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빛고을 광주광역시에 거주중인 슴셋 방년꽃띠 흔남톡커 용군이입니다^^ 전에 썻던 누나와의 글들은 욕만 무더기로 먹고 내려버렷네요..ㅎㅎ 재미로 쓴 글에 죽자고 달려드시니 뭐라 드릴말씀이 없엇어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뭐랄까요 제 기준에선 너무나 감동적이였던 글을 좀 써볼까해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필자의 조부님 조모님 이십니다. 자 그럼 이것저것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께서는 정말 엄하셨던분이셨습니다. 1921년 생 이셨고 보수적 경향이 강하셨던 분이시라서 할머니를 제외하시곤 며느리나 손주딸들과는 겸상을 하지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손녀들 에게는 항상 무서움의 대상이셨죠. 명절때 깔깔거리고 놀아도 엄하게 혼내셨던분이셧어요. 오죽 그러셨으면 할아버지를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부를정도였으니까요.ㅎㅎ 그에반해 할아버지와 두살터울이신 할머니는 다정다감하셨던 분이셨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인물순으로 이뻐하셨다는거...ㅋㅋ 소개는 이렇게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것은 아마도 제가 그때 군인 신분이엿기에 그런것같습니다. 2010년 12월 23일 저녁이였습니다. 24일 25일 크리스마스 외박이였을꺼에요. 외박을 나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후임들과(당시 상꺽이였습니다) 나가서 아침에 뭘먹을까... 하고있던 찰나, 저희 중대장님께서 급하게 호출을 하셧죠. 내려가는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별일아니겟지.. 하고서 중대장실에 도착했고, 이윽고 중대장님께서 할아버지 지병이 있으신지 하고 물어오더군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중대장님께서 돌아가신건아니고 위중하시다고 내일 새벽에 바로 청원휴가로 다녀오라시더군요. 밤잠못이루고 이윽고 아침이되더라구요. 그렇게 전 부대(남양주소재)에서 광주까지 한달음에 내려왔습니다. 도착한 시각은 저녁 5시정도. 광주 전남대병원 중환자실 뇌졸중 집중케어실에 입실중이시라해서 그렇게 달려갔습니다. 면회시간이 정해져있어서 6시반까지만 면회가 된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계단으로 막 뛰어올라갔어요. 가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정정하시고 호랑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앙상한 다리며 초점없이 등만 쳐다보시는 모습에 전 그 자리에서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자리에 계셨던 분들은 아버지 막내고모 할머니 저 이렇게 넷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으셔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 시야 앞으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알아듣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러자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영감 뭐라그러는겨... 나이뻐?" 라고 말씀하시자 할아버지께서 불편하신몸으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구요. 저 모습을 보고 막내고모와 저는 마치 멜로영화를 감성깊게 한편 본것마냥 목놓아 울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짧은 청원휴가를 끝마치고 걱정되는마음을 안은채 부대로 복귀하였습니다. 이윽고 3월쯤 포상휴가로 내려가서 할아버지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역시 또 막내고모와 아버지, 할머니는 계셨구요. 큰고모가 또 와계시더라구요. 병실 침대 옆에서 한참 서있던 와중 할아버지께서 옆에 간병인 침대에 앉아계시는 할머니를 손으로 꼬집으시고 툭툭 치시더라구요.(할아버님은 뇌졸중으로 반신마비셨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따 왜 자꾸 꼬집어쌋소 아파죽것네. 그냥" 그 말씀 들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살짝 미소를 머금으시며, "이뻐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그래도 병환이 호전되셨던때라 기분좋게 듣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다시 군에 복귀하고서, 전역날을 기다리는 도중 재수없게 유격훈련에....하..... 가게됬어요. 2011년 6월 27일이 전역날이였으니까 정확하게 한달 몇일전이네요. 5월22일 유격훈련을 받고, 23일 저녁이였습니다. 중대장님이 갑자기 제가있는 텐트로 오십니다. 시각은 오후 6시쯤 훈련이 끝나고 텐트에서 쉬고있었을때였죠.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얼른 짐싸고 부대 복귀해서 내려가라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기일은 5월 23일 오후 5시 40분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고 들었습니다. 