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결에 친구가 '너 네이트에 글 썼지?' 하는 문잘 받았어요. 며칠 전에 우연히 글을 모르는 어떤 아저씨가 핸드폰 사러 왔던 이야기(?)를 읽다가 순간 감동이 와락 밀려와 새벽에 무심코 쓴 글인데.. 읽어주신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건 방금 네이트온 켜고서 알았어요..ㅠ 모 회사 간접광고가 되어서 좀 그렇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끝까지 읽는 사람 얼마나될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 줄 몰라 너무 상세하게 이야기 한건 아닌가 해서 그냥 지우려다가 둬 봤어요. 가족에 대한 제 마음을 표현한 건데, 많은 분들이 제 생각과 같이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서 이렇게 추가글만..:) 이번주에 집 사정이 또 힘빠지게 만드네요.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효도하겠습니다. 우리모두 힘 냅시다'-' 좋은 친구가 되고싶다던 분들..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좋은 그 마음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ㅡ^;; =================================================================================== 제가 대학교1학년 때요..(지금은 4학년^^) 저는 지방작은 도시에 살다가 천안으로 대학을 오면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어요. 10년 전 회사의 부도와 계속적인 사업실패로 퍽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아빠는 수원에 있는 작은 공장에 취직하셨어요. 아빤, 어릴 때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성장하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는 지체장애인 이시거든요. 똑똑하신 분이라 잘 나갈 땐 코엑스에서 사업전시도 하시고 특허도 받고 그랬는데 가진 것 없고 빽 없는, 그리고 힘 없는 장애인은 냉담산 사회속에 그 회사를 고스란히 돈 많은 투자자에게 넘겨주곤 공장일도 감사하다며 대학에 들어간 딸애의 학비를 위해 주말부부생활을 감행하셨습니다. 주말이면 엄마가 있는 집에 다녀오시다가 수원에 올라오는 길, 한번씩 제 자취방에 들러 반찬이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가시곤 하셨죠. 어느 중간고사 기간이었나봐요.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룸매와 같이 막 집에 들어왔는데 "딸! 너 좋아하는 오렌지 쥬스 사주려고 편의점 왔어! 뭐 먹고 싶은거 없어?" 하고 전화가 왔어요. "음, 아이스크림!" 오렌지쥬스 3000원+ 아이스크림 당시 3000원. 합쳐도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했죠. 그리고 잠시 후. 아빠가 오셨는데.... 하얀 모 편의점 봉투에서 나온 오렌지쥬스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아시죠? 얼마나 비싼지..ㅠ 후덜덜 한다는;; 적어도 제겐요..ㅎ당시 아빠에겐 특히..) "아빠 , 이 비싼걸 사왔어?" "아이스크림이 없더라! 음료수 옆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이것 밖에 없던데?" 처음 가본 편의점이라 아빠는 싼 아이스크림이 즐비한 진열대는 보지 못하시고 한 켠에 으리뻔쩍한 브렌드화 된 고급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보신거죠.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야, 무슨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비싸냐? 나는 이거 5-6000원이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 계산하니까 만원이 넘어!" 어쩌겠어요. 이미 계산한 거..ㅠ 아이스크림 같이 먹자고 하셔도, 나중에 공부하다가 잠 오면 먹으라고 그냥 두라시며 빨리 수원에 가야한다며 걸음을 옮기셨어요. 마지막 으로 보는 아빠의 차... 파산하면서 재산이 있으면 안된다고 해서 아빠는 차도 중고시장에 내 놓고 다음주면 팔아버린다고 하시더라구요 평생을 지팡이 하나에 의존하고 사셨기에 한 쪽 겨드랑이에는 시커먼 멍으로 가득하고 작은 물혹들로 상처투성이인데, 유일한 이동수단이 되었던 차 조차도 없다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는데. 그래서 아빠가 가고도 내내 마음이 아팠는데, 아픈마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 집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폐기처분할 거 남은거라고 삼각김밥이랑, 우유를 가져다 줬어요. 