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국은 왜 추락할 수밖에 없었는가?

대모달201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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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2011-07-09]

 

최성국(수원 삼성)은 한 때 ‘리틀 마라도나’로 불렸던 한국 축구의 기대주였다.

그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창원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부장검사 이성희)는 2010년 6월부터 10월 사이 열린 6개 구단의 K리그 15경기(리그컵 대회 2경기 포함)에서 승부조작이 이루어진 사실을 밝혀냈다고 7일 발표했다. 그중 가장 관심을 모은 선수는 최성국이다. 결백하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정했기 때문에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이 크다.

#2010년 8월

일간스포츠는 지난해 8월 최성국이 승부조작에 연루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김동현이 조폭에게 협박당하고 구타까지 당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최성국에게 전화로 ‘요즘 K-리그에 승부 조작이 있다더라’고 넌지시 물었다. 최성국은 “그런 이야기가 있느냐. 무슨 이야기가 나도냐”고 되물었다. 몇 주간 추가 취재했지만 팩트를 확인할 수 없었다.

#2011년 5월6일

인천 골키퍼 윤기원이 지난 5월 6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일간스포츠는 승부조작이 개입됐을 가능성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윤기원의 동료 중에 ‘승부조작 세력의 압력이 사망 원인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5월 25일 K-리그에서 승부조작을 한 혐의가 창원 지검의 수사 결과 드러났다. 윤기원이 생을 마감한 지 약 20일 만이다. 이 때는 대전과 광주 등 형편이 열악한 시민구단 선수들이 검찰의 표적이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후 전북 현대에서 은퇴 후 브로커 활동을 한 정종관이 승부조작을 참회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검찰의 수사에 가속도가 붙었다. 루머가 하나 둘씩 실체를 드러냈다.

#2011년 5월31일

프로연맹은 5월 31일 승부조작 재발 방지를 위한 워크숍을 열었다. 기자들의 요청에 의해 승부조작 루머에 휩싸인 선수들이 기자회견을 했다. 최성국은 이 자리에서 “내가 잘못했다면 검찰에 불려갔지 여기 있겠느냐. 한점 부끄럼이 없다”고 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승부조작을 시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이시기에 자신의 잘못을 일찍 시인했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2011년 6월 26일

최성국은 26일 검찰에 불려갔다. 수원 삼성은 “참고인 조사일뿐”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검찰에 불려가기 직전 연맹에 자진 신고를 했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자진신고를 해서 선처를 받으려는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최성국은 구단을 통해 “승부조작 모의에만 가담했다. 돈을 돌려줬다”라며 승부조작에 살짝 휩쓸렸을뿐 가담한 건 아니라고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결과는 다르다. 최성국이 김동현을 비롯한 선수 몇 명을 승부조작에 끌어들였다고 보고 있다. 나중에 돌려주기는 했지만 400만원을 수수했다.

수원 삼성 관계자는 “광주 상무가 숙소로 쓰는 호텔에 조폭들이 방을 잡았다고 한다. 최성국이 조폭 방으로 불려가 협박을 받았다. 그런 상황에서 승부조작을 거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고 안타까워했다. 조폭이 선수단의 안방까지 진을 치고 들어왔다는 건 가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다. 어쩌면 윤기원이 죽은 원인을 파헤칠 단서가 될 수도 있다.

#2011년 7월 7일

최성국은 검찰 발표 후 소속팀 수원을 통해 "승부 조작에 연루된 것에 대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다. 나를 응원해 주신 팬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이제야 고개숙였다. 하지만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검찰은 최성국을 불구속 기소했다. 지난번 대전과 광주 선수들에게 내려진 징계 기준에 따르면 영구 제명을 피하기 힘들다.

승부조작이라는 악마의 덫에 빠진 후 최성국은 이런 저런 이유로 거짓말을 계속했다. 어쩌면 이제야 그 지옥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잡았는 지도 모른다.

검찰은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기원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다. K-리그에는 또다른 최성국이 있을 것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일간스포츠 김민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