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리수를 알고 계십니까? 아리수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정수된 서울의 수돗물입니다. 지하철과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수돗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아리수를 놓고, 재밌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리수를 소개하면서 수돗물이라고 소개하면 마음 놓고 마시는 것을 조금 꺼려합니다. 그런데 식수라고 소개하면 거부감 없이 먹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인식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에 수돗물은 그냥 마시기에 꺼림직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이 아무리 정수된 수돗물이라 해도 행동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생성된 인식이 어떠한 행동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권위있는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합니다.
물이 있다고 다 마실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컵이 필요합니다.
2. 저희 집은 약수를 먹었습니다. 그 약수는 모든 동네사람들이 애용했던 지하수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정수된 물보다 약수가 몸에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서 어머니가 그 약수로 인해 A형 간염에 걸리셨습니다. 의사는 평상시에는 괜찮았겠지만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지하수가 조금이라도 오염되었을 경우 간혹가다가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집은 바로 정수기를 렌탈했습니다. 오랫동안 지배하던 인식이 한번에 바뀌게 된 것입니다.
권위있는 말씀이나 큰 경험은 인식을 한번에 바뀌게 합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음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은 이사야 12장의 구원의 기쁨의 우물의 말씀과 에스겔서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와 온 열방을 적시는 치료의 강을 연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우리를 위해 저자는 친절하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성령에 관한 말씀임을 정확하게 찍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구원의 기쁨과, 치료의 평안이 우리 안에 충만하고, 흘러넘치는 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반발을 하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자들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였습니다. 그들의 인식, 그들의 경험과 지혜로 생겨난 인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어찌 그리스도가 나오겠는가!
5. 믿음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나의 지혜입니다. 나의 경험입니다. 사람의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많이 방해합니다.
6.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장 공인되고, 확실한 방법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의 삶의 분별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지식으로 아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 말씀은 지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 역시 성령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넘는 성령의 이끌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 역시 성령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벧후 1:20)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넘는 성령의 이끌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6. 여러분! 여러분의 경험으로 창세기의 말씀이 믿어질 것 같습니까?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아브라함을 바치는 믿음! 출애굽기의 말씀이 믿어질 것 같습니까? 사람은 그 말씀을 보며,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보며 맛나와 불기둥, 구름기둥을 보며, 과학적 증거를 요구합니다.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사람의 범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러면서 은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기적과 표적을 심리적 상태로 내리려 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숨겨둔 도시락 사건 따위로 치부합니다.
7. 그런 그들이 성령으로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동방박사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왕이 날 것이라고 하니깐 헤롯을 찾아가는 거죠. 왕은 헤롯이니깐!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이 있습니다. 살육의 역사가 일어닙니다.
8. 나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만다는 믿음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나를 성령의 이끌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있으나, 넘쳐나는 생명수가 있으나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믿음은 컵입니다. 능력을 먹을 컵! 사랑을 먹을 컵! 겸손을 먹을 컵! 성령충만의 컵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9. 오늘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지식이 있었고, 무수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령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아랫사람에게 왜 예수를 잡아오지 못 했냐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그들이 듣게 되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는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권위입니다.
10.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사역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역은 권위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곳에서 찾을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가슴 떨림이 있습니다. 다른 자에게 권위가 있습니다. 영원히 지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대천에 갔을 때 일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저녁에 산책을 갔다오셔서 저에게 말한 것이 있습니다.
불야성이 무엇인줄 알겠다. 나가니 가게에서 나오는 등불로 완전히 대 낮같더라! 그런데 바다전부를 비추지는 못하더라. 규배야. 인간이 만든 등불은 자기 앞만 밝힐수 있지만 하나님이 만든 등불 태양은 모든 어둠을 물리친단다.
여러분! 당신의 지혜, 당신의 경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빛이 아무리 커도, 우리의 발 앞만 비출 뿐입니다. 간간히 앞만 보고 걸어갈 정도의 빛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혜와 경험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지혜와 이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지혜는 측량할수 없습니다.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 놀라운 이끄심을 나의 안에 있는 성령을 믿음으로 경험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11. 우리에게는 인간의 한계와 생각의 한계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를 넘어 사랑하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용납할수 있는 힘을 얻는 방법은 오직 성령을 믿는 믿음이 가능하게 합니다.
12. 그런데 여기에는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분별입니다. 분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과 나의 영역을 나눌수 있는 지혜입니다.
간혹 성령에 충만한 경험이 내 경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의 경험과 지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을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의 경험이 내 경험이 되고, 내 지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성경안에서 분별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용납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역사하신 성령님은 타인에게도 역사할수 있고, 나의 방법과 다르게 역사할수 있습니다.
