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묘지기와 여대생 윤미라는 여대생이 비에 홀딱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내 작은 판자집으로 뛰어 들어 온 것은 정확히 새벽 3시였다.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내 집에 뛰어 들자마자 한 말은 '살려달라'란 울부짖음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말 좀 해봐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안한 눈길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도 내 집에 들어온 지 30분이나 지나서였다. "사... 살려주세요. 너무 두려워요. 제발..." "글쎄 뭘 알아야 살려주고 말고 하죠... 왜, 이 밤중에 사람들이 꺼려하는 공동묘지를 돌아 다니며 살려 달라고 하는 지... 참나..." 내 비아냥에 약간은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 아가씨... 웃기네? 그건 내가 물어 볼 말인데... 훗... 공동묘지에 집이 있으면 뭐하는 사람이겠어요? 난 이곳 묘지 관리인... 간단히 묘지기죠." 내말에 다소 안심이 됐는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래에서... 이상한 걸 봤어요. 너무 끔찍한...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여기로 뛰어 들어 온 거고요..." "이상한 거라니요? 그리고... 왜 아가씨 혼자서... 이런 곳에.." 그녀는 비에 젖어서인지 두려움에서인지 한없이 갸날픈 몸을 마구 떨어댔다. 처음에는 그저 이 아랫마을 엠티 촌에 놀러왔다가 비가 오니까 들어온 줄로만 알았는데 몹시 겁에 질린 그녀를 보니 다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방문과 창문을 꼭 잠그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진정하고... 얘기 해봐요. 이제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니... 도대체 뭘 봤다는 거예요?" 한참을 달래고 얼르자 그제서야 진정을 한 듯 처음보다는 많이 침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제가 왜 이러는지 말씀드릴께요. 사실 저는 이 아래 마을 엠티촌에 피서 온 한국대학 무용학과 3학년의 이윤미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요?" "저와 혜경이, 연경이 이렇게 동아리 친구들 셋이 여름도 됐고 해서 2박3일 일정으로 피서를 떠났죠. 우리 계획은 아무 시외버스나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실컷 놀고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참동안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이 마을이 눈에 띄더라고요. 이 마을은 전문적으로 엠티 온 학생들을 받는 그런 곳이 아니라 조용한 것 같기도 했고... 또 산이며 강이 참 예뻐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오후가 되자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거였어요. 저희가 들은 민박집은 애당초 사람들도 별로 없던 터였고... 비까지 내리니 더 이상 손님들은 들지 않았고... 결국 저희팀과 바로 건너편 남학생 둘이 들은 팀 ... 이렇게만 묵게 되었죠. 사실... 이런 곳에 놀러 오면...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왠지 모를 호기심에 이성간의 만남... 같은... 아무튼 비는 갈수록 거세지고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된 우리들은 밤이되자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려 놀게 됐죠. 그 남학생들은 저희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싱글거리며 한껏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대해 주었고요. 저희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마음에 들어 즐거운 시간이 계속 됐죠. 그런데... 혜경이가 느닷없이 제안을 하나 하는 거였어요. 이왕 놀려면 파트너를 정해 놀자고요. 하지만 우리는 셋이었고 그들은 둘이었으니 여자 한명이 남는 셈이었죠. 그러자 남학생 중 상규라는 남자가 좋은 의견이 있다면서 말을 했는데... 오싹한 체험도 하고 파트너도 정하자며 방법을 내 놓았는데... 우리들이 각자의 소지품을 이 공동묘지 아무 무덤이나 위에 올려 놓고 가면 자신들이 그것들 중 하나씩 집어 올테니... 남은 소지품의 주인공은 파트너가 없는 걸로 하자는... 다소 황당한 얘기였죠. 저는 원래 겁이 많은 터라 당연히 반대를 했는데 혜경이와 연경이는 무릎까지 치며 재미있겠다고 당장 하자는 거였어요. 저는 비도 많이 오고 또 위험하니까... 라고 변명을 하면서 계속 반대를 했는데... 결국 남자들의 비아냥과 친구들의 놀림에 같이 묘지로 향하게 됐죠. 원래... 공동 묘지라는게 낮에와도 을씨년스러운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밤에는 더욱... 저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며 계속 뒤를 돌아 봤어요. 자꾸 누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하지만 혜경이하고 연경이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희미한 후레시 불빛에 의지해 걸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 지 '깔깔' 댔고... 아무래도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이상 못 올라 가겠더라구요. 풀숲에서 '파드득' 거리는 벌레들의 몸짓도 무서웠고 간간히 들리는 산짐승의 울음소리도... 모든게 두렵기만 했죠. 하지만 아무리 무섭다 하더라도 그냥 혼자 민박집으로 돌아가자니...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될 것 같아... 저는 혜경이에게 제 소지품을 대신 가져다 놓아 달라고 부탁을 했죠. 저는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 돌아갈 때 같이 가자고 부탁하면서... 