그란 얼굴.........” 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경미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그럼 우리 아영이가 좋은 곳으로 간 게 아니네요! 애들 아빠하고 난.......... 우리 아영이가 지금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흐흑..........” -“ 좋은 곳이요?.......” “ 예. 작년에 아영이를 위해 천도제를 올려줬거든요. 아는 사람이 하도 점을 잘 보는 용한 무당이 있다고 하기에 따라 나섰었죠. 그런데 그 무당이 갑자기 죽은 우리 아영이 얘길 꺼내더군요.” -“ 뭐라고 그러던가요? ” “ 죽은 딸이 한(恨)이 맺혀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천도제를 올려줘야 한다고요.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아들마저도 곧 몹쓸 병으로 죽게 될 거라면서........” -“ 결국 또 그런 식으로 사기를 당하셨네요.” “ 사기요?........ 하긴 사기를 당한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법사님 말씀대로 아직 우리 아영이의 영혼이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말이죠.” -“ 천도제를 올린다고해서 그 령(靈)이 무조건 좋은 곳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일단 사람이 죽는다는 건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됨을 의미하죠. 그리고 육체는 썩고 영혼만 남게 되는 겁니다. 대게는 남아있는 영혼도 곧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어 저승으로 가게 되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죠. 즉, 저승으로 갈 수 없는 영혼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귀(鬼)라는 겁니다.” “ 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거죠? 혹시 죽을 때 한(恨)이 많아서 그러나요? ” -“ 물론 그런 특별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귀(鬼)가 되는 영혼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사람들, 그러니까 제 명(命)에 못 죽은 사람들이 귀(鬼)가 되는 겁니다.” “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명(命)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있는 게 아닌가요? ” -“ 그게 그렇지가 않으니까 문제죠. 모든 사람들이 자기 타고난 명(命)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아마도 귀(鬼)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그럼 왜 제 명(命)에 죽지 못하게 되는 건가요? ” -“ 그야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습니다만 그 중 제일이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되죠.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인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서로 서로의 운명이 교차하게 됩니다. 때로는 합(合)이 될 수도 때로는 충(沖)이 될 수도 있죠. 그러면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운명에 이끌려 제 명(命)을 다하지 못하고 이승과 이별을 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승과의 완전한 이별은 아니죠. 본래 자신의 명(命)이 끝나는 날까지 귀(鬼)가 되어 구천(九天)을 떠돌게 되니까요.” 여태껏 나와 앞집 여자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경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원래 자신의 명(命)이 다하는 날까지?....... 그럼 10살에 죽은 사람이 있다고 치고 원래 60살에 죽는 명(命)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면 나머지 50년 동안은 귀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얘기네요? ” -“ 예. 바로 그렇습니다.” 경미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는 표정으로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 -“ 뭐가요?........” “ 방금 법사님 말씀대로라면......... 귀신은 원래 타고난 명(命)까지만 귀신으로 사는 거니까 지금 있는 귀신들 중에 옛날 옛적에 죽은 귀신은 없다는 얘기네요? ” -“ 하하하....... 그렇지는 않죠! 아까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오래된 귀신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한(恨)을 품고 죽은 귀(鬼)에요.” “ 그럼 그렇게 한(恨)을 품고 죽은 귀신은 모두 영원히 귀신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 -“ 그것도 역시 한(恨)을 품고 죽은 귀(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영원히 귀(鬼) 상태로 사는 건 아닙니다. 그 중에 자신의 한(恨)이 풀리게 된 귀(鬼)는 비로써 귀(鬼)의 생(生)을 마감합니다.” “ 그럼 그 한(恨)이 풀리게 된다는 건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복수를 한다는........” -“ 그야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대게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 한(恨)이 잦아들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그 한(恨)을 푸는 경우가 많죠.” 나와 경미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아영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죽은 딸도 많은 한(恨)을 품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영의 엄마는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 그럼 우리 아영이는 언제쯤이나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거죠? 혹시 아영이도 한(恨)이 많아서 영영 좋은 곳으로 못가는 건 아닐까요? ” -“ 너무나도 어린나이에 이승을 떠났기에 한(恨)이야 조금은 서려있겠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마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영이는 크게 한(恨)이 맺혀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건 령(靈)을 감싸고 있는 빛의 색으로도 알 수 있거든요.” “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아영이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세요.” -“ 우선 죽은 따님을 생각하시되 항상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보면 어린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 불쌍하다거나 구천(九天)을 떠돌고 다닐 딸아이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던가 하는 그런 부정적이고 슬픈 생각은 가급적 피하세요. 