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쁜 놈인가 - 숙려 기간

은행나무2007.04.07
조회1,259

30710번 내가 나쁜 놈인가 - 그 뒷얘기.

의 이어지는 글입니다.

 

몇 일전 법원에 가서 협의 이혼 신청을 했습니다.

미리 정해 놓은 약속 시간에 맞추어서 법원 앞에서 만나고

서로 별 얘기 없이 법원으로 들어가 이혼 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었습니다.

 

서로 위자료에 대한 협의를 마친 후

그 사람은 제게 마치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빚 독촉을 하듯 빨리 내 놓으라고 닥달을 했습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위자료를 주는 건, 내가 잘 못이 있어 그런것이 아니라.

 

그래도, 10년 가까이 같이 산 사람이 이제 독립을 하는 데,

살게라도 해 주어야 겠다는 생각에, 그래도 서로 원한 지는 일은 없게 하자는 생각에 그런 것입니다.

중간에 너무 어이 없게 위자료를 내 놓으라고 우기는 차에

협의 이혼이고 머고 소송을 하겠다고 하자 그 사람이 갑자기 조용해 지더군요.

그래도 자기가 잘 못이 있다는 것을 알기는 아나 봅니다.

 

그 위자료는 결국 600을 해 주었습니다. 땡 빚을 내어서..

 

그 사람이 집을 나가기로 한 날 하루 전..

그 날도 아이를 깨우고, 그 사람이 거실로 나오긴 했지만,

별 말하지 않고 출근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데,

딸 아이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아빠 엄마 내려 갔어. 집이 텅 비었어."

"그래?"

나가기로 한 날은 다음 날이 었는 데 갑자기 나가 버린 겁니다.

 

아이가 놀랐을 까봐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전 제품은 단 하나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아! 아니군요. 가전 제품이라곤 커피포트 하나와 딸아이의 카세트 라디오.

딱 2개 남겨 놓고 다 들고 나갔습니다.

 

당장 밥솥도 없으니 딸아이의 저녁을 챙겨 주지도 못합니다.

"린..우리 라면이나 끓여 먹자."

가게로 가서 라면을 사서 왔습니다.

싱크대로 가서 냄비를 찾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식기는 밥그릇 2개, 국그릇 2개, 수저2개, 젓가락 2개, 딸 아이의 딸기 모양의 물컵 1개, 그리고 낡아 빠진 프라이팬 1개..이게 답니다. 그나마 냄비는 하나도 남겨 놓지 않았습니다.

혼자 사는 데 그 많은 식기가 왜 필요 했을까..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딸 밥해 먹일 것 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은 그 사람...

더 자세히 찾아보니, 쓰던 식용유, 올리브 유, 욕실에는 비누 하나 남겨 놓지 않고 다 가져갔습니다.

그 저날 딸아이에게 먹일 반찬이 마땅치 않아 싸다 놓은 계란 1판 까지.

 

라면은 끓여 먹는 걸 포기해야 했습니다.

결국 중국 집에서 음식을 시켜 먹어야 했습니다.

 

그 날 이후, 전 가전 제품 하나 없이 딸아이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은 딸아이의 개구리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함께 시작하고요..

TV가 없는 덕에 딸아이가 일찍잡니다.

득이라면 득이군요.

 

빨래는 손 빨래를 하고 있고. 청소는 비로 쓸고 걸레로 닦습니다.

몇일 째 김밥으로 아침 저녁을 때우고 있고요.

이럴 때 딸아이의 점심을 학교 급식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맙군요.

 

위자료를 무리하게 해 준 덕에

향후 몇 달간은 이렇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고 가전을 살 돈도 지금은 없군요.

 

아 혹 톡 님들 중 집에 쓰다 버릴 계획이신 냄비나 전기 밥솥이 있으시면 보내주세요..^^..

딴 건 없어도 괞잔은데..밥솥과 냄비는 정말 있어야 겠군요.

 

몇 일 뒤 법원에 이혼 확인서를 받으러 가야합니다.

제발 그 날 별 소리 없이 법원에 나와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그 분에게 바라는 마지막 바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