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가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서 홍범도 장군의 전략에 말려들어 독립군의 매복작전(埋伏作戰)으로 참패를 당하자 일제(日帝)의 한국 식민통치 당국자들은 엄청난 충격과 심한 치욕을 느꼈다. 그들은 이 패전(敗戰)을 계기로 만주 땅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 단체들을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재만(在滿) 반일 독립운동 군사단체(反日獨立運動軍事團體)를 박멸하려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던 조선주차군(朝鮮駐箚軍) 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 대장(大將)은 일본군 제19사단장 다카시마[高島友武] 중장(中將)에게 지시하여 동삼성순열사(東三省巡閱使) 장작림(張作霖)에게 특사를 보내 항의하도록 하였다.
“중국 당국은 어째서 조선인 망명자들을 도와주는 것이오? 그들이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하도록 우리 일본에 협조하시오.”
그러나 만주의 중국군 수뇌부는 일본의 침략으로 국체(國體)가 없어진 대한제국의 참혹한 운명을 동정해왔고, 또 한편으로는 일본군이 어떤 구실을 삼아 만주에 침입할 야욕을 드러낼 것이 유력하기 때문에 일본 측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측은 중국을 향해 수위를 높이는 압박을 가하면서 공공연히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중국군은 망명한 한국인들에게 너무도 우호적이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활동기지까지 마련해주면서 간접적으로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국가의 존재가 없어진 구(舊)대한제국에 아직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본으로서는 더 이상 조만(朝滿) 국경이 위협을 받는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만주의 안전에 대해서도 보장할 수 없다.
일본군은 만주에서 생활하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명심해주기 바란다. 그러므로 만주에 기지를 둔 한국인 망명단체들을 즉시 추방하여 중국의 군사들이 일본에 대하여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성의가 보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일본군이 직접 진격하여 한국인 망명단체들을 토벌하고 일본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겠다!”
일제의 이와 같은 협박이 계속되자 만주의 군벌 장작림으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만주내부의 비정(秘政)으로 말미암아 차츰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불리한 입장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군 제1혼성여단장인 맹부덕(孟富德) 소장(小將)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본부가 있는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대왕청(大汪淸)을 찾아갔다. 북로군정서의 총재인 서일(徐一)이 부총재인 현천묵(玄天默)과 함께 맹부덕을 맞아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융숭한 대접을 했다.
“여러분을 이처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번번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맹부덕이 먼저 인사를 하자 서일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중국군의 배려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 정도의 군세를 만들어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즈음 일본군에서 중국군을 몹시 괴롭힌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다 우리 때문에 그와 같은 고충을 당하고 있으니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우리는 중국 군사들의 후원만 믿고 있는 형편이니 무엇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근 상황은 어떠합니까?”
맹부덕은 서일의 질문을 받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우의가 어디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입니까? 비록 내가 개인적인 힘은 없지만 힘이 닿는데까지는 조선 독립군에 협조할 것입니다.”
맹부덕은 잠시 긴 한숨을 내쉬며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요즈음 일본군에서 공갈·협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짐작하리라 믿고 있겠지만 지금 일본의 세력은 한참 하늘로 뻗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북경 정부에서도 여러가지 일로 이쪽 동삼성(東三省)에까지 힘을 쓸 수 없는 실정임을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곳 왕청현(汪淸縣)을 떠나 밀림지대로 이동해주셨으면 저희가 편하겠습니다.”
