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아고라 decide 님의 글 펌.. *** 기독교죄악사part2 下 두얼굴의청도교 개인적 사설 들어가기전에.... 기독교죄악사part2 下 두얼굴의청도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장 34절 마태복음 10장 34절을 너무나 잘 실천한 청도교의 역사을 오늘은 공부해볼까한다. 1. 필립전쟁 17세기 초의 이주민들은 인디언의 호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사냥감을 얻기 위해 인디언 마을을 약탈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1600년대 초, 영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때에는 백인들은 다분히 모호하고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자 더 많은 토지가 필요했고,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정착한 그들에게 인디언은 개종시켜야 할 미개인, 혹은 몰아내야 할 야만인으로 생각되었다. 1610년 이주민 두 명이 살해되자 백인들은 앙갚음을 위해 인디언 마을 두 곳에 불을 지르고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학살했다. 약탈, 방화, 파괴가 극에 달하자 제임스타운 인근 부족인 포우하탄 동맹 인디언들은 1622년 3월, 공격을 감행 해 영국인 350명을 사살했다. 이에 대응해서 백인들은 수천 명에 달하는 총포로 무장한 민병대를 조직해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 년의 전투 끝에 인디언은 동맹의 땅 일부를 포기한 채 화평조약을 맺었다. 청교도들은 처음부터 획득한 땅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동맹의 땅을 잠식해 나갔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인디언의 완전한 추방인 것 처럼 보였다. 양 세력은 매우 불안한 형태로 대립되어 있었으며 충돌은 더욱 빈번해 졌다. 그러던 중 1636년 한 영국군 장교의 살해로 야기된 백인의 공격에서 인디언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부녀자를 포함해 한 마을 주민 수백명이 처참하게 살해되으며 심지어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백인들은 꾸준히 땅의 포기를 요구해 왔으며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되자 부족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가며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들은 무력을 이용해, 거래(혹은 조약)에 도움이 되는 부족 지도층을 교묘히 빼돌려 강제조약을 공표한 뒤 살해하거나 강압적으로 조약을 체결 한 뒤, 저항하는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나간다. 십수 년 동안의 잔혹한 전투와 백인들의 굴욕적인 대우에 견디다 못한 암포노와그족 추장 메타콤(백인들은 그를 비꼬아 "필립왕"이라고 불렀다)은 1675년, 모든 포우하탄 동맹국, 오랜동안 앙숙으로 지내던 모히칸족 및 모호크조카지 동부 인디언들을 규합하여 백인들에 대항한다. 1년여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인디언은 격렬히 저항 했으나 결국 메타콤의 사망과 함께 전쟁은 끝난다. 2. 인디언은 사탄의 아들 청교도의 목사들은 인디언들이 사탄의 아들이라는 말로 인디언들을 학살하도록 부추겼던 사실은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이었다. 매사추세츠의 항구에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는 점차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꿈꾸어 왔던 청교도들의 경건한 신앙심과 소박한 생활이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청교도의 유산인 도덕주의와 이상주의는 퇴색하고 종교적인 개혁보다는 물질적인 욕구에 탐닉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620년에 필그림스들이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하여 북미대륙에 착륙한 이래 수십만 명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을 찾아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수효는 일반 이주민들의 수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었다. 그들은 미국역사가들의 주장처럼 청교도와 필그림스들은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미국사회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사탄의 아들이므로 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정당하다고 설교했던 청교도와 필그림스들의 목사들에 의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에 깊은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신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청교도들은 점차 이민사회에서 청교도 지도자의 자리를 굳히고 이주민들을 교화시켜 나갔으나 그들도 점차 물욕에 탐닉하고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이 오늘날 미국인들의 조상들이었다는 실상을 숨겨오고 온갖 미사여구로 그들의 조상을 찬양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소유권자가 없는 인적 미답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신대륙을 개척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문명을 갖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디언 학살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는 숭고한 청교도정신으로 미국을 건국했다는 미국 건국이념의 뒤안길에는 숨겨져 버렸고 피로 얼룩진 정복의 역사와 비인간적인 만행으로 수많은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희생된 초창기 미국의 역사에 이어 미국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저질렀던 침략사와 미국인들의 축소 왜곡한 과거 역사를 바르게 연구하므로써 현대 미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필그림스의 조상들과 그 밖의 식민지개척에 참여했던 영국인,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은 창세기이후 세계의 어떤 정복자들보다도 더 철저하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잔인하게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적은 없었다. 