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전 이 용어 혹은 개념이 현 개독교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키워드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재 기독교의 믿음의 목적은 천당에 가는것. 지극히 기복적인 것이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곁으로, 그의 아들인 예수의 곁으로 가는것이 최종목표죠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간다' 라는 명제가 참일경우 천국에 가면되고 거짓일경우 밑져야 본전이라며 보험을 들라고 말하는분도 몇 있죠.
이런 믿음의 목적은 옳지 못합니다. 물론 (또 불교용어를 사용하지만) 소승에서 대승으로 올때 기복적인 소스는 배제할수 없다는것을 알지만은 최종목적은 예수처럼 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천국행 티켓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것이 되어야하죠.
하지만 저는 한국교회를 짊어질 우리 기독 청소년세대의 믿음이 아까 제가 언급했던 보험을 드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않아 안타깝습니다. 초,중,고등부 학생들은 설교시간에 휴대폰 게임을하며 공과공부시간엔 얇은 대학부 봉사 선생님들의 지갑에 빌어 간식을 먹습니다. 그들에겐 교회란 그저 먹고 즐기다가 천국행 티켓이 나오는 이상적인 곳이죠. 청년 대학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책대신 카라멜 마끼야또 또 스마트폰을 들고와서 와이파이존인 교회에서 웹서핑을 즐깁니다. 혹은 주변인들의 시선때문에 믿음이 신실한척 교회 수련회를 억지로 나가는 교인도 있을겁니다. (꼭 가야한다는 수련회 광고때문에)
물론 제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독교라 불리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죠.
카라멜 마끼야또 처럼 달달함 속에서 얻는 깨달음보다는 쓰디쓴 원두커피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아니 달달한 예배를 드려도 진정성을 갖는다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제생각 같아선 클럽활동이라던지 중,고등부의 반 개념을 없애고싶습니다. 소승으로 돌아가 개개인이 부족한 사람인것을 깨닫고 스스로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해야지. 주변 시선에 갇혀 새벽기도 개근했다며 우쭐해하는 믿음이 팽배하니까 개독교 소리를 듣는거라 저는 믿습니다.
이런 생각에 근거하여 대표기도도 부정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각자 개개인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것이죠 하지만 기도를 잘하시네~ 못하시네~ 평가받고.... 정작 필요한건 언변이 아니라 말은 조금 안나오더라도 하나님과 소소한것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는 맘이 필요한게 아닐까요?
또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있습니다. 왜 목사님이 신격화 되는 기분이 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주는분이 목사님이신데 왜!? "역시 우리 목사님 짝짝짝" ,"오늘 목사님 말씀 좋았어." 또 제가 지적했던 기복적인 성격또한 넘치기에 목사님을 보면 옷자락을 잡고 기도해달라며 쓰러집니다. 왜!! 대체 왜!! 아버지께 엎드리기전에 목사님께 엎어지는걸까요. 우린 우리의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있습니다.
전 소위 말하는 큰교회라고 하죠. 명성교회에 다니는 고2 학생입니다.
고등부에 재적되어있지만 대예배를 드리며 깨달으려 노력하는중이죠
어느순간부터 제가 친해진 친구때문에 교회를가는것같고, 선생님을 보러 교회를가는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부족해진것같다 하며 제자학교라는 프로그램도 다녀봤습니다. 프로그램을 하면할수록 주변의 시선에 마땅히 해야하는것같아 마음에선 별로 와닿지 않은채 활동해온것같아 죄책감이 들어왔죠.
저의 예를 보면 어떤것을 느끼실수 있습니까?
너 선생님이 찾으셔 해서 가는게 아니고 개개인이 깨달아야 한다는거죠
수련회를 가더라도 다같이 통성기도하며 깨달을게 아니고 개개인이 하나님과 대화 해야한다는거죠
왜 통성기도할때 옆사람이 오래하니까 눈치를 봅니까 이런면에서 점점 커지는 큰 교회를 부정하고싶습니다.
現 기독교의 문제점
전 모태신앙 이라고 하죠?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하나님을 믿은 , 세례까지 받은 고2학생입니다.
교회를 다니고 있는 제 또래인 10대 아니 청년,대학부 형,누나 들에게
생각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틀릴수도 있는 생각을 몇자 옮겨봅니다.
현재 우리 교회 아니 우리 기독교는 개인의 깨달음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깨달음이란 용어? 불교에서 사용하는 개념인것은 압니다.