서일과 현천묵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멍하니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불안해졌다. 겨우 여기에 자리를 잡고 독립군의 전투력을 배양하면서 교포들의 자치력을 고취시킨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이곳을 떠나라니, 북로군정서의 간부들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맹부덕은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참으로 저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만, 일본군 측은 훈춘에서의 참변을 구실로 간도 근방에 이미 1개 연대의 병력을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일본은 마음만 먹는다면 만주에 5만명 이상의 전투병력을 진출시킬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걸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의 우의는 결코 가면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는 힘이 미치는대로 협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서일과 현천묵은 얼어붙은 얼굴로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게 다 나라가 멸망하게 된 설움이라 생각하니 마음에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일은 비서 윤창현(尹昌鉉)을 시켜 맹부덕을 침소로 안내하게 하고는 즉시 간부들의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군사부 총사령관 겸 사관연성소장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은 이 자리에서 맹부덕의 요구 내용을 듣고는 역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맹부덕이 우리에게 그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느 특정인의 흑심에서의 요구도 아니며 다만 악랄한 일본인들의 만주 침범을 위한 야욕과 그를 실천하는데 장애가 되는 우리 독립군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때문에 상황이 곤란해진 것이니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먼날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일시 후퇴하는 전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를 뒤에서 협조해주는 중국 측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맹부덕의 요구에 따르는 수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김좌진 장군으로서도 별다른 묘안이 떠오를 수 없었기에 서일에게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였다. 당시 일본과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측의 입장이었으니 피차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내에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서일은 맹부덕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고 다음날 착잡한 심정으로 다시 맹부덕을 접견했다.
“욕심 같아서는 이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만 맹부덕 장군과 중국군의 입장이 난처해진다면 떠날 수 밖에 없겠지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겠습니다. 워낙 식구들이 많으니 준비할 여유를 많이 주십시오. 곧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이동할 장소는 결정하셨습니까?”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만 혹시라도 장군님께서 생각해 두신 장소라도 계신지요?”
“이곳을 오면서 궁리 끝에 제가 생각해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저기 안도현(安圖縣)의 밀림지대는 어떨런지요? 제가 부하들을 훈련시킬때 가본 곳이기는 합니다만 그 곳이 여기 서대파(西大坡)보다 뒤지지 않는 천연적인 요새지로 나로서는 권고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렇게까지 배려하여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나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니 당장 어디로 간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장군님의 의사를 참고해서 좋은 곳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이렇게 한국 독립군 측의 서일과 중국군 측의 맹부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일로부터 맹부덕의 조언을 전해들은 김좌진 장군은 이곳에서 일본군의 침공을 받아 인명피해를 보느니 차라리 천연적인 요새지를 찾아 아군의 유리한 고지도 만들고 안전한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중국 측에게도 일본군에게 입장을 세워준 셈이 되었으니 일조이석(一朝二夕)의 성과를 얻은 셈이라 자평해도 무방하다고 서일을 격려하였다.
맹부덕은 북로군정서의 기지를 떠나면서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에 천자국(天子國)을 자처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대국(大國)의 야전군사령관으로서 이제 야만적인 섬나라의 군인들에게 공갈과 협박을 받아 이에 굴복하고 일본과 싸우려는 한국 독립군을 그 근거지에서 몰아내는 결과가 되었으니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되어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는 것이었다.
김좌진 장군은 군사부의 지휘관들을 모아 숙의한 끝에 맹부덕이 천거한 안도현(安圖縣)을 이동장소로 정하고 현지를 조사할 선발대를 급파했다. 그리고 나서 김좌진 장군은 모든 부대원에게 이동준비를 명령했다. 일이 이와 같을 바에는 하루속히 이동하고 질서유지에 힘쓰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맹부덕이 중국군 본영에 도착하면 북로군정서의 부대이동이 일본군에게 알려질 것이고 일본군이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된다면 아군의 이동노선을 차단하고 반격해올 것이며, 병력과 화력면에서 일본군보다 열세인데다가 일본군이 요새지를 미리 점령하고 잠복해있다가 아무 준비도 없는 독립군을 공격할 경우 부대 자체가 와해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김좌진 장군은 맹부덕이 귀임하기 전에 일본군과 마찰없이 요새지를 빠져나가야 안전하겠다는 판단에서 이동을 서둘렀다. 만하루만에 이동준비가 끝나고 곧 선발대의 복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김좌진 장군은 상황이 다급하여 어제 저녁 막사에서 새고 이동준비를 마친 뒤에야 숙소에 들렀다.
