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수년 되었습지요. 내 나이 삼십 먹던 어느 뜨겁던 여름날인데요. 안타깝게도 급한 출장길이 휴가 날짜에 맞아떨어져 있었더랬지요.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침 출장지가 바닷가인지라, 일을 마치면 바다로 풍덩하고 오겠다는 맘이 업무보다도 앞서서 한참이나 들떠 있었을 겁니다요 아마... 그렇게 들뜬 마음과 뜨거운 태양을 안고 피서객들 사이에 묻혀 강원도로, 강원도 바다로 달려갔습지요.... 잠시 후면 눈앞에 나타날 푸른 바다를 그리며, 오로지 그 생각만으로 참으로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요, 아! 드디어 설레던 바다로 향해 달려갔더랬습지요. 혼자서 찾는 바다가 무에 그리 멋대가리가 있을까 하겠지만 그게 아니더이다. 등뒤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그 무렵, 바다를 마주하고 떠커니 섰더랬지요. 그때의 그 광경이라니.. 아아! 저 아득하게 먼 수평선에서부터 내 등줄기를 타고 와선 모래밭에 묻힌 내 발끝까지 느껴 전해지던 그 무한한 자연의 힘. 오호라! 그걸 전율이라고 하지 않더이까? 땅덩어리 저 끄트머리에서 고래 등보다도 더 크게 일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실로 내 몸뚱이 하나는 그까짖거 이 땅에서 정말이지 아무 보잘것없어 보이더이다. 파도소리를 귀에 담고 수평선을 지켜보기를 두시간 가까이, 어둑어둑 날이 깜깜해져서야 돌아섰는데, 아이고 그 넓디넓은 바다에 완전히 제압 당해서 그만 돌아서는데 뭔 일인지 눈물도 뚝뚝 떨어지고요. 내 마음도 깜깜해져있지 뭡니까요.. 터덜터덜 걸어서 숙소로 향했지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더이다. 그저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나는 왜 살까,.. 나는 무엇 때문에 살까.. 하는 생각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더이다.
한 여름날이니 무척이나 더웠습지요. 훌러덩 다 벗고 아랫도리 하나만 달랑 걸치고 그 망망한 시커먼 바다의 몽환 때문에 밤을 뒤척이다가 겨우 새벽녘에야 눈을 좀 붙였는데, 아이고 이게 또 웬 불청객이란 말입니까요. 업무도 다 끝냈고 이제 그리운 집으로 돌아 갈 생각만으로 가까스로 단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만 교회당 종소리가 바로 내 귓전에서 울리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요. 하이고, 귀를 틀어막고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예배당 목사님 싸모님이 절 마구 흔들어 깨웁디다요. 오늘 주일인데 예배를 봐야 할 거 아니냐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깨웁디다요. 나 태어나서 코흘리개 적 부활절 날 노랑빨강 색칠한 삶은 달걀 받아먹고 교회랑 담쌓은 지가 언젠데...에구구..할렐루야!!! 그 양반 우리 큰 누님입니다요. 누님 하는 말인즉, 매형이 바로 교회를 지키는 주님의 종인데 처남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그 어찌 명색이 목사라 할 수 있겠냐면서, 제발이지 요번만큼은 예배에 참석해달라고 반은 협박, 반은 사정조로 매달리더이다. 예배당에서 단잠에 눈을 붙이면서 어찌 주일날을 공꺼루 먹을라고 할 맘이야 난들 손톱만큼이나 있겠습니까요, 그것이 바로 죄받는 지름길일텐데 말이지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교회로 나갔습지요. 제기랄꺼, 솔직히 목사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옵디다요. 그저 눈앞에는 밤하늘 우주랑 맞대어 있는 시커먼 바다와 귀 언저리에는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습지요. 기도를 하자하면 고개를 숙이고, '아~멘'하면 고개를 들고 따라하기를 여남은 번, 이제나저제나 설교가 끝이 나기만을 기다렸습지요..그런데.... 그런데..바로 그 때...파도소리 말고는 꼭꼭 틀어 막혀 들리지 않던 내 귀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렸더랬습지요. 정신을 차려 눈을 들어 목사님을 바라봤더랬지요. 돋보기 안경 너머로 비치던 목사님의 눈빛을 그제서야 마주치게 된 것이었습니다요. 아아! 어제 그 무시무시한 바다에서 느꼈던 그 감흥, 바로 그것인데요. 우리의 목사님은 이러시더이다.
사람은 살면서 마음에 꽃밭을 가꾼다 하더이다. 그 아름다운 꽃밭을 정성을 다해 가꾸기는 하나, 그 꽃밭엔 온전히 꽃만 자라는 것이 아니고 잡초도 핀다 하더이다. 바로 이때가 나의 눈과 귀가 떠졌을 때 입지요. 목사님이 설교를 잇기 전, 내 생각은 이랬더랬지요. 사람의 마음은 응당 선과 악, 즉 꽃과 잡초가 공존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잡초를 뽑아주면 되리라..아무렴...다음엔 무슨 말씀이 이어질까...궁금했더랬습지요. 이어 말씀을 하시던 목사님 역시 마음의 꽃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한다 하시더이다. 당연지사 잡초를 뽑아주는 이유는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나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으니 더 이상 설교도 들을 것이 없다고 느끼려는 찰나..아아, 이런! 그러나 목사님은 나의 허를 찌르고 이렇게 말씀을 이어 하시더이다. 드디어 내 가슴에 전 날 밤, 바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던 뜨겁고 뭉클한 감흥이 솟구쳐 오던 순간이었습지요.