그렇지만 전 이 용어 혹은 개념이 현 개독교라고 불리는 기독교의 이미지를 회복시키는 키워드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현재 기독교의 믿음의 목적은 천당에 가는것. 지극히 기복적인 것이죠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곁으로, 그의 아들인 예수의 곁으로 가는것이 최종목표죠
우스갯소리로 '하나님을 믿으면 천당에 간다' 라는 명제가 참일경우 천국에 가면되고 거짓일경우 밑져야 본전이라며 보험을 들라고 말하는분도 몇 있죠.
이런 믿음의 목적은 옳지 못합니다. 물론 (또 불교용어를 사용하지만) 소승에서 대승으로 올때 기복적인 소스는 배제할수 없다는것을 알지만은 최종목적은 예수처럼 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천국행 티켓은 그 뒤에 따라오는 부수적인것이 되어야하죠.
하지만 저는 한국교회를 짊어질 우리 기독 청소년세대의 믿음이 아까 제가 언급했던 보험을 드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않아 안타깝습니다. 초,중,고등부 학생들은 설교시간에 휴대폰 게임을하며 공과공부시간엔 얇은 대학부 봉사 선생님들의 지갑에 빌어 간식을 먹습니다. 그들에겐 교회란 그저 먹고 즐기다가 천국행 티켓이 나오는 이상적인 곳이죠. 청년 대학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책대신 카라멜 마끼야또 또 스마트폰을 들고와서 와이파이존인 교회에서 웹서핑을 즐깁니다. 혹은 주변인들의 시선때문에 믿음이 신실한척 교회 수련회를 억지로 나가는 교인도 있을겁니다. (꼭 가야한다는 수련회 광고때문에)
물론 제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독교라 불리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죠.
카라멜 마끼야또 처럼 달달함 속에서 얻는 깨달음보다는 쓰디쓴 원두커피속에서 얻는 깨달음이 더 가치있는 것입니다.
아니 달달한 예배를 드려도 진정성을 갖는다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제생각 같아선 클럽활동이라던지 중,고등부의 반 개념을 없애고싶습니다. 소승으로 돌아가 개개인이 부족한 사람인것을 깨닫고 스스로 하나님의 도구가 되려고 노력해야지. 주변 시선에 갇혀 새벽기도 개근했다며 우쭐해하는 믿음이 팽배하니까 개독교 소리를 듣는거라 저는 믿습니다.
이런 생각에 근거하여 대표기도도 부정하고 싶습니다. 기도는 각자 개개인이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것이죠 하지만 기도를 잘하시네~ 못하시네~ 평가받고.... 정작 필요한건 언변이 아니라 말은 조금 안나오더라도 하나님과 소소한것이라도 나누고 싶어하는 맘이 필요한게 아닐까요?
또 한국교회의 문제점은 있습니다. 왜 목사님이 신격화 되는 기분이 들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신 전해주는분이 목사님이신데 왜!? "역시 우리 목사님 짝짝짝" ,"오늘 목사님 말씀 좋았어." 또 제가 지적했던 기복적인 성격또한 넘치기에 목사님을 보면 옷자락을 잡고 기도해달라며 쓰러집니다. 왜!! 대체 왜!! 아버지께 엎드리기전에 목사님께 엎어지는걸까요. 우린 우리의 생활을 돌아볼 필요가있습니다.
전 소위 말하는 큰교회라고 하죠. 명성교회에 다니는 고2 학생입니다.
고등부에 재적되어있지만 대예배를 드리며 깨달으려 노력하는중이죠
어느순간부터 제가 친해진 친구때문에 교회를가는것같고, 선생님을 보러 교회를가는것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부족해진것같다 하며 제자학교라는 프로그램도 다녀봤습니다. 프로그램을 하면할수록 주변의 시선에 마땅히 해야하는것같아 마음에선 별로 와닿지 않은채 활동해온것같아 죄책감이 들어왔죠.
저의 예를 보면 어떤것을 느끼실수 있습니까?
너 선생님이 찾으셔 해서 가는게 아니고 개개인이 깨달아야 한다는거죠
수련회를 가더라도 다같이 통성기도하며 깨달을게 아니고 개개인이 하나님과 대화 해야한다는거죠
왜 통성기도할때 옆사람이 오래하니까 눈치를 봅니까 이런면에서 점점 커지는 큰 교회를 부정하고싶습니다.
제 또래인 중,고등부 학생과 청년대학부 형,누나들 제 생각이 어떠십니까
전 이런 대학부 중고등부때문에 신물이 날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