친구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놀려댔지만 전 도저히 묘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없이 뛰어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마을 입구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그녀들이 어서 돌아 오기를 기다렸죠.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친구들은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어요. 저는 혹시...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남자들이 놀리든 뭐든 무작정 민박집으로 뛰어갔죠.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들어서 보니.. 한시간 전까지만해도 우리와 떠들고 놀던 그 남자들이 아무데도 없는 거였어요. 너무 소름끼치더라고요. 친구들은 어떻게 된 거며 또 남학생들은... 어디로 간건지... 저는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헤맸죠. 민박집 주인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고 또... 몇 안되는 마을의 집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서... 마음을 굳게 다져 먹고 친구들이 올라간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조금 전에 같이 따라가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 하며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올라갔죠.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도 떨어지는 빗소리와 군데군데 뭉툭하게 솟아잇는 무덤들만 보일 뿐 친구들의 흔적은 아무곳에도 없는 거였어요. 그때였어요... 새로 만든 무덤인 듯한 벌거숭이 흙무덤 뒤에서 귀에 낯익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민박집에 있어야 할... 저희와 함께 놀던... 그들의 목소리였죠.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어요. 저들이 왜 저기에 있는 것인지.. 저는 흙무덤 곁에 있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어요. 간혹 들리는 그들의 소리는... '혜경이가 더 괜찮지?' '아냐... 혜경이는 좀 말라서... 난 연경이가 더 나... 흠... 마저 먹고 갈까?' '너무 비리지않니? 비가와서 구워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생각보다는 양이 너무많다. 남은 건 어쩌지? 누가 보기라도 하면...' '먹는데 까지 먹고... 어차피 무덤들이니 나머지는 묻고 가지 뭐...' 그 소리를 듣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들이... 설마... 제 친구들을... 그런데 잠시후 '스윽, 스윽' 하고 칼질을 하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니... '오도독, 오도독' 뼈를 씹는 소리까지 들리는 거였어요. 저는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죠. 저들이... 일부러 혜경이와 연경이를... 산에보내 놓고... 식인종같은 것들... 아... 불쌍한... 내 친구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혹시 머리가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물기어린 두눈은 너무나도 진지했고 행동도 공포에 질린 것뿐 극히 정상이었다. 그녀의 얘기는 계속됐다. "저... 저는 한동안 웅크리고 그들이 어서 빨리 가버리기를 바랬죠. 그러나 그들은 무덤에서 떠날 생각을... 안하는 거였어요. 할 수 없이... 큰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피해 숲속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죠. 정신없이... 뛰다보니 희미한 불빛이 보였고..." "그곳이 여기였군. 흠..." 그녀는 미심쩍어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답답하다는 듯 다그쳐 물었다.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거죠? 저는 사실을 말한 거라구요. 같이 가보시면 알잖아요?" "휴~ 사실... 아가씨 얘기를 누가 믿겠어요? 처음 만난 남자들이 여학생들을 죽여 무덤에서 씹어 먹고 있었다니... 훗, 더구나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비아냥 섞인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실려구요? 이 밤중에..." "가야죠. 친구들이 불쌍해서라도... 어서 산을 내려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확인을 해야죠.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 무작정 여기로 뛰어 들었지만... 가야죠... 정신을 좀 차렸으니..." 그녀의 힘없는 뒷모습에 왠지 불쌍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든 또 정신이 혼란스러워 저러는 것이든 일단 그녀가 말한 그 장소에 함께가서 확인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는 그녀를 따라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도대체 어디라는 거예요?' "분명히... 이 근처인데..." 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고 간혹 번개까지 쳤다. 새벽의 산 공기가 내 몸에 휘감겨왔다. 여전히 그녀는 무덤사이를 뒤집고 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까 윤미씨가 흙무덤이라고 했는데... 제가 알기에는 근래에 새로 묻은 무덤은 저 위쪽 애기 무덤과 저 아래쪽 할아버지 무덤 뿐인데..." "아, 그래요?" 윤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보고 우선 가까운 애기 무덤 쪽으로안내하기를 원했다. 