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없지만,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review :
개봉 11일 만에 2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화제를 낳고 있는 공지영 소설 원작의 <도가니>를 보았다.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때, <도가니>는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극 초반 무진 지역의 안개를 활용하는 방식은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과 겹치는 것은 물론, <살인의 추억>에서 서태윤(김상경 분) 형사가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의 쓰임과 유사하다. 강인호(공유 분)와 서유진(정유미 분)의 캐릭터 설명을 위한 접촉 사고의 설정도 창의적이라기보다는 이전 영화들의 관습에 기대어 있다. 강인호가 시위대를 지켜보는 군중들 앞에서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 중 박신애(이요원 분)가 차량으로 마을을 이동하면서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울부짖는 결말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도가니>는 이러한 결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힘이 센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뛰어나다. 특히 공유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싶을 정도의 내공을 보여준다. 인권 단체에서 일하는 서유진 역의 정유미가 가해자와 방관자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하는 쪽이라면, 상대적으로 신입 교사 강인호 역의 공유는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편이다.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청과 뻔히 알고도 수사하지 않는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서유진은 분노하는 관객을 대리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속이 시원하긴 하지만 관객이 좀 더 거리를 가깝게 느끼는 것은 강인호라고 본다. 저돌적인 인권단체 간사는 관객과 분리된 대리인이지만, 약점이 있고 생활을 위해 타협해야 할 현실이 있는 강인호는 관객의 분신이다. 직업상의 설정도 그렇거니와 적극적으로 발산하는 정유미보다는 미세한 떨림으로 흔들리는 심리를 표현하는 공유에게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더 있다고 본다.
잠깐 나오는 강인호와 서유진의 가느다란 러브 라인은 영화 전체적으로는 불필요했으나, 대중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리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건의 현상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악마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학교와 교육청, 경찰, 검찰, 법원, 교회의 커넥션을 훑어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2007년 국회에서 무산되었다는 내용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자막 한 줄 정도 넣었다면 더 금상첨화였겠지만 말이다.
<도가니>는 영화 예술로서 보다는, 사회고발영화로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평론가의 표현처럼 관객의 가슴에 매섭게 불을 지른다고 할까. 이슈화에 성공한 <도가니>는 활화산의 분화구와 같다. 이것은 원작 소설이 취한 방향과도 비슷한데.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문학적 성취보다는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잊혀진 사건을 환기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예술적 야심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사회적 이슈 생산에 목표가 있다는 점은 그 충격이 상당한 직접적 성폭행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비슷하게 폭발한다 해도, 예를 들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은 직접 묘사 대신 한 프레임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넣고 긴장 구도를 형성함으로서 선정성의 논란을 지우고 좀 더 높은 예술성의 지위를 획득한다.
반면에 <도가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에 대해 잔인하다싶으리만큼 구체적인 묘사를 하며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연출에서의 이런 선택은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제기했듯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아역배우의 정신적 충격과 관련하여 윤리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을 알리기 위해 재연하는 아역배우들이 유사한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연출을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비윤리를 고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를 재연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몇몇 전문가들은 아동들의 법정 진술 장면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하나, 그렇게 찍었을 때 실제 사건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직접 묘사는 관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끌어들여 사회적 공분을 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만들어내지만, 법정 진술은 관객을 법정의 관객, 진술의 청취자 역할 정도로 끌어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진실이 있음에도 진실을 전달하는 형식의 틀이 파괴력을 떨어뜨려 전파의 범위를 제약한다면, 그 결과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의 실패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또다른 부도덕이 아닐까. ‘아름다운 실패’라는 식으로 미화하기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승자 독식의 사회를 마주하기에 부끄러운 미사여구가 아닐까.
<도가니>에서 나는 특별히 주목한 장면이 있다. 할머니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수가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는 장면도, 물대포를 맞으며 강인호가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하는 부분이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내 생각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이 대부분의 관객이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잠깐 스쳐 지나간다. 물대포를 맞으며 시위하는 클라이맥스에서 강인호가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할 때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을 포커스가 흐려진 카메라가 슬쩍 비추고 지나간다. 그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 동일한 인물이다. 영화 안의 그 시민은 영화 바깥 관객의 과거인 것. (나를 포함하여) 관객들은 지난 날 이 사건에 무심했던(또는 무력했던) 자신을 영화를 보면서 보고 있는 것.
