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30분도 되지 않아 벌써 거리가 어둑어둑 해진다. 길거리에는 미세한 불빛을 내며 가로등이 천천히 밝기를 더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포착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방심할 수 없다. 밤이 녀석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깐의 틈을 보여서도 안된다. 각자가 하나씩 창문을 맡으며 밖을 조용히 감시한다. 김 대위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담배는 피지 말아주십시오. 작은 불빛이 밤에는 멀리서도 보이니까요.”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위는 한 쪽에서 전투식량 중에 하나인 파운드케이크를 전자렌지에 대우고 있었다. 케이크를 보자 어렴풋이 군 생활이 생각이 났다. 처음 신형 전투식량을 받아 파운드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던 날. 밥은 안 먹고 케이크만 먹어서 선임에게 갈굼을 당했던 일들이 처음으로 그리워진다.
평상시에는 상상만해도 짜증났던 그 때의 일들이 지금은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일들도 지나면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괜찮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는 내 모습이 동생에게는 별로였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먼저 말을 건것도 그 때 이후로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하고픈 말도 없다.
“그냥..” “그 때.. 아빠 말대로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석궁의 현을 튕기며 중얼거리는 동생. 나는 그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그냥 빨리 죽어버렸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거 아니야.” “..죽는 다는 말 함부로 쓰는거 아니다.”
이런 식이 되어버렸다. 우리 형제의 사이는 다시 서먹해지고 무거운 침묵만이 우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 얘기를 들었는지 아저씨가 우리 사이로 와서 입을 열었다.
“진성군 말대로야. 진우군. 죽는다는 말은 쓰지 말게. 어른의 참견이 아니라 자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내가 느끼는대로 말해주는거야. 지금은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은혜와 민정씨 걱정이나 하자구.”
동생은 말없이 현을 튕기며 창 밖을 응시하기만 했다. 아저씨는 말없이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이 소위에게 다가갔다. 전자렌지가 완료 됐다는 소리가 여러번 들렸었다. 3번.. 4번째인가? 아저씨는 전자렌지 위에 놓여 있는 파운드케이크 하나를 집고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오랜만에 보는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이 소위도 아저씨의 반응이 싫지는 않은지 호의적으로 대했다.
“매일 이걸로 버티신 겁니까?” “낮에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저녁에는 케이크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이래도 이게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우유와 같이 먹으면 꽤 든든하거든요.” “어휴. 이 빵 쪼가리로 저녁을..” “어쩔 수 없죠. 뭐.. 자, 다 됐습니다. 다들 이리로 오십시오.”
이 소위의 말에 우리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자리를 비운다면 누가 망을 본다는거지? 아, 교대식으로 한다는건가? 우리가 머뭇거리자 이 소위는 손짓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아직 녀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은 아니니까요.”
우리보다 여기서 오래 생활을 해온 이 소위의 말이라면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우리는 군말 없이 전자렌지 근처에 서서 케이크를 하나씩 들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이 소위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와 종이컵을 나눠주며 따라주었다. 푸석푸석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우유와 함께 먹으니 서서히 배가 차는 것 같다. 낮의 상처도 이 소위와 김 대위의 응급처방으로 많이 활동하기도 편해졌다. 다만 준우 아저씨는 여전히 혼수 상태다.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는데..
“여기에 얼마큼의 식량이 있소?”
아저씨의 말에 김 대위는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했다.
“여러분이 다 있다고 쳐도 한 달은 너끈히 버틸 겁니다. 물론 매일 같은 식단을 먹어야만 하겠지만요.” “한 달..”
아저씨는 따로 생각이 있는지 그 말만 중얼거리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남은 우리들은 묵묵히 케이크와 우유를 삼켰다. 생각보다 케이크의 크기가 커서 먹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잘 씹히지도 않거니와 목에 잘 넘어가지도 않아 우유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리가 다 먹은 것을 확인한 김 대위는 아저씨를 불렀다.
“대충 먹었으면 정리하고 불침번을 정하도록 하죠.”
김 대위는 우리들을 주욱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21시부터 불침번을 스도록 하죠. 처음 불침번은 진성이라고 했나? 자네가 해주고. 그 다음은 진우군. 그 다음은..”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십시오.” “예. 그 다음은 아저씨께서 맡아주시고 그 다음은 이 소위. 제가 마지막으로 서도록 하겠습니다. 1시간 30분씩 스도록 하는걸로 하겠습니다. 잠이 오지 안을 수도 있으나 체력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모포를 깔고 누워계십시오.”