인디언전쟁이 단순한 전쟁의 서술적인 기록이 아닌 다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으며, 애초부터 그들에게 전쟁의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설에서 보았듯이 초기 백인이주자들을 위해 인디언은 고기잡는 법에서부터 씨앗뿌리는 일, 식량 작물의 채집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집까지도 제공했다. 인디언의 땅에 거의 최초로(완전한 최초는 아니다) 정착했던 메이플라워의 청교도들은 인디언의 그러한 평등사상이 없었으면 아예 역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 대부분의 백인 이주자들도 인디언들이 자신들과 똑같은(경계하고 몰아내야 할 인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학살당한 인디언은 8천~1억에 이른다 - - 현제 미국과 케나다 북미에 남은 인디언들의 후손은 고작 27만이 유원지화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생활하고 잇으며 전통적인 자연적 생활을 고집하며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투쟁하는 인디언들과 조직들은 아직도 존제한다 - 청교도들 중에는 그들이 도착한 신대륙을 마치 역사 속의 가나안과 예루살렘으로 믿고 '새 가나안 땅' '새 예루살렘'이라 여기며,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듯 아메리카를 정복하자고 외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무참히 살해하고 정복하여 축복의 땅을 얻었던 것과 같이 자신들이 땅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면 인디언들을 무참히 죽여서라도 약속의 땅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메리카 정복의 과정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데 가담했던 청교도들이나 교회가 단 한 번이라도 공식적으로 이를 거론하거나 정중하게 사과했다는 기록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디언 역사를 읽으면서 정작 대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크리스천 인디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순교의 길을 떠났다고 하는 내용을 보면서 힘없이 도살당한 어린양들이 흘린 피로 넘쳤던 강물을 오늘 기독교 역사가들은 과연 뭐라고 적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죄악사 2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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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죄악사part2 下 두얼굴의청도교
개인적 사설 들어가기전에....
기독교죄악사part2 下 두얼굴의청도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마태복음 10장 34절
마태복음 10장 34절을 너무나 잘 실천한 청도교의 역사을 오늘은 공부해볼까한다.
1. 필립전쟁
17세기 초의 이주민들은 인디언의 호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식량과, 사냥감을 얻기 위해
인디언 마을을 약탈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1600년대 초, 영국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때에는 백인들은 다분히 모호하고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주민의 수가 늘어나자 더 많은 토지가 필요했고,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정착한
그들에게 인디언은 개종시켜야 할 미개인, 혹은 몰아내야 할 야만인으로 생각되었다.
1610년 이주민 두 명이 살해되자 백인들은 앙갚음을 위해 인디언 마을 두 곳에
불을 지르고 여인들과 아이들까지 학살했다.
약탈, 방화, 파괴가 극에 달하자 제임스타운 인근 부족인
포우하탄 동맹 인디언들은 1622년 3월, 공격을 감행 해 영국인 350명을 사살했다.
이에 대응해서 백인들은 수천 명에 달하는 총포로 무장한 민병대를 조직해
인디언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수 년의 전투 끝에 인디언은 동맹의 땅 일부를 포기한 채 화평조약을 맺었다.
청교도들은 처음부터 획득한 땅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동맹의 땅을 잠식해 나갔다.
그들의 목표는 이제 인디언의 완전한 추방인 것 처럼 보였다.
양 세력은 매우 불안한 형태로 대립되어 있었으며 충돌은 더욱 빈번해 졌다.
그러던 중 1636년 한 영국군 장교의 살해로 야기된 백인의 공격에서
인디언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부녀자를 포함해 한 마을 주민 수백명이 처참하게 살해되으며 심지어 사람을 불에 태워 죽이기까지 했다.
백인들은 꾸준히 땅의 포기를 요구해 왔으며 수적으로 우세를 점하게 되자 부족들을
하나하나 격파해 가며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그들은 무력을 이용해, 거래(혹은 조약)에 도움이 되는 부족 지도층을 교묘히 빼돌려
강제조약을 공표한 뒤 살해하거나 강압적으로 조약을 체결 한 뒤,
저항하는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나간다.
십수 년 동안의 잔혹한 전투와 백인들의 굴욕적인 대우에 견디다 못한
암포노와그족 추장 메타콤(백인들은 그를 비꼬아 "필립왕"이라고 불렀다)은
1675년, 모든 포우하탄 동맹국, 오랜동안 앙숙으로 지내던 모히칸족 및 모호크조카지
동부 인디언들을 규합하여 백인들에 대항한다.
