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둘러싸고 일부 정치인, 환경단체,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 건설의 연장선상이며 환경파괴’라는 이유를 들어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장마철로 접어들면서 공사가 중단된 틈을 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실상 국력의 일대 도약을 일궈낸 대형 국책사업의 역사는 ‘반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개통 40년을 맞은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포항제철, 인천공항, KTX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책사업들은 언제나 반대의 벽에 부딪쳐왔다.
그러나 숱한 반대와 우여곡절을 극복한 대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이 점은 4대강 사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대를 극복하고 성공의 현재를 일궈가고 있는 과거의 대역사들, 경부고속도로부터 KTX까지 그 역사가 주는 의미와 교훈을 되짚어봤다.
경부고속도로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 이 도로를 통해 전 국토가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이제 단순한 도로를 넘어 국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경부고속도로는 연간 총 수출입 화물의 40%를 담당하는 부산과 주요 대도시를 연결하면서 수출 중심의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개편시켰고, 철강과 자동차 산업 등의 발전을 촉진시켜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시행 당시에는 지금의 4대강 살리기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예산과 환경파괴라는 이유로 극심한 반대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하던 그 시절, 국가 예산의 23%에 해당하는 사업비가 들어 국가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반대자들은 건설 현장에 드러누워 “쌀도 모자랄 판에 웬 도로냐”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산을 깎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등 환경파괴가 심각할 것이란 의견도 지금의 4대강 살리기와 닮은꼴이었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만들어 봐야 달릴 차도 없어 부유층을 위한 호화시설일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착수됐다. 30년, 5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본 투자였던 셈이다. 이 길의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고 물류혁명이 촉발돼, 우리 경제가 대도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됐다.
포항제철
같은 시기, 포항제철소를 건설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참담한 경제 상황에서 제철소 건립의 꿈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밥 한 끼나 더 주자는 호소가 배고픈 국민들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던 시절이었다.
1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용 역시 당시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이 없고 자원 낭비며 전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일부 학계, 환경단체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선도하는 제철산업을 자본·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다를 메우는 대역사가 환경을 파괴한다며 맹렬히 반대했다.
한 야당 의원은 “차라리 밥이나 해결하자. 철강 사업에서 어떻게 수지가 맞을 수 있겠는가, 그런 동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며 제철소 건설의 ‘무모함’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70년 착공된 포항제철. 그로부터 3년 뒤인 1973년 6월 9일 마침내 1고로에서 ‘쇳물’을 쏟아내자 반대론자들은 서서히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포스코는 세계 제일의 철강기업이 됐다.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지금은 최고의 국제 허브공항이 된 인천국제공항 역시 지을 땐 대규모 공항 건설은 환경파괴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공항 규모를 더 늘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KTX)의 경우 반대의 벽에 부딪치면서 대구~부산 간 공사가 세 차례나 중단되는 사례를 남겼다. 천성산 터널공사의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지율스님의 반대가 대표적인 예다. 목숨을 건 단식 농성까지 불사했던 지율스님이 2003년 10월, 급기야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일명 도롱뇽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사가 차질을 빚기도 했다.
소송 결과 ‘생태계 파괴와 무관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이미 4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에 따른 직간접 피해 규모는 수조원에 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공사 반대 농성도 유사한 경우다.
경부고속도로에서부터 포항제철소, 인천국제공항, 그리고 KTX까지. 숱한 논쟁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극복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이런 국책사업들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선진화에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의 공적을 넘어 국가의 백년대계가 될 4대강 사업에도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물길을 살리고 바로 잡아 지역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후세들에게 생존의 위협이 될 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바로 과거 대역사들의 진행과정과 판박이처럼 닮은꼴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죽어가는 하천을 되살리고, 살아난 강을 통해 획기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환경과 경제를 모두 고려한 꼭 필요한 국책사업’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들에 대해선 여지 없이 반대를 쏟아내 차질을 빚게 하는, 그 숱한 시행착오들을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
그때 야당반대로 포기했다면 어떡할뻔했냐?
그때 야당반대로 포기했다면 어떡할뻔했냐?
- 어느 시대나 4대강 처럼 반대 있었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둘러싸고 일부 정치인, 환경단체, 종교계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 건설의 연장선상이며 환경파괴’라는 이유를 들어 맹렬히 반대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장마철로 접어들면서 공사가 중단된 틈을 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거세지고 있다.
돌이켜보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견제는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다. 실상 국력의 일대 도약을 일궈낸 대형 국책사업의 역사는 ‘반대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로 개통 40년을 맞은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포항제철, 인천공항, KTX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책사업들은 언제나 반대의 벽에 부딪쳐왔다.
