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추모 글귀 - 남은 자들이여. 무궁화를 피우자.

정아현20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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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1년 전 이야기이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하루가 지나가고 세상이 돌아간다. 1년 동안 슬픔에 젖어 지냈다라고는 못하겠지만, 오늘 하루 입을 스타일보다 중요하지 않은 주제로 가라앉은 현실이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아마 곧이어 있을 1주년 추모 행사가 끝나면, 그것 또한 역사의 한편에 자리 잡고는 한 아름 먼지에 파묻혀 지낼 것이다. 교과서와 국방부 교범 외에는 볼만한 장소를 찾기 힘들리라는 것도 뻔히 보이는 사실이다.

  내가 대전 국립 현충원에서 천안함 46용사를 만났을 때, 이 비극도 곧 저물어갈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용사들의 충성심이 남긴 흔적들은 이제 관광 상품 혹은 산책길 정도로 전락해버렸다.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려고 했던 그들의 의지와 충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던 사람들은 추모비를 감싸던 흙 사이에 드문드문 심어진 잔디처럼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일 년 전 온 국민이 백색의 약속을 그들의 묘역에 안치시키며 빌었던 마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들과 약속했던 애국심이나, 그들을 보며 말했던 새로운 삶에 대한 다짐들 또한 그림자 속에 침잠하고 있다. 맹세와 약속도 역사처럼 한편에 자리 잡아 흘러만 가는 되는 것이었나? 말의 가치란 게 그만큼이나 낮은 것이라면, 약속이나 맹세 같은 단어의 가치는 버려진 담배꽁초만큼도 안 될 것이다.

  그 때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진 걸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나 역시 이 뜨거움이 오래 간다고는 말을 못하는 입장이니 말이다. 다만 이들에게 했던 맹세와 감사에 대한 나름대로의 뜨거움을 보이는 게 “이미 흘러간 얘기니까”라며 덮어버리는 것 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어찌됐든 떠난 사람은 하늘의 영광이 있을 것이며,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소중한 사람들만이 슬픔과 원망이 가득한 눈 먼 세상에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감정에 공감할 능력은 나에게 없다.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뭐 우연히 만난 술자리에서 힘내라며 어깨를 토닥일 순 있지만 그 이상은 가식이며 거짓이다. 그래서 택한 나의 위로가 바로 글이다. 내가 보고 듣고 느낀 것만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 그렇게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가는 것. 나로 인해 일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기도 할 수 있게 하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최선의 일이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내 마음을 감히 담아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신의 최선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그들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묘역 하나하나에 헌화를 하는 등의 일을 할 필요까지는 없다. 진정 남은 사람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늘이 주신 선물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늘은 남은 이들에게 안식을 대신하여 인간관계의 교감과 공감, 소통을 주셨다. 그리고 꿈을 향해 걸어갈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그것을 헛되게 쓰는 건 천안함에서 순직한 이들이 바라는 우리의 모습도 아닐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던 것은 서로를 배려하고 각자의 꿈을 찾아 노력하고 이루는 것. 분명 그 곳엔 우리의 용사들이 바랐던 꿈의 길도 있을 것이다.

  결론은 ‘꿈’과 ‘배려’라는 것이다. 반 까지는 못 되더라도 어느 정도는 슬픔을 나누고 그들이 못 다 이룬 꿈의 조각을 맞춰준다면, 세상을 잃은 부모님들의 마음도 조금은 편해지지 않을까? 비록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위해 우리의 진심을 보였으니 말이다. 범위를 이 나라 모든 군인으로 확대할 필요도 없고, 줄여서 누군가로 범위를 압축시킬 필요도 없다. 그저 천안함 모든 용사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보이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앞서 말했던 내용들의 중점이며, 결론이다.

  시간이 계속 흘러가더라도,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꼭 간직해야 할 것은 있다. 뭐 고결한 충성심? 아니면 북한에 대한 적대감? 이런 건 필요하지도 않다. 평생 슬퍼할 필요도, 그렇다고 그들을 위해 억지웃음을 짓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우리의 가슴에 꼭 새겨야 할 것은 그 때의 슬픔을 간직하던 마음과 그 때 모인 우리들의 ‘목소리’,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다. 살아있는 우리는 좋든 싫든 그들의 몫을 나누어 받았다. 과정이야 어찌됐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면 호불호를 떠난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여줬던 하나 된 모습.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을 나누던 그 모습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혹시나 이런 진심의 광장에서 단순히 사회적 활동량을 늘리기 위한 추모를 하러 왔다면 지금 당장 그만뒀으면 한다. 누군가의 아들이 목숨을 잃고, 누군가의 핏줄이 세상을 잃은 비극을 도덕적인 인간으로 보이려고 고개만 까딱거리는 가식적인 인물이 이 나라에 있다면 말이다.

  세상은 변할 것이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천안함의 비극은 잊혀져 갈 것이다. 후손들은 교과서에서나 이 글을 보며 시험 문제를 외울 것이고, 당대를 살아 온 우리는 어른이 되어 지금의 감정이 식어버려 더 이상 기억이 안 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진심이 담긴 흔적들을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적어도 우리의 역사는 국사라는 하나의 교과라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들의 묘역 앞에서 고개 숙여 그들의 희망을 듣던 시간을 되새기며,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을 감히 쓸 수 있게 용기를 준 국립 대전 현충원의 천안함 46용사에게 묵념을 올린다. 그들이 있기에, 한 밤에 떨어지는 무궁화는 다시 활짝 핀 아침을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