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저 집들이를 하거나, 친구를 초대해 간단한 다과를 즐기거나, 신랑 회사 동료들 가끔 술상을만들어 초대하거나 가끔주말에 삼겹살 집혹은 영화관 에서 외식겸 나들이를 하거나. 그도 귀찮으면 집에서 통닭시켜놓고 주말에 신랑은 게임.나는만화책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그냥 한가로운 새댁이었다. 학창시절 엄마말씀안듣고 공부도 잘 안해서 잘나가는4년제 대학은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방에 평범한대학교 나와서 운이좋게 (청년백수좀 적었을때 ) 대기업 계약직으로 취직해 있다가 정규직으로일하고 있는 신랑을만났었다.
착하고 키고크고 잘생겼던 사람.
성격도순해서 친구들이 킹카라고 ..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운 기지배로 통하기까지했다.
누구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샘내기까지 했던.
게다가 난 세상에 아무 걱정없는....훗.. 아니지.
세상에 근심없이 편히 먹고사는 ..그런 여자였다. 결혼후 여잔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며 따뜻하게 지내라 기에 직장도 때려치웠다. 그때, 시어머님이 나에게 그렇게말씀하셨었다.
지금생각해보면,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나같은여자도없었던거 같다.
이거 단순히 너 생각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래 내생각엔 내가 순진했다고 당당히 말하고싶다.
결혼식 준비때.
여느 커플 전부다 그렇겠지만 돈문제.예단문제.
우리집도예외는아니였다. 아무리 예의있고, 바른집안이라도 의견차이 와 생활수준에 따라
생각이 틀리기때문에 말도 많아지고 탈도 많아진다.
상견례 를 했었던날.
나와 신랑의 집은 대한민국 끝과 끝 이었기에 상견례 는 정말 날을잡고서 할 정도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 구경도 하고싶고 여행도 해볼겸 내려가겠다고 흥쾌히 우리가 사는 지역 쪽으로
내려오시겠다는 시모.
나는 그런 시모 배려에 너무 감사해서, 직장다니면서도 발품팔이해서 분위기 좋고 좀 비싼 레스토랑도 아닌 한정식 집을 찾아서 예약을했었다.
그한정식집 은꽤 부자동네에 있는 집이라 시부모,천정부모님, 나와 신랑 이렇게 6인이 뭘먹게되면
현금으로 계산할시 지갑이 닫히지않을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정말, 내 수준에 과할정도의 고급 한정식집이었었다.
그런데 그날, 미용실에서 머리 드라이까지 하고 사돈 뵐때 옷이없다며 고민고민끝에 백화점 에서 6개월무이자할부기간에 속하는 신용카드로 코트를 사서 입고 가는 정성을 보이신 친정어머니와는 다르게 머리도 제대로 안감고 대충 집에서나 입는 츄리닝 비스무리한 바지에(번들거리는 등산용바지)
가디건도 아닌 하얀내복을 걸치시고 다떨어져 닦지도 않은 단화를 신고 오신 시어머니 자리.
같이 오신 시아버지는 양복이라도 챙겨입으셨는데, 그런 마누라(시아버지 입장에서)가 챙피하신지
친정어머니와 인사후 한정식집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싸우시는 두분.
(그러길래 좀 머리좀 빗고 하라고했지!!..뭐 이런대화ㅡㅡ)
워낙 괄괄하고 욕잘하고 성깔있는 시어머니라 그냥 미안하다..바빴다도 아니라
"지랄쫌하지마!!!!!!!!!!!!!!!! "
라고받아쳐주는... -_-
그날 친정엄마,친정아빠..... 넋이나가셨다.
그 세련된한정식집에서 어찌나창피하던지.. 한정식 직원들까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들어왔다..
차림새가 허름하니... -_-
친정엄마가 신랑이 한테 그랬었다.
"참 반듯하게 컸기에, 우리딸 믿고 맏길수 있겠네"
라고..시어머님 성격에 엇나가도 모자랄 아들이었는데 너무나 착하고 착한 사람이라
친정엄마도 혀를내두르며 놀래실정도였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기에 눌러서 반항할 기운도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결혼하고 시댁에 첫명절에 시어머님 자기네 친정식구 보여주시겠다면서
가자는 통에 갔던 그날은 향수까지 뿌리시며 옷을 챙겨입고 가셨다. 자기 친정오빠 보러 간다며... 나보고 꼭 정장입으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셨었다...
시어머님 때문에 이혼.지금은 그로부터 1년.
비록 리플 하나이지만 저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시네요.
지금 매일매일 열심히 살겠노라 장담하며 살지만,실상은 저도 사람인지라 하루하루
시험에 드는날이 더욱 많아요.
