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의 형상(11) ◈

제궁200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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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의 실체를 비우고 사는 사내의 가슴팍이란 가을 바람에 댓잎 마냥 알 수 없는 바람으로 늘 서걱거린다 애시당초 비운다고 그게 쉽게 비워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더란 말인가. 문고리를 잡아채는 비바람에 문득 잠 깬 밤. 켜진 스탠드 불빛 아래 널브러진 소주병 위 를 몇 시간이고 떠돌았을 브라이트만의 오페라 유령은 목이 잠겨 있고, 불어터진 컵라면 위에 올려진 잉게 보르크 바하만의 얼굴도 이미 퉁퉁 불어 있었다. 재떨 이 곳곳에 쓰러져 잠든 상념의 비석들... 비교적 단명한 놈으로 골라 부활의 불씨 당겨 물고 비바람에 기지개 켠 아랫도리를 향해 내뱉는 체념의 페이소스.
섹스를 하고 싶다. 비바람치는 길 어디쯤에서 노란 우산을 받쳐든 여인의 머리채를 뽑고, 다소곳이 턱 괸 채 창 너머 비의 우수를 훔치는 계집의 눈알을 파내고 비탈길, 빗물 떨어지는 천정 아래에 받쳐놓은 늙은 창녀의 자궁을 도려내어 철저히 유리된 각성으로 발목 없는 흙인형 빚어놓고서 그 인형과 이 비바람이 멎을 때까지 섹스를 하고 싶다. 땀과 눈물로 범벅된 의지로 소지에 탄생을 쏘아올리는 불꽃놀이가 아니라 퇴폐와 타락, 방종과 탐욕으로 목욕재계하고 초열지옥 불가마 속에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소멸의 불꽃놀이를 하고 싶다. 한 움큼의 재, 한 방울의 피, 한 가지의 추억 조차 허용치 않는 절대적 소멸을 위한 불꽃놀이. 아!
이건 또 다른 형태의 형상이다. 저 겨울 바다에 매몰 차게 던져버린 여자의 형상. 대관절 난 무엇을 던져 버린 것일까. 방 안 가득 토해놓은 상념들... 흐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온통 비바람 뿐... 제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