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샤넬의 포스터가 런던 언더그라운드에 쫙 깔렸었다. 아밀리에로 기억에 박혀 버린 오드리 토투가 샤넬로 분했다. 기억 속 귀여운 이미지는 간 데 없고 어딘지 침울해 보이는 게 극장으로까지 나를 끌지 못했다. 그래도 샤넬을 그렸다니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영화 감상은 무식한 첫 마디로 시작됐다. "동생아! 샤넬이 여자였어?"어이없어 대꾸도 않는다.
묵묵함....
보는 내내 흑백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가 입혀진 영화임에도 잔잔한 물결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극의 재미를 원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가브리엘 샤넬이 살아온 생의 일부(불우한 어린 시절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아닐까 싶다.
퓨전?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극을 원한다면 방법은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샤넬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보이와의 러브스토리에 온 시선을 두면 될 것이다.
남과 다른 사고와 개성, 자신감 등을 바탕으로 한 패션 전문가에 비중을 둔다면 내가 느낀 것 처럼 '묵묵하다'고만 할테니....
러브라인에 주목하다 삼천포로 빠져보면...
살짝 그녀를 비꼬아 볼까?
반반한 얼굴로 잘도 남자를 꼬셨겠다.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펼쳤겠다.
그래도 한 남자를 사랑했다고 그려지는데..
실상은 어땠을지 모르지.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밝혀졌다는데 이 역시 순탄하지 않은 여자임을 보여주는 대목 아닐까?
허나 이 역시 능력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패션의 거장에게 이런 말들을 쏟아 붓는다면, 돌 맞겠다.
이제 그만...
보육원이 늘 회색빛은 아니다.
우중충한 잿빛 원피스(?)를 입은 꼬마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브리엘 자매도 마찬가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웃을 수 있는지는 부모의 울타리가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가브리엘 자매는 아버지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비뚤어지지도 않고 나름대로의 꿈도 키우고 있다.
언니는 그 시절의 다른 여성들 처럼 괜찮은 놈(?) 하나 물어 결혼하고 싶다.
누군가는 현모양처가 그녀의 꿈이었다고 미화할지 모른다.
현모양처는 무슨...
할 게 없으니까 남자한테 기대 살아볼까 하는 거지.
예쁨받는 애완견같은 삶을 가브리엘은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진 재능이라면 남들과 다른 사고자체다.
왜 같은 모습을 고집할까.
내가 먼저 달라지면 어떨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줄 아는 모습이 부럽다.
어찌보면 그녀가 더욱 강해질 수 있었던 게 그녀의 어린 시절때문은 아니었을까.
(뭐,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됐기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코코를 사랑한 남자
먹고 살려면 못할 게 뭐 있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번다.
코코라는 별칭은 이 때 얻은 것이란다.
가브리엘의 꿈 파리는 단순히 호화스러움을 뜻하지 않는다.
성공.
그 곳에 가면 자신의 삶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놈을 만났다.
발장과의 만남이 삶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는...
나만 몰랐다.
무작정 발장을 찾아가 그의 마음을 얻고
그의 친구인 보이와 사랑에 빠지면서 든든한 후원자를 하나 더 얻게 된다.
발장의 청혼을 거절한 게 보이와의 사랑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
영화의 잔잔한 러브스토리에 먹물을 끼얹는 격이지만 더 큰 빽을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
뭐, 이것도 능력이니까.
이왕 가진 것 없이 시작해 누구보다 뛰어나길 소망한다면 아주 약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천재성과 과감함은 따를 수 없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그녀에게서 본받고 싶은 건 역시 자신감이다.
미인에게는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미인에게 후한 점수다.
그러니 미인들은 자신감을 갖는 데 남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기 마련.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코코의 불우한 어린 시절은 그저 지난 과거다.
관심사는 의복이었고, 그 의복을 이왕이면 편하게 만들고자 했고, 편한 것만 추구한다면
여성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아름답게 그려낸 것.
하나하나 손이 가는대로 스케치하고 채색하고.
가진 재능을 썩히지 않은 것만으로 부러움을 살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남긴 것을 더욱 높이 산다.
.
.
.
난 가죽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숱한 과거인들 중 하나가 되겠지만...
어쩌면 그녀도 다른 삶을 원했을지 모른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답이 없는 법이다.
영화평론가라는 사람이 나와 주절대는 말들이 정답인냥 이렇다더라 떠드는 건 재미없다.
가끔 너무 난해한 영화를 볼 때, 그 때는 그들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해가 됐으면 기억에서 버린다.
내 생각이 아니니까.
영화의 종반부.
패션쇼.
벽면을 가득채운 조각 거울들에 비친 모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요즘 옷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옷들을 걸친 늘씬한 모델들 사이로 두 무릎을 모로 뉘워 계단에 앉아 있는 가브리엘이 있다.
죽는 날까지 디자인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녀에게도 다른 그림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그림이 머릿 속을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 아주 살짝 비껴간 그림에는 그녀가 원한 또 다른 삶이 있었을지 모른다.
코코샤넬
영화 코코샤넬의 포스터가 런던 언더그라운드에 쫙 깔렸었다. 아밀리에로 기억에 박혀 버린 오드리 토투가 샤넬로 분했다. 기억 속 귀여운 이미지는 간 데 없고 어딘지 침울해 보이는 게 극장으로까지 나를 끌지 못했다. 그래도 샤넬을 그렸다니 한 번 봐야겠다 싶었다. 영화 감상은 무식한 첫 마디로 시작됐다. "동생아! 샤넬이 여자였어?"어이없어 대꾸도 않는다.묵묵함....
