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에 있을 줄 알았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심복이며 첩보 전문가 고죽리(高竹離)가 석성으로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고죽리는 그 동안 당황(唐皇)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다고 했다.
“아니, 고죽리 공(公)! 그럼 구사일생(九死一生)을 하신 셈이군요.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그런데 어찌하여 아무 기별도 없이 제가 있는 석성부터 찾아오셨어요?“
고죽리의 나이는 마흔 한 살이었지만 고초를 많이 겪은 탓인지 벌써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놀라 반기면서도 질문을 연발하는 연수영(淵秀英)에게 고죽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리 연통도 못 하고 이렇게 찾아오게 됐지 뭡니까! 사실은 그동안 당적(唐敵)들에게 붙들려 있다가 탈출한 거외다. 대막리지(大莫離支) 합하(閤下)의 명령에 따라 병마대원수(兵馬大元帥) 고정의(高正義) 대인의 휘하에 종군하여 요동벌로 건너와서 당괴(唐傀) 이세민의 군영을 염탐하다가 사로잡혔었지요. 허 참, 원순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소인도 이젠 늙었나봅니다! 허허허…”
“포로로 잡히셨다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나야 뭐 젊어서부터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으니 새삼스레 고생이랄 거야 있나요? 그건 그렇고 우선 아가씨께서 수군의 군주(軍主)로 승차(陞差)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축주(感祝酒)부터 한 잔 올려야겠는걸…”
그러고 나서 고죽리는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그가 당군에게 사로잡힌 곳은 안시성 근처 야산에서였다. 고정의 원수의 명령에 따라 안시성을 포위한 당군 본진의 사정을 정탐하려고 오골성에서 출발한 지 이틀 뒤였다. 허름한 차림의 농부로 위장을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가느라고 당군에게 항복한 전 백암성주 손대음의 심복 부하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신분이 탄로 난 고죽리는 곧바로 태종의 본진으로 압송되었다. 태종이 친히 문초했다.
“네가 개소문의 부하인 고죽리인가?”
“그렇소.”
“그런데 네 얼굴이 어찌 그리 말랐는고?”
“몰래 샛길을 타고 오느라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 굶었소이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배가 고파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겠구나. 여봐라! 이 자에게 우선 먹을 것부터 주도록 하라!”
태종의 지시에 따라 시녀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대충 먹고 나자 태종이 고죽리를 다시 불러 이렇게 말한다.
“너의 임무가 첩자이니 빨리 돌아가서 너의 주군인 개소문에게 복명(復命)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짐이 새 신을 주고 너를 놓아줄 터이니 너는 바로 개소문에게 돌아가 이렇게 전하라. 짐의 군영의 사정을 알고 싶으면 짐에게 떳떳이 사람을 보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샛길로 몰래 보내 굶주리게 하고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어허허…!”
하지만 태종이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개소문의 심복에게 음식을 주고 신도 주고 그대로 살려서 보낼 리가 만무했다. 부하들 앞에서는 통 큰 지도자로 행세하며 그대로 살려서 돌려보내주겠다고 하고는 꿩 구어 먹은 소식이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당나라로 후송하는 부상병들 편에 고죽리도 포로로 딸려 보냈다.
그러나 고죽리는 순순히 당나라로 끌려갈 사람이 아니었다. 기회를 틈타 잽싸게 달아나 건안성에서 고원부가 내준 배를 타고 해로로 오골성의 요동방면군 본영으로 가는 도중에 일부러 석성을 찾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잘 오셨어요! 무사하니 반갑기도 하고요! 오골성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여기서 며칠 몸조리나 하고 쉬었다가 가세요. 가실 때 건안성의 배는 돌려보내고 제가 더 날랜 배를 한 척 내드릴 테니까요.”
“이거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할까요? 그렇지만 며칠씩 여기서 편히 쉴 수는 없어요! 빨리 돌아가서 보고를 해야 되니까……”
한편, 고정의의 군대는 대오를 정돈하고 원래 영채를 설치했던 곳보다 십리쯤 더 천산산맥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의 부하 장수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정의의 판단은 단호했다.
“대막리지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는 안시성을 구원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연작전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첫 교전에서 적병 7만의 목을 베었다고는 하나 당군의 수는 아직도 많다. 그러니 우리는 안전하게 천산산맥을 뒤로 하고 벌판을 바라보며 산중턱에 진을 친다면 당군은 아군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주 이세민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또 함부로 안시성을 공략하지 못할 뿐더러 이 산맥을 넘어 압록수로 향할 수도 없다. 그러니 누구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말도록 하라!”
그제야 장수들은 고정의의 깊은 지혜에 감탄하고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고정의의 군대가 영채를 십여리나 더 뒤로 물렸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은 이상하게 여겨 장수들을 소집했다.
“고정의의 고구려군이 나와서 우리와 싸우면서 안시성으로 가야 정상일텐데 왜 뒤로 후퇴를 한단 말인가?”
여러 장수들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이 나서서 이야기한다.
“아마도 아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태종은 한심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신경질을 낸다.