경험이 많은 김 대위의 말에 우리는 특별한 토를 달지 않고 당구대 위에 올라가 모포를 깔고 누웠다. 이 소위가 돌아다니면서 모포를 나눠주며 한명씩 덮어주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말 자상한 사람이다.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지금이 19시 30분이니까.. 아, 20시에 통신이 된다고 했었죠?”
김 대위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곳에 고요히 서있는 커다란 무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소규모의 군인들과 연락이 된다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이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분 정도 남았다.
“30분 정도 기다릴게요. 통신이 되나 안되나 보게.” “그러겠나?”
내 말에 모두 동의를 표하며 다시 쇼파에 앉았다. 밖은 여전히 고요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 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는 것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의 일들이나 지금 당장 해야할 일들을 토론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열띤 대화를 하는 도중에 시각은 어느새 20시가 되어 있었다. 이 소위는 긴장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이리저리 만지며 [On] 스위치를 눌렀다. 무전기에 달린 전화기 같은 것을 빼내고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이 소위. 하지만 들리는 거라고는 바깥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
이 소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전화기를 다시 내려 놓으려고 했다.
치지직.
거짓말처럼 무전기에서 신호가 잡히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이 소위는 전화기를 붙잡고 신호를 기다리더니 이내 뭔가가 잡혔는지 흥분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여기는 브라보 소대. 들리는가?]
치직. 치지직.
신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탓일까. 이 소위는 무전기의 안테나를 창가 쪽으로 약간 빼고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신호가 바르지 않다. 뭐라고 말은 하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 소위는 같은 말을 반복했고 1분 정도가 지난 끝에 상대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차리 소대. 통신 상태 양호하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현 생존 인원이 어떻게 되는지?] [여기는 차리 소대. 현 생존 인원 5명. 5명이라고 통보함.] [여기는 브라보 소대 현 생존 인원 2명이라고 통보하고 민간인 4명과 함께 있음.] [현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현 위치 오산이라고 알림.] [차리 소대 위치. 세류라고 알림.]
그들의 무전이 이어질 동안 시간이 점차 가고 있었다. 1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열심히 무전을 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는 이 소위에게 말했다.
“1분 남았어요. 그러면 통신이 끊겨요.”
이 소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곧 통신이 두절될 것이라고 알림.] [양호. 내일 연락을 기다리겠음.]
치지직.
그렇게 무전의 교신이 끝이 났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세류라면.. 여기서 올라가야 하지 않소? 합류를 하려면 아침 일찍 떠나야 할 것 같은데..” “아저씨 따님은 어쩌시려구요. 내일 다시 교신하기로 했으니 일단은 통신이 된다는 시각을 알아냈다는 것에 만족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소위는 다시 무전기의 [Off]키를 누르고 안테나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아직 남은 생존자들이 있다. 그들 모두 괴물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갖고 있다.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면 부산까지 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민정 누나와 은혜인데..
“21시부터 정상적으로 불침번을 스도록 할테니 각자 자리에 누워서 쉬도록 하십시오.”
모두 잠자리에 들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쇼파에 앉아 화살들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어차피 첫 번째로 서기 때문에 지금 자봤자 도움도 안될 것 같고 제 시각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차라리 이렇게 깨있는 상태에서 불침번의 순서를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마음을 알고 있는지 모두가 당구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꽤 고단했기 때문인지 모두 10분도 안되어 잠에 빠져 들었다. 조그맣게 코고는 소리와 커다랗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당구장 안을 가득 매운다. 나는 석궁에 화살을 장전시키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컴컴해진 당구장 안에 환한 달빛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창문 밖으로 시내를 내다보니 그제 서야 활동을 시작하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느린 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맴돌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눈 앞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주욱 훑어 보았다. 모두 불이 나간건지 끈건지 모르겠지만 시내에 있는 건물들 중에 불이 들어온 것은 단 한곳도 없었다.
다시 거리를 내려다보며 녀석들의 행동을 살핀다. 30분 전과는 다르게 수 많은 녀석들이 부대껴대며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눈에 낯설지만은 않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녀석들이지만 지금은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일이 굴러가는 것일까..
