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역사소설「장군과 제왕」6.장산군도해전(長山群島海戰) (6)

조의선인2008.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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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택의 늪지대를 행군하는 수나라 군사들을 가로막는 것은 무성한 갈대 숲과 진창 길이었다. 갈대 숲은 계속 우거져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늪지대도 점점 깊어져 병사와 말들이 모두 뻘에 빠지며 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모기떼들이 이들에게 달라붙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수나라 군사들의 행군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었다.

어느덧 요택의 작은 수초지대에 이르렀을 때, 한 병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물이다!"

수초들이 떠 있는 고인 물길이 나타나자 병사들은 미친 듯이 달려들어 허겁지겁 고인 물을 퍼 마시기 시작했다. 우문술이 대경실색을 하며 외쳤다.

"멈춰라! 함부로 물을 마시면 안 된다. 그것은 썩은 물이다!"

장수들이 병사들을 방망이로 때리며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제지하는 와중에 양량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다시 천둥이 울기 시작한다. 저만큼 동쪽 하늘에서 짙은 먹구름 떼가 밀려왔다.

"또 변죽만 울리는 것일 게야. 저 먹구름 말이야.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는데....."

왕세적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전하, 이번에는 심상치가 않사옵니다. 비구름이 분명하옵니다.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사옵니다."

"아니오. 여러번 저러다 말았소이다. 안 되지... 지금 어렵사리 이곳까지 왔는데 비가 와서는 안 되지. 어쨌든 우리는 이 요택을 빠져나가야 해."

그러나 천둥소리는 더욱 다급해졌다. 고경이 다가오며 절규하듯 외쳤다.

"전하, 소신의 말을 들어보시옵소서. 더 이상의 행군은 불가능하옵니다. 벌써 태반의 군사들이 더위를 먹고 쓰러지기 직전에 있사옵니다! 군사들을 쉬게 하시오소서."

"쉰다니, 어디서 쉰단 말이오? 천지가 뻘이고 진흙인데, 어디서? 여전하구려. 무엇이든 되는 게 없어. 아니 된다, 아니 된다!"

"무모한 행군이옵니다. 여기서 비를 만난다면 요택을 넘는 것은 어렵사옵니다. 이쯤에서 행군을 멈추시고 재점검을 하시오소서."

"닥치거라, 이 늙은이... 나는 너를 정말 데려오기 싫었다. 네가 아버님의 총애를 믿고 결국 이렇게까지 나를 업신여기는구나. 뭣들 하느냐! 이 늙은이를 끌어다 참형에 처하라!"

그러자, 우문술이 이성을 잃고 분노하는 양량을 말렸다.

"고정하시오소서, 전하. 좌복야의 소임은 군사이옵니다."

"이런 겁 많은 늙은이가 군사는 무슨 군사...? 보기 싫다. 부장들은 무얼 하는가? 이 늙은이를 뒤로 내쳐라, 어서!"

고경은 부장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진언을 멈추지 않았다.

"새겨 들으시오소서, 전하! 우리는 이미 저들의 함정에 빠져 있사옵니다."

"저런 미친 늙은이 같으니... 완전히 돌았구만. 함정은 무슨 얼어죽을 함정? 저러니까 늙으면 일찍 죽어야 하는 게야!"

양량은 더욱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번져가면서 태양은 순식간에 먹구름 속에 묻히고 말았다. 양량의 뺨 위로 굵은 빗방울이 하나 떨어졌다.

'비가 온다...!'

곧 천둥과 함께 번개까지 치며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주변이 어두워지며 천둥은 점점 더 거세어졌다.



병사는 엄지발가락을 꽉 오므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무겁고 끈적거리는 진흙창에 꾹꾹 달라붙은 장화를 발에 붙이고 있을 방법이 없었다. 이곳저곳에 쏠려 발등이며 발가락이 아파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허벅지와 발바닥에 통증이 가해졌지만 병사는 꾹 참고 걸어야만 했다. 무거운 진흙이 온 다리에 달라붙어 걷고 있어도 자기 다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으... 으흑."