“지난번 전투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고정의의 군대에 의해 7만의 군사가 희생되었다. 이때 고구려군의 피해는 오륙천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고구려군의 완승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우리를 두려워한단 말이냐?”
강하왕이 머쓱해서 뒤로 돌아가 숨어버렸다.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나섰다.
“폐하, 제 생각에는 저들이 지연전술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왜 지연전술을 쓸까?”
“우리의 후방에서 오는 보급로가 길어지고 앞으로 이삼개월만 있으면 요동벌의 혹독한 추위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고정의가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은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과연 고정의는 심계가 무서운 노장이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이세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이냐?”
이세적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한 며칠 정도 싸움을 걸어 보다가 그래도 응전하지 않으면 별 수 없습니다. 군사를 절반 정도 나누어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압니다.”
태종도 별다른 묘책이 없는지 한숨만 내쉬다가 다시 장수들에게 묻는다.
“장량에게 건안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라고 전령을 보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냐?”
장손무기가 대답했다.
“실은 장량이 지난번 구효충에게 군선 4백척과 병사 2만명을 주어 고구려 수군의 본진을 치도록 했는데, 구효충이 해양도에서 고구려 수군에게 패배하고 전사하는 바람에 잔뜩 겁을 먹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 사실을 왜 이제야 이야기한단 말이냐?”
“장량이 폐하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 전투 결과를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첩보에 따르면 고구려 수군을 이끄는 대장이 올해 나이 스물아홉의 젊은 여자인데,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수영이라고 합니다.”
태종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멍청한 것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계집에게 구효충이 당했다는 말이야! 어떻게 수염도 나지 못하는 계집에게 번번이 지는 놈들이 대당제국의 장수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짐을 까맣게 속이고 있었다니…! 아, 이렇게 짐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는가?”
“황공무지로소이다!”
“거 참, 동이(東夷) 놈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구나! 신라는 변변한 사내가 없어서 덕만(德曼)이란 할망구를 임금으로 내세우질 않나, 고구려는 또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을 수군 대장으로 삼았다니, 어허! 이야말로『주역(周易)』에서 말한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고, 암퇘지가 껑충거린다는 불길하고 흉험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랴! 으흠, 어험, 대총관은 듣거라.”
“예, 폐하!”
“장량 그놈에게는 아직도 10만의 병력과 1천여척의 군선이 있다. 당장 전령을 장량에게 보내 속히 건안성을 함락시키라고 전하라! 건안성이라도 우리에게 넘어 와야 안시성도 쉬워지고 그래야만 우리가 천산산맥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고 태종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세적은 장량이 있는 비사성에 다시 사람을 보내어 건안성을 빨리 치라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한편 이세적은 군사들을 독려해서 고정의의 군대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고구려군은 가끔 쇠뇌를 쏘는 정도였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이렇듯 싱겁게 날짜만 흘러갔다. 태종은 고정의에게 싸울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안시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태종이 친솔하는 당의 주력군은 안시성 동쪽에 본진의 영채를 세웠다.
“저 안시성에 군사가 얼마쯤 있는가?”
태종의 물음에 이세적이 대답했다.
“지키는 군사가 1만 5천여명 정도이고 주민은 약 2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태종은 다시 이야기했다.
“우리는 정병만 50만이니 보름 정도면 격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강하왕이 씩씩하게 말했다.
“열흘이면 충분합니다. 안시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공성무기를 총동원하면 별 수 없을 것입니다.”
옆에 시립하고 있던 장손무기가 강하왕을 쳐다보며 일침을 놓는다.
“안시성은 산꼭대기에 있고 산은 가파르오. 이럴 경우 포차도 소용이 없소. 강하왕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오? 특히 고정의가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과연 열흘 갖고 되겠소?”
강하왕이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다.
“우리는 정병 50만이고 저들은 군민(軍民) 다 합쳐야 기껏 3만 5천인데 어찌 승상은 우리의 기를 죽이려 드시오?”
장손무기가 화가 나서 언성을 높여 질책하려고 했다. 이때 태종은 손을 들어 그들의 다툼을 말리면서 말했다.
“좌우지간 대총관과 강하왕은 군사를 독려해서 최선을 다해 안시성을 빨리 함락시켜라!”
그 때 황제의 친위대장인 위지경덕(尉遲敬德)이 태종에게 간언한다.
“고구려의 군사들이 비록 용맹하다고는 하나, 아군에 비해 군세가 압도적으로 적으니 필시 이번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백암성주 손대음처럼 우리에게 투항할 마음이 생길수도 있으니 먼저 안시성의 오랑캐들에게 항복을 권해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뭐, 본격적으로 싸움을 하기 전에 안시성의 군사들을 협박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태종이 위지경덕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이세적의 부장인 절충도위(折衝都尉) 조삼량(曹三良)이 백기를 들고 안시성 남문 앞으로 가서 황제의 칙서를 읽기 시작했다.
