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다들 손수 쵸콜릿을 만들어서 세상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주는 연인들이 많지만 그때만해도 쵸콜릿 선물해주는것이
전부였지요.
평소 좋아하는 시 한권 끼어주면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었죠.
남자친구를 만나고 처음 맞이한 발렌타인데이는
아직 초콜릿을 줄만한 단계가 아니였고
두번째는 그저 500원짜리 하나 줘도 괜찮을정도로 마음에 문을
열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이란
아주 가까운 사람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둘중에 하나입니다.
막연히 선물을 줘도 될텐데 고지식한 사고방식이였죠.
그러니 첫번째 발렌타인데이라고 흔한 초콜릿을 선물해 줄수 없었지요.^^
혼자 떨어져서 생활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고
공부는 하고싶고 몇년을 어영부영 고민만 하다가
직장을 고만두고 새벽엔 신문배달 낮에는 대입종합반을 다니면서
악착같이 살때였지요.
남자친구를 사귈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고 속편히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실 정신은 더더욱 없었어요.
오로지 목표...내가 정한 목표달성을 위해서 아둥바둥거렸어요.
하지만 보기좋게 낙방을 하고 다음해 같은 고통의 시간을
반복하게 되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남자친구도
가끔 신문배달 구역으로 나와서 도와도 주고 하더라구요.
외롭고 힘든 생활에 의지를 많이했던 남자친구였지요.
지금의 남편이기도 하구요^^.
꼭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내생일,자기생일,추석,등등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새벽일찍 오는날이 많았답니다.
학교근처 친구집에서 빌붙었다가 새벽첫차를 타고
내가 사는곳까지 곧잘 오곤 했지요.
당시 남자친구가 다니던 학교와 제가 사는곳이 새벽엔 20분이면
충분히 올수있는거리라 이래저래 오는날이 많아졌지요.
제가 3년이나 신문배달을 하였으니 우리의 데이트코스는
신문돌리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이 많답니다.
하지만 난 재수생이였고 남친은 대학생이라 자격지심에
맘에 문을 다 열지 못했지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허지부지 되고말 사이일것같아서
촌티나는 속마음을 다 보여줄수는 없었고
오로지 대학하나만 내인생의 전부였지요.
발렌타인데이전날 슈퍼에서 초콜릿을 여러개 샀습니다.
물론 남자친구는 혹시나 저녁에 만날수있으면 다시 사줄 작정이였고
내가 돌리던 신문사 소장님도 솔로였고
다른구역의 아르바이트생도 남자여서 그들에게 줄려고 초콜릿을
샀습니다.
아파트 밀집촌이라 같은 신문을 돌리면 얼굴정도는 익히 알고
인사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시는 속지를 끼워서 일일이 신문을 돌렸기때문에
누나 동생 오빠같이 잘 지냈습니다.
새벽일찍 신문배달구역으로 나가서
알바생과 소장님께 초콜릿을 드리고 나머지 한개가 남았더군요.
제 기억엔 300원짜리 초콜릿이였던것 같아요.ㅠ.ㅠ
하지만 가격에 상관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서 잔잔한 정을
느끼게 되었지요.
한개가 남은 초콜릿은 신문을 돌리는 중간즈음에 제가 먹었어요.
반을 똑 잘라서 야금야금 씹으면서 신문을 돌리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신문돌리는 구역으로 나타난거예요.
새벽에 신문을 같이 돌려주는 날이 많았긴 했지만
어김없이 특별한날 왔더라구요.
크리스마스때도 오고 내 생일날도 오고 딴에는 남들이 누리는 특별한 날은
찾아와서 신문을 같이 돌려주었어요.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많지만
발렌타인데이날 새벽에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초콜릿을 내어놓으라는겁니다.ㅎㅎ
"반이라도 먹을래?"
반을 먹다만 주머니에서 구겨진 초콜릿을 받아든 남자친구는
얼씨구나 좋아라 한입에 다 털어넣더라구요.
좀 미안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고맙기도 하고..
부끄러운 내 맘을 생각해주는척 흔쾌히 먹어주는 남자친구가
정말 이뻐보였습니다.
그 버릇이 여전히 심해서 결혼7년된 지금도
눈물나는 극한 상황도 울다가 웃게 만들어 버리는 남편입니다.