나는 흙탕물로 뒤섞여 있는 산길을 윤미를 부축하며 간신히 올라 애기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컴컴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물이 시야를 가렸지만 언뜻 보기에도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고 더구나 새로 묻은 애기 무덤 한쪽이 허물어져 있었다. "마... 맞아요. 바로 여기였어요..." "이.. 이런... 이거... 누가 이랬지?" 나는 윤미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번 보고는 무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새로 흙을 덮은 것이었다. "서... 설마..." 갑자기 아까 윤미가 하던 '다 못먹으면 묻고 가지...'란 얘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확' 돋았다. "아... 아저씨... 죄송하지만 무덤 좀 파보세요... 호... 혹시... 제 친구들이..." 나는 그녀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그럴 작정이었다. 만일 여지껏 얘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주위에 있는 제법 굵직한 나무 가지를 주워 새로 덮은 듯한 곳을 파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그런지 조금 '툭, 툭' 치자 쉽게 허물어져 나갔고, 제법 큰 구덩이가 나왔는데... "엇? 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까 윤미가 얘기한 대로 그곳에는 얼굴 부위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나간 긴 머리의 여자 시신 두구의 머리통이 서로 마주 본 채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돼는 듯 아직도 코와 입에서 피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20년이 넘게 무덤을 지키는 일을 해왔지만... 직접 이렇게 끔찍한 시신을 보니 비명조차 나오지를 않았다. "세... 상에... 이런...일이..." 문득 뒤를 돌아보니 새하얗게 질린 윤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처참한 두구의 시신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일단은 꺼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땅이 '푹'하고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여자 시체가 있는 구덩이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나는 결국 죽어 있는 여자 시신들 속에 나뒹글었다. "윽... 아악~~" 위에서 내려다 볼 때보다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 여자들의 몰골이 더욱 처참했다. 손에 짚히는 것은 질펀한 핏물이었고 그녀들의 얼굴은 벌건 진흙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구덩이 위를 기어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처음부터 쭉 지켜만 보고 있던 윤미의 뒤로 커다란 삽과 곡갱이를 든 남자 두명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윤미씨! 피해요! 뒤.. 뒤에..." 윤미가 뒤로 '휙' 도는 순간 내 머리에는 '나와 윤미 모두 여기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부터 윤미의 말을 듣고 조심했더라면... 나는 그 남자 중 한명이 삽을 높게 드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연이어 내 머리 위에 둔중한 물체의 짜릿한 느낌이 들며 척척한 핏물이 머리 위에서부터 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맞았구나...' 단지 그 단어 하나만 머리에 떠오르며 내 몸은 나의 의지와는 달리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두 눈을 여전히 감은 채였지만 '물컹'하는 느낌과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아까 끔찍하게 죽어있는 두 여자의 시신 위라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가련해만 보이던 윤미라는 아가씨도 잠시후 나와 같은 운명이 될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들이 내 몸위로 흙더미를 퍼붓는 것 같았다. 끝이라는 두려움에 온 몸에 힘이 빠져 여자들의 시신과 흙더미를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 그때 충격으로 아련해 지는 내 귓전을 때리는 소리는... "오빠들... 지금 오면 어떻게 해요? 이 사람 도망갈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하. 하. 하. 미안해. 저 자식... 확실히 자기가 무덤을 판거지?" "그럼요. 내가 얼마나 애써서 연극을 했는데요? 저 사람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하려고..." "다행이군. 자, 이제 흙만 마저 덮어 저 묘지기를 생매장하면 일단은 끝나는 셈이야." "그런데... 정말로 그 무당 말이 들어 맞을까요? 사실 저는 그분의 교리 를 믿은지 얼마 안돼서..." "당연히 들어 맞고 말고... 그분... 얼마나 영험한 무당인데? 그분 말씀이...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무덤 자리가 원래는 명당이라잖아? 그런데... 이곳에 누가 애기 무덤을 써서 혈이 막혔다고... 그걸 푸는 방법은... 이 애기 무덤 옆에다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묘지기를 한 저 남자를 자기 스스로 판 구덩이에 처녀 두명과 함께 생매장하면 그 혈이 풀려서 할아버지 무덤은 더욱 명당 자리가 된다잖니?" "아, 참, 한가지... 더 있잖아요? 처녀들의 얼굴살을 우리 자손들이 먹어야 한다는..." "알아. 그래서 아까 조금씩 잘라놨어. 자 이제 씹어보자고... 이미 사람까지 셋이나 죽였는데... 까짓거... 훗, 그리고 우리가 영생을 하고 자손만대가 번창한다는데... 이깟 인육 쯤이야 못 먹겠어? 하. 하. 하...."1
어느 묘지기와 여대생
어느 묘지기와 여대생
윤미라는 여대생이 비에 홀딱 젖은 채 숨을 헐떡이며
내 작은 판자집으로 뛰어 들어 온 것은 정확히 새벽 3시였다.