“안시성주와 성민들은 잘 들어라! 이번에 짐이 몸소 요동 땅에 건너온 것은 오로지 너희 임금을 죽인 개소문을 벌주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순순히 성을 들어 항복한다면 천자의 백성으로 받아들일 것이로다. 추호라도 거역하고 항거한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순리로써 타이르노니 당장 성문을 열고 황제의 은덕을 입도록 하라!”
조삼량이 칙서를 소리 높여 읽고, 통역을 마치자 남문 문루 위에서 부하 장병 및 성민들과 함께 듣고 있던 성주 양만춘이 이렇게 대답했다.
“항복은 없다! 너희 모두 요동 벌판에서 백골이 되어 뒹굴기 싫으면 한시바삐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너는 가서 너의 주인 이세민에게 이렇게 전하라! 남의 나라 걱정은 말고 돌아가서 네 나라나 잘 다스리라고 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전하라! 저는 제 형제를 죽이고 제 아비를 내쫓고 임금 자리에 오른 패륜아인 주제에 무슨 염치로 남의 나라 일에 참견을 하는고?”
안시성의 군사와 성민들은 일제히 북을 치고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함성을 올렸다. 그것은 덤비려면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결사항전의 결의나 마찬가지였다.
너나 잘 하라더라는 양만춘의 말을 전해들은 태종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안시성을 빼앗는 날, 사내들은 모조리 산 채로 구덩이에 묻고 계집들은 죄다 겁탈한 뒤 종년으로 삼도록 하라!”
이세적이 어명을 받자 즉각 총공격령을 하달했다. 당군은 포차를 이용해 바위만한 큰 돌덩이를 쉴 새 없이 휭휭 날렸고, 수백대의 충차와 운제를 몰아 성벽으로 달려갔다. 군공(軍功)을 다투는 장수들과 살인·방화·강간·약탈의 기대에 부푼 사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격했다. 하지만 안시성의 군민들이 팔짱 끼고 구경만 할 턱이 없었다. 그들은 활을 쏘고 돌을 던지거나 뜨거운 물을 성벽 아래로 붓는 등 필사적인 의지로 성을 지켰다.
그런데 안시성은 요동성이나 백암성과는 달리 평지성이 아닌 산성이었다. 거대한 포차를 평지처럼 쭉 벌려 세워놓고 포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또 신무기라고 자랑하던 포차와 충차는 지난 서너 차례의 공성전에서 고구려군에 의해 여러 대가 부서지기도 했다. 따라서 포격전은 그 위력이 많이 약화됐다. 당군은 그저 목숨을 걸고 성벽으로 접근해서 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전사자나 부상자만 늘어갔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갔지만 안시성은 좀처럼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장수들 가운데서 안시성이고 건안성이고 그대로 두고 바로 오골성으로 진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연개소문의 명령에 따라 구원병을 거느리고 왔다가 주필산에서 항복한 배반자 고연수가 앞장섰다.
“폐하! 미천한 소장이 이미 폐하께 몸을 맡기었으니 감히 충심을 바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천자께서 대업을 빨리 이루어 소장들도 하루바삐 처자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기에 한 말씀 올리나이다. 지금 보건대 안시성 사람들은 그들의 집안을 돌보고 아껴서 사람마다 자진해서 싸우므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이미 10만이 조금 넘는 군사를 가지고도 폐하의 깃발을 보자 사기가 꺾이고 허물어졌으니, 고구려인들의 간담이 터질 것입니다. 하오나 오골성의 성주인 추정국이란 자는 늙고 둔한 사람이라 성을 굳게 지킬 수가 없으므로 폐하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면 아침에 다다라서 저녁에는 반드시 이길 것이며, 그 나머지 길을 막는 작은 성들은 반드시 황상의 위엄을 보고는 달아나고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 뒤에 물자와 양식을 거두어서 북치고 나아가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항복을 받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고연수가 그럴듯하게 말하자 유격장군(遊擊將軍) 설인귀(薛仁貴)가 그 주장에 동조했다.
“장량의 대군이 지금 비사성에 있으므로 그를 부르소서! 불과 이틀이면 달려올 수 있을 것이니, 고구려의 민심이 혼란해지는 틈을 타서 힘을 모아 오골성을 함락시키고, 압록수를 건너 곧바로 평양을 치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인가 하옵니다!”
태종이 듣고 보니 또한 그럴듯하기에 그 말에 따르려 하는데 장손무기가 앞으로 나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대저 천자가 친히 정벌하는 것은 보통 장수와는 달라서 모험을 하면서 요행을 바랄 수는 없사옵니다. 지금 건안성과 신성에 있는 적의 무리가 아직도 10만명이나 되는데, 만약 오골성으로 향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이옵니다. 먼저 안시성을 깨뜨리고, 이어서 건안성을 빼앗은 뒤에 군사를 이끌고 계속 진격하소서! 또한 바다를 비워둔 채 수군을 모두 뽑아 이리로 오게 해서도 아니 될 줄 아옵니다. 뱃길도 우리의 생명선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오니 먼저 안시성을 점령하는 것이 만전의 계책인가 하옵니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계속해서 안시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결정에 따라 장수들이 더욱 힘을 내서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양만춘은 빼어난 지략과 빠른 임기응변으로 독전하여 당군의 맹공을 잘 막아내었다.