늦게 하는 공부라서 더 그런가....싶고.
그래도 응원주신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좋은일 가득하시길.
그리고 용기 가지시고,항상 건강하시길 빌어요.
소설이냐 아니냐..하신분도 계신데.
글잘썼다는 칭찬으로 그냥 받아들이고 말겠습니다.
제가 차라리 소설쓸정도의 능력이나 되었으면 좋겠네요.
--------------------------------------------
좀 많이 깁니다. 읽기싫으시면 패스하세요.
잠시 나의 애기를할까 한다.
나는돌싱이다.
지금 난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 대학교 에 다니고 있다.
나중에, 의사면허를 취득하려고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는 20대 이혼녀. 이곳에서는 성실한 학생인 신분이다.
어느날, 외국에서 인터넷 뉴스를읽었다.
20대 어느며느리가 시댁문제로 자살까지 하게 된것을.
커피와 함께 오늘 좀 봐둬야하는 지역 신문을 읽고있던 와중에 한국뉴스도 궁금해
검색중 본 뉴스때문에 ,손이 떨려왔다..
그저 다른사람의 이야기일 뿐이기도 한데.. .
제목만 봐도 온몸에 소름까지 돋아나고. 아침부터 기분이 영 글러먹기까지 했다.
2년전, 내이름은 소위 "품절녀" 였다.
결혼한지 2년이 안되어서 아직 아이도 없거니와
그땐 그저 집들이를 하거나, 친구를 초대해 간단한 다과를 즐기거나, 신랑 회사 동료들 가끔 술상을만들어 초대하거나 가끔주말에 삼겹살 집혹은 영화관 에서 외식겸 나들이를 하거나. 그도 귀찮으면 집에서 통닭시켜놓고 주말에 신랑은 게임.나는만화책을 보며 여유를 즐기는 그냥 한가로운 새댁이었다. 학창시절 엄마말씀안듣고 공부도 잘 안해서 잘나가는4년제 대학은 가보지도 못하고
그냥 지방에 평범한대학교 나와서 운이좋게 (청년백수좀 적었을때 ) 대기업 계약직으로 취직해 있다가 정규직으로일하고 있는 신랑을만났었다.
착하고 키고크고 잘생겼던 사람.
성격도순해서 친구들이 킹카라고 ..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운 기지배로 통하기까지했다.
누구든, 부러워하고 질투하고..샘내기까지 했던.
게다가 난 세상에 아무 걱정없는....훗.. 아니지.
세상에 근심없이 편히 먹고사는 ..그런 여자였다. 결혼후 여잔 집에서 남편 뒷바라지 하며 따뜻하게 지내라 기에 직장도 때려치웠다. 그때, 시어머님이 나에게 그렇게말씀하셨었다.
지금생각해보면,나는 너무 순진했었다.
나같은여자도없었던거 같다.
이거 단순히 너 생각일 뿐이라고 한다면 ,그래 내생각엔 내가 순진했다고 당당히 말하고싶다.
결혼식 준비때.
여느 커플 전부다 그렇겠지만 돈문제.예단문제.
우리집도예외는아니였다. 아무리 예의있고, 바른집안이라도 의견차이 와 생활수준에 따라
생각이 틀리기때문에 말도 많아지고 탈도 많아진다.
상견례 를 했었던날.
나와 신랑의 집은 대한민국 끝과 끝 이었기에 상견례 는 정말 날을잡고서 할 정도였다.
내가 사는 지역에 구경도 하고싶고 여행도 해볼겸 내려가겠다고 흥쾌히 우리가 사는 지역 쪽으로
내려오시겠다는 시모.
나는 그런 시모 배려에 너무 감사해서, 직장다니면서도 발품팔이해서 분위기 좋고 좀 비싼 레스토랑도 아닌 한정식 집을 찾아서 예약을했었다.
그한정식집 은꽤 부자동네에 있는 집이라 시부모,천정부모님, 나와 신랑 이렇게 6인이 뭘먹게되면
현금으로 계산할시 지갑이 닫히지않을정도의 돈이 필요하다.
정말, 내 수준에 과할정도의 고급 한정식집이었었다.
그런데 그날, 미용실에서 머리 드라이까지 하고 사돈 뵐때 옷이없다며 고민고민끝에 백화점 에서 6개월무이자할부기간에 속하는 신용카드로 코트를 사서 입고 가는 정성을 보이신 친정어머니와는 다르게 머리도 제대로 안감고 대충 집에서나 입는 츄리닝 비스무리한 바지에(번들거리는 등산용바지)
가디건도 아닌 하얀내복을 걸치시고 다떨어져 닦지도 않은 단화를 신고 오신 시어머니 자리.
