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여름에 생긴 일

유상진200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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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여름에 생긴 일계절의 여왕인 5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초여름 같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골의 들판은 생기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논에는 이제 갓 심어놓은 어린 모들이 자리를 하고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듯 가벼운 바람에 머리를 흔들며 저를 맞이하는 듯합니다.
아직 베어내지 않는 보리밭에 조금 씩 누렇게 익어 가는 보리를 바라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 채 익지 않은 보리를 꺾어서 불에 구워먹다 보리밭 주인에게 혼이 났던 일이 생각나
저 혼자서 웃음을 지어봅니다.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옛날 이야기지만 그러나 그때는 왜 그렇게 보리가 맛이 있었던지
아마도 그때는 지금처럼 먹거리가 흔하지 않고 귀했던 시절이라고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착한곳이 전남 보성읍 대야리 뒤미재라는 조그만 마을입니다.
뒤미재라는 마을은 원래는 7가구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4가구 밖에
남지 않은 아주 조그만 마을입니다.
그 마을의 마지막 집 우편 수취함에 전화요금 고지서를 넣으려는 순간 자세히 보니 수취함
바닥에 지난달 전화요금 고지서가 들어있는 겁니다.
'이상하다! 할머니께서 왜 전화요금을 안 내가셨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옆 집 아주머니께
물었더니. 아주머니께서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아들이 모시고 갔어! 아들이 도시서 산께 할머니가 아퍼도 우추고
하도 못하고 그랑께 그냥 모시고 간다고 그라드만 나보고 집이나 좀 봐주라고 그라고는
갔는디 아직 안 오신 것이 지금도 몸이 안 좋은 갑서! 얼렁 좋아져야 되것인디!" 하십니다.
'예! 그랬군요!' 하며 돌아서서 나오는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나는 겁니다.
몇 년 전인가요? 그때도 이렇게 날씨가 초여름같이 더운 날씨에 이 마을에 우편물 배달을
왔는데 할머니께서 대문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시다 저를 보시더니 반색을 하며 반기시는
겁니다.
"거시기 아저씨 저기 개한테 주사를 우추고 놔야 된다요? 늙은이가 뭣을 알아야제 주사를
놓것는디 알수 가 있어야제!" 하시며 어딘가 몹시 불안한 표정이십니다.
'할머니 왜 개에게 주사를 놓으시려고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아! 내가 혼자서 산께 심심해서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디 작것이 이상하게 요새는 밥을
안 묵어 그래서 읍에 동물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했드만 주사를 노라고 주사약을 준디 내가
금메 주사를 놀지를 알아야제 그래서 누구 사람이 오문 개한테 주사를 좀 놔주라고 할라고
했는디 이상하게 오늘은 암도 안보이네 근디 아저씨 주사를 우추고 놔야 되야?"
하시며 저에게 묻는 것입니다.
'할머니 그러면 그냥 개에게 먹일 약을 주시라고 하시지 그랬어요!' 하였더니
"아니 개가 사람 같으문 아나 너 아픈께 이 약 묵어라 하고 믹이것는디 개가 사람 말을 못
알아 묵응께 천상 주사를 놔야제 그란디 늙은이가 주사를 은제 놔 봤어야제 그래서 사람만
지달리고 이라고 있어!"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 그러면 제가 개에게 주사를 놓아줄게요! 그런데 할머니 개 주둥이를 꼭 잡으셔야
되요 아시겠지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근디 으째서 개 주둥이를 꼭 잡으라고 그래? 주둥이가 뭣이 붙었간디?" 하십니다.
'할머니 개가 사람 같으면 아! 내가 아파서 주사를 놓으려는 구나! 하지만 개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요 잘못하면 저를 물어요 그러니까 개 주둥이를 꼭 잡고 계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그때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십니다.
그래서 주사기에다 주사약을 담고 할머니에게 개 주둥이를 잡게 한 다음 주사를 놓았더니
할머니께서 얼마나 개 주둥이를 세게 잡으셨던지 개가 낑낑거리며 발버둥을 치는 겁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개에게 주사 놓기가 끝이 나자 그때서야 할머니께서는 안심이 되신 것 같습
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아저씨 그란디 돈을 을마를 줘야 되야?" 하시는 겁니다.
'아니 할머니 돈을 주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저그 수의사가 그라드만 개한테 주사 놔주문 막걸리 값을 좀 주라고!" 그래서
'할머니 저에게 막걸리 값 안 주셔도 되니까요 그냥 그 돈으로 할머니 맛있는 것이나 사다
드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그라문 안된디 참말로!' 하시는 겁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그리고 주인을 잃은 집안은
이제 이름 모를 잡초만이 무성하게 자라나 주인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이 집도 빈집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뒤미제라는 마을도 차츰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세월이 지나고 나면 그러면 시골에는 무엇이 남을까요?어느 해 여름에 생긴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