그렇게 며칠을 두고 공성전(攻城戰)을 펼쳤지만 안시성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태종은 강하왕을 불러 질책했다.
“네가 열흘이면 족히 안시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열흘이 넘었다. 대관절 네가 갖고 있는 방책은 무엇이냐?”
강하왕은 쩔쩔 매며 말했다.
“아무래도 성의 동남쪽에 토산(土山)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통나무를 베어서 뼈대를 이루면서 사이사이에 흙주머니를 채워놓아 안시성보다 높게 토산을 만들어서 그 위에서 안시성을 내려다보면서 공격한다면 적장 양만춘도 손을 들지 않겠습니까?”
안시성 동남쪽에서는 때 아닌 토목공사가 벌어졌다. 당군 병사들은 흩어져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베어온 나무들로 산을 이루었다. 당병들은 곁가지를 쳐서 통나무를 만든 다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땅에 깊숙이 박았다. 그 다음 약간 작은 나무들로 통나무 기둥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열흘도 채 안되어서 토산의 뼈대 공사가 그럭저럭 이루어졌다.
성벽 위에 올라가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안시성주 양만춘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도적들이 토산을 만들려고 하는 모양이다. 즉시 쇠뇌를 이용해서 염초뭉치와 불화살을 날려라.”
갑자기 성 위에서 수백 발의 불화살이 토산의 목조 뼈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화살은 정확하게 토산의 목조 뼈대와 당군이 쌓아놓은 통나무 더미에 꽂히기 시작했다. 불화살을 맞은 통나무 기둥들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토산공사를 지휘하던 강하왕은 깜짝 놀라 군사들을 독려하며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만 갔다.
이때였다. 갑자기 동문이 열리더니 1천여명의 고구려군이 튀어나왔다. 손에는 날카로운 창과 시퍼런 도끼가 들려 있었다. 고구려군은 함성을 지르며 불을 끄기에 바빴던 당병들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불시의 습격에 놀란 당군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바빴다. 고구려군 병사들은 마음껏 당군들을 유린할 수 있었다. 산 밑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태종이 이때 군사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강하왕은 이날 고구려군의 기습에 목숨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날 점호를 해오니 당군은 약 2천 명 이상이 죽거나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토산의 목조 뼈대는 반 이상이 타서 숯검정이가 되어 있었다. 태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 군사들을 독려해서 안시성에 대한 공격을 더 한층 배가시키면서 다시 나무를 베어오게 시켰다. 당군은 하루에도 십여 차례씩 안시성 밑으로 기어 올라가 안시성을 공격했다. 그러는 한편 토산을 다시 쌓았다. 안시성의 고구려 군사들은 토산 공격에만 매달릴 수가 없었다. 성 밑에 다가오는 당병들을 항해 화살을 날리고 큰 바위를 굴러 내려뜨려야 했다.
안시성의 고구려 군사들이 기어 올라오는 당군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토산 재건 작업은 무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강하왕이 너무 군사들을 닦달하는 바람에 불이 반쯤 타 있던 나무기둥을 뽑고 다시 새로운 통나무로 박아야 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 위에 그대로 통나무를 엉성하게 연결해 뼈대를 만들고 사이사이마다 나뭇가지 덤불로 채워놓는 날림 공사를 자행해 버렸다. 그래서 이 날림 공사가 나중의 일이지만 토산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아무하자가 없어 보여서 강하왕은 그대로 공사를 진행시켰다.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기어 올라오는 당군을 치고, 또 한편으로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토산 축조 현장에 쇠뇌를 날려 허물어뜨려서 공사의 진행을 방해했다. 그러면 태종은 군사를 시켜 토산을 다시 쌓게 했다. 이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토산은 서서히 완공되어갔다.
「 ‘바다의 여왕’ 연수영 」(평해거사 황원갑 원작·정천 김재암 편작)5안시성, 그리고 장산군도 ⑴
● 제1차 여당전쟁(麗唐戰爭)의 승부처 안시성전투(安市城戰鬪)
요동에 있을 줄 알았던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심복이며 첩보 전문가 고죽리(高竹離)가 석성으로 찾아온 것은 그 무렵이었다. 고죽리는 그 동안 당황(唐皇)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에게 포로로 잡혀 있었다고 했다.
“아니, 고죽리 공(公)! 그럼 구사일생(九死一生)을 하신 셈이군요.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겠네요? 그런데 어찌하여 아무 기별도 없이 제가 있는 석성부터 찾아오셨어요?“
고죽리의 나이는 마흔 한 살이었지만 고초를 많이 겪은 탓인지 벌써 머리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고 있었다. 놀라 반기면서도 질문을 연발하는 연수영(淵秀英)에게 고죽리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미리 연통도 못 하고 이렇게 찾아오게 됐지 뭡니까! 사실은 그동안 당적(唐敵)들에게 붙들려 있다가 탈출한 거외다. 대막리지(大莫離支) 합하(閤下)의 명령에 따라 병마대원수(兵馬大元帥) 고정의(高正義) 대인의 휘하에 종군하여 요동벌로 건너와서 당괴(唐傀) 이세민의 군영을 염탐하다가 사로잡혔었지요. 허 참, 원순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소인도 이젠 늙었나봅니다! 허허허…”
“포로로 잡히셨다니,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나야 뭐 젊어서부터 이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게 일이었으니 새삼스레 고생이랄 거야 있나요? 그건 그렇고 우선 아가씨께서 수군의 군주(軍主)로 승차(陞差)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축주(感祝酒)부터 한 잔 올려야겠는걸…”
그러고 나서 고죽리는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주었다.