한번 사는것 힘들다고 너무 우울해하지말고 극한 상황을 최대한
해피하게 만들고 살자는것이 신념이라면 신념인 사람입니다.
작년 발렌타인데이날은 어떻게 보냈냐구요??
2월 14일이 마침 친오빠가 결혼10주년이 되는 날이였어요.
그래서 식구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맘씨좋은 올케언니가
형형색색의 초콜릿을 준비해서 오빠를 주더라구요.
우리집 다른 남자들 그 초콜릿을 하나가득 입안에 넣고서
달콤한 맛에 빠져들었답니다.
올케언니 덕분에 무사히 그날 넘어갔어요.
울 오빠 하는말이
결혼10주년 좋긴 좋다고 하대요.
울 오빠 가난해서 신혼여행도 못가고
10주년이라고 가족모아놓고 밥한끼 했지만
가족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배도 채우니 좋긴 좋은가봐요
발렌타인데이날 연인들은 당연 둘만의 시간을 보내길 원하겠지만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런 기회에 가족과 따뜻한 식사한끼라도 하면
좋을것같아요.
물론 서양에서 유래된 발렌타인데이라고하지만
작고 소박하게 보낼수있다면 삭막한 하루하루에 활력을 줄수도 있구요.
우리 올케언니처럼 사랑을 덤뿍 담아서 쵸콜릿을
가족모두에게 돌리니 괜히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따뜻해보여서
말이라도 친절하게 하고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주고싶더군요.
솜씨없는 저같은 사람은 그저 슈퍼에 파는 일반 쵸콜릿을 줘도
톡~잘라서 오손도손 먹을수있다면 바로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싶어요.
무슨 날이 되면 거창하게 보내야만 평생 기억에 남는것은 아니라고생각해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상 우리부부의 발렌타인데이 보냈던 이야기였구요.
남편과 만난 사연은요~~~~
다들 굴비엮던 수없는 에피소드를 몇권은 간직한채
결혼을 하겠지만
우리부부도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하게되었답니다.
제가 서울로 와서 언니집에 함께 살았어요.
바로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어느날 학교후배라고 데리고 온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였지요.
첫눈엔 아니올시다였어요..
뭉텅한 코하며 작은 눈이며 어디하나 속시원하게 생긴 구석도 없었고
지지리 잘 난 체를 많이 하는 남자였거든요.
물론 아는것이 많다고 지금도 빡빡 우기지만
촌티줄줄나는 날 남편도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어영부영 첫만남이 지나고
계속해서 아저씨집으로 후배랍시고 찾아왔어요.
바로 옆 호 였으니 마주치는 시간이 많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우연히가 아니라 거의 매일 와서 내가 있나없나 찾아봤다고하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만남은 순탄하지않았답니다.
지지리 가난하다는것도 그리고 남편되는사람이 평범함 속에서도 독특한 겨레사랑때문에
연애초기부터 의견충돌이 참 많았습니다.
뭐랄까요..
학생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다함께 잘사는 운동
이렇게 연계하면 남편이 하고자 일들이
다 열거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돈버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열정도 강하답니다.
남편은
늘 찌든땀냄새(며칠씩 시위하면
집에도 못들어가니 단벌일 경우가 많아서)와
화염냄새가 진동을 하였지요.
한번은 데모를 하다가 경찰봉에 맞아서
하마터면 뇌사상태에 빠질뻔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데이트 8년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이 깃든
장소는 많이 없답니다.
기억에 남는것은 버스종점과 종점을 오가는
노선만큼은 누구못지않게 훤하답니다.
토큰 하나로 종일 시간을 때울수있는것은종점과 종점을 오고가는
데이트코스가 제격이였기 때문이죠.
서울토박이인 사람들보다 더 서울지리를 구석구석
알고있는 우리부부이지요.
남편이 외치는 민주주의.정의로운 사회건설로
형편이 넉넉할때가 없다는것이지요.
하지만 가난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부사이를
갈라놓을 장벽은 아니더군요.
남편은 결혼과 일자리를 얻지못하고있을때
제가 임신을 하였는데
없으면 먹을것이 그렇게 땡긴다고
고등어자반이 먹고 싶었답니다.
