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가야는 광개토왕비의 임나가야(397)와 백제성왕이 내도한 임나가야(540)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임나는 임금,주인, 임자(주인), 맹주(연맹체의 주인, 대장, 오야)란 뜻의 보통명사 이다.일부 학자중에 임나를 고유명사로 생각하여 그 위치비정에 오해하는 학자가 일부 있으나 이는 보통명사이다. 광개토왕비의 임나가야(맹주가야)는 김해 금관가야를 말하며, 금관가야가 멸한 후의 540년경 백제성왕내도한 임나가야(맹주가야)는 바로 고령의 대가야란 뜻이다.
백제 성왕은 금관가야가 망하고 신라가 강성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여타가야와 왜와 연맹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연맹관계에 있던 왜는 내부사정인지, 얕은 수인지는 모르지만, 군사연맹은 피하고, 훈수만 두었다.즉 맹주가야(임나가야)인 금관가야가 망했으니 새로운 맹주(=임나)가야(대가야)를 세워 강하게 하면 신라로 부터 백제가 보호될 것이라 훈수를 두었다. 그 내용이 일본서기의 내용이다..이 기사에서는 백제나 가야가 왜에 아부하는 듯한 어조가 다소 있는데, 이는 1. 일본사가입장에서 당사건을 기록하였기 때문임과 2.당시 강성한 신라에 위기를 느낀 백제나 남은 가야가 일본에 원병을 청해야 하는 입장 때문이기에 저자세일 수 있다고도 보인다.그 전 까지는 왜는 백제를 부형의 나라라고 불렀었다 일본부라는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아라가야, 대가야,금관가야들의 수도인 해반, 해밭,서발, 양전 ,양촌,양벌들로서 가야나 삼한에 이전부터 있어 왔던 명칭이다. 이를 8세기에 일본이 국호로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부라는 것은 8세기 이후의 일본국이 타임머신 타고 6세기로 날아와 설치한 일본국의 기관은 절대 아닌 우리고유의 부락,도읍명칭이었던 것이다.
즉 가야의 도읍인 이 일본부(해뻘촌,해빨촌 , 해, ㅂ +( . )+ ㄹ, 촌 )를 8세기 이후 일본이 차용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부에서 앞의 일본은 해뻘로 도읍의 명칭이나, 뒤의 府는 하나의 기관이라 본다. 이 부는 가야제국의 도읍 인 해빨(일본)중에서 부족장(부족왕)들의 정치,군사적 회합장소로서 기능을 가진 곳에 부를 설치하여 그 역활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이 부는 주로 정치,군사적 기능으로, 가야왕권 (금관가야 왕권)이 무너진 후로, 통일된 왕권없이 ,실지로 장수였던 남은 가야 부족장(부족장이자 장수,봉건 영주유사)들의 정치,군사적 회합장소로 본다. 이것이 대가야(고령)와 아라가야(함안)의 일본(도읍)에 설치한 부이라 본다. 이 부는 마치 12세기 후 일본국의 막부와 같이 그 구성원과 기능이 유사하다.즉, 천황의 신임받은 장군들(동시에 영주들)의 정치,군사적 협의체인 막부(幕府)와 유사하다. 일본국은 이 부도 막부로 차용해 갔던 것 같다. 고령(대가야),함안(아라가야)에 일본府가 있엇던 것과 이 두지역에 암각화가 있는 것은 이 곳이 가야제국의 (막)부였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물론 막부정치는 왕권이 미약하거나, 확립되지않은 곳에서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삼한시대 역시 각 부족장들은 왕이없이 군사정치적 회의기관인 부족장회의를 (막)부에서 열었다고 본다.변한12국도 마찬가지이다. 아라가야 일본부는 변한12국시대 그 중심지인 함안지역 새벌막부(일본부)가 가야왕권성립 후 사라졌다가 금관가야가 망한후 다시 그곳 도읍 막부(일본 부)가 열렸다고 본다. 일종의 고대국 왕권에서 부족연맹 막부정치로의 후퇴인 셈이다.그러면 이 막부정치의 중심지는 함안과 고령의 두곳으로 처음에는 함안부족장 다음에는 고령부족장이 막부의장이 된 셈이다.그래서 금관가야는 왕위의 부자세습이나 후기가야는 부자세습이 없는 것이고,실권잡는 부족장이 막부의장이 된것으로 본다
일본으로 간 우리말 서울4
임나가야는 광개토왕비의 임나가야(397)와 백제성왕이 내도한 임나가야(540)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임나는 임금,주인, 임자(주인), 맹주(연맹체의 주인, 대장, 오야)란 뜻의 보통명사 이다.일부 학자중에 임나를 고유명사로 생각하여 그 위치비정에 오해하는 학자가 일부 있으나 이는 보통명사이다. 광개토왕비의 임나가야(맹주가야)는 김해 금관가야를 말하며, 금관가야가 멸한 후의 540년경 백제성왕내도한 임나가야(맹주가야)는 바로 고령의 대가야란 뜻이다.