영문도 모르고 밀림 속에 혼자 있던 이복희는 김좌진을 보자 깜짝 놀랐다. 김좌진의 모습은 하루 못 본 사이에 얼굴이 헬쑥하고 온 몸이 먼지로 쌓여 엉망이었다.
“장군님, 대체 무슨 일이 있어요?”
김좌진 장군은 정인(情人)인 이복희의 두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으며 “이제 곧 우리 독립군은 왜군과의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기 위해 출전해야 한다. 그대는 교포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장군님, 이번에는 저도 따라 갈래요. 저만 떼어 놓고 가지 마세요.”
이복희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김좌진 장군은 총탄이 날고 피와 살점이 튀는 전쟁터에 아녀자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면서 황급히 숙소에서 나와 부대로 돌아왔다.
『대한독립군단 총사령관 백야 김좌진 장군 전기』4청산리대첩 ⑴
★ 중국군에 대한 일제의 압력과 독립군의 근거지 이동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越江追擊大隊)가 1920년 6월 7일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에서 홍범도 장군의 전략에 말려들어 독립군의 매복작전(埋伏作戰)으로 참패를 당하자 일제(日帝)의 한국 식민통치 당국자들은 엄청난 충격과 심한 치욕을 느꼈다. 그들은 이 패전(敗戰)을 계기로 만주 땅에 산재해 있는 독립운동 단체들을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재만(在滿) 반일 독립운동 군사단체(反日獨立運動軍事團體)를 박멸하려는 방안에 대해 고심하던 조선주차군(朝鮮駐箚軍) 사령관 우쓰노미야 다로[宇都宮太郞] 대장(大將)은 일본군 제19사단장 다카시마[高島友武] 중장(中將)에게 지시하여 동삼성순열사(東三省巡閱使) 장작림(張作霖)에게 특사를 보내 항의하도록 하였다.
“중국 당국은 어째서 조선인 망명자들을 도와주는 것이오? 그들이 근거지를 마련하지 못하도록 우리 일본에 협조하시오.”
그러나 만주의 중국군 수뇌부는 일본의 침략으로 국체(國體)가 없어진 대한제국의 참혹한 운명을 동정해왔고, 또 한편으로는 일본군이 어떤 구실을 삼아 만주에 침입할 야욕을 드러낼 것이 유력하기 때문에 일본 측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일본 측은 중국을 향해 수위를 높이는 압박을 가하면서 공공연히 협박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중국군은 망명한 한국인들에게 너무도 우호적이다. 더군다나 그들에게 활동기지까지 마련해주면서 간접적으로 우리 대일본제국을 위협하고 있다. 이미 국가의 존재가 없어진 구(舊)대한제국에 아직도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본으로서는 더 이상 조만(朝滿) 국경이 위협을 받는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최악의 경우에는 만주의 안전에 대해서도 보장할 수 없다.
일본군은 만주에서 생활하는 일본 국민에 대하여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명심해주기 바란다. 그러므로 만주에 기지를 둔 한국인 망명단체들을 즉시 추방하여 중국의 군사들이 일본에 대하여 성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성의가 보여지지 않을 경우에는 일본군이 직접 진격하여 한국인 망명단체들을 토벌하고 일본의 정당한 권익을 수호하겠다!”
일제의 이와 같은 협박이 계속되자 만주의 군벌 장작림으로서는 그렇지 않아도 만주내부의 비정(秘政)으로 말미암아 차츰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불리한 입장에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군 제1혼성여단장인 맹부덕(孟富德) 소장(小將)이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의 본부가 있는 길림성(吉林省) 왕청현(汪淸縣) 대왕청(大汪淸)을 찾아갔다. 북로군정서의 총재인 서일(徐一)이 부총재인 현천묵(玄天默)과 함께 맹부덕을 맞아 성대한 연회를 베풀고 융숭한 대접을 했다.
