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신선 장과(張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면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신선도이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그림 상단에 붙인 평어(評語)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과(果)라는 늙은이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손에는 한 권 책을 들었는데, 눈빛이 글줄 사이로 곧게 쏟아진다. 이는 사능(士能)에게 가장 득의작(得意作)이라 할 수 있으니 중화에서 그것을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수는 없으리라. 표암이 평한다.
그리고 석초(石焦)라는 이도 이런 제사(題辭)를 붙인다.
손안의 신결(神訣)은 곧 『명리정종(命理正宗) : 사람의 운명을 기록해 놓은 예언서)』일터인데, 어떻게 하면 내 말년 신수를 물을 수 있을까.
위에 옭겨 적은 제사의 내용으로 보아 이 그림이 신선(神仙) 장과(張果)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어째서 이런 형태의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속신선전(續神仙傳)」의 장과전(張果傳)을 참고해야겠다.
이에 의하면 장과는 당대(唐代)에 항주(恒州) 조산(條山)에 은거하던 신선으로 태종(太宗)과 고종(高宗)이 여러 차례 불러도 나오지 않았고 측천무후(測天武后)가 억지로 불러 내오려고 하자 칙사(勅使)에게 죽어서 썩는 모양을 보이어 이를 피하였으나 다시 살아나서 현종(玄宗)의 예우(禮遇)를 받다가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인물이다.
그는 항상 흰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데 하루에도 수만 리씩 다니었고 쉴 때면 이것을 몇겹으로 접는데 그 두께가 종잇장과 같아서 건상(巾箱)과 같은 조그만한 상자곽 속에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타려고 하면 물을 부리는데 그러면 곧 당나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알수가 없고 항상 백발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하는데 원래는 세상과 함께 생겨난 휜 박쥐의 정(精)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이화 같은 대강의 줄거리만으로도 단원의 과로도(果老圖)를 어째서 이와 같이 그렸는지 짐작이 가겠는데, 그림의 좌상부(左上部) 화제(畵題) 위에 박쥐 한 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것에 이르면 단원이 신선사상에 얼마만큼 심취하고 정통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듯 약해 빠진 당나귀의 섬세한 표현과 난엽선(蘭葉線)에 가까운 굳센 필치의 신선의 의습선(衣褶線)이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진초록색 안장을 매개로 하여 조화를 이루는데, 거꾸로 앉은 신선의 자세가 조금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것은 책을 들었기 대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내용이 호암 미술관 소장 8폭병 중에 그려진 과로도기(果老倒騎)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여 이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가 그리 멀지 않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간송본의 독립상이 본 보다 전체적으로 훨씬 세련된 기법을 보이고 있어 를 그리고 나서 그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다시 그려낸 것인 듯하다. ‘士能’이라는 인장(方形朱文)도 같다. 호암의 가 단원 32세 때인 영조 52년(1775)에 그려졌으니 이 그림 역시 40세 이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 과로도기도(果老到驥圖)
당나라 때 신선 장과(張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면서 무슨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신선도이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이 그림 상단에 붙인 평어(評語)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과(果)라는 늙은이 종이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손에는 한 권 책을 들었는데, 눈빛이 글줄 사이로 곧게 쏟아진다. 이는 사능(士能)에게 가장 득의작(得意作)이라 할 수 있으니 중화에서 그것을 구한다 해도 쉽게 얻을수는 없으리라. 표암이 평한다.
그리고 석초(石焦)라는 이도 이런 제사(題辭)를 붙인다.
손안의 신결(神訣)은 곧 『명리정종(命理正宗) : 사람의 운명을 기록해 놓은 예언서)』일터인데, 어떻게 하면 내 말년 신수를 물을 수 있을까.
위에 옭겨 적은 제사의 내용으로 보아 이 그림이 신선(神仙) 장과(張果)를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는데 어째서 이런 형태의 표현을 하게 되었는지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우리는 「속신선전(續神仙傳)」의 장과전(張果傳)을 참고해야겠다.
이에 의하면 장과는 당대(唐代)에 항주(恒州) 조산(條山)에 은거하던 신선으로 태종(太宗)과 고종(高宗)이 여러 차례 불러도 나오지 않았고 측천무후(測天武后)가 억지로 불러 내오려고 하자 칙사(勅使)에게 죽어서 썩는 모양을 보이어 이를 피하였으나 다시 살아나서 현종(玄宗)의 예우(禮遇)를 받다가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서 종적을 감추었다는 인물이다.
그는 항상 흰 당나귀를 타고 다니는데 하루에도 수만 리씩 다니었고 쉴 때면 이것을 몇겹으로 접는데 그 두께가 종잇장과 같아서 건상(巾箱)과 같은 조그만한 상자곽 속에 넣어 두었다. 그러다가 타려고 하면 물을 부리는데 그러면 곧 당나귀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나이는 알수가 없고 항상 백발 늙은이의 모습이었다 하는데 원래는 세상과 함께 생겨난 휜 박쥐의 정(精) 화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이화 같은 대강의 줄거리만으로도 단원의 과로도(果老圖)를 어째서 이와 같이 그렸는지 짐작이 가겠는데, 그림의 좌상부(左上部) 화제(畵題) 위에 박쥐 한 마리가 표현되고 있는 것에 이르면 단원이 신선사상에 얼마만큼 심취하고 정통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을 듯 약해 빠진 당나귀의 섬세한 표현과 난엽선(蘭葉線)에 가까운 굳센 필치의 신선의 의습선(衣褶線)이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진초록색 안장을 매개로 하여 조화를 이루는데, 거꾸로 앉은 신선의 자세가 조금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것은 책을 들었기 대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내용이 호암 미술관 소장 8폭병 중에 그려진 과로도기(果老倒騎) 장면과 너무도 흡사하여 이 그림들이 그려진 시기가 그리 멀지 않겠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간송본의 독립상이 본 보다 전체적으로 훨씬 세련된 기법을 보이고 있어 를 그리고 나서 그 시행착오를 극복하며 다시 그려낸 것인 듯하다. ‘士能’이라는 인장(方形朱文)도 같다. 호암의 가 단원 32세 때인 영조 52년(1775)에 그려졌으니 이 그림 역시 40세 이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