백제 성왕은 금관가야가 망하고 신라가 강성하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여타가야와 왜와 연맹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는데, 이때 연맹관계에 있던 왜는 내부사정인지, 얕은 수인지는 모르지만, 군사연맹은 피하고, 훈수만 두었다.즉 맹주가야(임나가야)인 금관가야가 망했으니 새로운 맹주(=임나)가야(대가야)를 세워 강하게 하면 신라로 부터 백제가 보호될 것이라 훈수를 두었다. 그 내용이 일본서기의 내용이다..이 기사에서는 백제나 가야가 왜에 아부하는 듯한 어조가 다소 있는데, 이는 1. 일본사가입장에서 당사건을 기록하였기 때문임과 2.당시 강성한 신라에 위기를 느낀 백제나 남은 가야가 일본에 원병을 청해야 하는 입장 때문이기에 저자세일 수 있다고도 보인다.그 전 까지는 왜는 백제를 부형의 나라라고 불렀었다
일본부라는 것은 위에서 말했듯이 아라가야, 대가야,금관가야들의 수도인 해반, 해밭,서발, 양전 ,양촌,양벌들로서 가야나 삼한에 이전부터 있어 왔던 명칭이다. 이를 8세기에 일본이 국호로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부라는 것은 8세기 이후의 일본국이 타임머신 타고 6세기로 날아와 설치한 일본국의 기관은 절대 아닌 우리고유의 부락,도읍명칭이었던 것이다.
즉 가야의 도읍인 이 일본부(해뻘촌,해빨촌 , 해, ㅂ +( . )+ ㄹ, 촌 )를 8세기 이후 일본이 차용해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본부에서 앞의 일본은 해뻘로 도읍의 명칭이나, 뒤의 府는 하나의 기관이라 본다. 이 부는 가야제국의 도읍 인 해빨(일본)중에서 부족장(부족왕)들의 정치,군사적 회합장소로서 기능을 가진 곳에 부를 설치하여 그 역활을 담당하였다고 본다. 이 부는 주로 정치,군사적 기능으로, 가야왕권 (금관가야 왕권)이 무너진 후로, 통일된 왕권없이 ,실지로 장수였던 남은 가야 부족장(부족장이자 장수,봉건 영주유사)들의 정치,군사적 회합장소로 본다. 이것이 대가야(고령)와 아라가야(함안)의 일본(도읍)에 설치한 부이라 본다. 이 부는 마치 12세기 후 일본국의 막부와 같이 그 구성원과 기능이 유사하다.즉, 천황의 신임받은 장군들(동시에 영주들)의 정치,군사적 협의체인 막부(幕府)와 유사하다. 일본국은 이 부도 막부로 차용해 갔던 것 같다. 고령(대가야),함안(아라가야)에 일본府가 있엇던 것과 이 두지역에 암각화가 있는 것은 이 곳이 가야제국의 (막)부였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물론 막부정치는 왕권이 미약하거나, 확립되지않은 곳에서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삼한시대 역시 각 부족장들은 왕이없이 군사정치적 회의기관인 부족장회의를 (막)부에서 열었다고 본다.변한12국도 마찬가지이다. 아라가야 일본부는 변한12국시대 그 중심지인 함안지역 새벌막부(일본부)가 가야왕권성립 후 사라졌다가 금관가야가 망한후 다시 그곳 도읍 막부(일본 부)가 열렸다고 본다. 일종의 고대국 왕권에서 부족연맹 막부정치로의 후퇴인 셈이다.그러면 이 막부정치의 중심지는 함안과 고령의 두곳으로 처음에는 함안부족장 다음에는 고령부족장이 막부의장이 된 셈이다.그래서 금관가야는 왕위의 부자세습이나 후기가야는 부자세습이 없는 것이고,실권잡는 부족장이 막부의장이 된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