병사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몇날 며칠 전력을 다해 걸어왔는지 모른다. 피로도 지루함도 모르고 걸어왔던 그 길이 오늘에 와서는 몇배의 피로와 막막함으로 닥쳐왔다. 흠뻑 젖은 옷이 움직일 때마다 어깨를 쓸었다. 그리고 그 위로 다시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에 맞으면 아팠다. 그래도 병사는 걸어야 했다. 발을 옮겨 딛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나은 까닭이었다.

쓰러지는 자는 아무도 돌봐주지 않았다. 제 한몸 추스리기도 힘든 이들에게 다른 이를 일으켜줄 힘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쓰러진 자는 그대로 동료들의 발에 밟히며 그 생명을 다해갔다.

"나는 이제 못해!"

발광하는 자도 있었다. 한 병사가 처절하게 고함을 질러대며 돌아온 길을 향해 마구 달렸다. 결과는 뻔했다. 누가 쏘았는지도 모르는 화살 하나가 지친 병사들 사이로 날아가 도망자의 등판에 꽂혔다. 그러나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돌아서면 죽는다. 지쳐서 죽건, 화살에 맞아 죽건, 장수의 칼에 죽건, 여하튼 죽는다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참아라! 이곳까지 무섭게 달려온 너희들이다! 여기서 포기하고 못난 사내가 될 것이더냐! 이틀만 참아라. 병참부대가 날라온 보급품과 식수가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모두 죽는다!"

장수들이 뛰어다니며 격려의 고함을 질러댔으나 피로와 막막함으로 머릿속이 멍해진 병사들의 귀에 이런 고함 소리가 들릴 리 만무했다. 게다가 이들의 고함은 거센 빗소리에 묻혀 병사들의 귀에까지 제대로 이르지도 못했다.

"전군 제자리! 막사를 펴고 휴식을 취한다!"

그칠 줄 모르는 장대비 속에서 꼬박 하루를 걷고 나서야 겨우 울려 퍼진 향도의 고함에 대부분의 병사들은 물이 고인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힘겹게 막사를 치고 지친 몸으로 길을 닦는 병사들의 모습은 마치 수십차례의 어려운 싸움을 치른 자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공병들이 힘겹게 만들어놓은 통나무 길도 불어난 물에 잠기고 있었다. 병사들은 입을 벌려 비를 받아 마시거나 손바닥이나 투구를 이용해 물을 받거나 먹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렸단 말인가? 그런대로 절반까지 넘어왔는데, 이게 어떻게 된 것이야?"

군막 밖에서 애타는 표정으로 병사들을 바라보던 양량이 중얼거리자 왕세적이 말했다.

"전하, 아무래도 군영을 잠시 옮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렵게 닦은 길도 모두 물에 잠기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공격도 불가능합니다."

우문술도 현재 상황이 매우 어렵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는 듯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문제는 먹을 물이옵니다. 전군에 식수가 떨어진 지 사흘이 넘었사옵니다."

"형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계신단 말인가? 다시 파발을 띄우시오!"

양량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늘의 먹구름만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요택을 건너려는 양량의 군대가 그토록 애절하게 기다리는 수송부대는 을지문덕이 보낸 조의군(皁衣軍)의 유격전(遊擊戰)에 말려들어 식수와 보급품을 싣고 가던 수레를 모두 잃고 말았다. 용수(庸秀)가 거느린 조의들은 산비탈에서 매복하고 있다가 수나라의 수송부대가 다가오자 일제히 기습하여 식수를 담은 항아리를 모두 깨뜨리고 보급품을 실은 수레에 불을 붙였다. 수나라의 수송병들은 필사적으로 수레를 지키려고 저항했으나 용맹스러운 조의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용수와 조의들은 수나라의 수송병 1천여명을 참살하고 물이 든 항아리를 모두 깨뜨린 뒤 신속한 움직임으로 전선에서 사라졌다. 수송부대가 조의들의 기습을 받았다는 사실은 요택에 있는 양량의 군대에게 절망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양광이 보낸 수송부대가 조의들에게 궤멸당했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양량은 장수들과 함께 막사에서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퍼붓는구만, 퍼부어. 어젯밤에는 잠시 그치는가 했더니 또 계속 퍼부어?"