“여러분을 이처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번번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맹부덕이 먼저 인사를 하자 서일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중국군의 배려가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이 정도의 군세를 만들어놓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즈음 일본군에서 중국군을 몹시 괴롭힌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것이 다 우리 때문에 그와 같은 고충을 당하고 있으니 정말 송구스럽습니다. 우리는 중국 군사들의 후원만 믿고 있는 형편이니 무엇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최근 상황은 어떠합니까?”
맹부덕은 서일의 질문을 받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중국인과 한국인 사이의 우의가 어디 어제 오늘에 비롯된 것입니까? 비록 내가 개인적인 힘은 없지만 힘이 닿는데까지는 조선 독립군에 협조할 것입니다.”
맹부덕은 잠시 긴 한숨을 내쉬며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요즈음 일본군에서 공갈·협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짐작하리라 믿고 있겠지만 지금 일본의 세력은 한참 하늘로 뻗고 있지만 중국의 입장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더구나 북경 정부에서도 여러가지 일로 이쪽 동삼성(東三省)에까지 힘을 쓸 수 없는 실정임을 여러분께서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입니다만 이 곳 왕청현(汪淸縣)을 떠나 밀림지대로 이동해주셨으면 저희가 편하겠습니다.”
서일과 현천묵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멍하니 정신을 잃을 정도로 불안해졌다. 겨우 여기에 자리를 잡고 독립군의 전투력을 배양하면서 교포들의 자치력을 고취시킨 세월이 얼마인데 이제 와서 이곳을 떠나라니, 북로군정서의 간부들은 눈 앞이 캄캄해졌다.
맹부덕은 미안한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참으로 저도 이런 이야기를 꺼내게 되어 죄송스럽습니다만, 일본군 측은 훈춘에서의 참변을 구실로 간도 근방에 이미 1개 연대의 병력을 배치시키고 있습니다. 일본은 마음만 먹는다면 만주에 5만명 이상의 전투병력을 진출시킬 수 있는 힘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걸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의 우의는 결코 가면이 아닙니다. 당신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우리는 힘이 미치는대로 협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서일과 현천묵은 얼어붙은 얼굴로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이게 다 나라가 멸망하게 된 설움이라 생각하니 마음에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일은 비서 윤창현(尹昌鉉)을 시켜 맹부덕을 침소로 안내하게 하고는 즉시 간부들의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군사부 총사령관 겸 사관연성소장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은 이 자리에서 맹부덕의 요구 내용을 듣고는 역시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맹부덕이 우리에게 그같은 요구를 하는 것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어느 특정인의 흑심에서의 요구도 아니며 다만 악랄한 일본인들의 만주 침범을 위한 야욕과 그를 실천하는데 장애가 되는 우리 독립군을 제거하기 위한 방법 때문에 상황이 곤란해진 것이니 비록 지금은 힘들지라도 먼날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일시 후퇴하는 전술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를 뒤에서 협조해주는 중국 측의 입장을 고려하더라도 맹부덕의 요구에 따르는 수 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김좌진 장군으로서도 별다른 묘안이 떠오를 수 없었기에 서일에게 이같은 의견을 개진하였다. 당시 일본과의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 중국 측의 입장이었으니 피차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빠른 시간내에 이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서일은 맹부덕의 요구에 응하기로 하고 다음날 착잡한 심정으로 다시 맹부덕을 접견했다.
“욕심 같아서는 이곳에 더 머물러 있고 싶지만 맹부덕 장군과 중국군의 입장이 난처해진다면 떠날 수 밖에 없겠지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떠나겠습니다. 워낙 식구들이 많으니 준비할 여유를 많이 주십시오. 곧 떠날 준비를 하겠습니다.”
“그래, 이동할 장소는 결정하셨습니까?”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만 혹시라도 장군님께서 생각해 두신 장소라도 계신지요?”