며칠을 참다가 고등어가 먹고싶다고 하니깐
한날은 아침일찍 어디를 가더니
글쎄 밤이 어둑해질때까지 돌아오지않더군요.많이 늦은시간에 들어왔는데 한손에 까만비닐봉지에 간고등어를 사가지고왔더군요.그리고 웃옷을 벗는데 어깨에 피멍이 들었더라구요.
고등어 살 돈은 없고 고등어는 사주고싶고해서
막노동을 하고왔다고 하더군요.
위장취업처럼 밑바닥 경험을 한답시고
대학때 막노동을 틈틈이 한것은 알고있었지만
직접적인 생계문제로 그것도 아내가 먹고싶은
자반고등어를 사줄려고 노가다를 뛰었나보더라구요.
순간..핑도는 눈물에 자반고등어를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날 사랑하고 뱃속아이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이 있는것을 보고 남편의사랑에 감동을 받았답니다.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는 말이있죠.
바로 우리부부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한번도 넉넉한 적도 없고 지금도 힘들지만
우리는 좌절하지않고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있습니다.
늘 꿈을 꾸는 남편이 있어서 삶이 단조롭지않고
격동적일때가 많지만나보다 남을 위해서 우리라는 2인칭 3인칭을위해 살고싶다는 남편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고난의 길이요..순탄치않는길이기에
아무나 할수없다고 포기하지않는다는
남편을 보면 대견해요.그래서 지지를 보낸답니다.
그리고 바가지 될수록 많이 긁지않고 산답니다.
외모는 작고 여리지만
그가 가진 포부와 그가 이루고자는 작은 공화국은
우주보다는 넓기에 남편을 믿습니다.
설령 살아생전 남편이 꿈꾸는 삶이 오지않는다고해도
오늘을 보람차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불만보다는 만족을 그리고 부정보다는 늘 긍정적으로
이끌어갈려는 남편의 삶 한 조각에 살며시
기대어 살아가렵니다.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한번 더 크게 웃을수있는
오늘을 살아갈려고 합니다.
늘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들숨날숨처럼 꼭 필요하죠.
하지만 이런 내몸과 같은 사람인데도
어떨땐 너무나 소홀하게 되고 그리고 주는사랑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소중한 사람이 늘 내곁에 오래오래 머물게하는방법은
서로가 사랑해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내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두사람의 사랑은 영원하겠지요.
평생에 사랑하고픈 사람이 딱 한사람있습니다.
내머리속에 지우개처럼 내기억이 자꾸만 사라져간다면
마지막까지 기억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지쳐서
만신창이가 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고 가르쳐준 그 사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처음 그사람을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그 사람의 숨결로
존재가치를 깨닫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은 신이 절대 아닙니다.
나 처럼 모나고 불안하고 고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완전하지못한 두사람이 사랑의 극대치를 높이며 열심히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사람은
언제나 좌절하지않습니다.
절대로 실망하지않습니다.
그사람은
가슴에 늘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가슴에 늘 빛나는 별을담고 살아갑니다.
그가 어떠한 일을 하던 무조건 믿습니다.
남편에게
사랑고백은 연인들만 하는것이 아니라고생각해요.
결혼과 동시에 낭만이 없어지는것은 아니지요. 더 중요한것은
결혼후에 더 노력하고 더 사랑해야한다는것을 알았답니다.
작은 떨림으로 첫고백한 날처럼 날마다 새로움으로 당신을
대하고싶습니다.
여전히 나에겐 백마탄 왕자입니다.
사랑을 가르쳐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해준 당신은 결국은
사랑을 지켜내는 방법까지 다 나에게 전수해줬지요.
심금을 울리는 당신의 연애편지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선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할지 몰라도 당신의 사랑을 가슴판에
새긴 나의 사랑은 영원히 시들지않았습니다.
예전 우리의 사랑은
서로에게 맞추려고 애쓰며 숱한 날을 고민했지만
지금의 우리사랑은 서로의 모습을 있는그대로를 보듬어주며
아껴주는 사랑으로 발전했지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바꿀수는 없지만
냉소적이고 차가운 혈관의 피를 웃음과 뜨거운 피로 만들수있는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당신은
기쁠때는 누구나 곁에 있을수 있다고합니다.
행복할때도 누구나 곁에 머물수 있다고했습니다.