대신에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하시는 겁니다.” “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 그러니까........ 우리 아영이는 분명 다른 이들 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가기위해 조금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이며 지금은 남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잠시 동안만 귀(鬼)의 몸이 되어 자유로이 우리 곁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겠지.......... 이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내가 아영엄마와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을 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드디어 아영이의 령(靈)이 모습을 보였다. 아영은 자신 때문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엄마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더니 등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영의 령(靈)은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러자 곧 아영엄마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아영이의 마음이 엄마에게 전달이라도 된 것일까?.......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녀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맞아요! 우리 아영이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갈 겁니다. 살아있을 때에도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어요. 그러니까 죽어서도 우리 착한 딸은 이 못난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을 거고요.” -“ 그렇죠. 바로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그 다음으로 이어서 할 말이 있었지만 끝까지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속으로 감추었다. 그건 내가 아영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바로 그 말은.......... ‘ 그래야......... 언젠가는 아영이도 아영엄마도 서로가 핏줄로 이어진 질긴 인연의 끈을 영원히 놓아주게 될 겁니다. ’ <끝> * 환단카페로 오시면 이 곳 소설의정원에 올리지 않은 글들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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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소설 [나는 퇴마사다!] - 눈이 큰 아이 (2부)
<눈이 큰 아이> - (2부)
경미와의 약속시간까지는 20여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영이라는 이름의 아이 령(靈)을
다시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일찍 연구원을 나섰었다.
그래서 맨 처음 아이 령(靈)과 만났던
아파트 현관 앞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난 뒤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문이 거의 끝나갈 즈음
아이 령(靈)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 어! 아저씨 또 오셨네요? ”
-“ 아저씨가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 뭔데요?........ 물어 보세요 그럼.”
-“ 너 혹시........ 앞집 경미아줌마 뱃속에 있던 아기 말이야.
그 아기를 네가 잘못되게 만들었니? ”
“ 우~웅? 내가 그런 거 아닌데........”
-“ 정말 네가 그런 거 아니야?
경미 아줌마가 그러던데
꿈에서 너처럼 생긴 여자아이가 자기 아기를 강제로 데려가려 했다고.........”
“ 제가 안 그랬어요!
전 그냥 아기가 너무 예뻐서.........
그냥 한번 안아만 보려고.........”
-“ 역시 그랬구나........
네가 아무리 그 아기가 예뻤어도 그 아기를 안아주면 안 돼는 거였어.”
“ 왜요?....... 왜 제가 예쁜 아기를 안아주면 안 돼나요? ”
-“ 그건 말이다.
네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지.
물론 아직은 네가 이해하기 힘든 얘기겠지만 말이야........”
아이 령(靈)은 아직도 자신의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내 말에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기에 아이는 너무 어렸다.
나는 아이 령(靈)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게 한 뒤
경미의 집으로 들어갔다.
“ 어서오세요. 법사님~”
경미는 어제보다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 법사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 예. 무슨 얘기신데요? ”
“ 어제 저녁 때 앞집 부부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었어요.”
-“ 네?....... 무슨 일로 왔는데요? ”
“ 어제 법사님께서 앞집 여자한테 죽은 아이에 대해서 물어 보셨다면서요? ”
-“ 예. 그냥 확인만 하려고 그랬던 건데........ 그래서 뭐라던가요? ”
“ 다짜고짜 제게 법사님에 대해서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어제 법사님이 제게 해 주셨던
죽은 앞집 아이에 대한 얘기는 안하고
그냥 법사님이 어떤 분이시다 라고만 얘기해 줬죠.
그리고 오늘 또 오실 거라는 얘기도 했고요.”
-“ 그랬더니요? ”
“ 그랬더니 글쎄,
오늘 법사님이 오시면 꼭 자기네 집에도 좀 들렀다 가시게 해 달라고
저한테 통 사정을 하더라고요.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정말!
아니~ 인사도 안받으면서 사람 무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무슨 염체로 부탁을 하고 있어!
아주 더럽게 뻔뻔한 것들..........”
-“ 하하하........ 경미씨! 너무 화내지 마세요.”
“ 그럼 제가 지금 화 안 나게 생겼어요? ”
-“ 경미씨! 이따가 부적 붙이는 일이 끝나면 저랑 함께 앞집으로 가시죠? ”
“ 어머! 싫어요. 제가 그 집구석을 왜 간데요? ”
-“ 어차피 앞으로도 얼굴 마주치고 사실 건데
아예 이번 기회에 서로 정식으로 인사도 나누고 하시면 되겠네요.”
