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김형석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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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여행]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의 산실, 인각사(麟角寺).

군위읍의 남서쪽에 위치한 고로면 화북리에는 보각국사 일연이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썼다는 인각사(사적 374호)가 자리 잡고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

정사보다는 문화적 상상력과 창의력이 살아있는 야사를 좋아해

언제부터 와보고싶던 곳인데...

지금은 법당과 두어 채의 건물만 남아 있어 썰렁함마저 느껴졌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오랑캐 땅을 허덕이며 에둘러 다니다가

마침내 허름한 고향집으로 돌아와서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맨 진실 행복이

처마 밑에 제비집처럼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윤후명/ '삼국유사 읽는 호텔' 소설 본문 中

 

 

스님의 부도탑과 비문인 보각국사탑과 보각국사비(보물 428호) 등도 있는데

비석의 돌조각을 갈아서 먹으면 장원급제 한다는 속설 때문에 형체가 많이 훼손됐다고 한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돌아가는 길 /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ㅡ시집'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민음사)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소망의 파편들이

안스럽게 쌓여 있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경북 군위군의 인각사는 '삼국유사'가 태어난 곳이다.

고려 후기의 고승 일연(1206~1289)은

'풍수상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곳에 있다'하여 인각사라 이름붙여진 이 절에서

생애 마지막 5년을 머물며 '삼국유사'를 완성했다.

 

신라시대 지방 사찰로는 유례없이 큰 규모의 절이었다는데...

인각사는 숭유정책의 조선시대 들어 쇠퇴를 거듭했고,

특히 임진왜란 때 방화로 심하게 훼손됐다 전한다.

 

민족 정신문화의 요람인데...

지금의 인각사는 전각다운 전각 하나 없는, 그

저 시골의 한 작은 사찰에 불과하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창백하고 유배된 불심(佛心)이 떠돌다

헤체된 탑 사이로

수많은 인연들이 탑돌이 한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우리 신화와 설화를 만났던 삼국유사...

그리이스 로마 신화 만큼 문화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의 산실인데

우리 것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과 냉소처럼...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현대적 잔재의 벽과 창문,

생화가 아닌 조화의 헌화.

두동강 난 부처...

 

그래도,

초등학생 소년의 감탄사와 그리움은

둥근 사리로 남을 것이니...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이제는 우리가 인각사를 따뜻하게 안아줄 차례다.

녹슬고 금 간 종소리조차 울려 퍼지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된 그 곳에,

새로 만든 종소리가 장중하게 퍼져 학소대 벼랑에 메아리치도록."

- '인각사, 삼국유사의 탄생'을 쓴 이종문 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티끌세상 꿈 속에서도 가지 않으리라...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방치된 인각사와 일연스님...

 

충렬왕이 청하던

그 때나 지금이나

이것이 민족과의 인연인지요? 스님!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그 섬에서 온 갈매기에게 주는

스님의 법어...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천축국 가는 순례자의 이야기에

밤을 세운 소년과의 조우...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솔바람 청청히 소리치는데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인각사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내 어머니 품 안 같은 신화의 세계...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자그마한 기념관에서...

일연스님의 시를 읽으며

인각사 뜰과 대웅전 계단을 오르내리셨을 스님을 그려본다.

만년에 노모를 모시며

이 인각사에서 세수를 다하시고 열반하신 곳이라 한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시름에 묻힌 몸이 덧없이 늙었에라...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일연스님 詩로 마음을 추스리다...'일연선사 생애관'을 나와

비각 속의 깨어진

스님의 생애를 새긴 인각사비를 본다.

 

중국의 명필 왕희지의 글씨 1,904자를

하나하나 집자해 25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 비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문에 고난의 역사와 세월을 견뎌야 했다.

 

보기드문 명품으로 중국에까지 소문이 나

그 탁본이 사신의 선물로 큰 인기를 끄는 바람에

무절제한 탁본으로 서서히 마멸된 것이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에 의해

땅바닥에 엎어진 채 탁본을 당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인각사비는 결국 1630년 이전에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만다.

 

지나친 탁본의 노역에 시달리던 민초의

고의적 타격에 의한 것이라고

한 역사학자는 추론했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겁화가 모든 것을 살라 산하가 다 재가 되어도

이 비석은 홀로 남아,

이 글은 마멸되지 않으리...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서기 642)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그 뒤 고려 충렬왕 10년(서기 1284)에 일연 스님이 중창하고

우리의 과거·현재·미래 문화유산의 국보인 ‘삼국유사’를 저술했다.

 

민족 역사적으로 그 의미와 가치가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큰 성소라 할 수 있는데...

기와 위의 잡초는 무구무언(無口無言).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사찰 앞에는 수많은 백학이 살아

이름 붙여진 학소대가 있으며,

위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의 절경을 이룬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풍경이 흔들린다  / 이규리

어금니 하나를 빼고 나서
그 낯선 자리 때문에
여러 번 혀를 깨물곤 했다
외줄 타는 이가 부채 하나로
허공을 세우는 건
공기를 미세하게 나누기 때문,
균형은 깨지기 위해 있는 거라지만
그건 농담일 게다
한쪽 무릎을 꺾으면 온몸이 무너지는 건
짐승만의 일이 아니다


다친 무릎 끌며 가서 보았다
인각사 대웅전 기둥이
균형을 위해 견디고 있는 것을,
기우뚱해 있는 저 버팀목까지도
서로 다른 쪽을 위해 놓지 않고 있는 믿음을,
그 처마 끝에서
풍경은 그저 흔들리는 게 아니라
공기를 조절하며 처마를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이따금 소리내어 기둥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가슴에 나무 한그루

무겁게 심고...

 

해야 할 천년의 이야기가 서러웠던 군위 인각사

 

겨레의 얼을 문자로 꿰어낸 보배로운 신화의 고향,

군위 인각사를 떠나

도시로 귀향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 앞에서 본 거대한 삼국유사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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