보는 내내 흑백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가 입혀진 영화임에도 잔잔한 물결을 넋 놓고 한참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극의 재미를 원한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다.
그러나 가브리엘 샤넬이 살아온 생의 일부(불우한 어린 시절과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면
가장 사실적으로 그려낸 영화가 아닐까 싶다.
퓨전?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극을 원한다면 방법은 있다.
디자이너로서의 샤넬에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보이와의 러브스토리에 온 시선을 두면 될 것이다.
남과 다른 사고와 개성, 자신감 등을 바탕으로 한 패션 전문가에 비중을 둔다면 내가 느낀 것 처럼 '묵묵하다'고만 할테니....
러브라인에 주목하다 삼천포로 빠져보면...
살짝 그녀를 비꼬아 볼까?
반반한 얼굴로 잘도 남자를 꼬셨겠다.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꿈을 펼쳤겠다.
그래도 한 남자를 사랑했다고 그려지는데..
실상은 어땠을지 모르지.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스파이 노릇을 했다고 밝혀졌다는데 이 역시 순탄하지 않은 여자임을 보여주는 대목 아닐까?
허나 이 역시 능력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
패션의 거장에게 이런 말들을 쏟아 붓는다면, 돌 맞겠다.
이제 그만...
보육원이 늘 회색빛은 아니다.
우중충한 잿빛 원피스(?)를 입은 꼬마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가브리엘 자매도 마찬가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해야 웃을 수 있는지는 부모의 울타리가 있을 때 알 수 있는 것이다.
다행히 가브리엘 자매는 아버지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비뚤어지지도 않고 나름대로의 꿈도 키우고 있다.
언니는 그 시절의 다른 여성들 처럼 괜찮은 놈(?) 하나 물어 결혼하고 싶다.
누군가는 현모양처가 그녀의 꿈이었다고 미화할지 모른다.
현모양처는 무슨...
할 게 없으니까 남자한테 기대 살아볼까 하는 거지.
예쁨받는 애완견같은 삶을 가브리엘은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가진 재능이라면 남들과 다른 사고자체다.
왜 같은 모습을 고집할까.
내가 먼저 달라지면 어떨까.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할 줄 아는 모습이 부럽다.
어찌보면 그녀가 더욱 강해질 수 있었던 게 그녀의 어린 시절때문은 아니었을까.
(뭐, 나중에 대단한 사람이 됐기때문에 하는 말이지만...)
코코를 사랑한 남자
먹고 살려면 못할 게 뭐 있어.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번다.
코코라는 별칭은 이 때 얻은 것이란다.
가브리엘의 꿈 파리는 단순히 호화스러움을 뜻하지 않는다.
성공.
그 곳에 가면 자신의 삶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기회는 놓치지 않는다.
있어 보이는(?) 놈을 만났다.
발장과의 만남이 삶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는...
나만 몰랐다.
무작정 발장을 찾아가 그의 마음을 얻고
그의 친구인 보이와 사랑에 빠지면서 든든한 후원자를 하나 더 얻게 된다.
발장의 청혼을 거절한 게 보이와의 사랑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말하면
영화의 잔잔한 러브스토리에 먹물을 끼얹는 격이지만 더 큰 빽을 선택한 것이라고 본다.
뭐, 이것도 능력이니까.
이왕 가진 것 없이 시작해 누구보다 뛰어나길 소망한다면 아주 약은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천재성과 과감함은 따를 수 없다.
다른 건 모두 차치하고 그녀에게서 본받고 싶은 건 역시 자신감이다.
미인에게는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중 하나가 미인에게 후한 점수다.
그러니 미인들은 자신감을 갖는 데 남들보다 조금 더 수월하기 마련.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코코의 불우한 어린 시절은 그저 지난 과거다.
관심사는 의복이었고, 그 의복을 이왕이면 편하게 만들고자 했고, 편한 것만 추구한다면
여성미를 떨어뜨릴 수 있으니 아름답게 그려낸 것.
하나하나 손이 가는대로 스케치하고 채색하고.
가진 재능을 썩히지 않은 것만으로 부러움을 살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남긴 것을 더욱 높이 산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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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죽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가는 숱한 과거인들 중 하나가 되겠지만...
어쩌면 그녀도 다른 삶을 원했을지 모른다.
영화에 대한 해석은 답이 없는 법이다.
영화평론가라는 사람이 나와 주절대는 말들이 정답인냥 이렇다더라 떠드는 건 재미없다.
가끔 너무 난해한 영화를 볼 때, 그 때는 그들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
그리고 이해가 됐으면 기억에서 버린다.
내 생각이 아니니까.
영화의 종반부.
패션쇼.
벽면을 가득채운 조각 거울들에 비친 모델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요즘 옷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옷들을 걸친 늘씬한 모델들 사이로 두 무릎을 모로 뉘워 계단에 앉아 있는 가브리엘이 있다.
죽는 날까지 디자인을 멈추지 않았다는 그녀에게도 다른 그림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나온 날들에 대한 그림이 머릿 속을 채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 아주 살짝 비껴간 그림에는 그녀가 원한 또 다른 삶이 있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