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나는꼼수다를 두고 대안언론이냐, 선동매체냐? 며 나는꼼수다를 이분법적 정의 내리기를 하려 했다. 패널로 참여한 정봉주는 '넓게 본다면' 대안언론'이라고 볼 수 있다며, 선동매체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 듯한 인상을 주는 맨트를 했다. 그리고 시민패널로 참여한 보수진영 청년들은 이 '대안언론'이라는 말을 겨냥하여, 그렇다면 언론의 중립성이나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꼼수가 '대안언론'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어 버리면 그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러므로 나꼼수는 대안언론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봉주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탓에 '넓게 본다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굳이 이분화해서 말한다면 '대안언론'으로 보고 싶다에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꼼수다. 대안언론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의 단어와, 선동매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립을 통해서, 당연히 긍정적 이미지의 대안언론을 선택할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꼼수인거다. 나꼼수의 정체성을 이분법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분법적인 논의의 틀에 한정지어 생각해보도록 하자.
정봉주는 '선동매체'라고 답해야 옳았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꼼수의 성격은 언론매체보다는 선동매체에 더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언론매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어쩌면, 나꼼수가 시사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나 기존 언론의 틀에 끼워맞출수 없으니 '대안언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대안언론'이라는 이미지는, '기존언론'이 가지고 있는 보수성의 대립개념으로서 진보성이라는 인상을 주고, 나꼼수와의 정체성과도 잘 맞아 보인다. 그리고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와 연결된 이미지는 젊음이나 신선함의 이미지까지 덧입게 되어 더욱 대안언론과 맞아 보인다. 그러나, 대안언론도 '언론'임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언론'이란,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가치중립적(실제로 언론이 그러하건 그렇지 않건)인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분명, 중립성이나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나꼼수를 보게 되면, 나꼼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꼼수는 처음부터 각하헌정방송을 표방하고, 현 정부에 대한 풍자를 정체성으로 갖고 가고 있다. 그러므로,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하게 되면, 나꼼수는 전적으로 비판만 껴안게 된다. 더불어, '언론'이라는 이름이 공공적 가치나 공익적 가치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면, 현재 나꼼수식의 풍자나 사랑방식 자유로운 대담, 심지어 욕설까지 해학으로 삼는 방식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규정짓고 싶은 사람들은, 그것을 전제로 나꼼수를 비판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나꼼수의 긍정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서 '대안언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선의가 오히려 나꼼수의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나꼼수의 정체성은 '언론'이라는 틀에 가둘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꼼수는 무엇인가? 선동매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동'이라는 단어에 부여된 부정적 인상으로 인한 컴플렉스에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보자. 선동이 나쁜가? 아니다. 부정적인 선동이 나쁜 거다.
긍정적인 선동은 좋은 거다.
선동과 비슷한 이미지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단어가 '세뇌'다.
'세뇌'는 나쁜가? 아니다. 나쁜 생각을 심는 '세뇌'가 나쁜 거다.
좋은 생각을 심는 '세뇌'는 좋은 거다. 그렇다면 '세뇌'라는 수동성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배움'은 일차적으로 수동성이다. 정보, 지식의 수용이 '배움'이다. 가정과 학교를 1차적, 2차적 사회화 기관이라고 한다. 그 사회화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는 게 사회화아닌가? 그렇다면 그것도 '세뇌'인 것이다. 즉, 우리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민성에 맞는 시민을 길러내는데(수동성) 그 공간이 가정과 학교다. 사회화는 '세뇌'의 다른 이름이다.
나꼼수는 진실이 무엇인지 양심과 상식의 선에서 바라보자는 화두를 던지는 선동매체이다. 나꼼수는 우리 삶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니 우리 모두 올바른 정치의식으로 나의 주권을 인식하자고 선동하는 선동매체이다. 더구나, 나꼼수의 기반은 수동성에 있지도 않다. 선동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동을 스스로 수용하는 능동성에 있다. 그러므로, 그 선동에 이끌리고,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 누구도 나꼼수를 듣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꼼수다는 선동매체이다 - 백지연의 끝장토론의 아젠다설정을 생각하며
나는꼼수다는 선동매체이다.
- 백지연의 끝장토론의 아젠다설정을 생각하며
백지연의 끝장토론에서는 나는꼼수다를 두고 대안언론이냐, 선동매체냐? 며 나는꼼수다를 이분법적 정의 내리기를 하려 했다.
