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가 그의 아파트에 밤늦게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왔을때, 난 그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그의 어머니까지 그렇게 화가 나서 나와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때 알아차려야 했는데..
그는 셔틀버스를 더 이상 타지 않았다. 부잣집 도련님이 서민 행세하는 것이 이젠 지겨워졌나보다. 나와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
나도 아기 가진 것을 몰랐으니까 술을 마신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쉽게 유산이 될 줄도 몰랐고. 나 역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당신만 속상한게 아니라구.
다행히 문혁은 혜영언니에게 위경련이라고 말해서 사무실에는 유산한 줄 모르고 위경련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밥을 조금만 먹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계속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먹는게 없으니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한번 걸린 감기는 떨어질 줄 모르고 한달이 넘게 간다. 주희는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서 따져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
“야, 넌 이 꼴을 당하고도 그냥 참을거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난 두 달 사이 살은 쏙 빠져가지고 뼈만 남았어. 알기나 해? 너 이러면 몸 다 망가져. 뭘 먹어야 몸도 원기를 회복하지.”
“그냥 나 좀 자면 안될까? 귀찮은데..”
“안돼. 일어나. 나가서 뭐라도 좀 먹자.”
주희는 문혁에게 전화했다. 문혁은 한시간 안에 달려왔다. 그는 흑염소 집으로 데려갔다.
“역시 몸보신은 흑염소가 최고죠. 신랑이 잘 안해주나.. 선혜씨 얼굴이 말이 아닌걸.”
문혁은 몰랐던 것이다. 주희가 또 실수할까봐 주희의 다리를 꼬집었다.
“요며칠 바빠서 그래요. 학기말이잖아. 그래도 덕분에 몸보신하고 좋네. 신랑보다 나은걸.”
문혁과 점심을 먹고 전통찻집에 가서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국화차를 마셨다.
“난 은근히 선혜씨 신랑이 술한잔 사주나 하고 기다렸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웬 술? 술하면 이제 지긋지긋한데.”
주희가 정말 치가 떨린 다는 듯이 머리를 내저었다.
“선혜씨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대신 보호자도 해줬잖아요. 물론 전날 술을 좀 과하게 마시긴 했지만.”
“글쎄, 정선혜의 고상한 신랑이 그걸 알아주기나 할지 모르겠네.”
주희가 비꼬는 것이 얄미웠지만 문혁이 알아봐야 좋을게 없다.
“대신 제가 여기 찻값은 낼께요. 전 술 끊었습니다. 우리 이제 건전하게 차 마십시다.”
학기말의 대폭풍이 지나가고 방학을 해서 조금 여유로왔다. 본관에 다녀온 혜영언니가 뉴스가 있다며 헐레벌떡 들어왔다.
“총무과 민휘진 과장 내년 3월에 결혼해서 영국으로 유학간다더라. 총장님이랑 그렇게 친하다더니 소문이 맞나봐. 총장님 셋째 딸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귀국했다더니 결혼하려고 귀국했나봐. 역시 귀족은 귀족집안끼리 결혼을 하더라구. ”
그런거였구나. 그는 그렇게 쉽게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는구나.
“혜영선배, 확실해요? ”
“그럼. 본관에는 이미 소문 다 났던데. 우리가 한 쪽 구석에 있어서 소문이 느려서 몰랐던거지.”
상현이 나를 봤다. 어찌 되었냐는 뜻인가 보다.
“잘됐네. 민과장님 결혼할 나이 되었잖아요.”
난 관심없는 척 결재 문서를 열면서 상현의 물음에 대답 대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하루를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도 안난다. 퇴근하고는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강 씻고 출근해서 하루를 이를 악물고 견디다 퇴근하면 긴장이 풀려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난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는 잘 살고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둘 다 힘들어 하느니..
강사 채용 시즌이 되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했다. 밤늦게 혼자 사무실에 있으면 가끔 어학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복사하러 오기도 하고, 음료수를 뽑아다 주기도 했다.
