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랜 문풍지가 너덜한 방문을 열고 내다보면 넓은 마당 한 구석에 장독대가 있고 그 위에 아내가 시집 와서 마련한 장독이 벌써 이 십 여년을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다소곳이 서 있다.
아내는 전번 일요일에 흙을 솎아내어 잡돌을 골라 내고는 화초밭 주위로 집 뒤의 개울에서 여러 모양의 돌을 주워다가 뺑 둘러, 담을 쌓듯이 줄지어 세워 놓았다. 이제 얼마만 있으면 개나리 꽃이 피기 시작하여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마지막으로 화초밭 맨 뒤에 줄에서 코스모스가 피었다 지면 올 해도 지나가는 것이다.
봄빛이 가득한 마당을 내려서서 하얀 고무신을 신고는 일 년 내내 밤이나 낮이나 반쯤 열려 있는 대문을 나섰다. 길 양쪽으로 단층 집들이 나란히 서 있고 마을 중간 쯤에 있는 우체국 건물 앞에 마련한 화단에도 개나리가 물기 올라 촉촉해 보인다.
마을의 이장일을 보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올 해에 일흔을 넘기신 정정했던 친구의 모친께서 얼마전에 풍을 맞아서 누워 계시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평일에는 회사에 매어 있어서 문병을 못 가다가 오늘에야 시간이 나서 가 보는 길이다.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슈퍼마켓 옆 골목을 돌아서 마을 뒤로 가니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음지에 남아 있다. 얼음이 개울 가장자리에서 봄빛을 받아 하얗게 빛을 반사하고 있다. 서로 잘 났다고 다투듯 개울물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다 보니 그렇게 추웠던 겨울도 이제는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즈막한 야산 아래에 있는 친구의 집을 들어서니 아무 기척이 없어서 마루에 털썩 주저 앉으며 안방을 향하여 친구를 불렀다. 건너방 문이 열리며 친구의 아내가 꾸벅 인사를 하며 나오더니 남편이 오늘 어머니의 한약재를 구하러 읍내에 갔다고 한다.
친구 아내를 따라서 안방을 들어서니 노인께서 손자 며느리가 시집 올 때에 가져온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누워 계신다. 풍으로 말씀을 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입술을 움직이며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옆에 앉아서 웃으며 위로를 했다. 요즈음에는 약이 좋으니 조금만 고생하시면 완쾌 될 것이라고 하며 물수건으로 노인의 얼굴을 딲아 드렸다.
점심을 들고 가라는 친구 아내의 호의를 뒤로 하고 노인의 간병을 부탁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는 총총히 언덕을 내려 왔다. 개울을 건너서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약 두 시간 전에 지났을 때에 유심히 보았던 개나리가 한층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봄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맘씨 좋아 사람이 와도 짓지도 않는 누렁이가 어슬렁 거리며 문 옆에 서 있다가 꼬리를 살랑 거린다. 언듯 마루 위를 보니 아내가 다녀 간 모양이다. 마루 중간에 점심 밥상을 차려 놓고는 보자기로 상을 덮어 놓았다.
아침에 동네 아낙들과 뒷 산으로 냉이를 캐러 간다고 가더니 조금 전에 내려와 점심 밥상을 차려 놓고는 다시금 뒷 산으로 냉이를 캐러 간 것이다.
밥상을 끌어당겨 보니 조금 전에 캐었을 것이 분명한 냉이로 무침을 해 놓았고 또한 냉이를 넣은 된장찌게를 끓였다. 아직도 뚝배기가 뜨거운 것으로 보아서 방금 상을 차려 놓은 것이다.
봄 햇살이 분주한 마당을 내려다 보며 아직도 추운 기운이 있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마루에 앉아서 냉이 무침을 한 입 넣으니...
오호라... 이렇듯 봄은 향기를 품고 오는 것인가...
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는 방문을 열어 놓은 채 마당을 보며 누웠다. 춘곤증인지 식사를 하고 나면 졸음이 온다.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제비집 밑에다가 널판지를 하나 받쳐 놓으라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가을이면 처마밑에 집을 떠나서 봄이면 어김없이 이 곳으로 찾아오는 제비가 똥을 싸면 마루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작년에도 아내는 하루에도 몇번씩 걸레로 똥을 딲아내며 널판지를 제비집 밑에다가 대어 놓으라는 채근을 몇 차례 하였지만 말로만 해 놓겠다고 했지 그렁저렁 가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오늘도 아침에 집을 나서며 한가한 시간에 꼭 널판지를 달아 놓으라고 서너 번은 말을 했을 것이다. 내심으로 오늘은 꼭 달아 놓겠다고 다짐을 한지라 일어서서 망치와 톱을 찾으려다 나른한 몸에 그냥 누워 버렸다.
눈을 꿈뻑 거리며 마당의 햇살에 도취되어 있노라니 대문 옆에서 주둥이를 땅바닥에 깔고 역시 눈을 꿈뻑 거리는 누렁이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이 보고 있는데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꼴을 보니 그 녀석도 봄빛 아래 피우는 게으름은 나 못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슬슬 봄빛이 눈꺼플에 젓어 들듯 하더니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제비집 아래에 널판지를 달아 놓아야 되는데, 이렇듯 봄은 게으른 낮잠으로 부터 오는가 보다....
봄은 사방으로부터 오네....
봄은 사방으로부터 오네...
바랜 문풍지가 너덜한 방문을 열고 내다보면 넓은 마당 한 구석에 장독대가 있고 그 위에 아내가 시집 와서 마련한 장독이 벌써 이 십 여년을 그 때의 그 모습으로 다소곳이 서 있다.