그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지닌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처음 내 집에 뛰어 들자마자 한 말은
'살려달라'란 울부짖음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말 좀 해봐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불안한 눈길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녀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한 것도 내 집에 들어온 지 30분이나 지나서였다.
"사... 살려주세요. 너무 두려워요. 제발..."
"글쎄 뭘 알아야 살려주고 말고 하죠... 왜, 이 밤중에 사람들이 꺼려하는
공동묘지를 돌아 다니며 살려 달라고 하는 지... 참나..."
내 비아냥에 약간은 정신을 차린 듯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저씨는... 뭐... 하시는 분이세요?"
"이 아가씨... 웃기네? 그건 내가 물어 볼 말인데... 훗... 공동묘지에 집이 있으면
뭐하는 사람이겠어요? 난 이곳 묘지 관리인... 간단히 묘지기죠."
내말에 다소 안심이 됐는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아래에서... 이상한 걸 봤어요. 너무 끔찍한...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여기로 뛰어 들어 온 거고요..."
"이상한 거라니요? 그리고... 왜 아가씨 혼자서... 이런 곳에.."
그녀는 비에 젖어서인지 두려움에서인지 한없이 갸날픈 몸을 마구 떨어댔다.
처음에는 그저 이 아랫마을 엠티 촌에 놀러왔다가 비가 오니까 들어온 줄로만 알았는데
몹시 겁에 질린 그녀를 보니 다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방문과 창문을 꼭 잠그고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진정하고... 얘기 해봐요. 이제 여기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으니... 도대체 뭘 봤다는 거예요?"
한참을 달래고 얼르자 그제서야 진정을 한 듯 처음보다는 많이 침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제가 왜 이러는지 말씀드릴께요. 사실 저는 이 아래 마을
엠티촌에 피서 온 한국대학 무용학과 3학년의 이윤미라고 하는데요..."
"그래서요?"
"저와 혜경이, 연경이 이렇게 동아리 친구들 셋이 여름도 됐고 해서
2박3일 일정으로 피서를 떠났죠. 우리 계획은 아무 시외버스나 타고 가다가
적당한 곳에 내려 실컷 놀고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런데 한참동안 시골길을 달리다 보니
이 마을이 눈에 띄더라고요.
이 마을은 전문적으로 엠티 온 학생들을 받는 그런 곳이 아니라 조용한 것 같기도 했고...
또 산이며 강이 참 예뻐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짐을 풀고 오후가 되자
느닷없이 폭우가 쏟아지는 거였어요.
저희가 들은 민박집은 애당초 사람들도 별로 없던 터였고...
비까지 내리니 더 이상 손님들은 들지 않았고...
결국 저희팀과 바로 건너편 남학생 둘이 들은 팀 ... 이렇게만 묵게 되었죠.
사실... 이런 곳에 놀러 오면...그런 생각이 들잖아요?
왠지 모를 호기심에 이성간의 만남... 같은...
아무튼 비는 갈수록 거세지고 아무 곳도 갈 수 없게 된 우리들은 밤이되자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려 놀게 됐죠. 그 남학생들은 저희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싱글거리며 한껏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대해 주었고요.