양량이 푸념섞인 목소리를 쏟아내자 우문술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들도 곳곳이 침수되었습니다. 지대가 얕아서 곳곳이 물바다입니다. 도무지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습니다."

왕세적도 한숨을 쏟으며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마실 물입니다. 물이 떨어진 지 사흘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군사들이 흙탕물을 퍼마시고 있습니다."

"도대체 형님은 왜 수송부대를 보내 물을 지원하지 않는 건가?"

"계속 파발을 띄우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리심이..."

"기다려봐도 여기서는 죽음뿐이오."

고경이 우문술의 말을 가로막으며 나섰다. 제장들의 시선이 고경에게 쏠렸다.

"전하, 입을 열리 말라 하셨으나 이번에도 한 말씀 올리겠사옵니다. 고구려군이 우리에게 식수를 지원해 줄 수송부대를 가만히 둘 리가 없사옵니다. 필경 유격병들을 보내어 수송부대를 공격했을 것이옵니다. 비록 늦기는 하였으나 지금이라고 군을 요택 밖으로 물리시옵소서.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양량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참으로 못 말릴 늙은이로다. 죽으나 사나 돌아가자는구나. 이런 어려움이 없이 고구려를 이길 줄 알았는가? 나는 반드시 이 요택을 넘는다. 이대로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 우문술이 주변을 보며 밖에 귀를 기울였다. 어느새 빗소리가 멎은 것이다.

"전하, 빗소리가 멈추었습니다. 비가 멎었사옵니다."

"그렇구먼. 정말 다행스런 일이로구나."

그때 부장 하나가 급한 모습으로 군막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전하, 큰일났사옵니다. 여기저기서 군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고 있사옵니다."

"그게 무슨 얘기야? 군사들이 왜...?"

"모르겠사옵니다. 곳곳에서 수많은 군사들이 쌀뜸물 같은 흰 물을 아래로 쏟는가 하면..... 고열에 들떠 신음하다가 죽어가고 있사옵니다."

고경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결국 최악의 경우를 맞은 것 같사옵니다. 이는 풍토병이옵니다. 괴질 말이옵니다."

제장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양량이 절규하듯 외쳤다.

"그게 무슨 말이야? 괴질이라니? 왜 여기에서 괴질이 돌아, 왜...?"

갖은 고초를 겪으며 2백리 늪지대를 건너던 와중에 수나라 군사들은 때아닌 전염병의 급습으로 죽어가기 시작했다. 온갖 자연의 재해를 내뿜어내던 2백리 요택의 늪길은 수나라 군사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저주의 땅이 되어 이들을 한꺼번에 삼키기 시작했다.

"전하, 지금 이 상태에서 고구려 군사가 들이닥친다면 우린 전멸이옵니다."

왕세적의 말이었다. 그도 이제 더 이상의 행군은 무모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아니 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대로 돌아간단 말이냐? 나는 반드시 저 요택을 넘어야 한다."

양량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고 행군을 주장했다. 그러자 고경이 부장 두사람을 데리고 다가왔다.

"전하, 싸우기도 전에 이미 많은 군사가 죽고 있사옵니다. 이런 상태로는 전투 자체가 불가능하옵니다. 회군하셔야 하옵니다."

"시끄럽다! 너 같은 늙은이가 어떻게 군사(軍師)일 수 있느냐? 자신의 무능력을 감추기 위해 너는 계속 돌아가자고 말했다.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이런 늙은이가 어떻게 대수제국(大隨帝國)의 창업공신일 수 있느냐? 어서 군사들을 재촉해 행군을 다시 하라고 명령해라! 내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법으로 처단하겠다."

"부하들을 뻔한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자는 장수(將帥)의 자격이 없사옵니다. 전하, 더는 군사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지 마시옵소서."

양량이 분노하며 패검(佩劍)을 빼어 들고 소리쳤다.

"이 늙은이가 정말 죽고 싶은 게로구나. 감히 나를 능욕하다니..."