같이 오신 시아버지는 양복이라도 챙겨입으셨는데, 그런 마누라(시아버지 입장에서)가 챙피하신지
친정어머니와 인사후 한정식집들어가는 입구에서 부터 싸우시는 두분.
(그러길래 좀 머리좀 빗고 하라고했지!!..뭐 이런대화ㅡㅡ)
워낙 괄괄하고 욕잘하고 성깔있는 시어머니라 그냥 미안하다..바빴다도 아니라
"지랄쫌하지마!!!!!!!!!!!!!!!! "
라고받아쳐주는... -_-
그날 친정엄마,친정아빠..... 넋이나가셨다.
그 세련된한정식집에서 어찌나창피하던지.. 한정식 직원들까지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들어왔다..
차림새가 허름하니... -_-
친정엄마가 신랑이 한테 그랬었다.
"참 반듯하게 컸기에, 우리딸 믿고 맏길수 있겠네"
라고..시어머님 성격에 엇나가도 모자랄 아들이었는데 너무나 착하고 착한 사람이라
친정엄마도 혀를내두르며 놀래실정도였다.
지금생각해보면, 그 기에 눌러서 반항할 기운도없었던 것이다..
그러고 결혼하고 시댁에 첫명절에 시어머님 자기네 친정식구 보여주시겠다면서
가자는 통에 갔던 그날은 향수까지 뿌리시며 옷을 챙겨입고 가셨다. 자기 친정오빠 보러 간다며... 나보고 꼭 정장입으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셨었다...
뒤따라 가는데 뒷통수 모양이 꼴베기 싫다 라는걸 느낀적이 언제였던가 ..라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런 상견례가 끝난후에 예단,함 까지 했었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진않았지만 반듯하게 조용히 직장 잘다니며 그 흔한 남들쓰는 명품빽은 커녕
화장품도 제일 싼거 (백화점껀 써보지도 못했었다) 쓰며 친정어머니께서 월급족족..
돈을 모아주셨다. 그리고 신랑도 술과 담배를 하지않았던 성실했던 사람이라 대기업 에 다니며
보너스 까지 꼬박꼬박 적금붓는통에 우린 꽤 많은돈을 가지고 출발할수있었다.
그런데 결혼전 신랑동생이 카드명의도용을당했다며 카드빚이 있다고 했다.
2천만원이 넘었다. 신랑이 친동생인에 어찌모른척하냐며 그걸 해결했었다.
그돈을해결하고 6천정도 남은돈. 그리고 내돈.
합쳐서 집을살려다가 친정엄마가 시집갈때 너가돈을 안모은것도아닌데 왜이렇게 초라하게가려고 하느냐며 그냥 적당한 전세아파트 얻고 옷도 사입고 예물도 하고 다 하라고 하셨다.
모자라면 엄마가 보태주신다고 까지하셨었다.
그래서나는 친정엄마 덕분에 화장품,가방,예복,코트,밍크,신발, 그리고 차도 가졌었다.
신랑은 회사신용대출 받은거 보태서 집을해결했고. 우리는 다이아 세트 까지 예물로 교환하고
친구들 함들어오는날 호텔에 데리고 가서 양주도사먹이며 신혼여행은 유럽일주를 했었던
괜찮은 결혼식을 한 사람들이었다.
나역시 만족했다.
그런데,
그때가시작이었다는걸 나는너무몰랐었다.
결혼식날 폐백을했다.
위쪽지방사람들은 친정쪽은 폐백안받는다고 했다. 부모님중 친정어머니도 페백받는거 아니라고하시면서 (지역문화차이겠지만) 굳이 사양하셨기에 나는엄마한테도 아빠한테도 절 해드리고 싶었건만 그러는거 아니라기에 못했었다.
그리고절값...
돈이 중요한건아니지만 친구들은 몇백.몇천도 된다는 애도많건만..
나는 다합치니 25 만원이 남짓 안되었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합쳐서 15만원/ 큰아버님 5만원/ 둘째아버님 3만원..
신혼여행은 유럽인데, 인천공항에서 커피마시고 밥사먹고 신랑과내가 필요한 편한 차림의
커플 점퍼 를 사둔게 없어서 봤더니 면세라도 비쌌다.
결국 나는 그냥 후드티 챙겼다며 양보하고 신랑 점퍼를 하나 샀는데 10만원 부족해서 내돈을 털었다.
갔다오니 허여멀거난 봉투만 우루루... 내앞에내미는 시어머니.
