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밤에 공원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생각한 감독의 자리는 어떤것일까. 가슴이 좀 답답했는데,니포감독님에 대한 글을 오래만에 보니까여기에도 조금은 신선한(?) 글이 될것 같아이렇게 올립니다. 문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부천을 지지해 온 이 사람은그와 함께 한 시간이 1분도 안되는 사람이지만, 그가 뿌려놓은 씨앗이 제대로 꽃피워가는걸느껴보았고 지켜보며 살았던 사람이기에, 그가 있었던 몇년간을 지켜본 분들의 이야기를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니폼니쉬의 축구, 혹은 니포축구 라는 말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재미있는 축구를 의미하며, 승리만을 부르짖지 않고 축구의 품위를 지켜낸다 라는 뜻을 연상케 합니다.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에게 니폼니쉬 감독님이 그리 각인된 데에는 K-리그에서 부천감독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보여주셨던여러 경기 모습들 때문이며,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을 증언하는 여러 제자들과 팬들을 통해 니폼니쉬의 축구를 보지 못했던 이들 조차 그의 시대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니폼니쉬 감독님과 관련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얼마 전 스폰지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왔었던, 1997년 프로리그 개막전 부천-울산의 경기 날, 부상당한 윤정환 선수를 보고 울산 선수가 라인 아웃을 시켰는데, 경기가 다시 시작되어, 울산 쪽으로 공을 넘겨주려 찬 것이 골인이 되어버렸던 일일 겁니다. 선수들은 당황했고, 뜻밖의 사고는 관중들의 웃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엔 더 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사자들은 얼굴 찌푸린 채,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잠시 웃어버리고는 그렇게 지나가버릴 수도 있었던 일을 10년이 지나도록 거듭 회자되게 하는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니폼니쉬 감독님으로부터 부천 선수들을 향해 한골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그의 지시를 받은 부천선수들은 설렁설렁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며 골이 들어갈 길을 터주던 우화같은 이야기. 덕분에 우리에게도 10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감동설화들을 가진 다른 리그의 팬에게 조차 기죽지 않고 K-리그의 이야기라며 하나쯤은 꺼내놓을 수 있을 것이 생겼습니다. 승과 패, 순위라는 결과가 중요시 되는 ‘프로’ 축구 판에서결과보다도 ‘되어가는 과정’을 중요시 했던 지도자가 있었기에 그날의 경기에서 만큼은 승과패의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날의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나 혹은 후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이건,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양팀 선수와 니폼니쉬 감독님이 보여준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축구가 아니라, 아름다운 과정을 담아 완성되어가는 축구가 기억에 남게 되었으니까요. 승과 패의 승률, 순위, 수상경력, 몸값.클럽의 경영진이거나,축구 데이터 분석가라면 한 감독에 대한 평가를 위해 필요한 수치들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이라는 종족들은 욕심쟁이여서그런 숫자들은 돌아보지 않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팬들의 심장은 수치 높은 감독들의 경기보다는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지키기 어려운 가치들을 지켜내려는 삶이 어우러진 감독들의 경기에 좀 더 긴 여운을 느낍니다. 수억대의 선수들이 모여 그들의 금과 같이비싼 땀으로 서로의 몸값을 다투는 것이 축구였다면, 니폼니쉬 감독님의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낼 필요도 없었겠죠. 축구라는 경기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감동이 있기에 비록,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경기를 했다하더라도 패배한 팀의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그들이 안쓰러워 아린 마음에 눈물이 흐르더라도, 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잘했다고 괜찮다고 소리쳐 주고, 그들로 인해 실망과 좌절의 고통을 맛보았으면서도 다시금 일주일만 지나면, 푸른 잔디 위에 달리는 그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겠죠. 그러면서 축구가 삶의 일부로 끼어들고, 마음이 쏠리는 한 팀에 낚여버리면 그 팀의 일들을 자신의 삶에서 솎아 내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궁극엔 구분 지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리버풀의 빌 샹클리 감독(59-74 감독직 역임)이72-73 시즌 리그 타이틀을 차지한 후,KOP 앞에서 리버풀 스카프를 밟고 서 있던 경찰을 꾸짖으며 했던 말처럼 말입니다. “이봐, 그건 누군가의 삶이야.” 가끔씩은 이렇게 피치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뜨내기 구경꾼이 아닌, 축구의 일부로, 축구를 매개체로 한 삶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인생의 이웃이라 받아들여 주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몇 년에 한번 씩 찾아오는 서커스 유랑극단의 구경꾼이 아닌, 축구를 삶의 일부로, 인생으로 받아들이며 그 인생들이 쌓이고 쌓인 것을역사라 생각하는 이들은 축구팬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존중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감독 혼자의 삶뿐만 아니라,수많은 다른 이들의 인생도 함께 담으면서 축구는 아름다운 값어치를 지니게 됩니다. 또한 축구의 품위를 지켜야한다는 책임의 무게도 그 무게가 더해집니다.무게를 더해 준 축구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억해주고, 그들의 선택을 알아주는 것뿐이지만, 그뿐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축구의 값어치는 변치 않을 겁니다.
잊을 수 없는 감독. 발레리 니폼니쉬.
야밤에 공원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생각한 감독의 자리는 어떤것일까.
가슴이 좀 답답했는데,
니포감독님에 대한 글을 오래만에 보니까
여기에도 조금은 신선한(?) 글이 될것 같아
이렇게 올립니다.