저희들도 시간이 갈수록 그들이 마음에 들어 즐거운 시간이 계속 됐죠.
그런데... 혜경이가 느닷없이 제안을 하나 하는 거였어요.
이왕 놀려면 파트너를 정해 놀자고요.
하지만 우리는 셋이었고 그들은 둘이었으니 여자 한명이 남는 셈이었죠.
그러자 남학생 중 상규라는 남자가 좋은 의견이 있다면서 말을 했는데...
오싹한 체험도 하고 파트너도 정하자며 방법을 내 놓았는데...
우리들이 각자의 소지품을 이 공동묘지 아무 무덤이나 위에 올려 놓고 가면 자신들이
그것들 중 하나씩 집어 올테니... 남은 소지품의 주인공은 파트너가 없는 걸로 하자는...
다소 황당한 얘기였죠.
저는 원래 겁이 많은 터라 당연히 반대를 했는데
혜경이와 연경이는 무릎까지 치며 재미있겠다고 당장 하자는 거였어요.
저는 비도 많이 오고 또 위험하니까... 라고 변명을 하면서 계속 반대를 했는데...
결국 남자들의 비아냥과 친구들의 놀림에 같이 묘지로 향하게 됐죠.
원래... 공동 묘지라는게 낮에와도 을씨년스러운 게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밤에는 더욱...
저는 오솔길을 걸어 올라가며 계속 뒤를 돌아 봤어요.
자꾸 누가 따라오는 느낌이 들어 온 몸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하지만 혜경이하고 연경이는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희미한 후레시 불빛에 의지해 걸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 지 '깔깔' 댔고...
아무래도 저는 다리가 후들거려 더이상 못 올라 가겠더라구요.
풀숲에서 '파드득' 거리는 벌레들의 몸짓도 무서웠고
간간히 들리는 산짐승의 울음소리도... 모든게 두렵기만 했죠.
하지만 아무리 무섭다 하더라도 그냥 혼자 민박집으로 돌아가자니...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될 것 같아... 저는 혜경이에게 제 소지품을 대신
가져다 놓아 달라고 부탁을 했죠. 저는 마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 돌아갈 때 같이 가자고 부탁하면서...
친구들은 나를 어린애 취급하며 놀려댔지만
전 도저히 묘지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정신없이 뛰어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밝히고 있는 마을 입구에 와서 쪼그리고 앉아
그녀들이 어서 돌아 오기를 기다렸죠.
그러나... 1시간이 지나도록 친구들은 올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였어요.
저는 혹시... 하는 생각에 너무 무섭고 두려워... 남자들이 놀리든 뭐든
무작정 민박집으로 뛰어갔죠. 그런데... 막상 민박집에 들어서 보니..
한시간 전까지만해도 우리와 떠들고 놀던 그 남자들이 아무데도 없는 거였어요.
너무 소름끼치더라고요. 친구들은 어떻게 된 거며 또 남학생들은... 어디로 간건지...
저는 정신없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 헤맸죠. 민박집 주인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았고 또... 몇 안되는 마을의 집들도 쥐죽은 듯 조용해서...
마음을 굳게 다져 먹고 친구들이 올라간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조금 전에 같이 따라가지 못한 걸 못내 아쉬워 하며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천천히 올라갔죠. 그런데... 한참을 올라가도 떨어지는 빗소리와
군데군데 뭉툭하게 솟아잇는 무덤들만 보일 뿐
친구들의 흔적은 아무곳에도 없는 거였어요.
그때였어요...
새로 만든 무덤인 듯한 벌거숭이 흙무덤 뒤에서 귀에 낯익은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바로... 민박집에 있어야 할... 저희와 함께 놀던...
그들의 목소리였죠.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었어요. 저들이
왜 저기에 있는 것인지..
저는 흙무덤 곁에 있는 나무 뒤에 숨어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어요.
간혹 들리는 그들의 소리는...
'혜경이가 더 괜찮지?' '아냐... 혜경이는 좀 말라서... 난 연경이가 더 나...
흠... 마저 먹고 갈까?' '너무 비리지않니?
비가와서 구워 먹을 수도 없고...'