패널로 참여한 정봉주는 '넓게 본다면' 대안언론'이라고 볼 수 있다며, 선동매체는 아니라고 선을 긋는 듯한 인상을 주는 맨트를 했다.
그리고 시민패널로 참여한 보수진영 청년들은 이 '대안언론'이라는 말을 겨냥하여, 그렇다면 언론의 중립성이나 언론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나꼼수가 '대안언론'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어 버리면 그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러므로 나꼼수는 대안언론이 되어서는 안된다.
정봉주 입장에서도 곤혹스러운 탓에 '넓게 본다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굳이 이분화해서 말한다면 '대안언론'으로 보고 싶다에 손을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분법은 꼼수다.
대안언론이라는 긍정적 이미지의 단어와, 선동매체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립을 통해서, 당연히 긍정적 이미지의 대안언론을 선택할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꼼수인거다.
나꼼수의 정체성을 이분법적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분법적인 논의의 틀에 한정지어 생각해보도록 하자.
정봉주는 '선동매체'라고 답해야 옳았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꼼수의 성격은 언론매체보다는 선동매체에 더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적어도 언론매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다.
어쩌면, 나꼼수가 시사 정보를 전달하고 있으나 기존 언론의 틀에 끼워맞출수 없으니 '대안언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대안언론'이라는 이미지는, '기존언론'이 가지고 있는 보수성의 대립개념으로서 진보성이라는 인상을 주고, 나꼼수와의 정체성과도 잘 맞아 보인다.
그리고 팟캐스트라는 새로운 매체와 연결된 이미지는 젊음이나 신선함의 이미지까지 덧입게 되어 더욱 대안언론과 맞아 보인다.
그러나, 대안언론도 '언론'임에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언론'이란, 중립성, 공정성이라는 가치중립적(실제로 언론이 그러하건 그렇지 않건)인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분명, 중립성이나 공정성이라는 잣대로 나꼼수를 보게 되면, 나꼼수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꼼수는 처음부터 각하헌정방송을 표방하고, 현 정부에 대한 풍자를 정체성으로 갖고 가고 있다.
그러므로,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하게 되면, 나꼼수는 전적으로 비판만 껴안게 된다.
더불어, '언론'이라는 이름이 공공적 가치나 공익적 가치를 담고 있는 표현이라면, 현재 나꼼수식의 풍자나 사랑방식 자유로운 대담, 심지어 욕설까지 해학으로 삼는 방식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나꼼수를 '언론'이라고 규정짓고 싶은 사람들은, 그것을 전제로 나꼼수를 비판하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나꼼수의 긍정적 가치를 옹호하기 위해서 '대안언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의 선의가 오히려 나꼼수의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나꼼수의 정체성은 '언론'이라는 틀에 가둘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꼼수는 무엇인가? 선동매체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동'이라는 단어에 부여된 부정적 인상으로 인한 컴플렉스에 있다.
선입견을 버리고 보자. 선동이 나쁜가? 아니다. 부정적인 선동이 나쁜 거다.
긍정적인 선동은 좋은 거다.
선동과 비슷한 이미지로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는 단어가 '세뇌'다.
'세뇌'는 나쁜가? 아니다. 나쁜 생각을 심는 '세뇌'가 나쁜 거다.
좋은 생각을 심는 '세뇌'는 좋은 거다.
그렇다면 '세뇌'라는 수동성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배움'은 일차적으로 수동성이다. 정보, 지식의 수용이 '배움'이다.
가정과 학교를 1차적, 2차적 사회화 기관이라고 한다. 그 사회화란 무엇인가?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인간상을 구현하는 게 사회화아닌가? 그렇다면 그것도 '세뇌'인 것이다.
즉, 우리는 '사회화'라는 이름으로, 대한민국 국민성에 맞는 시민을 길러내는데(수동성) 그 공간이 가정과 학교다. 사회화는 '세뇌'의 다른 이름이다.
나꼼수는 진실이 무엇인지 양심과 상식의 선에서 바라보자는 화두를 던지는 선동매체이다.
나꼼수는 우리 삶이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니 우리 모두 올바른 정치의식으로 나의 주권을 인식하자고 선동하는 선동매체이다.
더구나, 나꼼수의 기반은 수동성에 있지도 않다.
선동 받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동을 스스로 수용하는 능동성에 있다.
그러므로, 그 선동에 이끌리고, 기꺼이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그 누구도 나꼼수를 듣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니, 쫄지 말고, 말하자. 나꼼수는 선동매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