잠깐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일어나니 내 어깨에는 낯선 남자의 코트가 걸쳐져 있었다. 속주머니 밑에 이니셜이 적혀 있다. M. H. J.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 그라고 해도 동정일 것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침에 코트를 가져다 놓으려고 일찍 출근해서 총무과에 갔더니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영석이 제일 먼저 출근한 모양이다.
“정선생, 여긴 웬일이야? 그 코트 과장님꺼 아닌가?”
“네..어제 어학당에 오셨었는지 두고 가셨더라구요.”
“커피 한잔 하고 가. 아직 사람들 출근하려면 30분은 있어야 돼.”
그는 내가 불편해 한다는 걸 아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를 두 잔 뽑아왔다.
“안그래도 정선생 만나보고 싶었어. 요즘 과장님한테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말야. 어떻게 된거야? 내가 과장님한테 술한잔 하면서 물어보려고 해도 요 몇 달 계속 저기압이거든. 물어볼수가 있어야 말이지. 둘이 완전히 끝난거야?”
“그렇죠 뭐. 저도 그 소문 들었어요. 잘됐네요. 과장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죠.”
“진심이야?”
진심일까.. 내 마음에서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속상하고 그가 야속했다. 아직까지 이혼하자는 말이 없어서 그가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먼저 그를 놔주어야 한다. 그는 나에게 말하기조차 싫어서 말을 안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요. 우린 이미 헤어졌는걸요.”
나는 과도하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코트를 그의 자리에 걸어두고 총무과를 나왔다. 문앞에 휘진이 서 있었다. 놀라서 그의 표정도 얼굴도 제대로 못봤지만 조금 마른 듯 했다. 그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길래 황급히 그를 벗어났다. 오늘은 아니야.. 제발 오늘 이혼하자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가 처음 데이트한지 일년 되는 날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구..
수레국화 +12
# 선혜‘s
주희가 그의 아파트에 밤늦게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왔을때, 난 그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아차렸다. 그의 어머니까지 그렇게 화가 나서 나와 이야기조차 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때 알아차려야 했는데..
그는 셔틀버스를 더 이상 타지 않았다. 부잣집 도련님이 서민 행세하는 것이 이젠 지겨워졌나보다. 나와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웠겠지.
나도 아기 가진 것을 몰랐으니까 술을 마신거라고. 그리고 그렇게 쉽게 유산이 될 줄도 몰랐고. 나 역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당신만 속상한게 아니라구.
다행히 문혁은 혜영언니에게 위경련이라고 말해서 사무실에는 유산한 줄 모르고 위경련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커피를 더 이상 마시지 않아도, 밥을 조금만 먹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계속 침대에 누워서 보냈다. 먹는게 없으니 몸이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한번 걸린 감기는 떨어질 줄 모르고 한달이 넘게 간다. 주희는 그의 아파트로 찾아가서 따져야 한다고 난리가 났다.
“야, 넌 이 꼴을 당하고도 그냥 참을거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지난 두 달 사이 살은 쏙 빠져가지고 뼈만 남았어. 알기나 해? 너 이러면 몸 다 망가져. 뭘 먹어야 몸도 원기를 회복하지.”
“그냥 나 좀 자면 안될까? 귀찮은데..”
“안돼. 일어나. 나가서 뭐라도 좀 먹자.”
주희는 문혁에게 전화했다. 문혁은 한시간 안에 달려왔다. 그는 흑염소 집으로 데려갔다.
“역시 몸보신은 흑염소가 최고죠. 신랑이 잘 안해주나.. 선혜씨 얼굴이 말이 아닌걸.”
문혁은 몰랐던 것이다. 주희가 또 실수할까봐 주희의 다리를 꼬집었다.
“요며칠 바빠서 그래요. 학기말이잖아. 그래도 덕분에 몸보신하고 좋네. 신랑보다 나은걸.”
문혁과 점심을 먹고 전통찻집에 가서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국화차를 마셨다.
“난 은근히 선혜씨 신랑이 술한잔 사주나 하고 기다렸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네.”
“웬 술? 술하면 이제 지긋지긋한데.”
주희가 정말 치가 떨린 다는 듯이 머리를 내저었다.