경미는 내 설득에 조금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욱 집요하게 경미를 설득했고
한참 뒤 결국 나와 함께 앞집을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나는 준비해 온 부적을 가방에서 꺼내어
한 장씩 한 장씩 집 안에다 붙이기 시작했다.
“ 이제 다 끝났습니다.”
-“ 이제 우리 집에는 어떤 귀신도 못 들어오는 거죠? ”
“ 예. 맞습니다. 그러니 이제 맘 편히 사셔도 됩니다.”
-“ 와~~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잘 수 있겠네요.”
경미는 몹시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약속한대로 함께 앞집으로 향했다.
경미가 앞집의 벨을 누르자마자
마치 현관문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앞집 여자가 문을 열고 우리를 맞이했다.
“ 새댁~~ 정말 고마워요.
자~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 아주머니! 저 새댁 아니거든요?
이래보여도 저 결혼 5년차에요.”
“ 으이그~ 별걸 다 갖고 그러네.
그 쪽이 워낙 젊고 예쁘니까 내가 새댁이라고 그런 거지! ”
-“ 호호호........ 정말요?
제가 좀 어려보이긴 하죠. 제 친구들도 다 부럽다고 그래요.”
경미는 앞집 여자의 새댁이라는 말 한마디에
그동안 쌓였던 화가 바로 풀려버렸다.
역시 앞집 여자의 노련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앞집여자는 우리를 소파에 앉힌 뒤
곧바로 마실 것을 내왔다.
“ 제가 좀 성격이 급해서........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씀을 드리죠.
혹시 법사님께서 저희 아영이를 보셨나요? ”
-“ 예. 그 아이 령(靈)이 확실히 아영이라는 건 모르겠지만
그 아이 령(靈)의 말대로라면 그렇습니다.”
여자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고는 곧 큰 사진액자 하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 액자 안에는 아영이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 이게 우리 아영이 사진이에요.
어서 한번 보세요. 법사님이 보신 아이가 이 아이인지.......”
-“ 맞네요. 이 아이가 맞습니다. 큰 눈에 동그란 얼굴.........”
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 앉아있던 경미도 덩달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그럼 우리 아영이가 좋은 곳으로 간 게 아니네요!
애들 아빠하고 난..........
우리 아영이가 지금 좋은 곳에 가서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흐흑..........”
-“ 좋은 곳이요?.......”
“ 예. 작년에 아영이를 위해 천도제를 올려줬거든요.
아는 사람이 하도 점을 잘 보는 용한 무당이 있다고 하기에 따라 나섰었죠.
그런데 그 무당이 갑자기 죽은 우리 아영이 얘길 꺼내더군요.”
-“ 뭐라고 그러던가요? ”
“ 죽은 딸이 한(恨)이 맺혀서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있으니
하루빨리 천도제를 올려줘야 한다고요.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아들마저도
곧 몹쓸 병으로 죽게 될 거라면서........”
-“ 결국 또 그런 식으로 사기를 당하셨네요.”
“ 사기요?........
하긴 사기를 당한 게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법사님 말씀대로 아직 우리 아영이의 영혼이
우리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면 말이죠.”
-“ 천도제를 올린다고해서
그 령(靈)이 무조건 좋은 곳으로 가게 되는 건 아닙니다.
일단 사람이 죽는다는 건 육체와 영혼이 분리가 됨을 의미하죠.
그리고 육체는 썩고 영혼만 남게 되는 겁니다.
대게는 남아있는 영혼도
곧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어 저승으로 가게 되는 거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죠.
즉, 저승으로 갈 수 없는 영혼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귀(鬼)라는 겁니다.”
“ 왜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 거죠?
혹시 죽을 때 한(恨)이 많아서 그러나요? ”
-“ 물론 그런 특별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귀(鬼)가 되는 영혼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사람들,
그러니까 제 명(命)에 못 죽은 사람들이 귀(鬼)가 되는 겁니다.”
“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명(命)이라는 건 이미 정해져있는 게 아닌가요? ”
-“ 그게 그렇지가 않으니까 문제죠.
모든 사람들이 자기 타고난 명(命)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아마도 귀(鬼)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 기왕에 얘기가 나왔으니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그럼 왜 제 명(命)에 죽지 못하게 되는 건가요? ”
-“ 그야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습니다만
그 중 제일이 바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연이라는 겁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여러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게 되죠.