죄다 부조금 받은건데, 시아버지 일용직이시라 일거리 없으시다며 나보고 이걸해결하라셨다.
나는 정말 순진하게 '조금더 버는 집이 도우는거지머..' 라며 웃으며 그 봉투를 받았다
시어머님 짐짓 당황해 하시며 조금미안해하는 안색도 잠시 갑자기 우리 신랑보고 "저새끼는 꼭 티비를 스포츠만 봐" 라며 욕을하셨다.
....;;; 갑작스런 호통에내가 심하게 당황하자 시아버지께서 " 그참.. 말뽄세하곤.."
이라며헛기침을 하자 시모는 전혀 아무렇지 않게 음성을 높이시며 " 아왜!내가이나이에 꼴에 며느리눈치보고 살아야해!! 신발" 이라고 하셨다.
그날,나는 잠을 이루지못했었다.
다행이 신혼집과 시댁은 거리가 꽤되는지라, 시댁은 3개월에 한번정도 가게되었다.
근데 다른사람은 매일..혹은 매끼 보는 집도있건만 미안하게도 3개월에한번 보는것도 너무고역이었다
너무싫은 시어머니 말투. 욕설. 아무나보면 싸우려고 하시는 그 태도.
아들도장가들고 며느리도 보셨는데.. 조금변하셨으면좋으련만..
좋은말도 아닌데 "시/팔, 쌍/년/ , 개/가/튼" 등등..
듣고싶지않은 욕설을 나는 매번 들어야했다.
물론 나에게 하는 욕은아니다. 친정어머니께 하소연하자, 같은여자로써 여자가 힘들게
벌어서 아들을키웠고 (일용직 시아버지능력이 없으시니) 그동안 참힘들게 사셨나본데..
니가 이해하라며.. 원래 힘들고 어렵게 살다보면 여자가 억척 스럽게 변하게 된다며.
태어날때부터 곱고 고상하고 싶지 않은여자가 있겠느냐셨다. 좀더 많이 배운너가 더 너그럽게
이해해 드리고 현명하게 대처하는게 맞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생각을 고쳐 시어머니가 욕설을 뱉으시면 "에이..어머님 ^^" 이러면서
어머니 기분과 비위를 맞춰드렸다.
하지만 나도사람인지라..점점 늘어나는 욕설엔 사람그림자도 보기가 싫어졌었다.
폐백때 나에게 대추를 던지며 "애들은무슨. 니들끼리 잘살아라"
라고 덕담을 해주시던 시어머니.
1년도안되어서 요즘 티비에 애들이 나오면 너무부럽다며 볶아 대셨다
너는 애가안이쁘니? 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좋다는 한의원에서 한약도 달여먹고, 친정엄마가 내가 죄인이라시며 고개 조아리는 모습이 맘이 아파 산부인과는 출근도장을 찍다싶이해서 다니기 시작했다.
신랑은 쪽팔려서 하기싫다는 정액검사 부터..
전혀이상없는 나인데 임신이 안되어 너무 스트레스 받으니 의사가 그랬다.
"결혼한지 1년안됐자나요 ㅡㅡ"
라고.
맞다.. 우린 결혼한지 1년도안넘었는데 .. 얼마나 시어머니 가 볶아대면 무슨 결혼5년차 불임부부처럼 클리닉센터를 다녀대기 시작했다.
공들이고 기도도 하고, 빌고..
친정아버지는 매주 산에 오르시는게 취미이신데 산에 올라가셔서 약수물을 그 나이드신분이
젊은사람도힘들다는 배낭을메고 약수물을나에게 배달?까지해주시며 수고스러운 물이라 생각치 말고 이물로 국까지 끍여먹으라고 하셨었다.
눈물겨운 부모님 사랑에 약수물로 끓은 국, 약수물에 행군야채 반찬 등등.
몸에 좋은것들만 먹어대니 신랑도 나도 살도 찌고 얼굴도 반들거렸다.
그 정성에 임신이 되었는데, 시어머니는 축하한다는 전화한통을 안했었다
분명 임신했다고 전해드렸는데도, 나에게 축하한다 몸조심하구..등등의 안부도없고
남들 다하는 임신인데별스럽다는 식.
결국, 5주도 안되어서 스트레스로 조기유산을 했고,
나는 극심한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심한우울증이와서 머리카락이미친듯 빠져대고 청소기가 고장나기까지 했었다.
너무안되겠다싶어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했는데 결혼때 입은옷들이 하나도안맞았다
살도찌고. 얼굴도 진짜 아줌마가 되어버렸고.
내모습이 너무 싫어서 밤마다 폐인처럼 잠도 안자고 티비보고, 오락하고.놀고.
