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아니 몇달전까지만 해도 악녀가 대세였죠.케이블의 악녀일기란 프로그램을 시작으로,우결의 서인영등 나쁜여자?!가 모든여성들의대리만족을 시켰다고나 할까?ㅋㅋ 이렇게 귀여운 악녀도 있는반면,예전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서는 정말 이름도 거론하지 못할만큼 잔인한 악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주요 핵심인물을 꼽아볼께요. 1. 엘리자베스 바토리 아아, 너무 유명하죠. 이번엔 <카운테스>란 영화가 개봉하는데 완전 보고싶어요. 왕보다도 재산이 많았던 집안이었지만,전쟁에 나가있는 용맹한 남편이 전사한후 새롭고 젊은 백작을 만나게 됩니다.사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이 늙어감을 한탄하고 있었는데.어느날, 젊은하녀의 피가 자신의 얼굴에 묻고,그후에 그 피가 자신을 젊어지게 만들고 있다는확신을 품고, 그 피들로 목욕과 더불어 자주 마시기도 했답니다. <철의 인형> 고문도구! 딸이었던 '안나 바토리' 피의성 (과거와 현재) 그녀가 자주사용했던 고문방법으로는.(피를 채취하기 위해)철의 인형, 철의 새장 등등이 있지만.. 좀 잔인해서...ㅠㅠ그녀가 죽인 처녀의 수는 612명!이제껏 그 어떤누구보다도 많은수의 살인에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결국, 귀족의 딸까지 탐하다 꼬투리가 잡혀.독방에 갇혀살다가 54살에 사망했다고 하네요.(헝가리 귀족출신이라, 화형까지는 면했다고..) 2. 중국황실을 피로 물들인 여제 <여태후> 남편이었던 한고조에 대한 불신과, 마땅히 누려야 할황제와 태후의 자리를 한고조의 첩인 척희에게 내주어야 할것같은 불안함에 떨고있었다. 그리고, 믿었던 그 아들로부터의 배신감이 결국은역사상 길이 남을 가장 잔혹한 복수극이 되었다. 한고조와 후궁사이의 자식들과 조왕을 차례로 암살하였으며, 척희의 손발을 모두 잘라 목과 몸만 남기고,눈을 도려내고, 귀를 자르고 약을 먹여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그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척희를 변소 구덩이 속에 던져 넣은 후 '사람돼지'라고 불렀다.그리고 이 잔혹한 모습을 친아들 효혜제에게 보도록 하였다. 원래 심성이 온순하였던 효혜제는, 거의 사람의 형체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물체가 지난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척희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결국 효혜제는 척희의 끔찍한 모습을 본지 얼마되지 않아, 제위 7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3. 측천무후 624~705. 본명은 무조. 중국 최초의 여황제!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라그이 길을 걷다 운 좋게 천거를 통해황궁의 시녀로 들어감. 미모도 연줄도 없이 지략 하나로황태자 치노와 연인 사이가 된다. 피비린내 나는 궁정 암투속에 마침내 치노는 황제(고종)에 오르고무조는 고종의 두번째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황후에 오르기위해 무조는 자신의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이를 고종의 황후에 뒤집어 씌웠으며이후 폐위된 황후의 재기 움직임을 포착하자 그녀의 손발을 잘라술독에 빠뜨려 죽이는 등 무시무시한 행각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무조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약한 고종황제를 대신해 제국의 실권을 잡는다. 그녀와 고종 사이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무조는 첫째아들과 둘째 아들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한다. 야심이 강해 아버지의 자리까지 넘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한다.결국 셋째 아들현이 황제에 올랐으나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던 무조는 그를 폐한다. 그리고 690년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여여제로써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한다.이 동안 왕권을 지키기위해 치밀한 밀고제도 및 고문 처형방법이 동원됐는데,귀에 진흙을 넣고 두개골을 조이고 꺾고, 눈동자를 가르는 등 특히 고문방법이말도 못하게 잔혹했다고 한다. 측천무후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눌려 지냈던 수많은 남성들의 증언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다.무후의 공포정치는 여성이 왕권을 지키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황후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등의 이야기도 날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1
입이 안 다물어지는 역사속 악녀들
몇년전, 아니 몇달전까지만 해도 악녀가 대세였죠.