나는 <도가니>를 둘러싼 일련의 분노들이 부조리에 대한 개인들의 무관심을 희석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공지영의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영화가 개봉하니 6년 전의 사건이 뒤늦게 주목받으며 국정감사의 대상으로까지 오른 것에 통쾌함보다는 회의가 먼저 든다. 우리는 왜 실제 인물이 겪은 실제 사건보다 그것이 픽션으로 재연될 때 더 주목하는 것일까. 진실이 밝혀지고 공감을 이끄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땅 속에 묻히기에 좋은 조건인 것인지.
<도가니>의 그 안개.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안개의 쓰임이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프닝 씬에서 안개가 낀 무진으로 강인호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 그는 진실이 안개처럼 가려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 오프닝을 이용철 평론가 역시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현실’에 주목해 달라는 메시지는 엔딩 씬에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도가니>는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안개의 도시 무진으로 오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진 광고판을 보는 강인호의 뒷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끝난다. 사실상 그런 의미의 안개란 무진에만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나타내는 앞모습보다는 가려진 뒷모습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는 것.
도가니
story(네이버에서 펌) :
2011년, 대한민국의 마음을 움직일 진실이 찾아온다.
믿을 수 없지만,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
review :
개봉 11일 만에 25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큰 화제를 낳고 있는 공지영 소설 원작의 <도가니>를 보았다.
영화 자체로만 봤을 때, <도가니>는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극 초반 무진 지역의 안개를 활용하는 방식은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과 겹치는 것은 물론, <살인의 추억>에서 서태윤(김상경 분) 형사가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의 쓰임과 유사하다. 강인호(공유 분)와 서유진(정유미 분)의 캐릭터 설명을 위한 접촉 사고의 설정도 창의적이라기보다는 이전 영화들의 관습에 기대어 있다. 강인호가 시위대를 지켜보는 군중들 앞에서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호소하는 장면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 중 박신애(이요원 분)가 차량으로 마을을 이동하면서 우리를 기억해달라고 울부짖는 결말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도가니>는 이러한 결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힘이 센 영화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주, 조연 가릴 것 없이 뛰어나다. 특히 공유는 배우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듯싶을 정도의 내공을 보여준다. 인권 단체에서 일하는 서유진 역의 정유미가 가해자와 방관자들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표현하고 발산하는 쪽이라면, 상대적으로 신입 교사 강인호 역의 공유는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편이다.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교육청과 뻔히 알고도 수사하지 않는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서유진은 분노하는 관객을 대리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속이 시원하긴 하지만 관객이 좀 더 거리를 가깝게 느끼는 것은 강인호라고 본다. 저돌적인 인권단체 간사는 관객과 분리된 대리인이지만, 약점이 있고 생활을 위해 타협해야 할 현실이 있는 강인호는 관객의 분신이다. 직업상의 설정도 그렇거니와 적극적으로 발산하는 정유미보다는 미세한 떨림으로 흔들리는 심리를 표현하는 공유에게 관객이 감정이입을 할 여지가 더 있다고 본다.
잠깐 나오는 강인호와 서유진의 가느다란 러브 라인은 영화 전체적으로는 불필요했으나, 대중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무리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사건의 현상에만 주목한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악마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학교와 교육청, 경찰, 검찰, 법원, 교회의 커넥션을 훑어간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이 2007년 국회에서 무산되었다는 내용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자막 한 줄 정도 넣었다면 더 금상첨화였겠지만 말이다.
<도가니>는 영화 예술로서 보다는, 사회고발영화로서 상당한 성과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평론가의 표현처럼 관객의 가슴에 매섭게 불을 지른다고 할까. 이슈화에 성공한 <도가니>는 활화산의 분화구와 같다. 이것은 원작 소설이 취한 방향과도 비슷한데. 공지영의 <도가니> 역시 문학적 성취보다는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잊혀진 사건을 환기하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었다.
