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에 대하여... ㅎㅎ님 답변기다리겠습니다.

SaNADA2007.09.08
조회31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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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태복음에서 유래했습니다.

 

음... 물론 언뜻보면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강조하셨다... 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장 구조상 어떻게 저것이 십일조를 강조한 것이라 할수 있습니까?

 

제가 봐선 [의, 인, 신] 그리스도 정신을 강조한 것으로 뿐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문맥상 예수님께서는 두가지의 가치를 비교하고 계십니다.

율법과 의, 인, 신이죠...

 

그리고 그 율법중 하나로 십일조를 예로 드셨습니다.

 

이것이 정확한 문맥의 해석이 아닙니까?

 

너희는 십일조라 하는 율법은 따르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은 망각하고 있구나?

율법을 행하되, 의 인 신을 잊어선 아니될지어다...

 

오히려 근본정신이 빠진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써의 율법으로써 십일조를 비판하시면

비판하신 것이지, 강조한 것은 전혀 아닌듯 보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

 

바로 저 위에 제가 굵은색으로 표시한 부분이지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화가 있을지니! 外飾(외식) [①바깥쪽의 장식(裝飾). 외장(外裝) ②면치레]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자,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시각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갖는 진의을 따져봅시다.

 

공자께서 이르시길, 예법은 인을 담는 그릇이요, 인과 예 그것이 함께 할때 진정한 의미를

지닐 수 있으니, 인이 없는 예는 형식에 지나지 않으며, 예가 없는 인은 무례함을 피하기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아는 이라면, 그리스도께서 하고자 하신 바가 무엇인지 알수 있겠지요.

 

소위 율법이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사상을 이루기 위한 기틀이요, 공자께서 말씀하신 인(여기선 그리스도 사상이 되겠지요, 의 인 신등의...)에 다가서기 위한 한가지 방편이라 할수 있습니다.

 

가볍게 율법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 봅시다.

 

율법

<종교>종교적·사회적·도덕적 생활과 행동에 관하여 신(神)의 이름으로 규정한 규범

 

자,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대체 어쨋다고???

 

자 이걸 보시지요

 

규범

<철학> 사유(思惟)나 의지, 감정 따위가 일정한 이상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법칙과 원리.

 

규범의 사전적 정의입니다. 사전에서 말한 일정한 이상이란, 以上이 아닌 理想이겠지요.

꿈, 희망, 따위를 말하는 이상이란 말입니다.

 

곧, 율법을 풀어 말하자면

 

사유나 의지 감정따위가 일정한 理想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지켜야할 법칙과 원리를

 

종교적, 사회적, 도덕적 생활과 행동에 관하여

신의 이름으로 규정한 것이겠지요.

 

여기까지 이해하셨다면 일정한 理想이나 목적이 의미하는 바가 곧, 그리스도 정신이라는 점을 이성적이고, 일반적이며, 상식적인 관점에서 쉽게 수긍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마태복음,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 핵심, 진의는

십일조와 율법은 중한 것이다. 반드시 지켜야 한다! 고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예로 드신 십일조를 비롯하여 율법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정신[곧, 의 인 신]을 지키기 위한 방편일 뿐인데 너희는 어찌

주객전도의 행태를 취하고 있는가? 라며 비판하고 계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 말씀과 관련하여 이들이 혹 율법과 예식을 망각 하진 않을까?

하는 심려가 생기시어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니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라고 말씀하신것이 아니라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물며 예수님께서 그러나 라고 말씀하신 것은 십일조가 아닌 율법이요, 십일조는 비판이 대상이 되었음인데, 어찌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강조했다고 말씀하시는지요?

 

『결론』

예수님께서는 십일조를 언급하신 것은 외식적인 행동의 예로 드심이요,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 하심은 십일조가 아닌 율법을 이르는 바이며

 

또한 율법이라 하는 것도 당대의 종교인들이 사전적 정의에도 이르듯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인 생활과 풍토를 연구하고 제정한 것인 바,

 

대다수의 크리스챤, 외국의 개신교회와 카톨릭교회들이 십일조라는 율법을 적극적으로 행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는 근거는 상당히 부족하며, 왜곡된바라고 생각됩니다.

 

율법이란 하나의 사회규범이요 관습인바, 사회가 변하면 함께 변화하는 것이요.

법이라는 규범, 도덕이라는 규범, 종교적인 규범, 사회를 이루는 모든 규범은 변화하는 것이고 그래야 하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구약에서 말씀하신 율법 또한 구약의 사회를 전제로 내려주신 율법인 것이고,

현대적 시점에서의 십일조는 종교인, 성직자의

타락이라는 윤리적 측면과의 문제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전적 정의와 일반이성으로 판단해보건데, 그리스도께서 강조하신 것은 성경의 근본이념이고 또한 변하지 말아야 할것 또한 성경의 근본 이념이며 율법이라는 것은 사회규범인바,

 

현명한 시대적 판단과 사회적인 가치를 놓고 율법이라는 하나의 형식,

 

이름바 가치체계는 현대사회에 걸 맞도록 빠르게 적응하는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SaNAD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