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호]그때 이혼하지 않길 잘했어

경희샘201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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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결혼할 때 명동성당에서 찍은 부모님 엄마 아빠의 신혼
  


                         친정아버지 칠순 잔치

 

40년 넘게 어머니와 해로하시고 성당에서도

오랜 사목회 활동과 많은 봉사직을 마다않으신 처희 친정아버지가

몇년 전 어느 새벽 저와 함께 절두산으로 가는 차안에서 솔직하게 해준 말입니다.

 

그날 새벽 운전대를 잡은 저의 졸음을 쫓으려 시작된 우리 부녀의 수다는 

생전 처음으로 허심탄회하게 아버지와 딸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서 서로의 삶을 반추 했던것 같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맏딸은 흰머리 히끗 히끗 거리는 40대가 되자 너무도 편안하게

자기의 결혼생활을, 아버지는 아버지의 결혼생활까지 이야기 하게 된것이지요.

 

제가 늘 들어왔던 대로 우리부모는 40여년전에도 연애라는것을

그것도 펜팔을 해서 결혼을 했습니다.

음식을 잘하는 전라도 여자와 가진것 하나 없이 성실하기만 한 경상도 총각은 그렇게

가정을 이루고 저를 낳고 줄줄이 동생을 셋 더 낳았습니다.

 

어느 때는 깔깔거리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담장을 넘기도 했지만

많은 시간을 다투기도, 큰소리가 나기도 했던 부부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다 모르지만 두사람만이  심각했던 날들도 많았겠지요.

 

아버지탓도 아니고 어머니탓도 아니였을 이유로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힘들었던 시기가 우리집에 있었으니까요.

 

젊은시절 너무나도 일찍 이룬 성공으로 자신만만하다가

모든일은 엉망으로 돌아가고 아버지에게 사기친 믿었던 사람을 잡으러

다녔던 일.  운영하던 공장에 세번이나 불이 났던일로 화재보험 사기혐의로

경찰서에 조사를 받던일 등  순탄하게만은 살지 못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들이 모여 두사람의 사랑을 좀먹고

위로해야할 서로를 할퀴게 되었었나 봅니다.

아니면 두분만이 아는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 어떤 어려움속에서도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지하며 신앙을

버리지 않았던  아버지 입에서 조차 감히

"내가 이혼을 생각했던 적도 있노라 " 딸에게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버린  그때 그시절을 뒤돌아보며

아버지는 이혼하지 않길 잘했다고 자조합니다.

 

그때 정말 어떤 이유가 되었던 가정의 어려움을 이혼으로 마무리 하려 했다면

지금처럼 우리 딸이  나를 사랑해줄까? 너희들에게 얼굴을 들고 살수 있었을까?

귀여운 손자들이 우리를 찾아와 즐겁게 해줄까? 하고 아버지는 물었습니다.

 

가끔 종친회등으로  친척들이 모이면 다들 말한답니다.

박사, 판검사 자식들도 아니고  빌딩 지닌 부자 아들딸은 못두었어도

그래도 우리 아버지가  잘 사는거라고...

 

"왜? 우리집을요?" 하고 물으니 뜻밖의 대답은

자식도 모두 짝지워 여의고 슬하에 이혼한 자녀가 없으니

그것도 자식농사 잘된것의 하나라고 부럽다고 ....

그래요. 종친회에 가면 늘 늙으막에 할 이야기야

자식 자랑밖에 더 있습니까? 이혼하지 않은것만도 잘된거라니요.

 

둘러보면  어느 가정에나 한집 정도는 있는 이혼한 자녀들때문에

부모들이  부끄러워 하고 속상해 한다고 합니다.

그 수치가 적다 해도 우리 가톨릭 신자 가정도 이혼률 1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지요.

 

70이 다된 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시고 싶었나 봅니다.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 우리가정도 결혼생활이 늘 쉽고 행복하기만 한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이혼을 참고 견뎌보니 잘한것 같더라고 그러니

너도 그런 생각은 아예 말아라 하고 말입니다.

 

잘 맞는 짝을 찾아 하는것이 결혼이 아니라

잘 맞는 짝이 되어주는것이 결혼이라죠?

 

이제 예전과 다르게 목소리에 힘도 빠지고

어머니의 눈치도 보며 늙는  아버지가

그래도 저의 눈에 행복해 보이는것은 

잔소리가 심해진 엄마에게 예전보다 더 많이 웃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의 어떤 모습이 하느님보시기에

기쁜 모습일지 내 부모를 통해 가늠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 아버지의 솔직한 말씀이 늘 기억에 남습니다.

나도 아버지처럼 더 늙게 되면 이런 말을 내 딸 아들에게 해야 할텐데...

"힘들때도 있었지만 이혼하지 않아서 지금 행복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