"전하, 용서하시옵소서. 부장들은 어서 전하를 모셔라. 모든 것은 내가 책임을 질 터이니 군사들에게 회군 준비를 하라고 일러라!"

고경의 지시에 따라 부장들이 양량을 덮쳐 강제로 패검을 빼앗고 포박했다. 양량이 발악을 하며 외쳤다.

"이 못된 늙은이, 네가 그러고도 살아 남을 성 싶으냐? 놔라! 이놈들..."

하지만 왕세적과 우문술도 이미 고경의 뜻에 마음을 기운 상황이었다. 이들은 양량을 수레에 가두고 군사들에게 회군을 명령했다.

"한왕 전하의 명이시다! 회군하라!"

이윽고 5만으로 줄어버린 군사들은 회군을 시작했다. 때가 잔뜩 낀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걷는 장수들과, 걷는 것 외에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허약해진 병사들의 누런 얼굴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예까지 오는 데만도 수십일이 걸렸다. 돌아가는 길은 그보다 더 길면 길었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병사들은 빈손에, 빈속으로 걸어야 했다. 걷다가 쓰러지고, 다행히 밟히지 않아 살아서 일어서면 다시 걷고, 또 쓰러지면 땅을 기다가 다시 일어섰다. 어지간히 수그러들었던 괴질도 허약해진 병사들 사이에서 다시 기승을 부리려는 듯, 구토하는 병사들이 심상치 않게 눈에 띄었다. 탈영해서 요하의 고구려 군진으로 달려가는 병사들도 제법 눈에 띄었다. 모두 자신의 앞가림에 여념이 없었기에 동료가, 부하가 무얼 하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병장기(兵仗器)를 바닥에 몰래 던져두고 걷는 병사들도 많았다.

"병사들에게 고한다. 아직 고구려군과의 접경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코 병장기를 버려서는 아니 된다."

왕세적이 계속해서 군령을 띄웠지만 그들로서는 당장 목숨이 사라지는 마당에 무거운 쇳덩이를 짊어지고 걸을 생각이 없었다. 말을 몰아 전군을 한번 살펴보니 남은 병사의 반수 이상이 빈손으로 걷고 있었다.

'만일 고구려군이 추격을 해온다면...'

왕세적의 이런 걱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후군 뒤로 뿌옇게 이는 먼지가 척후병의 눈에 들어왔다. 고구려군의 추격을 장수에게 보고하는 순간, 후군은 서로 밟고 밟히는 아비규환 속에 빠지고 말았다. 뒤돌아 습격에 대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지만 단 한명의 병사도 싸울 채비를 하지 않았다.

"돌아서라! 돌아서서 적을 맞아라!"

장수들의 고함은 오히려 병사들의 비명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힘이 남아 있었는지 앞서 가는 동료들을 잡아 넘어뜨리며 도망치고 있었다. 넘어진 병사들은 뒤에서 달려드는 동료들에게 사정없이 밟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말을 탄 고구려의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과 용수(庸秀)가 이끄는 조의군(皁衣軍)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해왔다.

그리하여 결국 후군은 고구려군에게 따라잡히고 말았다.

"모조리 죽여라! 한 놈도 살려보내지 마라!"

조의사범(皁衣師範) 용수(庸秀)가 고함을 치면서 미친 듯이 칼을 휘둘렀다. 이것은 전투라고 할 수 없었다. 고구려 최고의 정예부대인 개마기사단과 조의군은 저항조차 포기하고 도망치는 수나라 군사들을 몰아붙이며 일방적인 공격을 전개하고 있었다. 병들고 지친 데다 무기마저 없는 수나라 군사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무너지며 학살당하고 있었다.

왕세적(王世績)은 황급히 성우량(誠優亮)을 바라보며 외쳤다.

"성 장군은 싸울 수 있는 병사를 추려 적을 막으시오! 나는 우문 장군과 함께 한왕 전하와 군사를 모시고 이곳을 빠져 나가겠소."

"알겠습니다."

성우량은 병장기(兵仗器)를 들고 있는 일단의 병사들을 지휘하여 고구려군의 앞을 가로막았다.