케이블의 악녀일기란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우결의 서인영등 나쁜여자?!가 모든여성들의
대리만족을 시켰다고나 할까?ㅋㅋ
이렇게 귀여운 악녀도 있는반면,
예전 유럽을 비롯한 세계에서는 정말 이름도 거론하지
못할만큼 잔인한 악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주요 핵심인물을 꼽아볼께요.
1. 엘리자베스 바토리
아아, 너무 유명하죠. 이번엔 <카운테스>란
영화가 개봉하는데 완전 보고싶어요.
왕보다도 재산이 많았던 집안이었지만,
전쟁에 나가있는 용맹한 남편이 전사한후
새롭고 젊은 백작을 만나게 됩니다.
사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이 늙어감을 한탄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젊은하녀의 피가 자신의 얼굴에 묻고,
그후에 그 피가 자신을 젊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확신을 품고, 그 피들로 목욕과 더불어 자주 마시기도 했답니다.
<철의 인형> 고문도구!
딸이었던 '안나 바토리'
피의성 (과거와 현재)
그녀가 자주사용했던 고문방법으로는.(피를 채취하기 위해)
철의 인형, 철의 새장 등등이 있지만.. 좀 잔인해서...ㅠㅠ
그녀가 죽인 처녀의 수는 612명!
이제껏 그 어떤누구보다도 많은수의 살인에 치를 떨었다고 합니다.
결국, 귀족의 딸까지 탐하다 꼬투리가 잡혀.
독방에 갇혀살다가 54살에 사망했다고 하네요.
(헝가리 귀족출신이라, 화형까지는 면했다고..)
2. 중국황실을 피로 물들인 여제 <여태후>
남편이었던 한고조에 대한 불신과, 마땅히 누려야 할
황제와 태후의 자리를 한고조의 첩인 척희에게 내주어야
할것같은 불안함에 떨고있었다.
그리고, 믿었던 그 아들로부터의 배신감이 결국은
역사상 길이 남을 가장 잔혹한 복수극이 되었다.
한고조와 후궁사이의 자식들과 조왕을 차례로
암살하였으며, 척희의 손발을 모두 잘라 목과 몸만 남기고,
눈을 도려내고, 귀를 자르고 약을 먹여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지만, 아직 생명이 붙어있는 척희를
변소 구덩이 속에 던져 넣은 후 '사람돼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잔혹한 모습을 친아들 효혜제에게 보도록 하였다.
원래 심성이 온순하였던 효혜제는, 거의 사람의 형체는 찾아
볼 수 없었던 그 물체가 지난날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던
척희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결국 효혜제는 척희의 끔찍한 모습을 본지 얼마되지 않아,
제위 7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3. 측천무후
624~705. 본명은 무조. 중국 최초의 여황제!
아버지의 사망으로 몰라그이 길을 걷다 운 좋게 천거를 통해
황궁의 시녀로 들어감. 미모도 연줄도 없이 지략 하나로
황태자 치노와 연인 사이가 된다.
피비린내 나는 궁정 암투속에 마침내 치노는 황제(고종)에 오르고
무조는 고종의 두번째 황후의 자리에 오른다.
황후에 오르기위해 무조는 자신의 아들을 목 졸라 죽이고
이를 고종의 황후에 뒤집어 씌웠으며
이후 폐위된 황후의 재기 움직임을 포착하자 그녀의 손발을 잘라
술독에 빠뜨려 죽이는 등 무시무시한 행각을 일삼았다고 전해진다.
무조는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약한 고종황제를 대신해 제국의 실권을 잡는다.
그녀와 고종 사이엔 4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무조는 첫째아들과 둘째
아들의 왕위계승권을 박탈한다. 야심이 강해 아버지의 자리까지 넘본
둘째 아들은 자신의 손으로 처형하는 '용단'을 내리기도 한다.
결국 셋째 아들현이 황제에 올랐으나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았던 무조는 그를 폐한다.
그리고 690년 국호를 주(周)로 개칭하고 스스로 황제라 칭하여
여제로써 약 15년간 전국을 지배한다.
이 동안 왕권을 지키기위해 치밀한 밀고제도 및 고문 처형방법이 동원됐는데,
귀에 진흙을 넣고 두개골을 조이고 꺾고, 눈동자를 가르는 등 특히 고문방법이
말도 못하게 잔혹했다고 한다.
측천무후에 관한 이야기는 그녀에게 눌려 지냈던 수많은
남성들의 증언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다.
무후의 공포정치는 여성이 왕권을 지키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황후에 오르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등의 이야기도 날조됐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