그가 당군에게 사로잡힌 곳은 안시성 근처 야산에서였다. 고정의 원수의 명령에 따라 안시성을 포위한 당군 본진의 사정을 정탐하려고 오골성에서 출발한 지 이틀 뒤였다. 허름한 차림의 농부로 위장을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가느라고 당군에게 항복한 전 백암성주 손대음의 심복 부하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신분이 탄로 난 고죽리는 곧바로 태종의 본진으로 압송되었다. 태종이 친히 문초했다.
“네가 개소문의 부하인 고죽리인가?”
“그렇소.”
“그런데 네 얼굴이 어찌 그리 말랐는고?”
“몰래 샛길을 타고 오느라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며칠 굶었소이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배가 고파서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겠구나. 여봐라! 이 자에게 우선 먹을 것부터 주도록 하라!”
태종의 지시에 따라 시녀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대충 먹고 나자 태종이 고죽리를 다시 불러 이렇게 말한다.
“너의 임무가 첩자이니 빨리 돌아가서 너의 주군인 개소문에게 복명(復命)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짐이 새 신을 주고 너를 놓아줄 터이니 너는 바로 개소문에게 돌아가 이렇게 전하라. 짐의 군영의 사정을 알고 싶으면 짐에게 떳떳이 사람을 보내라고 말이다. 그렇게 하면 샛길로 몰래 보내 굶주리게 하고 고생시키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어허허…!”
하지만 태종이 자신과 적대 관계에 있는 연개소문의 심복에게 음식을 주고 신도 주고 그대로 살려서 보낼 리가 만무했다. 부하들 앞에서는 통 큰 지도자로 행세하며 그대로 살려서 돌려보내주겠다고 하고는 꿩 구어 먹은 소식이었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당나라로 후송하는 부상병들 편에 고죽리도 포로로 딸려 보냈다.
그러나 고죽리는 순순히 당나라로 끌려갈 사람이 아니었다. 기회를 틈타 잽싸게 달아나 건안성에서 고원부가 내준 배를 타고 해로로 오골성의 요동방면군 본영으로 가는 도중에 일부러 석성을 찾았던 것이다.
“어쨌거나 잘 오셨어요! 무사하니 반갑기도 하고요! 오골성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여기서 며칠 몸조리나 하고 쉬었다가 가세요. 가실 때 건안성의 배는 돌려보내고 제가 더 날랜 배를 한 척 내드릴 테니까요.”
“이거 이렇게 고마울 수가…….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할까요? 그렇지만 며칠씩 여기서 편히 쉴 수는 없어요! 빨리 돌아가서 보고를 해야 되니까……”
한편, 고정의의 군대는 대오를 정돈하고 원래 영채를 설치했던 곳보다 십리쯤 더 천산산맥 쪽으로 이동하였다. 그의 부하 장수들은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고정의의 판단은 단호했다.
“대막리지께서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는 안시성을 구원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연작전을 쓰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첫 교전에서 적병 7만의 목을 베었다고는 하나 당군의 수는 아직도 많다. 그러니 우리는 안전하게 천산산맥을 뒤로 하고 벌판을 바라보며 산중턱에 진을 친다면 당군은 아군을 함부로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면 당주 이세민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또 함부로 안시성을 공략하지 못할 뿐더러 이 산맥을 넘어 압록수로 향할 수도 없다. 그러니 누구도 더 이상 이의를 제기하지 말도록 하라!”
그제야 장수들은 고정의의 깊은 지혜에 감탄하고 각자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고정의의 군대가 영채를 십여리나 더 뒤로 물렸다는 보고를 받은 태종은 이상하게 여겨 장수들을 소집했다.
“고정의의 고구려군이 나와서 우리와 싸우면서 안시성으로 가야 정상일텐데 왜 뒤로 후퇴를 한단 말인가?”
여러 장수들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강하왕(江夏王) 이도종(李道宗)이 나서서 이야기한다.
“아마도 아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태종은 한심하다는 듯이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신경질을 낸다.
“지난번 전투에서 우리는 일방적으로 고정의의 군대에 의해 7만의 군사가 희생되었다. 이때 고구려군의 피해는 오륙천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인 고구려군의 완승이었다. 그런 그들이 왜 우리를 두려워한단 말이냐?”
강하왕이 머쓱해서 뒤로 돌아가 숨어버렸다.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나섰다.
“폐하, 제 생각에는 저들이 지연전술을 쓰는 것 같습니다.”