"적군을 막아라! 본진이 후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개마기사단(蓋馬騎士團)을 지휘하던 하얀 수염의 노장이 성우량을 발견하고 마치 먹이를 본 맹수처럼 다가왔다. 고구려의 병마원수인 강이식(姜以式)이었다.

"크하하! 이미 너희는 전투력을 상실했다. 살고 싶으면 항복하라!"

강이식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우량은 사모(蛇矛)를 비껴 들고 소리쳤다.

"시끄럽다! 대수(大隨)의 장수가 어찌 동방의 오랑캐에게 항복한단 말이냐? 어서 덤벼라!"

강이식의 미첨도(眉尖刀)가 매서운 바람을 일으키며 성우량을 향해 날아들었다. 성우량(誠優亮)의 사모(蛇矛)가 간신히 강이식의 미첨도를 막아내며 십여합을 견뎌냈지만, 이미 그의 체력은 행군 도중에 바닥난 상태였다. 상대의 허점을 노리고 강이식의 칼날이 허공에 원을 그리자, 채 비명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성우량의 허리가 반으로 갈라졌다. 적장 한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 개마기사단과 조의군은 더욱 신이 나서 수나라 군사들을 뒤쫓아가 마구 살상하였다. 그야말로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적장의 수급(首級)이 떨어졌다. 투항하는 자는 죽이지 말고 포로로 삼아라!"

고구려의 개마기사단 5천여명과 조의군 2천여명이 1만명의 수나라 군사들을 참살했다. 도망치고 항복한 자들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수만에 다다르는 병사들이 궤멸당했다.

한편 양량 대신 본진을 지휘한 고경의 중군은 몇 갈래로 흩어져 후퇴하고 있었다. 후군이 고구려군의 공격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자 고경이 재빨리 군사를 나누었던 것이다. 왕세적이 달려와 고경에게 말했다.

"군사(軍師) 어른! 후군이 완전히 궤멸당한 듯합니다."

"그런가."

고경의 무덤덤한 대답이었다. 예상한 일이었던 데다 더 이상 슬퍼할 힘도 없었다.

"크아앗!"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는 자는 바로 수레에 갇힌 양량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비참한 병사들의 모습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팔다리가 성한 자가 없었다. 발이 썩어들어가는 자, 더 이상 발걸음을 옮기지 못해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는 자, 모두 추격에 쫓겨 정신없이 사방으로 도망치다 겨우 다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야위고 누레진 얼굴에는 고통이 역력히 드러났다. 군인이라기보다는 병자에 가까운 이들의 움직임이었다.

"아! 나는 애당초 이것밖에 안 되는 인물이었던가!"

수레 안에서 양량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을 우러러 고함을 질렀다.

"아,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는가? 아무리 간계라 할지언정 이렇게 30만의 대군이..."

고경은 길게 탄식하며 채찍을 내리쳤다. 더 이상 군사들의 참담한 몰골을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양량이 이끌던 수나라 군사들은 갈 때보다 무려 두배의 시간이 더 걸려서야 영주성에 닿을 수 있었다. 살아남은 수나라 군사들 사이에서는 이제 고구려군에 대한 공포가 가슴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가뜩이나 계속된 재해에 하늘이 노했다며, 하늘이 돕는 나라를 건드린 대가라는 소문이 요서에서 퍼져나갔다.

編作對象原書

유현종 著「대제국 고구려」아침나라編(2001년版)

정수인 著「우리 민족의 자부심 고구려의 역사」새움編(2005년版)

김진명 著「살수대첩」랜덤하우스중앙編(2005년版)

정호일 著「천손왕국 대고구려」우리겨레編(2001년版)

이일우 著「영광, 대고구려」정신문화사編(2004년版)

이언호 著「연개소문」큰방編(2006년版)

서길수 著「동아시아 문명의 중심 고구려」사계절출판사編(1999년版)

한종호 著「마지막 영웅」지문사編(1999년版)

오재성 著「만주는 과거 우리의 역사 무대였다!」국사광복국민운동본부編(2002년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