'그런데 생각보다는 양이 너무많다. 남은 건 어쩌지? 누가 보기라도 하면...'
'먹는데 까지 먹고...
어차피 무덤들이니 나머지는 묻고 가지 뭐...'
그 소리를 듣자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들이... 설마... 제 친구들을...
그런데 잠시후 '스윽, 스윽' 하고 칼질을 하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더니... '오도독, 오도독' 뼈를 씹는 소리까지 들리는 거였어요.
저는너무 놀라 쓰러질 뻔했죠. 저들이... 일부러 혜경이와 연경이를...
산에보내 놓고... 식인종같은 것들... 아... 불쌍한... 내 친구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혹시 머리가 이상한 여자가 아닌가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물기어린 두눈은 너무나도 진지했고 행동도 공포에
질린 것뿐 극히 정상이었다. 그녀의 얘기는 계속됐다.
"저... 저는 한동안 웅크리고 그들이 어서 빨리 가버리기를 바랬죠.
그러나 그들은 무덤에서 떠날 생각을... 안하는 거였어요. 할 수 없이...
큰 마음먹고 조심스럽게... 그 자리를 피해 숲속으로 무작정 뛰기 시작했죠.
정신없이... 뛰다보니 희미한 불빛이 보였고..."
"그곳이 여기였군. 흠..."
그녀는 미심쩍어하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답답하다는 듯
다그쳐 물었다.
"제... 얘기를 믿지 않는 거죠? 저는 사실을 말한 거라구요. 같이 가보시면 알잖아요?"
"휴~ 사실... 아가씨 얘기를 누가 믿겠어요? 처음 만난 남자들이 여학생들을 죽여
무덤에서 씹어 먹고 있었다니... 훗, 더구나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비아냥 섞인 목소리에 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실려구요? 이 밤중에..."
"가야죠. 친구들이 불쌍해서라도... 어서 산을 내려가 경찰에 신고를 하고 확인을 해야죠.
아까는 너무 경황이 없어 무작정 여기로 뛰어 들었지만... 가야죠... 정신을 좀 차렸으니..."
그녀의 힘없는 뒷모습에 왠지 불쌍한 감정이 들었다.
그녀가 사실을 잘못 알고 있든 또 정신이 혼란스러워 저러는 것이든
일단 그녀가 말한 그 장소에 함께가서 확인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말없이 일어나는 그녀를 따라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함께 집을 나섰다.
"도대체 어디라는 거예요?'
"분명히... 이 근처인데..."
비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었고 간혹 번개까지 쳤다. 새벽의 산 공기가 내 몸에 휘감겨왔다.
여전히 그녀는 무덤사이를 뒤집고 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아까 윤미씨가 흙무덤이라고 했는데... 제가 알기에는 근래에 새로 묻은
무덤은 저 위쪽 애기 무덤과 저 아래쪽 할아버지 무덤 뿐인데..."
"아, 그래요?"
윤미가 천천히 고개를 돌리더니 나보고 우선 가까운 애기 무덤 쪽으로안내하기를 원했다.
나는 흙탕물로 뒤섞여 있는 산길을
윤미를 부축하며 간신히 올라 애기 무덤 가까이 다가갔다. 컴컴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빗물이 시야를 가렸지만 언뜻 보기에도 누군가가 다녀간
흔적이 있었고 더구나 새로 묻은 애기 무덤 한쪽이 허물어져 있었다.
"마... 맞아요. 바로 여기였어요..."
"이.. 이런... 이거... 누가 이랬지?"
나는 윤미의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한번 보고는 무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만져 보았다.
분명히 누군가가 새로 흙을 덮은 것이었다.
"서... 설마..."
갑자기 아까 윤미가 하던 '다 못먹으면 묻고 가지...'란 얘기가 문득 머리에 떠오르며
나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확' 돋았다.
"아... 아저씨... 죄송하지만 무덤 좀 파보세요... 호... 혹시... 제 친구들이..."
나는 그녀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그럴 작정이었다. 만일 여지껏 얘기한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주위에 있는 제법 굵직한 나무 가지를 주워 새로 덮은 듯한 곳을 파기 시작했다.
물에 젖어 그런지 조금 '툭, 툭' 치자 쉽게 허물어져 나갔고, 제법 큰 구덩이가 나왔는데...