하지만 찢어지는 고통과 절망적인 슬픔,아픔을 당했을때는
오래 같이 머물수있는 사람이 많이 없다고 했지요.
가장 힘들때 함께 있고싶은 사람이 나라고 했을때 난 그만
당신이 살아가는 철학적인
사고방식에 홀라당 빠져버렸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죽음을 오갈만큼 힘든 병마와 사투를 벌일때도
당신은내곁을 지켜주었지요.
건강치못해서 살아가는 삶들이 순탄치않았기에 당신에게
헤어지자고 했지요.
아마 당신은 나로인해서 겪지않아도 되는 슬픔을 너무
많이 준것같아서 미안해요.
내가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언제 다 갚을수있을련지.....
여보...
나도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한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우리에겐 지독한 가난과 경제적인 압박이 끊임없이 괴롭혔던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노년엔
당신과 손잡고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지나온 나날들을 회상할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과거처럼...우리가 처한 환경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도록 해요.
당신을 만난건 내 인생의 큰 행운입니다.
결코 시들거나 노여워하지않도록 많이 노력할께요.
양말을 신고서 잠이든 내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얼굴을 스다듬어주며 내가 깰까 조심스럽게 양말을
벗겨주던 당신입니다.
나 잠자는척했지만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답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머리에 꽂아준다는 당신에게
오늘은 당신의 지친 발을 씻겨드리고싶습니다.
힘들고 지친 작은 발가락을 깨끗이 씻어드리면 당신은
아마도 함박웃음진 얼굴로 피곤함을 풀어버리겠지요.
당신은 다리도 짝짝이라 꼭 신발뒷축이 다르게 닳지요.
처음엔 그냥 피식~웃었는데 가만생각해보니깐 조금
다르다는것이 엄청난 불편이였는줄 나중에야 알았답니다.
남들은 눈치못체도 전 알아요.
당신이 가다가 잘 넘어지는 이유가 다리길이에 있다는것을 알았지요.
그냥 실수로 실족하는줄 알았더니 균형이 맞지않아서 그렇다는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당신이 오래전에 눈이 펑펑 내리는날 내가 신문배달하는 곳으로 와서
신문도 같이 돌려주고 꽁꽁 언 손도 잡아주며 그렇게 나에게 프로포즈했잖아요.
"너랑 살면 평생 신문은 공짜로 볼수있겠다 그치?"
새침스럽게 난
"그럼 나보고 평생 신문배달하라고?" 했더니 "너가 고만두면 내가 대신 배달하지모"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은 신문을 보잖아.나도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보면서 살거야"..
그렇게 어영부영 빗대어서 나에게 함께 희노애락을 보내자며 두손을 꼭 잡아주었잖아요.
내가 돌릴때는 신문이 한달에 한번정도뿐이 휴간을 하지않았고 그나마 끼어서 돌리는
작은신문사는 휴간날짜가 달라서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당신이 나에게 프로포즈했듯이
나 당신에게 프로포즈하고싶네요.
"살다보니 내가 미워도 평생 함께 살아 줄 꺼 죠 ? ? "
내가 촌티나고 남들에게 볼품없을지라도 날 가장 사랑해주리라 믿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아주 많이 사랑해요.
지금처럼 사랑하고 싶습니다.
첫사랑의 설레임을 가득안고 연인이
되어가는 수많은 커플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특별한 날은
꼭 무엇인가 해야 정상인것 같고
그냥 평범하게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바보가 된듯한 느낌이 들때가 있더이다.
살아오면서 여러번의 발렌타인데이를 맞이했지만
딱히 무드있게 보낸적은 거의 없어요
어느해 발렌타인데이때
그러니깐 남자친구가 생기고 두번째 맞이하는 발렌타인데이날
지금은 다들 손수 쵸콜릿을 만들어서 세상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주는 연인들이 많지만 그때만해도 쵸콜릿 선물해주는것이
전부였지요.
평소 좋아하는 시 한권 끼어주면 그렇게 좋아할수가 없었죠.
남자친구를 만나고 처음 맞이한 발렌타인데이는
아직 초콜릿을 줄만한 단계가 아니였고
두번째는 그저 500원짜리 하나 줘도 괜찮을정도로 마음에 문을
열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이란
아주 가까운 사람이거나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둘중에 하나입니다.