“이곳을 오면서 궁리 끝에 제가 생각해둔 곳이 있기는 하지만... 저기 안도현(安圖縣)의 밀림지대는 어떨런지요? 제가 부하들을 훈련시킬때 가본 곳이기는 합니다만 그 곳이 여기 서대파(西大坡)보다 뒤지지 않는 천연적인 요새지로 나로서는 권고하고 싶은 곳입니다.”
“그렇게까지 배려하여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릴 수 없습니다. 나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니 당장 어디로 간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장군님의 의사를 참고해서 좋은 곳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이렇게 한국 독립군 측의 서일과 중국군 측의 맹부덕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유대를 강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서일로부터 맹부덕의 조언을 전해들은 김좌진 장군은 이곳에서 일본군의 침공을 받아 인명피해를 보느니 차라리 천연적인 요새지를 찾아 아군의 유리한 고지도 만들고 안전한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좋을 뿐 아니라 중국 측에게도 일본군에게 입장을 세워준 셈이 되었으니 일조이석(一朝二夕)의 성과를 얻은 셈이라 자평해도 무방하다고 서일을 격려하였다.
맹부덕은 북로군정서의 기지를 떠나면서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과거에 천자국(天子國)을 자처하며 천하를 호령하던 대국(大國)의 야전군사령관으로서 이제 야만적인 섬나라의 군인들에게 공갈과 협박을 받아 이에 굴복하고 일본과 싸우려는 한국 독립군을 그 근거지에서 몰아내는 결과가 되었으니 중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땅에 떨어졌다고 생각되어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는 것이었다.
김좌진 장군은 군사부의 지휘관들을 모아 숙의한 끝에 맹부덕이 천거한 안도현(安圖縣)을 이동장소로 정하고 현지를 조사할 선발대를 급파했다. 그리고 나서 김좌진 장군은 모든 부대원에게 이동준비를 명령했다. 일이 이와 같을 바에는 하루속히 이동하고 질서유지에 힘쓰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맹부덕이 중국군 본영에 도착하면 북로군정서의 부대이동이 일본군에게 알려질 것이고 일본군이 이 계획을 미리 알게 된다면 아군의 이동노선을 차단하고 반격해올 것이며, 병력과 화력면에서 일본군보다 열세인데다가 일본군이 요새지를 미리 점령하고 잠복해있다가 아무 준비도 없는 독립군을 공격할 경우 부대 자체가 와해될 것이 명확하기 때문에 김좌진 장군은 맹부덕이 귀임하기 전에 일본군과 마찰없이 요새지를 빠져나가야 안전하겠다는 판단에서 이동을 서둘렀다. 만하루만에 이동준비가 끝나고 곧 선발대의 복명만 기다리고 있었다.
김좌진 장군은 상황이 다급하여 어제 저녁 막사에서 새고 이동준비를 마친 뒤에야 숙소에 들렀다.
영문도 모르고 밀림 속에 혼자 있던 이복희는 김좌진을 보자 깜짝 놀랐다. 김좌진의 모습은 하루 못 본 사이에 얼굴이 헬쑥하고 온 몸이 먼지로 쌓여 엉망이었다.
“장군님, 대체 무슨 일이 있어요?”
김좌진 장군은 정인(情人)인 이복희의 두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으며 “이제 곧 우리 독립군은 왜군과의 대대적인 전투를 벌이기 위해 출전해야 한다. 그대는 교포들이 사는 마을로 들어가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장군님, 이번에는 저도 따라 갈래요. 저만 떼어 놓고 가지 마세요.”
이복희는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지만 김좌진 장군은 총탄이 날고 피와 살점이 튀는 전쟁터에 아녀자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하면서 황급히 숙소에서 나와 부대로 돌아왔다.
임신중이던 이복희는 뱃속의 아기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며 흐느꼈다.
‘아가야, 아버지가 대승을 거두고 돌아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