13. 에베소서 4장에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행동 다섯가지가 나옵니다. 사랑과 오래참음과 겸손과 온유 그리고 용납입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에 이 다섯가지가 있는지 항상 경계하며,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합당한 삶은 다섯가지 성품에서 증명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제가 가장 눈여겨 보는 것은 용납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역자들은 더욱더 심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사역합니다. 그 결과는 상처와 영혼의 죽음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헤롯 대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권위를 따릅니다. 혹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자랑합니다. 여러분! 사역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14. 한 목사님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곧 개척을 하고 외치는 말이 주님이 나를 용서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구심이 들게하는 것은 그 증거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증거로 나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다 였습니다. 내가 새로 세운 교회, 내 메시지를 하나님이 사용한다 라는 것입니다. 글쎄요. 주님의 역사는 자신의 것이 아닌데, 어찌 자기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 일까요? 그의 말에 자신감과 권위와 카리스마가 있지만, 성령의 겸손함과 성령의 온유와 성령의 인내함과 성령의 용납과 성령의 사랑은 볼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면 그가 떠나고 남은 교인들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15. 사역을 자기의 것으로 여긴다면 그에게 분별함의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사역자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봉사자에게 향하는 권면이자 경고입니다. 내 봉사, 내 헌금! 나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것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지혜와 권위를 벗어나 하나님께 이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16.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오라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주님을 잡으려고 나아온 성전의 경비병도 주님의 말씀의 권위에 예수에게 손도 대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한계가 없고, 차별이 없습니다. 믿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17.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제일 방해하는 것이 나의 지혜와 경험이라면, 갈급함과 나아옴은 믿음의 지름길입니다. 목마른자! 누구든지! 여러분이 성령의 이끄심을 간구하여 나아온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18. 오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에 반대하는 당신의 지혜와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지혜와 이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지혜는 측량할수 없습니다.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 놀라운 이끄심을 나의 안에 있는 성령을 믿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가운데 성령을 통한, 그리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런 여러분과 저에게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차 열매를 맺는 귀한 은혜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빛이 되어, 불신의 어두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여러분 사역과 여러분의 삶에 부르심에 합당한 귀한 열매가 맺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 7:37-46 성령충만에 이르는 방법
1. 아리수를 알고 계십니까? 아리수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정수된 서울의 수돗물입니다. 지하철과 공원에 설치되어 있는 수돗물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아리수를 놓고, 재밌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아리수를 소개하면서 수돗물이라고 소개하면 마음 놓고 마시는 것을 조금 꺼려합니다. 그런데 식수라고 소개하면 거부감 없이 먹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의 인식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에 수돗물은 그냥 마시기에 꺼림직한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느낌이 아무리 정수된 수돗물이라 해도 행동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생성된 인식이 어떠한 행동을 막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서는, 권위있는 사람의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합니다.
물이 있다고 다 마실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컵이 필요합니다.
2. 저희 집은 약수를 먹었습니다. 그 약수는 모든 동네사람들이 애용했던 지하수였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정수된 물보다 약수가 몸에 더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서 어머니가 그 약수로 인해 A형 간염에 걸리셨습니다. 의사는 평상시에는 괜찮았겠지만 저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지하수가 조금이라도 오염되었을 경우 간혹가다가 병에 걸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희 집은 바로 정수기를 렌탈했습니다. 오랫동안 지배하던 인식이 한번에 바뀌게 된 것입니다.
권위있는 말씀이나 큰 경험은 인식을 한번에 바뀌게 합니다.
3.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음으로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경험을 할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내용은 이사야 12장의 구원의 기쁨의 우물의 말씀과 에스겔서 47장의 성전에서 흘러나와 온 열방을 적시는 치료의 강을 연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할 우리를 위해 저자는 친절하게도,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을 성령에 관한 말씀임을 정확하게 찍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안에 성령님이 구원의 기쁨과, 치료의 평안이 우리 안에 충만하고, 흘러넘치는 은혜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반발을 하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자들이 생깁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였습니다. 그들의 인식, 그들의 경험과 지혜로 생겨난 인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에서 어찌 그리스도가 나오겠는가!
5. 믿음을 가장 방해하는 것은 나의 지혜입니다. 나의 경험입니다. 사람의 지식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많이 방해합니다.
6. 하나님을 알게 하는 가장 공인되고, 확실한 방법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나의 삶의 분별을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지식이 아닙니다. 성경공부를 지식으로 아시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경공부, 말씀은 지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 역시 성령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경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넘는 성령의 이끌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 역시 성령 없이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벧후 1:20)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아무도 성경의 모든 예언을 제멋대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넘는 성령의 이끌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6. 여러분! 여러분의 경험으로 창세기의 말씀이 믿어질 것 같습니까?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의 아브라함을 바치는 믿음! 출애굽기의 말씀이 믿어질 것 같습니까? 사람은 그 말씀을 보며, 열가지 재앙과 홍해를 보며 맛나와 불기둥, 구름기둥을 보며, 과학적 증거를 요구합니다. 어떻게든 이해하려는 사람의 범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그러면서 은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기적과 표적을 심리적 상태로 내리려 합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숨겨둔 도시락 사건 따위로 치부합니다.
7. 그런 그들이 성령으로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이해할수 있겠습니까? 동방박사를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왕이 날 것이라고 하니깐 헤롯을 찾아가는 거죠. 왕은 헤롯이니깐!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무고한 아이들의 죽음이 있습니다. 살육의 역사가 일어닙니다.