"엇? 아악~~~"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까 윤미가 얘기한 대로 그곳에는
얼굴 부위가 예리한 칼로 베어져 나간 긴 머리의 여자 시신 두구의 머리통이
서로 마주 본 채 가지런히 누워 있었다.
그리고 죽은 지 얼마 안 돼는 듯 아직도 코와 입에서 피거품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20년이 넘게 무덤을 지키는 일을 해왔지만...
직접 이렇게 끔찍한 시신을 보니 비명조차 나오지를 않았다.
"세... 상에... 이런...일이..."
문득 뒤를 돌아보니 새하얗게 질린 윤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 처참한 두구의 시신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일단은 꺼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그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땅이 '푹'하고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여자 시체가 있는 구덩이 속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나는 결국 죽어 있는 여자 시신들 속에 나뒹글었다.
"윽... 아악~~"
위에서 내려다 볼 때보다 얼굴을 맞대고 보니
그 여자들의 몰골이 더욱 처참했다.
손에 짚히는 것은 질펀한 핏물이었고 그녀들의 얼굴은 벌건
진흙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황급히 구덩이 위를 기어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처음부터 쭉 지켜만 보고 있던 윤미의 뒤로
커다란 삽과 곡갱이를 든 남자 두명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다급히 소리쳤다.
"윤미씨! 피해요! 뒤.. 뒤에..."
윤미가 뒤로 '휙' 도는 순간 내 머리에는 '나와 윤미 모두 여기서 꼼짝없이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처음부터 윤미의 말을 듣고 조심했더라면...
나는 그 남자 중 한명이 삽을 높게 드는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연이어 내 머리 위에 둔중한 물체의 짜릿한 느낌이 들며 척척한
핏물이 머리 위에서부터 내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 내렸다.
'맞았구나...'
단지 그 단어 하나만 머리에 떠오르며 내 몸은 나의 의지와는 달리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두 눈을 여전히 감은 채였지만 '물컹'하는 느낌과
'확' 풍겨오는 피비린내에 아까 끔찍하게 죽어있는 두 여자의 시신 위라는 것을 알았다.
더불어 가련해만 보이던 윤미라는 아가씨도 잠시후 나와 같은 운명이
될 거라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들이 내 몸위로 흙더미를 퍼붓는 것 같았다.
끝이라는 두려움에 온 몸에 힘이 빠져 여자들의
시신과 흙더미를 허우적거리기만 하는데...
그때 충격으로 아련해 지는 내 귓전을 때리는 소리는...
"오빠들... 지금 오면 어떻게 해요? 이 사람 도망갈까봐 얼마나 조마조마 했는데..."
"하. 하. 하. 미안해. 저 자식... 확실히 자기가 무덤을 판거지?"
"그럼요. 내가 얼마나 애써서 연극을 했는데요? 저 사람이 자기 스스로
무덤을 파게 하려고..."
"다행이군. 자, 이제 흙만 마저 덮어 저 묘지기를 생매장하면 일단은 끝나는 셈이야."
"그런데... 정말로 그 무당 말이 들어 맞을까요? 사실 저는 그분의 교리
를 믿은지 얼마 안돼서..."
"당연히 들어 맞고 말고... 그분... 얼마나 영험한 무당인데? 그분 말씀이...
일주일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무덤 자리가 원래는 명당이라잖아?
그런데... 이곳에 누가 애기 무덤을 써서 혈이 막혔다고...
그걸 푸는 방법은...
이 애기 무덤 옆에다가 이곳에서 오랫동안 묘지기를 한 저 남자를
자기 스스로 판 구덩이에 처녀 두명과 함께 생매장하면 그 혈이 풀려서
할아버지 무덤은 더욱 명당 자리가 된다잖니?"
"아, 참, 한가지... 더 있잖아요? 처녀들의 얼굴살을 우리 자손들이 먹어야 한다는..."
"알아. 그래서 아까 조금씩 잘라놨어. 자 이제 씹어보자고...
이미 사람까지 셋이나 죽였는데... 까짓거... 훗,
그리고 우리가 영생을 하고 자손만대가 번창한다는데...
이깟 인육 쯤이야 못 먹겠어? 하. 하.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