“후우..”
문득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기독교 신자가 승객들을 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곧 천벌이 내릴 겁니다! 세상이 열리는 날이 올 겁니다! 여러분 모두 그 날을 즐겁게 맞이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것을 날렸습니다. 곧 천벌이 내릴 겁니다! 피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천벌이 내릴 겁니다!]
워낙 진지한 표정과 태도에 승객들 다수가 꽤나 겁에 질렸던 걸로 기억한다. 난 무교였기 때문에 그 신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와 녀석들을 가만히 보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들은 살아남아야만 한다. 살아남아서 은혜와 민정 누나를 데리고 부산으로가서 제주도까지 간 다음 아빠와 만나는 것. 그것이 내 최종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한치 망설임도 없이 없애야만 할 것이다.
야르 * 밖.에.나.가.지.마.시.오. -28
작가님의 번개같은 연재속도! 28편 나왔어요 ~
재미있게들 보시구요..
이글 원작자님에게 업로드 허락 받은 글이구요..
저는 모든 글에 대해서 직접쓴거 아니면 항상 출처 남기고 있습니다. 제일 밑이나 제일 위에요.
모든글에 다 달아놓았고, 작가님이 직접 쓴 글 그대로 가져온거라고 분명 명시도 하고
옴겨놓은거 글을 읽어봣다면 다 아는내용인데 왜 글은 읽어보지도 않고 태클을 거시는건지..
왜그렇게 저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신가요.. 여기저기서 글 보다가 제가 재미있게 본거 여러분도
함께 보자는 생각으로 올리는건데... 이걸 왜 내시간 뺏아가면서 올리고 욕먹고있는지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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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다. 30분도 되지 않아 벌써 거리가 어둑어둑 해진다. 길거리에는 미세한 불빛을 내며 가로등이 천천히 밝기를 더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생명체의 움직임이 포착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방심할 수 없다. 밤이 녀석들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잠깐의 틈을 보여서도 안된다. 각자가 하나씩 창문을 맡으며 밖을 조용히 감시한다. 김 대위는 작은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말했다.
“담배는 피지 말아주십시오. 작은 불빛이 밤에는 멀리서도 보이니까요.”
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소위는 한 쪽에서 전투식량 중에 하나인 파운드케이크를 전자렌지에 대우고 있었다. 케이크를 보자 어렴풋이 군 생활이 생각이 났다. 처음 신형 전투식량을 받아 파운드케이크를 맛있게 먹었던 날. 밥은 안 먹고 케이크만 먹어서 선임에게 갈굼을 당했던 일들이 처음으로 그리워진다.
평상시에는 상상만해도 짜증났던 그 때의 일들이 지금은 하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 일들도 지나면 그저 하나의 추억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괜찮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을까.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니 과거를 회상하는 내 모습이 동생에게는 별로였는지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먼저 말을 건것도 그 때 이후로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딱히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도 하고픈 말도 없다.
“그냥..”
“그 때.. 아빠 말대로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겠지?”
석궁의 현을 튕기며 중얼거리는 동생. 나는 그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그냥 빨리 죽어버렸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을거 아니야.”
“..죽는 다는 말 함부로 쓰는거 아니다.”
이런 식이 되어버렸다. 우리 형제의 사이는 다시 서먹해지고 무거운 침묵만이 우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그 얘기를 들었는지 아저씨가 우리 사이로 와서 입을 열었다.
“진성군 말대로야. 진우군. 죽는다는 말은 쓰지 말게. 어른의 참견이 아니라 자네보다 인생을 오래 살아온 내가 느끼는대로 말해주는거야. 지금은 밖에서 고생하고 있을 은혜와 민정씨 걱정이나 하자구.”
동생은 말없이 현을 튕기며 창 밖을 응시하기만 했다. 아저씨는 말없이 웃으며 동생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이 소위에게 다가갔다. 전자렌지가 완료 됐다는 소리가 여러번 들렸었다. 3번.. 4번째인가? 아저씨는 전자렌지 위에 놓여 있는 파운드케이크 하나를 집고서는 웃으며 말했다.
“이거 참 오랜만에 보는군요.”
“하하. 그렇습니까?”