그리고 그 인연으로 인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서로 서로의 운명이 교차하게 됩니다.
때로는 합(合)이 될 수도 때로는 충(沖)이 될 수도 있죠.
그러면서 한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의 운명에 이끌려
제 명(命)을 다하지 못하고 이승과 이별을 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이승과의 완전한 이별은 아니죠.
본래 자신의 명(命)이 끝나는 날까지
귀(鬼)가 되어 구천(九天)을 떠돌게 되니까요.”
여태껏 나와 앞집 여자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경미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 원래 자신의 명(命)이 다하는 날까지?.......
그럼 10살에 죽은 사람이 있다고 치고
원래 60살에 죽는 명(命)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면
나머지 50년 동안은 귀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얘기네요? ”
-“ 예. 바로 그렇습니다.”
경미는 점점 더 흥미로워진다는 표정으로 또 다시 질문을 던졌다.
“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어요! ”
-“ 뭐가요?........”
“ 방금 법사님 말씀대로라면.........
귀신은 원래 타고난 명(命)까지만 귀신으로 사는 거니까
지금 있는 귀신들 중에 옛날 옛적에 죽은 귀신은 없다는 얘기네요? ”
-“ 하하하....... 그렇지는 않죠!
아까도 잠깐 말씀을 드렸지만 오래된 귀신도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한(恨)을 품고 죽은 귀(鬼)에요.”
“ 그럼 그렇게 한(恨)을 품고 죽은 귀신은
모두 영원히 귀신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요? ”
-“ 그것도 역시 한(恨)을 품고 죽은 귀(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영원히 귀(鬼) 상태로 사는 건 아닙니다.
그 중에 자신의 한(恨)이 풀리게 된 귀(鬼)는
비로써 귀(鬼)의 생(生)을 마감합니다.”
“ 그럼 그 한(恨)이 풀리게 된다는 건
살아있는 누군가에게 복수를 한다는........”
-“ 그야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대게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그 한(恨)이 잦아들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그 한(恨)을 푸는 경우가 많죠.”
나와 경미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 동안
아영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죽은 딸도
많은 한(恨)을 품고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아영의 엄마는 다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 그럼 우리 아영이는 언제쯤이나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는 거죠?
혹시 아영이도 한(恨)이 많아서 영영 좋은 곳으로 못가는 건 아닐까요? ”
-“ 너무나도 어린나이에 이승을 떠났기에 한(恨)이야 조금은 서려있겠죠.
하지만 누군가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있는 건 아니니까
아마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겁니다.
제가 보기에도 아영이는 크게 한(恨)이 맺혀있는 것 같지 않았어요.
그건 령(靈)을 감싸고 있는 빛의 색으로도 알 수 있거든요.”
“ 그럼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아영이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주세요.”
-“ 우선 죽은 따님을 생각하시되 항상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보면
어린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 불쌍하다거나
구천(九天)을 떠돌고 다닐 딸아이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던가 하는
그런 부정적이고 슬픈 생각은 가급적 피하세요.
대신에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을 하시는 겁니다.”
“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 그러니까........
우리 아영이는 분명
다른 이들 보다도 훨씬 더 좋은 곳으로 가기위해
조금 일찍 우리 곁을 떠난 것이며
지금은 남은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잠시 동안만 귀(鬼)의 몸이 되어
자유로이 우리 곁에 머무르려 하는 것이겠지..........
이렇게 말입니다.”
이렇게 내가 아영엄마와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있을 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왔는지
드디어 아영이의 령(靈)이 모습을 보였다.
아영은 자신 때문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내고 있는
엄마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더니
등에 얼굴을 부비며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영의 령(靈)은 그저 평범한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그러자 곧 아영엄마의 표정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치 아영이의 마음이 엄마에게 전달이라도 된 것일까?.......
방금 전까지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던 그녀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맞아요! 우리 아영이는 분명 좋은 곳으로 갈 겁니다.
살아있을 때에도 엄마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었어요.
그러니까 죽어서도 우리 착한 딸은
이 못난 엄마를 슬프게 하지 않을 거고요.”
-“ 그렇죠. 바로 그렇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는 그 다음으로 이어서 할 말이 있었지만
끝까지 밖으로 꺼내지 않은 채 속으로 감추었다.
그건 내가 아영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바로 그 말은..........
‘ 그래야.........
언젠가는 아영이도 아영엄마도
서로가 핏줄로 이어진 질긴 인연의 끈을 영원히 놓아주게 될 겁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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