“저들이 왜 지연전술을 쓸까?”
“우리의 후방에서 오는 보급로가 길어지고 앞으로 이삼개월만 있으면 요동벌의 혹독한 추위가 오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고정의가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태종은 한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과연 고정의는 심계가 무서운 노장이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고 이세적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책은 무엇이냐?”
이세적이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한 며칠 정도 싸움을 걸어 보다가 그래도 응전하지 않으면 별 수 없습니다. 군사를 절반 정도 나누어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옳을 줄로 압니다.”
태종도 별다른 묘책이 없는지 한숨만 내쉬다가 다시 장수들에게 묻는다.
“장량에게 건안성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전달하라고 전령을 보냈는데,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냐?”
장손무기가 대답했다.
“실은 장량이 지난번 구효충에게 군선 4백척과 병사 2만명을 주어 고구려 수군의 본진을 치도록 했는데, 구효충이 해양도에서 고구려 수군에게 패배하고 전사하는 바람에 잔뜩 겁을 먹고 있습니다.”
“뭐라고? 그 사실을 왜 이제야 이야기한단 말이냐?”
“장량이 폐하에게 문책을 당할 것이 두려워 전투 결과를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첩보에 따르면 고구려 수군을 이끄는 대장이 올해 나이 스물아홉의 젊은 여자인데,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인 연수영이라고 합니다.”
태종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런 멍청한 것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계집에게 구효충이 당했다는 말이야! 어떻게 수염도 나지 못하는 계집에게 번번이 지는 놈들이 대당제국의 장수라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짐을 까맣게 속이고 있었다니…! 아, 이렇게 짐의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는가?”
“황공무지로소이다!”
“거 참, 동이(東夷) 놈들은 하나같이 이상하구나! 신라는 변변한 사내가 없어서 덕만(德曼)이란 할망구를 임금으로 내세우질 않나, 고구려는 또 연개소문의 누이동생을 수군 대장으로 삼았다니, 어허! 이야말로『주역(周易)』에서 말한 암탉이 울어 새벽을 알리고, 암퇘지가 껑충거린다는 불길하고 흉험한 짓이 아니고 무엇이랴! 으흠, 어험, 대총관은 듣거라.”
“예, 폐하!”
“장량 그놈에게는 아직도 10만의 병력과 1천여척의 군선이 있다. 당장 전령을 장량에게 보내 속히 건안성을 함락시키라고 전하라! 건안성이라도 우리에게 넘어 와야 안시성도 쉬워지고 그래야만 우리가 천산산맥을 넘을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을 마치고 태종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이세적은 장량이 있는 비사성에 다시 사람을 보내어 건안성을 빨리 치라는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게 했다.
한편 이세적은 군사들을 독려해서 고정의의 군대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고구려군은 가끔 쇠뇌를 쏘는 정도였지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
이렇듯 싱겁게 날짜만 흘러갔다. 태종은 고정의에게 싸울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안시성을 공격하기로 했다. 태종이 친솔하는 당의 주력군은 안시성 동쪽에 본진의 영채를 세웠다.
“저 안시성에 군사가 얼마쯤 있는가?”
태종의 물음에 이세적이 대답했다.
“지키는 군사가 1만 5천여명 정도이고 주민은 약 2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태종은 다시 이야기했다.
“우리는 정병만 50만이니 보름 정도면 격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 강하왕이 씩씩하게 말했다.
“열흘이면 충분합니다. 안시성이 아무리 견고해도 공성무기를 총동원하면 별 수 없을 것입니다.”
옆에 시립하고 있던 장손무기가 강하왕을 쳐다보며 일침을 놓는다.
“안시성은 산꼭대기에 있고 산은 가파르오. 이럴 경우 포차도 소용이 없소. 강하왕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오? 특히 고정의가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데 과연 열흘 갖고 되겠소?”
강하왕이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다.
“우리는 정병 50만이고 저들은 군민(軍民) 다 합쳐야 기껏 3만 5천인데 어찌 승상은 우리의 기를 죽이려 드시오?”
장손무기가 화가 나서 언성을 높여 질책하려고 했다. 이때 태종은 손을 들어 그들의 다툼을 말리면서 말했다.
“좌우지간 대총관과 강하왕은 군사를 독려해서 최선을 다해 안시성을 빨리 함락시켜라!”
그 때 황제의 친위대장인 위지경덕(尉遲敬德)이 태종에게 간언한다.
“고구려의 군사들이 비록 용맹하다고는 하나, 아군에 비해 군세가 압도적으로 적으니 필시 이번 싸움은 승산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백암성주 손대음처럼 우리에게 투항할 마음이 생길수도 있으니 먼저 안시성의 오랑캐들에게 항복을 권해보는 것이 어떨는지요?”
“뭐, 본격적으로 싸움을 하기 전에 안시성의 군사들을 협박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태종이 위지경덕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이세적의 부장인 절충도위(折衝都尉) 조삼량(曹三良)이 백기를 들고 안시성 남문 앞으로 가서 황제의 칙서를 읽기 시작했다.