그러면서 "야! 오늘 하겐다즈 그거 하나 팔렸어!" (자취촌이라 그 아이스크림 사 먹는 아이들이 별로 없거든요..^_^ 그래서 항상 화제거리가 되곤 했죠.ㅋ) "하나? 그거 어떤 아저씨가 사간거 아냐?" "응! " "우리 아빠일꺼야..ㅠ" "아!~"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자세히 이야기 해 달라는 제게 친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가게를 둘러보더니 오렌지 주스랑 하겐다즈를 꺼내는거야! 나는 왠일인가 하고 얼른 찍었지.ㅋㅋ 그리고 얼마얼마입니다! 하고 씩씩하게 말을 했는데 아저씨 멈칫 놀라시는거 있지.. 하겐다즈가 다른거 두배 몫은 하잖아! 당황하신 것 같은데 지갑에서 얼른 돈 꺼내 계산하시고는 나가시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진짜 울컥 눈물이 올라오더라구요. 자동차 기름값 하려고 가져온 돈 일텐데.. 당신은 수원에서 빨래용 세제 사는것도 아깝다고 집에 있는 것 작은 팩에 담아 가시고 그러면서. 딸 시험공부 한다고.. 남들 다 하는 공부, 그거 좀 한다고 챙겨주려다가 넉넉하지 못한 용돈 다 쓰셨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은 잠을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잘 견디어 내고 2005년 부터 우리 가족은 수원에 이사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사하고 처음 집에 간 날.. 아빠가 시키는대로 수원대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알고보니 수원대는 화성시였더군요.ㅎ) 수원대 교정을 지나 후문으로 가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후문을 향해 걸었죠. 헤매지도 않았는데 제 다리가 짧은 탓인지 .. 딱 20분 걸리더군요.ㅠ 헉헉 거리며 집으로 찾아갔더니 제가 천안에서 자취하는 집 같은 원룸.. 반 지하.. 원룸주인이 자기네 살려고 만든 집이라는데 아는 분 도움으로 저희가 살게 되었어요. 집이 형편없고 그런거야, 지금 상황이 그러니 이해하고, 나보다 더 불편하고 아플 부모님을 생각하고 참을 수 있었는데..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제가 걸어온 20분의 그 언덕 길을 , 자동차를 판 후 1년 반 동안 그 지팡이 하나에 한쪽 어깨엔 밑반찬들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매주 오갔을 아빠를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사를 하고나서야 알았다는 것에.. 그리고 아빠가 오갔을 고단한 그 길들이 심장이 터질만큼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랜세월을 보냈듯 우리 가족은 그 시절을 광야에서의 생활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저희는 비록 중고이지만 다시 자동차도 생겼구요, 20년이 넘은 낡은 빌라이지만 버스정류장이 코 앞인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시 전학으로 혼란스러웠고 원채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 하다 자퇴를 했던 동생도 작년 여름 검정고시를 쳤고, 바로 수능까지 쳐서 지금은 07학번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된 저는 지금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어렵고 회사의 온갖 음모로 권고사직도 당하시고.. 뭐 하류인생드라마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사건 이후로 .. 안그래도 사이좋은 부녀지간, 저는 슬픈 비밀이 하나 더 생겨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되었구요. 완젼 열공해야겠단 마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 이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배려. 힘내세요'-' 저도 ,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 그리고, 좋건 싫건, 지금 존재하는 이 가족에게도 감사합시다. 많이 행복해져요.. :) 3
실수로 산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
잠결에 친구가 '너 네이트에 글 썼지?' 하는 문잘 받았어요.
며칠 전에 우연히 글을 모르는 어떤 아저씨가 핸드폰 사러 왔던 이야기(?)를 읽다가
순간 감동이 와락 밀려와 새벽에 무심코 쓴 글인데.. 읽어주신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건
방금 네이트온 켜고서 알았어요..ㅠ
모 회사 간접광고가 되어서 좀 그렇기도 하고, 너무 길어서 끝까지 읽는 사람 얼마나될까?..