막연히 선물을 줘도 될텐데 고지식한 사고방식이였죠.
그러니 첫번째 발렌타인데이라고 흔한 초콜릿을 선물해 줄수 없었지요.^^
혼자 떨어져서 생활하다보니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었고
공부는 하고싶고 몇년을 어영부영 고민만 하다가
직장을 고만두고 새벽엔 신문배달 낮에는 대입종합반을 다니면서
악착같이 살때였지요.
남자친구를 사귈 정신적인 여유도 없었고 속편히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실 정신은 더더욱 없었어요.
오로지 목표...내가 정한 목표달성을 위해서 아둥바둥거렸어요.
하지만 보기좋게 낙방을 하고 다음해 같은 고통의 시간을
반복하게 되었고 멀게만 느껴졌던 남자친구도
가끔 신문배달 구역으로 나와서 도와도 주고 하더라구요.
외롭고 힘든 생활에 의지를 많이했던 남자친구였지요.
지금의 남편이기도 하구요^^.
꼭 크리스마스나 발렌타인데이.화이트데이.내생일,자기생일,추석,등등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새벽일찍 오는날이 많았답니다.
학교근처 친구집에서 빌붙었다가 새벽첫차를 타고
내가 사는곳까지 곧잘 오곤 했지요.
당시 남자친구가 다니던 학교와 제가 사는곳이 새벽엔 20분이면
충분히 올수있는거리라 이래저래 오는날이 많아졌지요.
제가 3년이나 신문배달을 하였으니 우리의 데이트코스는
신문돌리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이 많답니다.
하지만 난 재수생이였고 남친은 대학생이라 자격지심에
맘에 문을 다 열지 못했지요.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허지부지 되고말 사이일것같아서
촌티나는 속마음을 다 보여줄수는 없었고
오로지 대학하나만 내인생의 전부였지요.
발렌타인데이전날 슈퍼에서 초콜릿을 여러개 샀습니다.
물론 남자친구는 혹시나 저녁에 만날수있으면 다시 사줄 작정이였고
내가 돌리던 신문사 소장님도 솔로였고
다른구역의 아르바이트생도 남자여서 그들에게 줄려고 초콜릿을
샀습니다.
아파트 밀집촌이라 같은 신문을 돌리면 얼굴정도는 익히 알고
인사도 하는 경우가 많아요.
당시는 속지를 끼워서 일일이 신문을 돌렸기때문에
누나 동생 오빠같이 잘 지냈습니다.
새벽일찍 신문배달구역으로 나가서
알바생과 소장님께 초콜릿을 드리고 나머지 한개가 남았더군요.
제 기억엔 300원짜리 초콜릿이였던것 같아요.ㅠ.ㅠ
하지만 가격에 상관없이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에서 잔잔한 정을
느끼게 되었지요.
한개가 남은 초콜릿은 신문을 돌리는 중간즈음에 제가 먹었어요.
반을 똑 잘라서 야금야금 씹으면서 신문을 돌리고 있는데
남자친구가 신문돌리는 구역으로 나타난거예요.
새벽에 신문을 같이 돌려주는 날이 많았긴 했지만
어김없이 특별한날 왔더라구요.
크리스마스때도 오고 내 생일날도 오고 딴에는 남들이 누리는 특별한 날은
찾아와서 신문을 같이 돌려주었어요.
여러가지 에피소드는 많지만
발렌타인데이날 새벽에 나타나서는
다짜고짜 초콜릿을 내어놓으라는겁니다.ㅎㅎ
"반이라도 먹을래?"
반을 먹다만 주머니에서 구겨진 초콜릿을 받아든 남자친구는
얼씨구나 좋아라 한입에 다 털어넣더라구요.
좀 미안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하고..고맙기도 하고..
부끄러운 내 맘을 생각해주는척 흔쾌히 먹어주는 남자친구가
정말 이뻐보였습니다.
그리고 화이트데이때도 나타나서 막대사탕 두개를 내밀기도 하고..
어색한 입장이고 형편상 좋은것 비싼것 서로해줄 처지가 아니라도
늘 호쾌하게 웃어주고 긍정적으로 넘겨주어서 참 고맙더라구요.