이 소위도 아저씨의 반응이 싫지는 않은지 호의적으로 대했다.
“매일 이걸로 버티신 겁니까?”
“낮에는 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저녁에는 케이크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보기에는 이래도 이게 냄새가 거의 나지 않고 우유와 같이 먹으면 꽤 든든하거든요.”
“어휴. 이 빵 쪼가리로 저녁을..”
“어쩔 수 없죠. 뭐.. 자, 다 됐습니다. 다들 이리로 오십시오.”
이 소위의 말에 우리는 선뜻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우리가 자리를 비운다면 누가 망을 본다는거지? 아, 교대식으로 한다는건가? 우리가 머뭇거리자 이 소위는 손짓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아직 녀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간은 아니니까요.”
우리보다 여기서 오래 생활을 해온 이 소위의 말이라면 충분히 신빙성이 있다. 우리는 군말 없이 전자렌지 근처에 서서 케이크를 하나씩 들고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이 소위는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와 종이컵을 나눠주며 따라주었다. 푸석푸석한 케이크를 먹으면서 우유와 함께 먹으니 서서히 배가 차는 것 같다. 낮의 상처도 이 소위와 김 대위의 응급처방으로 많이 활동하기도 편해졌다. 다만 준우 아저씨는 여전히 혼수 상태다. 빨리 깨어났으면 좋겠는데..
“여기에 얼마큼의 식량이 있소?”
아저씨의 말에 김 대위는 우물거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말했다.
“여러분이 다 있다고 쳐도 한 달은 너끈히 버틸 겁니다. 물론 매일 같은 식단을 먹어야만 하겠지만요.”
“한 달..”
아저씨는 따로 생각이 있는지 그 말만 중얼거리며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남은 우리들은 묵묵히 케이크와 우유를 삼켰다. 생각보다 케이크의 크기가 커서 먹는데 좀 시간이 걸렸다. 잘 씹히지도 않거니와 목에 잘 넘어가지도 않아 우유와 함께 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우리가 다 먹은 것을 확인한 김 대위는 아저씨를 불렀다.
“대충 먹었으면 정리하고 불침번을 정하도록 하죠.”
김 대위는 우리들을 주욱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21시부터 불침번을 스도록 하죠. 처음 불침번은 진성이라고 했나? 자네가 해주고. 그 다음은 진우군. 그 다음은..”
“편하게 아저씨라고 부르십시오.”
“예. 그 다음은 아저씨께서 맡아주시고 그 다음은 이 소위. 제가 마지막으로 서도록 하겠습니다. 1시간 30분씩 스도록 하는걸로 하겠습니다. 잠이 오지 안을 수도 있으나 체력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모포를 깔고 누워계십시오.”
경험이 많은 김 대위의 말에 우리는 특별한 토를 달지 않고 당구대 위에 올라가 모포를 깔고 누웠다. 이 소위가 돌아다니면서 모포를 나눠주며 한명씩 덮어주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정말 자상한 사람이다. 엄마의 말이 생각난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고..
“지금이 19시 30분이니까.. 아, 20시에 통신이 된다고 했었죠?”
김 대위의 말에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곳에 고요히 서있는 커다란 무전기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소규모의 군인들과 연락이 된다면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이 상황을 해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30분 정도 남았다.
“30분 정도 기다릴게요. 통신이 되나 안되나 보게.”
“그러겠나?”
내 말에 모두 동의를 표하며 다시 쇼파에 앉았다. 밖은 여전히 고요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창 밖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발견되는 것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의 일들이나 지금 당장 해야할 일들을 토론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열띤 대화를 하는 도중에 시각은 어느새 20시가 되어 있었다. 이 소위는 긴장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이리저리 만지며 [On] 스위치를 눌렀다. 무전기에 달린 전화기 같은 것을 빼내고 잠시 신호를 기다리던 이 소위. 하지만 들리는 거라고는 바깥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
이 소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전화기를 다시 내려 놓으려고 했다.
치지직.
거짓말처럼 무전기에서 신호가 잡히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란 이 소위는 전화기를 붙잡고 신호를 기다리더니 이내 뭔가가 잡혔는지 흥분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여기는 브라보 소대. 들리는가?]
치직. 치지직.