49제 탈복 때는 그나마 전역후라서 시간에 얽메이지 않고 제사에 편안히 같이 있을수있어서 행복했어요. 자리에 누워계실때 군복무 때문에 못찾아뵈서 참 죄송했었는데.... 그렇게 돌아가시고 시간을 보냈어요. 이건 그리 관계없는 개인적인 이야긴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의 사이가 벌어질때로 벌어져 2011년 겨울즈음이였을까요. 집안일에 질려버려서 밖에서 지내고있을때 그당시 저는 돈도 없었고 집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하시고 계모와의 마찰로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있을때에요. 핸드폰도 끊기고, 돈하나 없이 친구놈들과 술자리를 가진후 친구집에서 자게되었어요. 그날 기묘한 꿈을 꿨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저희 친가는 대가족입니다 4남 3녀에 자녀는 대부분 2명에서 3명정도 됩니다. 다모이면 한 30명 남짓될까싶은데요 꿈에 이 대가족이 어딜 걸어서 가고있었어요. 제가 그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가기싫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절 마구잡이로 때리시더라구요. 그렇게 다 때린후 그냥 훌훌 가족들과 가버리더라구요 아버지는. 혼자 어떤 건물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엉엉울고 있는 저를 어떤 검은 실루엣이 다가오더니, 제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시며, "너가 얼마나 귀한 자식인데, 이렇게 지내느냐 미안하다 미안해..."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흑흑 거리며 울었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깼는데 정말 제가 울고있더라구요 숨을 헐떡거리며 서럽게... 행여 친구놈이 볼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데 제딴에는 할아버지가 오셨다가셨나보다 싶었는데 지인에게 물어보니 조상님이 오셨다 가신거라고 말해주더라구요. 그순간만큼은 행복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광주 영락공원에 계시는 할아버님께 다녀오게됬구요. 그 이후로 이것저것 안가리며, 밤낮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ㅎㅎ 어떤 인생에 반환점이 됬다그럴까요. 어엿한 직장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루한 이야기 나마 재밌게 끝까지 봐주신분들 감사해요^^ 필자가 글쓰는 제주가 좋지 못해 많이 지루하셨을텐데...ㅎㅎ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끄읕~~~~~~~~~~~!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연애소설
안녕하세요
빛고을 광주광역시에 거주중인
슴셋 방년꽃띠 흔남톡커 용군이입니다^^
전에 썻던 누나와의 글들은 욕만 무더기로 먹고
내려버렷네요..ㅎㅎ
재미로 쓴 글에 죽자고 달려드시니 뭐라 드릴말씀이 없엇어요.
그래서 오늘은 조금 뭐랄까요
제 기준에선 너무나 감동적이였던 글을 좀 써볼까해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필자의 조부님 조모님 이십니다.
자 그럼 이것저것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할아버지 께서는 정말 엄하셨던분이셨습니다.
1921년 생 이셨고 보수적 경향이 강하셨던 분이시라서
할머니를 제외하시곤 며느리나 손주딸들과는 겸상을 하지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 손녀들 에게는 항상 무서움의 대상이셨죠.
명절때 깔깔거리고 놀아도 엄하게 혼내셨던분이셧어요. 오죽 그러셨으면
할아버지를 호랑이 할아버지라고 부를정도였으니까요.ㅎㅎ
그에반해 할아버지와 두살터울이신 할머니는 다정다감하셨던 분이셨어요
하지만! 할머니는 손자 손녀들을 인물순으로 이뻐하셨다는거...ㅋㅋ
소개는 이렇게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는것은 아마도 제가 그때 군인 신분이엿기에 그런것같습니다.
2010년 12월 23일 저녁이였습니다. 24일 25일 크리스마스 외박이였을꺼에요.
외박을 나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후임들과(당시 상꺽이였습니다) 나가서 아침에 뭘먹을까...
하고있던 찰나, 저희 중대장님께서 급하게 호출을 하셧죠.
내려가는길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별일아니겟지.. 하고서 중대장실에 도착했고,
이윽고 중대장님께서 할아버지 지병이 있으신지 하고 물어오더군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중대장님께서 돌아가신건아니고 위중하시다고
내일 새벽에 바로 청원휴가로 다녀오라시더군요.
밤잠못이루고 이윽고 아침이되더라구요.
그렇게 전 부대(남양주소재)에서 광주까지 한달음에 내려왔습니다.
도착한 시각은 저녁 5시정도. 광주 전남대병원 중환자실 뇌졸중 집중케어실에
입실중이시라해서 그렇게 달려갔습니다. 면회시간이 정해져있어서 6시반까지만
면회가 된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계단으로 막 뛰어올라갔어요.
가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참 가슴이 아프더군요. 정정하시고 호랑이셨던 할아버지께서
앙상한 다리며 초점없이 등만 쳐다보시는 모습에 전 그 자리에서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졌어요.