“안시성주와 성민들은 잘 들어라! 이번에 짐이 몸소 요동 땅에 건너온 것은 오로지 너희 임금을 죽인 개소문을 벌주기 위함이니라. 너희가 순순히 성을 들어 항복한다면 천자의 백성으로 받아들일 것이로다. 추호라도 거역하고 항거한다면 용서치 않으리라. 순리로써 타이르노니 당장 성문을 열고 황제의 은덕을 입도록 하라!”
조삼량이 칙서를 소리 높여 읽고, 통역을 마치자 남문 문루 위에서 부하 장병 및 성민들과 함께 듣고 있던 성주 양만춘이 이렇게 대답했다.
“항복은 없다! 너희 모두 요동 벌판에서 백골이 되어 뒹굴기 싫으면 한시바삐 돌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너는 가서 너의 주인 이세민에게 이렇게 전하라! 남의 나라 걱정은 말고 돌아가서 네 나라나 잘 다스리라고 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고 전하라! 저는 제 형제를 죽이고 제 아비를 내쫓고 임금 자리에 오른 패륜아인 주제에 무슨 염치로 남의 나라 일에 참견을 하는고?”
안시성의 군사와 성민들은 일제히 북을 치고 꽹과리 소리를 울리며 함성을 올렸다. 그것은 덤비려면 얼마든지 덤벼보라는 결사항전의 결의나 마찬가지였다.
너나 잘 하라더라는 양만춘의 말을 전해들은 태종의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안시성을 빼앗는 날, 사내들은 모조리 산 채로 구덩이에 묻고 계집들은 죄다 겁탈한 뒤 종년으로 삼도록 하라!”
이세적이 어명을 받자 즉각 총공격령을 하달했다. 당군은 포차를 이용해 바위만한 큰 돌덩이를 쉴 새 없이 휭휭 날렸고, 수백대의 충차와 운제를 몰아 성벽으로 달려갔다. 군공(軍功)을 다투는 장수들과 살인·방화·강간·약탈의 기대에 부푼 사졸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격했다. 하지만 안시성의 군민들이 팔짱 끼고 구경만 할 턱이 없었다. 그들은 활을 쏘고 돌을 던지거나 뜨거운 물을 성벽 아래로 붓는 등 필사적인 의지로 성을 지켰다.
그런데 안시성은 요동성이나 백암성과는 달리 평지성이 아닌 산성이었다. 거대한 포차를 평지처럼 쭉 벌려 세워놓고 포격을 가할 수가 없었다. 또 신무기라고 자랑하던 포차와 충차는 지난 서너 차례의 공성전에서 고구려군에 의해 여러 대가 부서지기도 했다. 따라서 포격전은 그 위력이 많이 약화됐다. 당군은 그저 목숨을 걸고 성벽으로 접근해서 기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시간이 갈수록 전사자나 부상자만 늘어갔다.
그렇게 날이 가고 달이 갔지만 안시성은 좀처럼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장수들 가운데서 안시성이고 건안성이고 그대로 두고 바로 오골성으로 진격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연개소문의 명령에 따라 구원병을 거느리고 왔다가 주필산에서 항복한 배반자 고연수가 앞장섰다.
“폐하! 미천한 소장이 이미 폐하께 몸을 맡기었으니 감히 충심을 바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천자께서 대업을 빨리 이루어 소장들도 하루바삐 처자식과 만날 수 있기를 바라기에 한 말씀 올리나이다. 지금 보건대 안시성 사람들은 그들의 집안을 돌보고 아껴서 사람마다 자진해서 싸우므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사옵니다. 저희는 이미 10만이 조금 넘는 군사를 가지고도 폐하의 깃발을 보자 사기가 꺾이고 허물어졌으니, 고구려인들의 간담이 터질 것입니다. 하오나 오골성의 성주인 추정국이란 자는 늙고 둔한 사람이라 성을 굳게 지킬 수가 없으므로 폐하께서 군사를 거느리고 그곳으로 가면 아침에 다다라서 저녁에는 반드시 이길 것이며, 그 나머지 길을 막는 작은 성들은 반드시 황상의 위엄을 보고는 달아나고 무너져 버릴 것입니다. 그런 뒤에 물자와 양식을 거두어서 북치고 나아가면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항복을 받는 것도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옵니다.”
고연수가 그럴듯하게 말하자 유격장군(遊擊將軍) 설인귀(薛仁貴)가 그 주장에 동조했다.
“장량의 대군이 지금 비사성에 있으므로 그를 부르소서! 불과 이틀이면 달려올 수 있을 것이니, 고구려의 민심이 혼란해지는 틈을 타서 힘을 모아 오골성을 함락시키고, 압록수를 건너 곧바로 평양을 치는 것이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는 지름길인가 하옵니다!”
