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슬프진 않지만 서러운 이름.

풀향기청년2008.03.10
조회364

휴학중인 학생입니다.

10년이 되어가네요.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금 생각나는 이름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셨더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주위에 친구들이 끊이지 않으셨죠.

그래서 그다지 좋은 아버지다 라는 기억이 별로 이군요.

멋진 남자다 라는 느낌은 가끔 받았지만, 멋진 아버지라는 느낌은 솔직히 없었습니다.

저희 아버지 '물'이라는 것과 굉장히 친하신 분이셨어요.

해병대를 나오셨고,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에 인명구조원 자격증까지 갖고 계시던 분.

그래서 더욱 그렇게 가실지 몰랐습니다. 상상도 못했죠.

 

중학교2학년 한창 사춘기바람이 들기 시작하던 그 질풍노도의 시기.

여름휴가를 설악산 콘도로 놀러갔었습니다.

2박3일을 재밌게 놀고 집으로 귀가하던 날. 흐리고 비오던 날씨가 맑아졌다며 우리 가족과 같이 갔던 아버지 친구분들 가족 여럿해서 계곡에 들렸다 가기로 했지요.

사단이 난 겝니다. 애초에 불어있는 계곡에서 놀다 간다는게 말이 안되었던...

당시 체구가 굉장히 작았던 저는 (지금은 건장합니다만) 물에 쓸려 내려갔고

저는 그당시에 정말 ㅡㅡ;;...... 죽는 줄 알았습니다.

종교를 갖고 있어서 그런지 그 순간은 제가 믿는 신만 찾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에 아버지랑 사이도 좋지 못했는데, 목구멍을 통해 터져나온 한마디는

"아빠 살려줘요!" 였습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아버지의 이성을 잃게 하나 봅니다.

아무런 준비없이 뛰어드셨고 소용돌이에 말린 절 밀치고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저는 물살에 쓸려내려가다 큰 바위에 걸렸고 119구조대 아저씨들께 구조 되었지요.

아버지도 구조되었습니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셨지만.

후.

사인은 심장마비. 평소에 당뇨가 있으셨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시고는 준비운동도 할 틈 없이 뛰어드셨나 봐요. 후.

그런데 정신없이 보낸 그 날이 지나고 다음날이 되자 이성적으로 머리가 정리가 되면서

갑자기 떠오른 '감각'같은게 있었습니다.

발끝에 걸리는 아버지의 투박한 손바닥?

심장마비로 다시는 물위로 살아서 나오지 못하실 거라는 것을 예감하셨는지

심장이 멈추면서 아래로 가라앉을 때, 제가 한순간 숨을 쉴 수 있도록 제 발을 받쳐주셨던 게지요.

....

그 당시엔 그 사실을 어머니께도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버지 죽이고 살아난 아들 소리 들을게 무서웠던 걸까요.

물론 그렇게 저에게 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지만

못난 저는 어린 나이에 그냥 그게 무서웠나 봐요.

 

장례식. 아버지 목숨 대신해서 살아났지만

왜 그런지 눈물이 안나더군요.

사춘기 시절, 그 상황 자체가 인식조차 안되었나 봅니다.

 

 

9년이 지났네요. 곧 10년이 되어가는.

어머니께서 그럽디다.

"집에선 좋은 아버지의 모습 못 보여줬지만, 너네 아버지 밖에 나가면 니 자랑한다고 팔불출 소리 듣고 다니곤 했었지. 팔불출이라 그러면 또 그게 뭐가 그렇게 좋은지 입이 또 찢어지곤 했어."

술을 좋아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를 닮은 저도 술을 좋아하게 되더라구요.

 

아버지에게 주도를 배우지 못한 것.

술을 그렇게도 좋아하시던 아버지께 술한잔 따라드리지 못한 것.

그 당시에 이해못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젠 어른이 되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지 못하는 것.

그땐 미워했지만, 지금은 그러하지 못하는게 너무 서럽다는 것.

그 때 흘리지 못한 눈물이 지금와서는 가슴에 폭포처럼 쏟아내린 다는 것.

그 때 인지하지 못했던 현실이 지금와서는 머리속을 하얗게 한다는 것.

보고 싶다는 것.

 

 

아버지.

아들이 이제 다커서 어른이 되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구요. 건강히 잘지냅니다.

우리집.

화목한 우리집. 어머니랑 이쁜 동생이랑 할머니랑 그렇게 해서

예전처럼 오손도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만들어 주신 첫번째 생명과

아버지께서 희생으로 지켜주신 두번째 생명.

평생을 후회하지 않는 삶으로 남기겠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알게 된 그말.

아버지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아버지 - 슬프지는 않지만 서러운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