1년여 동안 계속된 전쟁에서 인디언은 격렬히 저항 했으나 결국 메타콤의 사망과 함께 전쟁은 끝난다.
2. 인디언은 사탄의 아들
청교도의 목사들은 인디언들이 사탄의 아들이라는 말로 인디언들을 학살하도록 부추겼던
사실은 매우 주목할만한 사건이었다.
매사추세츠의 항구에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물밀듯이 밀려오는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는 점차 유토피아적 공동체를 꿈꾸어 왔던
청교도들의 경건한 신앙심과 소박한 생활이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청교도의 유산인 도덕주의와 이상주의는 퇴색하고 종교적인 개혁보다는
물질적인 욕구에 탐닉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1620년에 필그림스들이 메이플라워호에 탑승하여 북미대륙에 착륙한
이래 수십만 명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을 찾아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청교도들의 수효는 일반 이주민들의 수효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었다.
그들은 미국역사가들의 주장처럼 청교도와 필그림스들은 좋은 뜻에서든
나쁜 뜻에서든 미국사회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사탄의 아들이므로 그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땅을 빼앗은 것은 정당하다고
설교했던 청교도와 필그림스들의 목사들에 의해 미국인들의 개척정신에
깊은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신대륙에 최초로 도착한 청교도들은 점차 이민사회에서 청교도 지도자의 자리를 굳히고
이주민들을 교화시켜 나갔으나 그들도 점차 물욕에 탐닉하고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려는
욕심으로 원주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자행했던 사람들로서 이들이 오늘날 미국인들의
조상들이었다는 실상을 숨겨오고 온갖 미사여구로 그들의 조상을 찬양하고 있었다.
청교도들은 소유권자가 없는 인적 미답의 초원이 끝없이 펼쳐진 신대륙을 개척하고
종교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문명을 갖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영토를 빼앗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던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디언 학살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는 숭고한 청교도정신으로
미국을 건국했다는 미국 건국이념의 뒤안길에는 숨겨져 버렸고
피로 얼룩진 정복의 역사와 비인간적인 만행으로 수많은 원주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희생된 초창기 미국의 역사에 이어 미국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저질렀던 침략사와 미국인들의
축소 왜곡한 과거 역사를 바르게 연구하므로써 현대 미국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에 필그림스의 조상들과 그 밖의 식민지개척에 참여했던 영국인,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은 창세기이후 세계의 어떤 정복자들보다도 더 철저하게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무시하고 잔인하게 인디언 원주민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적은 없었다.
인디언전쟁이 단순한 전쟁의 서술적인 기록이 아닌 다른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행동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행동이었으며, 애초부터 그들에게 전쟁의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서설에서 보았듯이 초기 백인이주자들을 위해 인디언은 고기잡는 법에서부터 씨앗뿌리는 일, 식량 작물의 채집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집까지도 제공했다.
인디언의 땅에 거의 최초로(완전한 최초는 아니다) 정착했던 메이플라워의 청교도들은 인디언의 그러한 평등사상이 없었으면 아예 역사에서 사라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한 대부분의 백인 이주자들도 인디언들이 자신들과 똑같은(경계하고 몰아내야 할 인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면 아마도 역사는 다시 쓰여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래 학살당한 인디언은 8천~1억에 이른다 -
- 현제 미국과 케나다 북미에 남은 인디언들의 후손은 고작 27만이 유원지화된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생활하고 잇으며 전통적인 자연적 생활을 고집하며 자연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투쟁하는 인디언들과 조직들은 아직도 존제한다 -
청교도들 중에는 그들이 도착한 신대륙을 마치 역사 속의 가나안과 예루살렘으로
믿고 '새 가나안 땅' '새 예루살렘'이라 여기며,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듯 아메리카를 정복하자고 외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무참히 살해하고 정복하여
축복의 땅을 얻었던 것과 같이 자신들이 땅을 얻는데 방해가 된다면
인디언들을 무참히 죽여서라도 약속의 땅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리화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메리카 정복의 과정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데
가담했던 청교도들이나 교회가 단 한 번이라도 공식적으로 이를 거론하거나 정중하게
사과했다는 기록이 없었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디언 역사를 읽으면서 정작 대학살의 현장에 있었던 크리스천 인디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평화롭게 순교의 길을 떠났다고 하는 내용을 보면서
힘없이 도살당한 어린양들이 흘린 피로 넘쳤던 강물을 오늘
기독교 역사가들은 과연 뭐라고 적을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