마음의 꽃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바로..그건 바로, 잡초 자리에 꽃이 생겨나게 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더이다. 아아! 삼십 살 먹던 그 여름날 바닷가에서, 그리고 한낱 자그마한 예배당에서 위대한 자연의 힘과 진정한 인간의 삶 중에 한 가닥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잡초가 자라는 자리는 정녕 꽃이 있어야 할 자리다. 잡초를 뽑는 건 그 자리에 꽃을 피우게 함이다. 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말, 참말 그렇습디다요. 잡초는 악이니깐 뽑아야한다는 나의 생각은 얼마나 짧고 앞을 보지 못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나요. 잡초를 뽑은 자리에는 반드시 꽃을 가꿔야 하는 법, 나는 그저 뽑아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좁은 소견..몸둘 바를 모르고 다시 고개를 숙였더랬습지요.. 전날 파도에 휩쓸려 간 눈물만큼이나 떨구고요...
무한한 자연의 힘 앞에서 어깨를 숙이고, 위대한 신의 섭리 앞에 고개를 떨군 나는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하루살이인지도 모른다고 자책했던 그날이 바로 삼십 살 먹던 어느 여름날이었습지요.. 세월이 지나고 또 다시 그때처럼 찌는 듯한 이 더운 여름 날, 다시 그때를 돌아 봅니다요. 난 마음 속의 잡초를 뽑고 꽃을 가꿔가며 사는지..아니 정녕 잡초 한 오라기나 제대로 뽑아가며 사는지를 생각해보면 결국 다시 뒤통수를 치게 되더이다.. 이런!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왜 사는지...아! 삼켜버릴 듯한 그 바다를 다시 한번 보구 와야 될까봅니다요...
왜 사느냐 묻거든
십 수년 되었습지요. 내 나이 삼십 먹던 어느 뜨겁던 여름날인데요. 안타깝게도 급한 출장길이 휴가 날짜에 맞아떨어져 있었더랬지요.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침 출장지가 바닷가인지라, 일을 마치면 바다로 풍덩하고 오겠다는 맘이 업무보다도 앞서서 한참이나 들떠 있었을 겁니다요 아마...
그렇게 들뜬 마음과 뜨거운 태양을 안고 피서객들 사이에 묻혀 강원도로, 강원도 바다로 달려갔습지요....
잠시 후면 눈앞에 나타날 푸른 바다를 그리며, 오로지 그 생각만으로 참으로 부지런히 일을 마치고요, 아! 드디어 설레던 바다로 향해 달려갔더랬습지요.
혼자서 찾는 바다가 무에 그리 멋대가리가 있을까 하겠지만 그게 아니더이다. 등뒤로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던 그 무렵, 바다를 마주하고 떠커니 섰더랬지요. 그때의 그 광경이라니..
아아! 저 아득하게 먼 수평선에서부터 내 등줄기를 타고 와선 모래밭에 묻힌 내 발끝까지 느껴 전해지던 그 무한한 자연의 힘. 오호라! 그걸 전율이라고 하지 않더이까?
땅덩어리 저 끄트머리에서 고래 등보다도 더 크게 일렁이며 다가오는 파도...실로 내 몸뚱이 하나는 그까짖거 이 땅에서 정말이지 아무 보잘것없어 보이더이다.
파도소리를 귀에 담고 수평선을 지켜보기를 두시간 가까이, 어둑어둑 날이 깜깜해져서야 돌아섰는데, 아이고 그 넓디넓은 바다에 완전히 제압 당해서 그만 돌아서는데 뭔 일인지 눈물도 뚝뚝 떨어지고요. 내 마음도 깜깜해져있지 뭡니까요..
터덜터덜 걸어서 숙소로 향했지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더이다. 그저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하는 생각과 나는 왜 살까,.. 나는 무엇 때문에 살까.. 하는 생각말고는 달리 떠오르는 게 없더이다.
한 여름날이니 무척이나 더웠습지요. 훌러덩 다 벗고 아랫도리 하나만 달랑 걸치고 그 망망한 시커먼 바다의 몽환 때문에 밤을 뒤척이다가 겨우 새벽녘에야 눈을 좀 붙였는데, 아이고 이게 또 웬 불청객이란 말입니까요. 업무도 다 끝냈고 이제 그리운 집으로 돌아 갈 생각만으로 가까스로 단잠에 빠져 있었는데 그만 교회당 종소리가 바로 내 귓전에서 울리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요.
하이고, 귀를 틀어막고 엎치락뒤치락하는데 언제 들어왔는지 예배당 목사님 싸모님이 절 마구 흔들어 깨웁디다요.