태종이 듣고 보니 또한 그럴듯하기에 그 말에 따르려 하는데 장손무기가 앞으로 나서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사옵니다! 대저 천자가 친히 정벌하는 것은 보통 장수와는 달라서 모험을 하면서 요행을 바랄 수는 없사옵니다. 지금 건안성과 신성에 있는 적의 무리가 아직도 10만명이나 되는데, 만약 오골성으로 향한다면 그들이 우리의 뒤를 추격할 것이옵니다. 먼저 안시성을 깨뜨리고, 이어서 건안성을 빼앗은 뒤에 군사를 이끌고 계속 진격하소서! 또한 바다를 비워둔 채 수군을 모두 뽑아 이리로 오게 해서도 아니 될 줄 아옵니다. 뱃길도 우리의 생명선이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오니 먼저 안시성을 점령하는 것이 만전의 계책인가 하옵니다!”
태종이 그 말을 듣고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는 계속해서 안시성을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이런 결정에 따라 장수들이 더욱 힘을 내서 안시성을 공격했지만 양만춘은 빼어난 지략과 빠른 임기응변으로 독전하여 당군의 맹공을 잘 막아내었다.
그렇게 며칠을 두고 공성전(攻城戰)을 펼쳤지만 안시성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었다. 태종은 강하왕을 불러 질책했다.
“네가 열흘이면 족히 안시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고 했지만 이미 열흘이 넘었다. 대관절 네가 갖고 있는 방책은 무엇이냐?”
강하왕은 쩔쩔 매며 말했다.
“아무래도 성의 동남쪽에 토산(土山)을 만드는 것이 좋겠습니다. 통나무를 베어서 뼈대를 이루면서 사이사이에 흙주머니를 채워놓아 안시성보다 높게 토산을 만들어서 그 위에서 안시성을 내려다보면서 공격한다면 적장 양만춘도 손을 들지 않겠습니까?”
안시성 동남쪽에서는 때 아닌 토목공사가 벌어졌다. 당군 병사들은 흩어져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오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베어온 나무들로 산을 이루었다. 당병들은 곁가지를 쳐서 통나무를 만든 다음, 일정한 간격을 두고 땅에 깊숙이 박았다. 그 다음 약간 작은 나무들로 통나무 기둥들을 서로 연결시켰다. 열흘도 채 안되어서 토산의 뼈대 공사가 그럭저럭 이루어졌다.
성벽 위에 올라가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안시성주 양만춘은 코웃음을 쳤다.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 도적들이 토산을 만들려고 하는 모양이다. 즉시 쇠뇌를 이용해서 염초뭉치와 불화살을 날려라.”
갑자기 성 위에서 수백 발의 불화살이 토산의 목조 뼈대를 향해 날아들었다. 불화살은 정확하게 토산의 목조 뼈대와 당군이 쌓아놓은 통나무 더미에 꽂히기 시작했다. 불화살을 맞은 통나무 기둥들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토산공사를 지휘하던 강하왕은 깜짝 놀라 군사들을 독려하며 불을 끄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불길은 겉잡을 수 없이 퍼져만 갔다.
이때였다. 갑자기 동문이 열리더니 1천여명의 고구려군이 튀어나왔다. 손에는 날카로운 창과 시퍼런 도끼가 들려 있었다. 고구려군은 함성을 지르며 불을 끄기에 바빴던 당병들을 닥치는 대로 찌르고 베었다. 불시의 습격에 놀란 당군 병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기에 바빴다. 고구려군 병사들은 마음껏 당군들을 유린할 수 있었다. 산 밑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태종이 이때 군사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강하왕은 이날 고구려군의 기습에 목숨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날 점호를 해오니 당군은 약 2천 명 이상이 죽거나 화상을 입었다. 그리고 토산의 목조 뼈대는 반 이상이 타서 숯검정이가 되어 있었다. 태종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 군사들을 독려해서 안시성에 대한 공격을 더 한층 배가시키면서 다시 나무를 베어오게 시켰다. 당군은 하루에도 십여 차례씩 안시성 밑으로 기어 올라가 안시성을 공격했다. 그러는 한편 토산을 다시 쌓았다. 안시성의 고구려 군사들은 토산 공격에만 매달릴 수가 없었다. 성 밑에 다가오는 당병들을 항해 화살을 날리고 큰 바위를 굴러 내려뜨려야 했다.
안시성의 고구려 군사들이 기어 올라오는 당군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 토산 재건 작업은 무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강하왕이 너무 군사들을 닦달하는 바람에 불이 반쯤 타 있던 나무기둥을 뽑고 다시 새로운 통나무로 박아야 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 위에 그대로 통나무를 엉성하게 연결해 뼈대를 만들고 사이사이마다 나뭇가지 덤불로 채워놓는 날림 공사를 자행해 버렸다. 그래서 이 날림 공사가 나중의 일이지만 토산이 붕괴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아무하자가 없어 보여서 강하왕은 그대로 공사를 진행시켰다. 안시성의 고구려군은 기어 올라오는 당군을 치고, 또 한편으로는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토산 축조 현장에 쇠뇌를 날려 허물어뜨려서 공사의 진행을 방해했다. 그러면 태종은 군사를 시켜 토산을 다시 쌓게 했다. 이러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토산은 서서히 완공되어갔다.
안시성의 공방전은 그렇게 장기전으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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