그 버릇이 여전히 심해서 결혼7년된 지금도
눈물나는 극한 상황도 울다가 웃게 만들어 버리는 남편입니다.
한번 사는것 힘들다고 너무 우울해하지말고 극한 상황을 최대한
해피하게 만들고 살자는것이 신념이라면 신념인 사람입니다.
작년 발렌타인데이날은 어떻게 보냈냐구요??
2월 14일이 마침 친오빠가 결혼10주년이 되는 날이였어요.
그래서 식구들끼리 모임을 가졌는데 맘씨좋은 올케언니가
형형색색의 초콜릿을 준비해서 오빠를 주더라구요.
우리집 다른 남자들 그 초콜릿을 하나가득 입안에 넣고서
달콤한 맛에 빠져들었답니다.
올케언니 덕분에 무사히 그날 넘어갔어요.
울 오빠 하는말이
결혼10주년 좋긴 좋다고 하대요.
울 오빠 가난해서 신혼여행도 못가고
10주년이라고 가족모아놓고 밥한끼 했지만
가족이 모여서 웃고 떠들고 배도 채우니 좋긴 좋은가봐요
발렌타인데이날 연인들은 당연 둘만의 시간을 보내길 원하겠지만
가족을 이루고 있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이런 기회에 가족과 따뜻한 식사한끼라도 하면
좋을것같아요.
물론 서양에서 유래된 발렌타인데이라고하지만
작고 소박하게 보낼수있다면 삭막한 하루하루에 활력을 줄수도 있구요.
우리 올케언니처럼 사랑을 덤뿍 담아서 쵸콜릿을
가족모두에게 돌리니 괜히 가슴이 찡하더라구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따뜻해보여서
말이라도 친절하게 하고 손이라도 한번 더 잡아주고싶더군요.
솜씨없는 저같은 사람은 그저 슈퍼에 파는 일반 쵸콜릿을 줘도
톡~잘라서 오손도손 먹을수있다면 바로 이것이 행복이 아닐까싶어요.
무슨 날이 되면 거창하게 보내야만 평생 기억에 남는것은 아니라고생각해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상 우리부부의 발렌타인데이 보냈던 이야기였구요.
남편과 만난 사연은요~~~~
다들 굴비엮던 수없는 에피소드를 몇권은 간직한채
결혼을 하겠지만
우리부부도 우여곡절끝에 결혼을 하게되었답니다.
제가 서울로 와서 언니집에 함께 살았어요.
바로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어느날 학교후배라고 데리고 온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였지요.
첫눈엔 아니올시다였어요..
뭉텅한 코하며 작은 눈이며 어디하나 속시원하게 생긴 구석도 없었고
지지리 잘 난 체를 많이 하는 남자였거든요.
물론 아는것이 많다고 지금도 빡빡 우기지만
촌티줄줄나는 날 남편도 처음엔 맘에 들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어영부영 첫만남이 지나고
계속해서 아저씨집으로 후배랍시고 찾아왔어요.
바로 옆 호 였으니 마주치는 시간이 많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우연히가 아니라 거의 매일 와서 내가 있나없나 찾아봤다고하더라구요.
그렇게 시작한 우리의 만남은 순탄하지않았답니다.
지지리 가난하다는것도 그리고 남편되는사람이 평범함 속에서도 독특한 겨레사랑때문에
연애초기부터 의견충돌이 참 많았습니다.
뭐랄까요..
학생운동-노동운동-시민운동-다함께 잘사는 운동
이렇게 연계하면 남편이 하고자 일들이
다 열거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돈버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열정도 강하답니다.
남편은
늘 찌든땀냄새(며칠씩 시위하면
집에도 못들어가니 단벌일 경우가 많아서)와
화염냄새가 진동을 하였지요.
한번은 데모를 하다가 경찰봉에 맞아서
하마터면 뇌사상태에 빠질뻔했던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데이트 8년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추억이 깃든
장소는 많이 없답니다.
기억에 남는것은 버스종점과 종점을 오가는
노선만큼은 누구못지않게 훤하답니다.
토큰 하나로 종일 시간을 때울수있는것은종점과 종점을 오고가는
데이트코스가 제격이였기 때문이죠.
서울토박이인 사람들보다 더 서울지리를 구석구석
알고있는 우리부부이지요.