그러나 숱한 반대와 우여곡절을 극복한 대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남다른 의미와 교훈을 남기고 있다. 이 점은 4대강 사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반대를 극복하고 성공의 현재를 일궈가고 있는 과거의 대역사들, 경부고속도로부터 KTX까지 그 역사가 주는 의미와 교훈을 되짚어봤다.
경부고속도로
‘국토의 대동맥’이라 불리는 경부고속도로. 이 도로를 통해 전 국토가 반나절 생활권으로 묶이면서, 이제 단순한 도로를 넘어 국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경부고속도로는 연간 총 수출입 화물의 40%를 담당하는 부산과 주요 대도시를 연결하면서 수출 중심의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를 개편시켰고, 철강과 자동차 산업 등의 발전을 촉진시켜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해왔다.
하지만 시행 당시에는 지금의 4대강 살리기와 마찬가지로 부족한 예산과 환경파괴라는 이유로 극심한 반대여론에 직면해야 했다.
국민소득이 142달러에 불과하던 그 시절, 국가 예산의 23%에 해당하는 사업비가 들어 국가 재정이 파탄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당시 반대자들은 건설 현장에 드러누워 “쌀도 모자랄 판에 웬 도로냐”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산을 깎거나 농지를 훼손하는 등 환경파괴가 심각할 것이란 의견도 지금의 4대강 살리기와 닮은꼴이었다. 심지어 고속도로를 만들어 봐야 달릴 차도 없어 부유층을 위한 호화시설일 뿐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착수됐다. 30년, 50년 뒤의 미래를 내다본 투자였던 셈이다. 이 길의 개통으로 전국이 1일 생활권이 되고 물류혁명이 촉발돼, 우리 경제가 대도약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됐다.
포항제철
같은 시기, 포항제철소를 건설할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보릿고개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참담한 경제 상황에서 제철소 건립의 꿈은 소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국민들에게 밥 한 끼나 더 주자는 호소가 배고픈 국민들에게는 더 설득력 있게 다가가던 시절이었다.
1억 달러에 이르는 건설비용 역시 당시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저명한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이 없고 자원 낭비며 전시용”이라고 비판했다.
야당, 일부 학계, 환경단체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선도하는 제철산업을 자본·기술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시도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바다를 메우는 대역사가 환경을 파괴한다며 맹렬히 반대했다.
한 야당 의원은 “차라리 밥이나 해결하자. 철강 사업에서 어떻게 수지가 맞을 수 있겠는가, 그런 동기가 어디에서 나왔느냐”며 제철소 건설의 ‘무모함’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1970년 착공된 포항제철. 그로부터 3년 뒤인 1973년 6월 9일 마침내 1고로에서 ‘쇳물’을 쏟아내자 반대론자들은 서서히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포스코는 세계 제일의 철강기업이 됐다.
인천국제공항, 경부고속철도
지금은 최고의 국제 허브공항이 된 인천국제공항 역시 지을 땐 대규모 공항 건설은 환경파괴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공항 규모를 더 늘려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되고 있다.
경부고속철도(KTX)의 경우 반대의 벽에 부딪치면서 대구~부산 간 공사가 세 차례나 중단되는 사례를 남겼다. 천성산 터널공사의 생태계 파괴를 우려한 지율스님의 반대가 대표적인 예다. 목숨을 건 단식 농성까지 불사했던 지율스님이 2003년 10월, 급기야 공사중지가처분 신청(일명 도롱뇽 소송)을 제기하면서 공사가 차질을 빚기도 했다.
소송 결과 ‘생태계 파괴와 무관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이미 4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다. 이에 따른 직간접 피해 규모는 수조원에 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년 가까이 공사가 중단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사패산 터널공사 반대 농성도 유사한 경우다.
경부고속도로에서부터 포항제철소, 인천국제공항, 그리고 KTX까지. 숱한 논쟁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극복하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이런 국책사업들은 이제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선진화에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 자체의 공적을 넘어 국가의 백년대계가 될 4대강 사업에도 큰 교훈을 남기고 있다. 물길을 살리고 바로 잡아 지역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후세들에게 생존의 위협이 될 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바로 과거 대역사들의 진행과정과 판박이처럼 닮은꼴의 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죽어가는 하천을 되살리고, 살아난 강을 통해 획기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환경과 경제를 모두 고려한 꼭 필요한 국책사업’이라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정부가 역점 추진하는 대형 국책사업들에 대해선 여지 없이 반대를 쏟아내 차질을 빚게 하는, 그 숱한 시행착오들을 이제 그만둘 때도 됐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