그리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읽어주실 줄 몰라 너무 상세하게 이야기 한건 아닌가 해서
그냥 지우려다가 둬 봤어요.
가족에 대한 제 마음을 표현한 건데, 많은 분들이 제 생각과 같이
그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 같아서 이렇게 추가글만..:)
이번주에 집 사정이 또 힘빠지게 만드네요. 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꼭 효도하겠습니다.
우리모두 힘 냅시다'-'
좋은 친구가 되고싶다던 분들.. 어찌 할 바를 몰라서.. 좋은 그 마음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ㅡ^;;
===================================================================================
제가 대학교1학년 때요..(지금은 4학년^^)
저는 지방작은 도시에 살다가 천안으로 대학을 오면서 친구와 자취를 하고 있었어요.
10년 전 회사의 부도와 계속적인 사업실패로 퍽이나 어려운 시절을 보내다가
아빠는 수원에 있는 작은 공장에 취직하셨어요.
아빤, 어릴 때 소아마비로 한 쪽 다리가 성장하지 않아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하는 지체장애인 이시거든요.
똑똑하신 분이라 잘 나갈 땐 코엑스에서 사업전시도 하시고 특허도 받고 그랬는데
가진 것 없고 빽 없는, 그리고 힘 없는 장애인은 냉담산 사회속에 그 회사를 고스란히 돈 많은 투자자에게
넘겨주곤 공장일도 감사하다며 대학에 들어간 딸애의 학비를 위해 주말부부생활을 감행하셨습니다.
주말이면 엄마가 있는 집에 다녀오시다가 수원에 올라오는 길,
한번씩 제 자취방에 들러 반찬이며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고 가시곤 하셨죠.
어느 중간고사 기간이었나봐요.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룸매와 같이 막 집에 들어왔는데
"딸! 너 좋아하는 오렌지 쥬스 사주려고 편의점 왔어! 뭐 먹고 싶은거 없어?" 하고 전화가 왔어요.
"음, 아이스크림!"
오렌지쥬스 3000원+ 아이스크림 당시 3000원. 합쳐도 그리 큰 부담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그냥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로 말을 했죠.
그리고 잠시 후.
아빠가 오셨는데....
하얀 모 편의점 봉투에서 나온 오렌지쥬스와,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아시죠? 얼마나 비싼지..ㅠ 후덜덜 한다는;; 적어도 제겐요..ㅎ당시 아빠에겐 특히..)
"아빠 , 이 비싼걸 사왔어?"
"아이스크림이 없더라! 음료수 옆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이것 밖에 없던데?"
처음 가본 편의점이라 아빠는 싼 아이스크림이 즐비한 진열대는 보지 못하시고
한 켠에 으리뻔쩍한 브렌드화 된 고급아이스크림 냉장고를 보신거죠.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야, 무슨 아이스크림이 이렇게 비싸냐? 나는 이거 5-6000원이면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 계산하니까 만원이 넘어!"
어쩌겠어요.
이미 계산한 거..ㅠ
아이스크림 같이 먹자고 하셔도, 나중에 공부하다가 잠 오면 먹으라고 그냥 두라시며
빨리 수원에 가야한다며 걸음을 옮기셨어요.
마지막 으로 보는 아빠의 차...
파산하면서 재산이 있으면 안된다고 해서 아빠는 차도 중고시장에 내 놓고
다음주면 팔아버린다고 하시더라구요
평생을 지팡이 하나에 의존하고 사셨기에 한 쪽 겨드랑이에는 시커먼 멍으로 가득하고
작은 물혹들로 상처투성이인데,
유일한 이동수단이 되었던 차 조차도 없다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쓰라렸는데.
