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학교 선배 C형과 함께 하는 퇴근길. 내가 배가 고프다고 우겨서 들어간 분식집(정확히는 포장마차).
나름 평화롭게 순대를 시키고, 떡볶이와 튀김도 시키고, 역시 일상처럼 순조롭게 오뎅국물을 컵에 뜨고, 호호 불고, 그렇게 먹고 있는데, 그런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광경을, 우리는, 흠흠, 글쎄, 그만 목격하고 말았다.
아주머니께서 오뎅 국물에 맛소금을 -지극히 자연스런 동작으로- 넣는 광경이었는데, 사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뭐 그럴수도 있지' 정도의 생각인데, 그것이 '톡톡 스륵 스륵'의 수준이 아니라 '우수수 우수수 수북수북 덤벙텀벙'의 경지였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과학 시간에 했던 실험도 떠올랐다. 물에 용해되어 사라져간 하이얀 소금가루의 추억.
소심했기에, 대놓고 질문은 못하고 속으로만 조용히 생각했다. '아아니, 저 정도의 양을 넣는단 말인가. 이것이 정녕 맛의 비결이었단 말인가. 물에 다 녹을까, 가라앉지는 않을까. 맛소금의 가격은 듬뿍듬뿍 쓰기에 적합할 정도로 저렴한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한손에는 여전히 종이컵을 들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노랗고 뿌연 국물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 사라지던 맛소금의 아련한 자취- 아아, 그것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차피 그런 거지'라고 푸념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나게 목격해버린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고, 손목의 유연한 스냅이었고, 또한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이었다.
생활의 목격, 인생의 짠맛!
몇 년 전, 직접 겪은 에피소드입니다.
모처럼 학교 선배 C형과 함께 하는 퇴근길.
내가 배가 고프다고 우겨서 들어간 분식집(정확히는 포장마차).
나름 평화롭게 순대를 시키고, 떡볶이와 튀김도 시키고,
역시 일상처럼 순조롭게 오뎅국물을 컵에 뜨고, 호호 불고,
그렇게 먹고 있는데,
그런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광경을, 우리는, 흠흠, 글쎄, 그만 목격하고 말았다.
아주머니께서 오뎅 국물에 맛소금을 -지극히 자연스런 동작으로- 넣는 광경이었는데,
사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뭐 그럴수도 있지' 정도의 생각인데,
그것이 '톡톡 스륵 스륵'의 수준이 아니라
'우수수 우수수 수북수북 덤벙텀벙'의 경지였던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과학 시간에 했던 실험도 떠올랐다.
물에 용해되어 사라져간 하이얀 소금가루의 추억.
소심했기에, 대놓고 질문은 못하고 속으로만 조용히 생각했다.
'아아니, 저 정도의 양을 넣는단 말인가.
이것이 정녕 맛의 비결이었단 말인가.
물에 다 녹을까, 가라앉지는 않을까.
맛소금의 가격은 듬뿍듬뿍 쓰기에 적합할 정도로 저렴한가'
뭐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한손에는 여전히 종이컵을 들고 있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노랗고 뿌연 국물 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들어 사라지던 맛소금의 아련한 자취-
아아, 그것은 '뭐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어차피 그런 거지'라고 푸념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나게 목격해버린 자연스러운 손놀림이었고, 손목의 유연한 스냅이었고, 또한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무심한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소금을 넣고, 소금을 마시고,
소금이 짠지 세상이 짠지,
음 좀 텁텁하군,
응 이 맛이야(!)
등의 말들을 내뱉거나 혹은 조용히 생각하거나 잊어버리거나 뭐 그렇게…
그렇고, 그런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내 입맛에 오뎅 국물은 익숙한 것이었나보다.
결국 원샷하듯 후루룩 다 마셔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