미친사람처럼 굴었다.
마치 세상에 아무것도 할게없는 사람처럼.
그러다 결국 나는 남편 에게 화를내기시작했었다.
우리는 자주싸웠다.
결국 그 좋아하는 저녁밥상도 한번안챙기고 나도내인생찾겠다며 직장을찾아다녔다.
살찐아줌마라안될꺼같아서 미친듯 살을뺐다.
무려 20키로를 감량했었다.
내가 생각해도 미친듯 살이 쪘었었다.
살이빠지니 아가씨 적 자신감이 돋아났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시간도 많고 여유도있겠다 학원과 인터넷 강의를들으며
공부를하기시작했다.
6개월만에 어렵다는 자격증을따내고 독학으로 토익준비를 하기시작했다.
새로운직장에 다니기위해 이력서를 낼때쯤,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공부는 해서뭐하냐, 애새끼나 생각할것이지"
라고 타박하셨다.
우울증을 겪었던터라 그 사나운 시어머니께 지금껏 반박 한번안했던 나인데
"저도 사람인데 공부좀하면안되나요?"
라고 대들었다.
"누가 공부하지말래?지랄이야.." 라는 소리를 들었다.
"뭐라구요?"
"아니.. 누가공부하지말랬냐고. 애낳으라고 애!!"
라고소리를지르셨다.
"애도낳고,공부도할꺼에요.직장도 잘들어가서 출산휴가받으면 되져"
라고하니
" 애는 누가 기르라고!!"라고냅다소리를지르 셨다.
"제 아이 는 제가 키울껍니다" 라고 말하니 하긴친정이 가깝지..라고 말씀하시곤
끊으셨다. 공부할생각은 하지도말라신다.
더욱열받아서 비싼 영어학원까지 끊었다.그일로 신랑과 대판싸우기까지했다.
점점우리사이가멀어졌다.
아이가너무안생겨서, 정말 애한명 낳고 뭘할까..라는 생각까지 들어 다시 나와 신랑은
병원을 들락거렸다.
의사가 조금충격스럽게 정자들이 활동량이 작다고 했다. 신랑은 들어오지말고 여자만들어와서 들으라고 하며 내게 조심히말했다.
그래도 난 신랑 기죽을까봐 "이상없데 우리 전에도 임신했었자나"라고 아무렇지않게 말했다.
그런데 사실 결혼때부터 관계도거부하고 잘 하지도않을 뿐더러 어쩌다 관계하면 10초도지속이안되었다. 나는 이사람이 순진해서 (나도순진했었다) 부끄러워 그렇거나 아님 성에는 관심이 없나보다라고생각했다.사실 나 역시 성적인부분에있어서 크게 관여치 않았다.
나중에 이혼을결심하며 이 사실을 친정어머니께 말씀드리니 엄마는 내게 "그런걸왜 진작애기안했느냐" 시며 가슴팍을 치셨다.
내가 사기결혼 한거나 마찬가지라고하셨었다.
그건 정상적인남자 가 아니라고 하셨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부분보다 시어머님 때문에 더 이유가 분명하고 커졌었다.
이혼은 시어머님때문에 하는거였다. 도저히그 분의마인드를 생각을 뛰어넘을 수없었다.
이해도 안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너무나많았다...그많은 사건들..
일일이 꼽으면.. 한달도넘게 말할수있다.
나는 그렇게 아이가 없는 무수한 커플들처럼 쉽게 속전속결로 이혼을했고.
지금은 외국에나와있다.
나는,지금너무나편하고 행복하다.
가끔외롭기도 하지만, 사회적 시선은 이곳이 훨씬더 나를 기분좋게 해준다.
한국에선 내 꼬리표가 주홍글씨같을꺼다. 이유불문하고.
하지만이곳은 전혀그렇지않으며 새로만나는 새로운 사람들때문에 행복해한다.
웃을수있어서 다행이라는친정어머니 와의 이메일.
자주보지못해서 보고싶은 가족들을제외하면
이곳생활도 너무나 편안하다.
이곳에서 새롭게 떳떳하게 더 멋지고 당당한 사람이되기위해 또 하루를 보내며 살고있다.
나는,수많은 대한민국에서 고통받고 또 나처럼 이혼을 생각하는 주부들에게 말하고싶다.
.왜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가.
라고 생각하지말고
무엇을 위해 사는지를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답이 보인다고.
감히 말해주고싶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12월은 1월달달력에 시댁행사 를 줄줄이 새로기입하느라 정신들 없을 무렵이겠지.지금 그때를 회상하면 긴 꿈을꾼것처럼 까마득해지기 까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