아내는 전번 일요일에 흙을 솎아내어 잡돌을 골라 내고는 화초밭 주위로 집 뒤의 개울에서 여러 모양의 돌을 주워다가 뺑 둘러, 담을 쌓듯이 줄지어 세워 놓았다. 이제 얼마만 있으면 개나리 꽃이 피기 시작하여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나고 마지막으로 화초밭 맨 뒤에 줄에서 코스모스가 피었다 지면 올 해도 지나가는 것이다.
봄빛이 가득한 마당을 내려서서 하얀 고무신을 신고는 일 년 내내 밤이나 낮이나 반쯤 열려 있는 대문을 나섰다. 길 양쪽으로 단층 집들이 나란히 서 있고 마을 중간 쯤에 있는 우체국 건물 앞에 마련한 화단에도 개나리가 물기 올라 촉촉해 보인다.
마을의 이장일을 보고 있는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올 해에 일흔을 넘기신 정정했던 친구의 모친께서 얼마전에 풍을 맞아서 누워 계시다는 소식을 접했던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평일에는 회사에 매어 있어서 문병을 못 가다가 오늘에야 시간이 나서 가 보는 길이다.
마을에 유일하게 있는 슈퍼마켓 옆 골목을 돌아서 마을 뒤로 가니 아직도 겨울의 흔적이 음지에 남아 있다. 얼음이 개울 가장자리에서 봄빛을 받아 하얗게 빛을 반사하고 있다.
서로 잘 났다고 다투듯 개울물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흘러간다. 징검다리를 하나씩 건너다 보니 그렇게 추웠던 겨울도 이제는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즈막한 야산 아래에 있는 친구의 집을 들어서니 아무 기척이 없어서 마루에 털썩 주저 앉으며 안방을 향하여 친구를 불렀다. 건너방 문이 열리며 친구의 아내가 꾸벅 인사를 하며 나오더니 남편이 오늘 어머니의 한약재를 구하러 읍내에 갔다고 한다.
친구 아내를 따라서 안방을 들어서니 노인께서 손자 며느리가 시집 올 때에 가져온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을 덮고 누워 계신다. 풍으로 말씀을 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입술을 움직이며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옆에 앉아서 웃으며 위로를 했다. 요즈음에는 약이 좋으니 조금만 고생하시면 완쾌 될 것이라고 하며 물수건으로 노인의 얼굴을 딲아 드렸다.
점심을 들고 가라는 친구 아내의 호의를 뒤로 하고 노인의 간병을 부탁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는 총총히 언덕을 내려 왔다. 개울을 건너서 우체국 앞을 지나는데 약 두 시간 전에 지났을 때에 유심히 보았던 개나리가 한층 성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듯 봄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열려 있는 대문을 들어서니 맘씨 좋아 사람이 와도 짓지도 않는 누렁이가 어슬렁 거리며 문 옆에 서 있다가 꼬리를 살랑 거린다. 언듯 마루 위를 보니 아내가 다녀 간 모양이다. 마루 중간에 점심 밥상을 차려 놓고는 보자기로 상을 덮어 놓았다.
아침에 동네 아낙들과 뒷 산으로 냉이를 캐러 간다고 가더니 조금 전에 내려와 점심 밥상을 차려 놓고는 다시금 뒷 산으로 냉이를 캐러 간 것이다.
밥상을 끌어당겨 보니 조금 전에 캐었을 것이 분명한 냉이로 무침을 해 놓았고 또한 냉이를 넣은 된장찌게를 끓였다. 아직도 뚝배기가 뜨거운 것으로 보아서 방금 상을 차려 놓은 것이다.
봄 햇살이 분주한 마당을 내려다 보며 아직도 추운 기운이 있지만 그래도 견딜만한 마루에 앉아서 냉이 무침을 한 입 넣으니...
오호라...
이렇듯 봄은 향기를 품고 오는 것인가...
상을 옆으로 밀어 놓고는 방문을 열어 놓은 채 마당을 보며 누웠다. 춘곤증인지 식사를 하고 나면 졸음이 온다.
처마 밑에 있는 제비집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제비집 밑에다가 널판지를 하나 받쳐 놓으라는 아내의 말이 생각났다.
가을이면 처마밑에 집을 떠나서 봄이면 어김없이 이 곳으로 찾아오는 제비가 똥을 싸면 마루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작년에도 아내는 하루에도 몇번씩 걸레로 똥을 딲아내며 널판지를 제비집 밑에다가 대어 놓으라는 채근을 몇 차례 하였지만 말로만 해 놓겠다고 했지 그렁저렁 가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오늘도 아침에 집을 나서며 한가한 시간에 꼭 널판지를 달아 놓으라고 서너 번은 말을 했을 것이다. 내심으로 오늘은 꼭 달아 놓겠다고 다짐을 한지라 일어서서 망치와 톱을 찾으려다 나른한 몸에 그냥 누워 버렸다.
눈을 꿈뻑 거리며 마당의 햇살에 도취되어 있노라니 대문 옆에서 주둥이를 땅바닥에 깔고 역시 눈을 꿈뻑 거리는 누렁이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이 보고 있는데도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꼴을 보니 그 녀석도 봄빛 아래 피우는 게으름은 나 못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슬슬 봄빛이 눈꺼플에 젓어 들듯 하더니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제비집 아래에 널판지를 달아 놓아야 되는데,
이렇듯 봄은 게으른 낮잠으로 부터 오는가 보다....
<사각의 방으로 쌓인 도시 한 가운데서 꾸는 춘몽... 2002년 4월>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