남편이 외치는 민주주의.정의로운 사회건설로
형편이 넉넉할때가 없다는것이지요.
하지만 가난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부부사이를
갈라놓을 장벽은 아니더군요.
남편은 결혼과 일자리를 얻지못하고있을때
제가 임신을 하였는데
없으면 먹을것이 그렇게 땡긴다고
고등어자반이 먹고 싶었답니다.
며칠을 참다가 고등어가 먹고싶다고 하니깐
한날은 아침일찍 어디를 가더니
글쎄 밤이 어둑해질때까지 돌아오지않더군요.많이 늦은시간에 들어왔는데 한손에 까만비닐봉지에 간고등어를 사가지고왔더군요.그리고 웃옷을 벗는데 어깨에 피멍이 들었더라구요.
고등어 살 돈은 없고 고등어는 사주고싶고해서
막노동을 하고왔다고 하더군요.
위장취업처럼 밑바닥 경험을 한답시고
대학때 막노동을 틈틈이 한것은 알고있었지만
직접적인 생계문제로 그것도 아내가 먹고싶은
자반고등어를 사줄려고 노가다를 뛰었나보더라구요.
순간..핑도는 눈물에 자반고등어를 먹지 못했지만
그래도 날 사랑하고 뱃속아이에 대한
가장의 책임감이 있는것을 보고 남편의사랑에 감동을 받았답니다.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는다는 말이있죠.
바로 우리부부는 그렇게 살아갑니다.
한번도 넉넉한 적도 없고 지금도 힘들지만
우리는 좌절하지않고 그리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있습니다.
늘 꿈을 꾸는 남편이 있어서 삶이 단조롭지않고
격동적일때가 많지만나보다 남을 위해서 우리라는 2인칭 3인칭을위해 살고싶다는 남편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고난의 길이요..순탄치않는길이기에
아무나 할수없다고 포기하지않는다는
남편을 보면 대견해요.그래서 지지를 보낸답니다.
그리고 바가지 될수록 많이 긁지않고 산답니다.
외모는 작고 여리지만
그가 가진 포부와 그가 이루고자는 작은 공화국은
우주보다는 넓기에 남편을 믿습니다.
설령 살아생전 남편이 꿈꾸는 삶이 오지않는다고해도
오늘을 보람차게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합니다.
불만보다는 만족을 그리고 부정보다는 늘 긍정적으로
이끌어갈려는 남편의 삶 한 조각에 살며시
기대어 살아가렵니다.
힘들다고 다들 말하지만 한번 더 크게 웃을수있는
오늘을 살아갈려고 합니다.
늘 사랑하는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들숨날숨처럼 꼭 필요하죠.
하지만 이런 내몸과 같은 사람인데도
어떨땐 너무나 소홀하게 되고 그리고 주는사랑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소중한 사람이 늘 내곁에 오래오래 머물게하는방법은
서로가 사랑해주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내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면 두사람의 사랑은 영원하겠지요.
평생에 사랑하고픈 사람이 딱 한사람있습니다.
내머리속에 지우개처럼 내기억이 자꾸만 사라져간다면
마지막까지 기억하고픈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삶이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지쳐서
만신창이가 된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답다고 가르쳐준 그 사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처음 그사람을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그 사람의 숨결로
존재가치를 깨닫고 살아갑니다.
그 사람은 신이 절대 아닙니다.
나 처럼 모나고 불안하고 고뇌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완전하지못한 두사람이 사랑의 극대치를 높이며 열심히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사람은
언제나 좌절하지않습니다.
절대로 실망하지않습니다.
그사람은
가슴에 늘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가슴에 늘 빛나는 별을담고 살아갑니다.
그가 어떠한 일을 하던 무조건 믿습니다.
남편에게
사랑고백은 연인들만 하는것이 아니라고생각해요.
결혼과 동시에 낭만이 없어지는것은 아니지요. 더 중요한것은
결혼후에 더 노력하고 더 사랑해야한다는것을 알았답니다.
작은 떨림으로 첫고백한 날처럼 날마다 새로움으로 당신을
대하고싶습니다.
여전히 나에겐 백마탄 왕자입니다.
사랑을 가르쳐주고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해준 당신은 결국은
사랑을 지켜내는 방법까지 다 나에게 전수해줬지요.