“선혜씨 병원까지 데려다 주고 대신 보호자도 해줬잖아요. 물론 전날 술을 좀 과하게 마시긴 했지만.”
“글쎄, 정선혜의 고상한 신랑이 그걸 알아주기나 할지 모르겠네.”
주희가 비꼬는 것이 얄미웠지만 문혁이 알아봐야 좋을게 없다.
“대신 제가 여기 찻값은 낼께요. 전 술 끊었습니다. 우리 이제 건전하게 차 마십시다.”
학기말의 대폭풍이 지나가고 방학을 해서 조금 여유로왔다. 본관에 다녀온 혜영언니가 뉴스가 있다며 헐레벌떡 들어왔다.
“총무과 민휘진 과장 내년 3월에 결혼해서 영국으로 유학간다더라. 총장님이랑 그렇게 친하다더니 소문이 맞나봐. 총장님 셋째 딸 미국에서 공부하다가 귀국했다더니 결혼하려고 귀국했나봐. 역시 귀족은 귀족집안끼리 결혼을 하더라구. ”
그런거였구나. 그는 그렇게 쉽게 나를 잊고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까지 하는구나.
“혜영선배, 확실해요? ”
“그럼. 본관에는 이미 소문 다 났던데. 우리가 한 쪽 구석에 있어서 소문이 느려서 몰랐던거지.”
상현이 나를 봤다. 어찌 되었냐는 뜻인가 보다.
“잘됐네. 민과장님 결혼할 나이 되었잖아요.”
난 관심없는 척 결재 문서를 열면서 상현의 물음에 대답 대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하루를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도 안난다. 퇴근하고는 쓰러지듯 잠들어버렸다.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대강 씻고 출근해서 하루를 이를 악물고 견디다 퇴근하면 긴장이 풀려 기절하듯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난 이렇게 힘이 드는데 그는 잘 살고 있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른다. 둘 다 힘들어 하느니..
강사 채용 시즌이 되어서 하루가 멀다하고 야근을 했다. 밤늦게 혼자 사무실에 있으면 가끔 어학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복사하러 오기도 하고, 음료수를 뽑아다 주기도 했다.
잠깐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일어나니 내 어깨에는 낯선 남자의 코트가 걸쳐져 있었다. 속주머니 밑에 이니셜이 적혀 있다. M. H. J.
그럴 리 없겠지만, 정말 그라고 해도 동정일 것이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침에 코트를 가져다 놓으려고 일찍 출근해서 총무과에 갔더니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영석이 제일 먼저 출근한 모양이다.
“정선생, 여긴 웬일이야? 그 코트 과장님꺼 아닌가?”
“네..어제 어학당에 오셨었는지 두고 가셨더라구요.”
“커피 한잔 하고 가. 아직 사람들 출근하려면 30분은 있어야 돼.”
그는 내가 불편해 한다는 걸 아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를 두 잔 뽑아왔다.
“안그래도 정선생 만나보고 싶었어. 요즘 과장님한테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말야. 어떻게 된거야? 내가 과장님한테 술한잔 하면서 물어보려고 해도 요 몇 달 계속 저기압이거든. 물어볼수가 있어야 말이지. 둘이 완전히 끝난거야?”
“그렇죠 뭐. 저도 그 소문 들었어요. 잘됐네요. 과장님도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해야죠.”
“진심이야?”
진심일까.. 내 마음에서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속상하고 그가 야속했다. 아직까지 이혼하자는 말이 없어서 그가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먼저 그를 놔주어야 한다. 그는 나에게 말하기조차 싫어서 말을 안하는지도 모른다.
“그럼요. 우린 이미 헤어졌는걸요.”
나는 과도하게 큰소리로 대답했다. 코트를 그의 자리에 걸어두고 총무과를 나왔다. 문앞에 휘진이 서 있었다. 놀라서 그의 표정도 얼굴도 제대로 못봤지만 조금 마른 듯 했다. 그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하길래 황급히 그를 벗어났다. 오늘은 아니야.. 제발 오늘 이혼하자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가 처음 데이트한지 일년 되는 날 그런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