신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탓일까. 이 소위는 무전기의 안테나를 창가 쪽으로 약간 빼고서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여기는 브라보 소대. 응답하라.]
[..기는. ... 소대. ..는가?]
신호가 바르지 않다. 뭐라고 말은 하지만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 소위는 같은 말을 반복했고 1분 정도가 지난 끝에 상대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리기 시작했다.
[여기는 차리 소대. 통신 상태 양호하다.]
[여기는 브라보 소대. 현 생존 인원이 어떻게 되는지?]
[여기는 차리 소대. 현 생존 인원 5명. 5명이라고 통보함.]
[여기는 브라보 소대 현 생존 인원 2명이라고 통보하고 민간인 4명과 함께 있음.]
[현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현 위치 오산이라고 알림.]
[차리 소대 위치. 세류라고 알림.]
그들의 무전이 이어질 동안 시간이 점차 가고 있었다. 1분도 남지 않은 시간이다. 나는 열심히 무전을 하며 정보를 나누고 있는 이 소위에게 말했다.
“1분 남았어요. 그러면 통신이 끊겨요.”
이 소위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곧 통신이 두절될 것이라고 알림.]
[양호. 내일 연락을 기다리겠음.]
치지직.
그렇게 무전의 교신이 끝이 났다. 김 대위와 이 소위는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세류라면.. 여기서 올라가야 하지 않소? 합류를 하려면 아침 일찍 떠나야 할 것 같은데..”
“아저씨 따님은 어쩌시려구요. 내일 다시 교신하기로 했으니 일단은 통신이 된다는 시각을 알아냈다는 것에 만족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소위는 다시 무전기의 [Off]키를 누르고 안테나를 조심스럽게 접었다. 아직 남은 생존자들이 있다. 그들 모두 괴물에게 대항할 수 있는 무기들을 갖고 있다. 모두가 하나로 뭉친다면 부산까지 가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문제는 민정 누나와 은혜인데..
“21시부터 정상적으로 불침번을 스도록 할테니 각자 자리에 누워서 쉬도록 하십시오.”
모두 잠자리에 들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나는 쇼파에 앉아 화살들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어차피 첫 번째로 서기 때문에 지금 자봤자 도움도 안될 것 같고 제 시각에 일어나지 못할 것 같다. 차라리 이렇게 깨있는 상태에서 불침번의 순서를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 마음을 알고 있는지 모두가 당구대 위에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꽤 고단했기 때문인지 모두 10분도 안되어 잠에 빠져 들었다. 조그맣게 코고는 소리와 커다랗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당구장 안을 가득 매운다. 나는 석궁에 화살을 장전시키고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컴컴해진 당구장 안에 환한 달빛만이 나를 반겨주었다.
창문 밖으로 시내를 내다보니 그제 서야 활동을 시작하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느린 걸음으로 여기저기를 맴돌며 먹이를 찾아 헤매는 녀석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눈 앞에 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주욱 훑어 보았다. 모두 불이 나간건지 끈건지 모르겠지만 시내에 있는 건물들 중에 불이 들어온 것은 단 한곳도 없었다.
다시 거리를 내려다보며 녀석들의 행동을 살핀다. 30분 전과는 다르게 수 많은 녀석들이 부대껴대며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이 눈에 낯설지만은 않다. 한때는 사람이었을 녀석들이지만 지금은 죽여야만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일이 굴러가는 것일까..
“후우..”
문득 전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기독교 신자가 승객들을 보며 하던 말이 생각났다.
[곧 천벌이 내릴 겁니다! 세상이 열리는 날이 올 겁니다! 여러분 모두 그 날을 즐겁게 맞이하여야 합니다. 하느님은 여러분에게 기회를 줬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그것을 날렸습니다. 곧 천벌이 내릴 겁니다! 피할 수도 없는 무시무시한 천벌이 내릴 겁니다!]
워낙 진지한 표정과 태도에 승객들 다수가 꽤나 겁에 질렸던 걸로 기억한다. 난 무교였기 때문에 그 신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와 녀석들을 가만히 보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들은 살아남아야만 한다. 살아남아서 은혜와 민정 누나를 데리고 부산으로가서 제주도까지 간 다음 아빠와 만나는 것. 그것이 내 최종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 빌어먹을 녀석들을 한치 망설임도 없이 없애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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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글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