심금을 울리는 당신의 연애편지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선
세월의 무상함을 한탄할지 몰라도 당신의 사랑을 가슴판에
새긴 나의 사랑은 영원히 시들지않았습니다.
예전 우리의 사랑은
서로에게 맞추려고 애쓰며 숱한 날을 고민했지만
지금의 우리사랑은 서로의 모습을 있는그대로를 보듬어주며
아껴주는 사랑으로 발전했지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바꿀수는 없지만
냉소적이고 차가운 혈관의 피를 웃음과 뜨거운 피로 만들수있는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당신은
기쁠때는 누구나 곁에 있을수 있다고합니다.
행복할때도 누구나 곁에 머물수 있다고했습니다.
하지만 찢어지는 고통과 절망적인 슬픔,아픔을 당했을때는
오래 같이 머물수있는 사람이 많이 없다고 했지요.
가장 힘들때 함께 있고싶은 사람이 나라고 했을때 난 그만
당신이 살아가는 철학적인
사고방식에 홀라당 빠져버렸습니다.
아니나다를까 죽음을 오갈만큼 힘든 병마와 사투를 벌일때도
당신은내곁을 지켜주었지요.
건강치못해서 살아가는 삶들이 순탄치않았기에 당신에게
헤어지자고 했지요.
아마 당신은 나로인해서 겪지않아도 되는 슬픔을 너무
많이 준것같아서 미안해요.
내가 당신에게 받은 사랑을 언제 다 갚을수있을련지.....
여보...
나도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한답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우리에겐 지독한 가난과 경제적인 압박이 끊임없이 괴롭혔던같아요.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결코 변하지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노년엔
당신과 손잡고 눈이 부시게 푸른 바다와 하늘을 보면서
지나온 나날들을 회상할수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과거처럼...우리가 처한 환경을 가장 아름답게
승화시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도록 해요.
당신을 만난건 내 인생의 큰 행운입니다.
결코 시들거나 노여워하지않도록 많이 노력할께요.
양말을 신고서 잠이든 내모습이 안스러웠는지
얼굴을 스다듬어주며 내가 깰까 조심스럽게 양말을
벗겨주던 당신입니다.
나 잠자는척했지만 당신에게 너무 고마워 소리없는
눈물을 흘렸답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머리에 꽂아준다는 당신에게
오늘은 당신의 지친 발을 씻겨드리고싶습니다.
힘들고 지친 작은 발가락을 깨끗이 씻어드리면 당신은
아마도 함박웃음진 얼굴로 피곤함을 풀어버리겠지요.
당신은 다리도 짝짝이라 꼭 신발뒷축이 다르게 닳지요.
처음엔 그냥 피식~웃었는데 가만생각해보니깐 조금
다르다는것이 엄청난 불편이였는줄 나중에야 알았답니다.
남들은 눈치못체도 전 알아요.
당신이 가다가 잘 넘어지는 이유가 다리길이에 있다는것을 알았지요.
그냥 실수로 실족하는줄 알았더니 균형이 맞지않아서 그렇다는걸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았습니다.
당신이 오래전에 눈이 펑펑 내리는날 내가 신문배달하는 곳으로 와서
신문도 같이 돌려주고 꽁꽁 언 손도 잡아주며 그렇게 나에게 프로포즈했잖아요.
"너랑 살면 평생 신문은 공짜로 볼수있겠다 그치?"
새침스럽게 난
"그럼 나보고 평생 신문배달하라고?" 했더니 "너가 고만두면 내가 대신 배달하지모"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은 신문을 보잖아.나도 하루도 빠짐없이 너를 보면서 살거야"..
그렇게 어영부영 빗대어서 나에게 함께 희노애락을 보내자며 두손을 꼭 잡아주었잖아요.
내가 돌릴때는 신문이 한달에 한번정도뿐이 휴간을 하지않았고 그나마 끼어서 돌리는
작은신문사는 휴간날짜가 달라서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돌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당신이 나에게 프로포즈했듯이
나 당신에게 프로포즈하고싶네요.
"살다보니 내가 미워도 평생 함께 살아 줄 꺼 죠 ? ? "
내가 촌티나고 남들에게 볼품없을지라도 날 가장 사랑해주리라 믿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아주 많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