자리에 계셨던 분들은 아버지 막내고모 할머니 저 이렇게 넷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으셔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 시야 앞으로 가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께 뭐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알아듣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러자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영감 뭐라그러는겨... 나이뻐?"
라고 말씀하시자 할아버지께서 불편하신몸으로 간신히 고개를 끄덕끄덕 하시더라구요.
저 모습을 보고 막내고모와 저는 마치 멜로영화를 감성깊게 한편 본것마냥 목놓아 울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짧은 청원휴가를 끝마치고 걱정되는마음을 안은채 부대로 복귀하였습니다.
이윽고 3월쯤 포상휴가로 내려가서 할아버지 병원을 찾아 갔습니다.
역시 또 막내고모와 아버지, 할머니는 계셨구요. 큰고모가 또 와계시더라구요.
병실 침대 옆에서 한참 서있던 와중 할아버지께서 옆에 간병인 침대에 앉아계시는 할머니를
손으로 꼬집으시고 툭툭 치시더라구요.(할아버님은 뇌졸중으로 반신마비셨습니다.)
그러자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아따 왜 자꾸 꼬집어쌋소 아파죽것네. 그냥"
그 말씀 들으신 할아버지께서는 살짝 미소를 머금으시며, "이뻐서"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는 그래도 병환이 호전되셨던때라 기분좋게 듣고 넘겼습니다.
그렇게 다시 군에 복귀하고서, 전역날을 기다리는 도중 재수없게 유격훈련에....하.....
가게됬어요. 2011년 6월 27일이 전역날이였으니까 정확하게 한달 몇일전이네요.
5월22일 유격훈련을 받고, 23일 저녁이였습니다. 중대장님이 갑자기 제가있는 텐트로 오십니다.
시각은 오후 6시쯤 훈련이 끝나고 텐트에서 쉬고있었을때였죠.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얼른 짐싸고 부대 복귀해서 내려가라고....
그렇게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기일은 5월 23일 오후 5시 40분 편안하게 숨을 거두셨다고
들었습니다. 49제 탈복 때는 그나마 전역후라서 시간에 얽메이지 않고 제사에 편안히
같이 있을수있어서 행복했어요. 자리에 누워계실때 군복무 때문에 못찾아뵈서 참
죄송했었는데.... 그렇게 돌아가시고 시간을 보냈어요.
이건 그리 관계없는 개인적인 이야긴데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버지와의 사이가 벌어질때로 벌어져
2011년 겨울즈음이였을까요. 집안일에 질려버려서 밖에서 지내고있을때
그당시 저는 돈도 없었고 집도 없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하시고 계모와의 마찰로인해 엄청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고있을때에요.
핸드폰도 끊기고, 돈하나 없이 친구놈들과 술자리를 가진후 친구집에서 자게되었어요.
그날 기묘한 꿈을 꿨어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데요.
저희 친가는 대가족입니다 4남 3녀에 자녀는 대부분 2명에서 3명정도 됩니다.
다모이면 한 30명 남짓될까싶은데요 꿈에 이 대가족이 어딜 걸어서 가고있었어요.
제가 그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가기싫다고 하는데, 아버지께서 절 마구잡이로 때리시더라구요.
그렇게 다 때린후 그냥 훌훌 가족들과 가버리더라구요 아버지는.
혼자 어떤 건물에 기대어 쪼그려 앉아 엉엉울고 있는 저를 어떤 검은 실루엣이 다가오더니,
제 양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시며, "너가 얼마나 귀한 자식인데, 이렇게 지내느냐 미안하다 미안해..."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흑흑 거리며 울었습니다. 그렇게 꿈에서 깼는데
정말 제가 울고있더라구요 숨을 헐떡거리며 서럽게... 행여 친구놈이 볼까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데
제딴에는 할아버지가 오셨다가셨나보다 싶었는데
지인에게 물어보니 조상님이 오셨다 가신거라고 말해주더라구요.
그순간만큼은 행복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후 광주 영락공원에 계시는 할아버님께
다녀오게됬구요. 그 이후로 이것저것 안가리며, 밤낮없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ㅎㅎ
어떤 인생에 반환점이 됬다그럴까요. 어엿한 직장은 아니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루한 이야기 나마 재밌게 끝까지 봐주신분들 감사해요^^
필자가 글쓰는 제주가 좋지 못해 많이 지루하셨을텐데...ㅎㅎ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