예술적 야심을 일정 부분 포기하는 대신 사회적 이슈 생산에 목표가 있다는 점은 그 충격이 상당한 직접적 성폭행 묘사에서도 드러난다. 비슷하게 폭발한다 해도, 예를 들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은 직접 묘사 대신 한 프레임 안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넣고 긴장 구도를 형성함으로서 선정성의 논란을 지우고 좀 더 높은 예술성의 지위를 획득한다.
반면에 <도가니>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에 대해 잔인하다싶으리만큼 구체적인 묘사를 하며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연출에서의 이런 선택은 민주당 전병헌 의원이 제기했듯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아역배우의 정신적 충격과 관련하여 윤리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동 성폭력 사건을 알리기 위해 재연하는 아역배우들이 유사한 상처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연출을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비윤리를 고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비윤리를 재연해야만 하는 아이러니. 몇몇 전문가들은 아동들의 법정 진술 장면으로 충분하지 않느냐고 하나, 그렇게 찍었을 때 실제 사건에 대해서 지금과 같은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직접 묘사는 관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끌어들여 사회적 공분을 하기에 충분한 요건을 만들어내지만, 법정 진술은 관객을 법정의 관객, 진술의 청취자 역할 정도로 끌어내린다. 많은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진실이 있음에도 진실을 전달하는 형식의 틀이 파괴력을 떨어뜨려 전파의 범위를 제약한다면, 그 결과 진실을 밝히려는 시도의 실패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또다른 부도덕이 아닐까. ‘아름다운 실패’라는 식으로 미화하기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승자 독식의 사회를 마주하기에 부끄러운 미사여구가 아닐까.
<도가니>에서 나는 특별히 주목한 장면이 있다. 할머니가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민수가 눈물을 흘리며 분노하는 장면도, 물대포를 맞으며 강인호가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하는 부분이 관객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내 생각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면이 대부분의 관객이 거의 기억도 하지 못할 정도로 잠깐 스쳐 지나간다. 물대포를 맞으며 시위하는 클라이맥스에서 강인호가 민수를 기억해달라고 할 때 가만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을 포커스가 흐려진 카메라가 슬쩍 비추고 지나간다. 그 불특정 다수의 시민들은 영화를 보는 관객과 동일한 인물이다. 영화 안의 그 시민은 영화 바깥 관객의 과거인 것. (나를 포함하여) 관객들은 지난 날 이 사건에 무심했던(또는 무력했던) 자신을 영화를 보면서 보고 있는 것.
나는 <도가니>를 둘러싼 일련의 분노들이 부조리에 대한 개인들의 무관심을 희석하는 효과도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인화학교 사건은 당시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공지영의 소설이 출간되었을 때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영화가 개봉하니 6년 전의 사건이 뒤늦게 주목받으며 국정감사의 대상으로까지 오른 것에 통쾌함보다는 회의가 먼저 든다. 우리는 왜 실제 인물이 겪은 실제 사건보다 그것이 픽션으로 재연될 때 더 주목하는 것일까. 진실이 밝혀지고 공감을 이끄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면 얼마나 많은 진실들이 땅 속에 묻히기에 좋은 조건인 것인지.
<도가니>의 그 안개.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작품에서 안개의 쓰임이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 메시지는 분명하다. 오프닝 씬에서 안개가 낀 무진으로 강인호가 차를 몰고 가는 장면, 그는 진실이 안개처럼 가려져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 오프닝을 이용철 평론가 역시 이렇게 말한다.
“‘도가니’는 주인공이 짙은 안개를 뚫고 무진 시로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단순히 6년 전의 사건을 소리 높여 고발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현실에 대해 눈을 뜨라고 권유하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도입부의 짙은 안개는 상징성이 있다” (http://starin.edaily.co.kr/news/NewsRead.edy?newsid=01157846596381760)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현실’에 주목해 달라는 메시지는 엔딩 씬에 더 깊이 각인되어 있다. <도가니>는 서울의 지하철 역에서 ‘안개의 도시 무진으로 오세요’라는 문구가 쓰여진 광고판을 보는 강인호의 뒷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끝난다. 사실상 그런 의미의 안개란 무진에만 있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그러니 의도를 가지고 나타내는 앞모습보다는 가려진 뒷모습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는 것.
희망이란, 의외로, 그런 시선으로 목격하는
불편한 진실의 공유에서 다시 품을 수 있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