그래서 아빠가 가고도 내내 마음이 아팠는데, 아픈마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
집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폐기처분할 거 남은거라고 삼각김밥이랑, 우유를 가져다 줬어요.
그러면서
"야! 오늘 하겐다즈 그거 하나 팔렸어!"
(자취촌이라 그 아이스크림 사 먹는 아이들이 별로 없거든요..^_^ 그래서 항상 화제거리가 되곤 했죠.ㅋ)
"하나? 그거 어떤 아저씨가 사간거 아냐?"
"응! "
"우리 아빠일꺼야..ㅠ"
"아!~"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 자세히 이야기 해 달라는 제게 친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어떤 아저씨가 가게를 둘러보더니 오렌지 주스랑 하겐다즈를 꺼내는거야!
나는 왠일인가 하고 얼른 찍었지.ㅋㅋ
그리고 얼마얼마입니다! 하고 씩씩하게 말을 했는데 아저씨 멈칫 놀라시는거 있지..
하겐다즈가 다른거 두배 몫은 하잖아!
당황하신 것 같은데 지갑에서 얼른 돈 꺼내 계산하시고는 나가시더라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진짜 울컥 눈물이 올라오더라구요.
자동차 기름값 하려고 가져온 돈 일텐데..
당신은 수원에서 빨래용 세제 사는것도 아깝다고 집에 있는 것 작은 팩에 담아 가시고
그러면서.
딸 시험공부 한다고..
남들 다 하는 공부, 그거 좀 한다고 챙겨주려다가 넉넉하지 못한 용돈 다 쓰셨구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은 잠을이루지 못했습니다.
3년이 훌쩍 지난 지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잘 견디어 내고 2005년 부터 우리 가족은 수원에 이사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사하고 처음 집에 간 날..
아빠가 시키는대로 수원대학교 정문 앞에서 버스를 내리고,(알고보니 수원대는 화성시였더군요.ㅎ)
수원대 교정을 지나 후문으로 가야만 집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후문을 향해 걸었죠.
헤매지도 않았는데 제 다리가 짧은 탓인지 .. 딱 20분 걸리더군요.ㅠ
헉헉 거리며 집으로 찾아갔더니 제가 천안에서 자취하는 집 같은 원룸.. 반 지하..
원룸주인이 자기네 살려고 만든 집이라는데 아는 분 도움으로 저희가 살게 되었어요.
집이 형편없고 그런거야, 지금 상황이 그러니 이해하고, 나보다 더 불편하고 아플 부모님을 생각하고
참을 수 있었는데..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제가 걸어온 20분의 그 언덕 길을 , 자동차를 판 후 1년 반 동안 그 지팡이 하나에
한쪽 어깨엔 밑반찬들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매주 오갔을 아빠를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이사를 하고나서야 알았다는 것에..
그리고 아빠가 오갔을 고단한 그 길들이 심장이 터질만큼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랜세월을 보냈듯
우리 가족은 그 시절을 광야에서의 생활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저희는 비록 중고이지만 다시 자동차도 생겼구요,
20년이 넘은 낡은 빌라이지만 버스정류장이 코 앞인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당시 전학으로 혼란스러웠고 원채 공부도 안하고 놀기만 하다 자퇴를 했던 동생도
작년 여름 검정고시를 쳤고, 바로 수능까지 쳐서 지금은 07학번 새내기가 되었습니다.
4학년이 된 저는 지금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어렵고 회사의 온갖 음모로 권고사직도 당하시고.. 뭐 하류인생드라마 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사건 이후로 .. 안그래도 사이좋은 부녀지간,
저는 슬픈 비밀이 하나 더 생겨 아빠를 더 사랑하게 되었구요.
완젼 열공해야겠단 마음으로
행복하고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가족의 사랑. 이해. 그리고 보이지 않는 배려.
힘내세요'-'
저도 ,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
그리고, 좋건 싫건, 지금 존재하는 이 가족에게도 감사합시다.
많이 행복해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