8. 나의 지식과 경험의 한계를 만다는 믿음이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나를 성령의 이끌림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역사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생수의 강이 있으나, 넘쳐나는 생명수가 있으나 마시지 못하게 합니다.
믿음은 컵입니다. 능력을 먹을 컵! 사랑을 먹을 컵! 겸손을 먹을 컵! 성령충만의 컵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9. 오늘 바리새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에게 지식이 있었고, 무수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역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성령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은 아랫사람에게 왜 예수를 잡아오지 못 했냐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런 그들이 듣게 되는 말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처럼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른 복음서는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없는 권위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권위입니다.
10. 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의한 사역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의 사역은 권위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곳에서 찾을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가슴 떨림이 있습니다. 다른 자에게 권위가 있습니다. 영원히 지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대천에 갔을 때 일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저녁에 산책을 갔다오셔서 저에게 말한 것이 있습니다.
불야성이 무엇인줄 알겠다. 나가니 가게에서 나오는 등불로 완전히 대 낮같더라! 그런데 바다전부를 비추지는 못하더라. 규배야. 인간이 만든 등불은 자기 앞만 밝힐수 있지만 하나님이 만든 등불 태양은 모든 어둠을 물리친단다.
여러분! 당신의 지혜, 당신의 경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빛이 아무리 커도, 우리의 발 앞만 비출 뿐입니다. 간간히 앞만 보고 걸어갈 정도의 빛 밖에는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의 지혜와 경험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지혜와 이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지혜는 측량할수 없습니다.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 놀라운 이끄심을 나의 안에 있는 성령을 믿음으로 경험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11. 우리에게는 인간의 한계와 생각의 한계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를 넘어 사랑하고 인내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용납할수 있는 힘을 얻는 방법은 오직 성령을 믿는 믿음이 가능하게 합니다.
12. 그런데 여기에는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분별입니다. 분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과 나의 영역을 나눌수 있는 지혜입니다.
간혹 성령에 충만한 경험이 내 경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의 경험과 지혜를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일을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의 경험이 내 경험이 되고, 내 지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안에서, 성경안에서 분별하며, 타인을 존중하고, 용납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나에게 역사하신 성령님은 타인에게도 역사할수 있고, 나의 방법과 다르게 역사할수 있습니다.
13. 에베소서 4장에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의 행동 다섯가지가 나옵니다. 사랑과 오래참음과 겸손과 온유 그리고 용납입니다. 나의 생각과 행동에 이 다섯가지가 있는지 항상 경계하며, 주의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합당한 삶은 다섯가지 성품에서 증명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제가 가장 눈여겨 보는 것은 용납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역자들은 더욱더 심합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사역합니다. 그 결과는 상처와 영혼의 죽음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헤롯 대왕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지혜와 권위를 따릅니다. 혹은 자신의 힘과 권위를 자랑합니다. 여러분! 사역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14. 한 목사님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곧 개척을 하고 외치는 말이 주님이 나를 용서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럴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에 의구심이 들게하는 것은 그 증거로 내세운 것입니다. 그 증거로 나를 사용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다 였습니다. 내가 새로 세운 교회, 내 메시지를 하나님이 사용한다 라는 것입니다.
글쎄요. 주님의 역사는 자신의 것이 아닌데, 어찌 자기것이라고 주장을 하는 것 일까요? 그의 말에 자신감과 권위와 카리스마가 있지만, 성령의 겸손함과 성령의 온유와 성령의 인내함과 성령의 용납과 성령의 사랑은 볼수가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주장하면 그가 떠나고 남은 교인들은 뭐가 되는 것입니까?
15. 사역을 자기의 것으로 여긴다면 그에게 분별함의 지혜가 없는 것입니다. 사역자 뿐만 아니라 교회의 모든 봉사자에게 향하는 권면이자 경고입니다.
내 봉사, 내 헌금! 나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것에 이르러야 합니다.
오직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셔야 합니다. 당신의 지혜와 권위를 벗어나 하나님께 이르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16.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오라고 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주님을 잡으려고 나아온 성전의 경비병도 주님의 말씀의 권위에 예수에게 손도 대지 못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한계가 없고, 차별이 없습니다. 믿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17.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제일 방해하는 것이 나의 지혜와 경험이라면, 갈급함과 나아옴은 믿음의 지름길입니다.
목마른자! 누구든지! 여러분이 성령의 이끄심을 간구하여 나아온 누구라도, 예수를 믿으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누릴수 있다는 것입니다.
18. 오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에 반대하는 당신의 지혜와 경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의 지혜와 이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지혜는 측량할수 없습니다.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 놀라운 이끄심을 나의 안에 있는 성령을 믿음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 가운데 성령을 통한, 그리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나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그런 여러분과 저에게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쫒차 열매를 맺는 귀한 은혜가 있음을 확신합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의 빛이 되어, 불신의 어두움을 이기고 믿음으로 여러분 사역과 여러분의 삶에 부르심에 합당한 귀한 열매가 맺어지는 역사가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