오늘 주일인데 예배를 봐야 할 거 아니냐면서 그야말로 무지막지하게 깨웁디다요. 나 태어나서 코흘리개 적 부활절 날 노랑빨강 색칠한 삶은 달걀 받아먹고 교회랑 담쌓은 지가 언젠데...에구구..할렐루야!!!
그 양반 우리 큰 누님입니다요. 누님 하는 말인즉, 매형이 바로 교회를 지키는 주님의 종인데 처남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인도한다면 그 어찌 명색이 목사라 할 수 있겠냐면서, 제발이지 요번만큼은 예배에 참석해달라고 반은 협박, 반은 사정조로 매달리더이다.
예배당에서 단잠에 눈을 붙이면서 어찌 주일날을 공꺼루 먹을라고 할 맘이야 난들 손톱만큼이나 있겠습니까요, 그것이 바로 죄받는 지름길일텐데 말이지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교회로 나갔습지요. 제기랄꺼, 솔직히 목사님 말씀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옵디다요. 그저 눈앞에는 밤하늘 우주랑 맞대어 있는 시커먼 바다와 귀 언저리에는 으르렁거리는 사나운 파도소리만 들려올 뿐이었습지요.
기도를 하자하면 고개를 숙이고, '아~멘'하면 고개를 들고 따라하기를 여남은 번, 이제나저제나 설교가 끝이 나기만을 기다렸습지요..그런데....
그런데..바로 그 때...파도소리 말고는 꼭꼭 틀어 막혀 들리지 않던 내 귀에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가 들렸더랬습지요. 정신을 차려 눈을 들어 목사님을 바라봤더랬지요.
돋보기 안경 너머로 비치던 목사님의 눈빛을 그제서야 마주치게 된 것이었습니다요.
아아! 어제 그 무시무시한 바다에서 느꼈던 그 감흥, 바로 그것인데요. 우리의 목사님은 이러시더이다.
사람은 살면서 마음에 꽃밭을 가꾼다 하더이다. 그 아름다운 꽃밭을 정성을 다해 가꾸기는 하나, 그 꽃밭엔 온전히 꽃만 자라는 것이 아니고 잡초도 핀다 하더이다. 바로 이때가 나의 눈과 귀가 떠졌을 때 입지요.
목사님이 설교를 잇기 전, 내 생각은 이랬더랬지요. 사람의 마음은 응당 선과 악, 즉 꽃과 잡초가 공존하게 되어있다, 그러니 잡초를 뽑아주면 되리라..아무렴...다음엔 무슨 말씀이 이어질까...궁금했더랬습지요.
이어 말씀을 하시던 목사님 역시 마음의 꽃밭에서 잡초를 뽑아야 한다 하시더이다. 당연지사 잡초를 뽑아주는 이유는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나의 생각과 맞아 떨어졌으니 더 이상 설교도 들을 것이 없다고 느끼려는 찰나..아아, 이런!
그러나 목사님은 나의 허를 찌르고 이렇게 말씀을 이어 하시더이다. 드디어 내 가슴에 전 날 밤, 바다에서 보고 듣고 느끼던 뜨겁고 뭉클한 감흥이 솟구쳐 오던 순간이었습지요.
마음의 꽃밭에서 잡초를 제거하는 것은 바로..그건 바로, 잡초 자리에 꽃이 생겨나게 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더이다.
아아! 삼십 살 먹던 그 여름날 바닷가에서, 그리고 한낱 자그마한 예배당에서 위대한 자연의 힘과 진정한 인간의 삶 중에 한 가닥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잡초가 자라는 자리는 정녕 꽃이 있어야 할 자리다. 잡초를 뽑는 건 그 자리에 꽃을 피우게 함이다. 아! 머리카락이 쭈뼛 선다는 말, 참말 그렇습디다요. 잡초는 악이니깐 뽑아야한다는 나의 생각은 얼마나 짧고 앞을 보지 못하는 단순한 생각이었나요.
잡초를 뽑은 자리에는 반드시 꽃을 가꿔야 하는 법, 나는 그저 뽑아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좁은 소견..몸둘 바를 모르고 다시 고개를 숙였더랬습지요..
전날 파도에 휩쓸려 간 눈물만큼이나 떨구고요...
무한한 자연의 힘 앞에서 어깨를 숙이고, 위대한 신의 섭리 앞에 고개를 떨군 나는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하루살이인지도 모른다고 자책했던 그날이 바로 삼십 살 먹던 어느 여름날이었습지요..
세월이 지나고 또 다시 그때처럼 찌는 듯한 이 더운 여름 날, 다시 그때를 돌아 봅니다요. 난 마음 속의 잡초를 뽑고 꽃을 가꿔가며 사는지..아니 정녕 잡초 한 오라기나 제대로 뽑아가며 사는지를 생각해보면 결국 다시 뒤통수를 치게 되더이다..
이런!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왜 사는지...아! 삼켜버릴 듯한 그 바다를 다시 한번 보구 와야 될까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