문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부천을 지지해 온 이 사람은
그와 함께 한 시간이 1분도 안되는 사람이지만,
그가 뿌려놓은 씨앗이 제대로 꽃피워가는걸
느껴보았고 지켜보며 살았던 사람이기에,
그가 있었던 몇년간을 지켜본 분들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니폼니쉬의 축구, 혹은 니포축구 라는 말은 적어도
한국에서는 재미있는 축구를 의미하며, 승리만을 부르짖지 않고 축구의
품위를 지켜낸다 라는 뜻을 연상케 합니다.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에게 니폼니쉬 감독님이
그리 각인된 데에는 K-리그에서
부천감독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보여주셨던
여러 경기 모습들 때문이며,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을 증언하는
여러 제자들과 팬들을 통해
니폼니쉬의 축구를 보지 못했던
이들 조차 그의 시대를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니폼니쉬 감독님과 관련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얼마 전 스폰지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왔었던,
1997년 프로리그 개막전 부천-울산의 경기 날,
부상당한 윤정환 선수를 보고 울산 선수가 라인 아웃을 시켰는데,
경기가 다시 시작되어,
울산 쪽으로 공을 넘겨주려 찬 것이 골인이 되어버렸던 일일 겁니다.
선수들은 당황했고, 뜻밖의 사고는 관중들의 웃음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엔 더 흔하지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당사자들은 얼굴 찌푸린 채,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은 잠시 웃어버리고는
그렇게 지나가버릴 수도 있었던 일을
10년이 지나도록 거듭 회자되게 하는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니폼니쉬 감독님으로부터 부천 선수들을 향해
한골을 주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그의 지시를 받은 부천선수들은
설렁설렁 상대 공격수를 마크하며
골이 들어갈 길을 터주던 우화같은 이야기.
덕분에 우리에게도 100년의 역사 속에서
수많은 감동설화들을 가진 다른 리그의 팬에게
조차 기죽지 않고 K-리그의 이야기라며
하나쯤은 꺼내놓을 수 있을 것이 생겼습니다.
승과 패, 순위라는 결과가 중요시 되는 ‘프로’ 축구 판에서
결과보다도 ‘되어가는 과정’을 중요시 했던
지도자가 있었기에 그날의 경기에서 만큼은
승과패의 결과가 어떠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날의 경기를 직접 본 사람이나 혹은 후에 이야기를 전해들은 사람이건,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양팀 선수와
니폼니쉬 감독님이 보여준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는 축구가 아니라,
아름다운 과정을 담아 완성되어가는
축구가 기억에 남게 되었으니까요.
승과 패의 승률, 순위, 수상경력, 몸값.클럽의 경영진이거나,
축구 데이터 분석가라면 한 감독에 대한 평가를 위해 필요한 수치들로
충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팬이라는 종족들은 욕심쟁이여서
그런 숫자들은 돌아보지 않는 때도 있는 것입니다.
팬들의 심장은 수치 높은 감독들의 경기보다는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지키기 어려운 가치들을
지켜내려는 삶이 어우러진 감독들의 경기에 좀 더 긴 여운을 느낍니다.
수억대의 선수들이 모여 그들의 금과 같이
비싼 땀으로 서로의 몸값을 다투는 것이 축구였다면,
니폼니쉬 감독님의 그날의 이야기를
다시금 꺼낼 필요도 없었겠죠.
축구라는 경기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감동이 있기에 비록,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는 경기를 했다하더라도
패배한 팀의 선수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그들이 안쓰러워 아린 마음에 눈물이 흐르더라도,
그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잘했다고 괜찮다고 소리쳐 주고,
그들로 인해 실망과 좌절의 고통을 맛보았으면서도
다시금 일주일만 지나면,
푸른 잔디 위에 달리는 그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이겠죠.
그러면서 축구가 삶의 일부로 끼어들고,
마음이 쏠리는 한 팀에 낚여버리면
그 팀의 일들을 자신의 삶에서 솎아 내는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궁극엔 구분 지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리고는 그렇게 되어버리는 거죠.
리버풀의 빌 샹클리 감독(59-74 감독직 역임)이
72-73 시즌 리그 타이틀을 차지한 후,
KOP 앞에서 리버풀 스카프를 밟고 서 있던 경찰을
꾸짖으며 했던 말처럼 말입니다.
“이봐, 그건 누군가의 삶이야.”
가끔씩은 이렇게 피치의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을 뜨내기 구경꾼이 아닌,
축구의 일부로,
축구를 매개체로 한 삶의 교차점에서 만나는 인생의 이웃이라 받아들여
주는 감독들이 있습니다.
몇 년에 한번 씩 찾아오는 서커스 유랑극단의 구경꾼이 아닌,
축구를 삶의 일부로,
인생으로 받아들이며 그 인생들이 쌓이고 쌓인 것을
역사라 생각하는 이들은 축구팬들의
삶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존중해주는 고마운 존재들입니다.
감독 혼자의 삶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이들의 인생도 함께 담으면서 축구는 아름다운 값어치를 지니게 됩니다.
또한 축구의 품위를 지켜야한다는 책임의 무게도 그 무게가 더해집니다.
무게를 더해 준 축구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기억해주고, 그들의 선택을 알아주는 것뿐이지만,
그뿐이라 하더라도 아름다운 축구의 값어치는 변치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