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하는 이야기(스압 헛소리 주의)

별난이웃201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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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가을 IMF와 함께 나의 집은 무녀져 흘렀다.

나의집은 신안군에 위치한 작은 섬 이였고 원래 중학교 가지 자란 섬은 그 옆섬 이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재혼과 이혼이 겹치고 과거의 잘못의로 인해 인심을잃은 아버지는 나의

 고등학교 진학의로 인해 옆섬의로 이사를 하셧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유연하게 다니지 못하던 나는 사회라는 세계로 뛰어 들었고 그쯤에서 아버지는 4번째 재혼을 하셧다.

그런대로 우리집은 겉의론 평화를 유지 하였고 나보다 3살 어린 동생도 어느정도 가슴속의 평정을

유지해 나아갔다.

1996년그러던중 5월 어느날 포천 송우리에서 일하는 나에게 어머니의 죽음보다 더 아픈 비보가 날아 들어 왔다.

야간근무에 투입돼어서 일하는날 아버지의 술취한 목소리가 날 불렀다.

"일 끝나거든 아침에 군산의로가라"

"저 일하는데요 저 일해야 해요"

"살다보면 일보다 중요한게 훨씬많다"

"근데 저 일안하면 월급 깍여요"

"닥치고 이 새끼야 가라면가"

"알았어요"

그말을 뒤로 하고 현장의로 들어간 순간 주위의 어둠만큼 불길한 기운이 날 세웠다.

군산?군산이면...............

뒤돌아서 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아빠 형이지?"

"..........."

"형에게 무슨일 있는거지?"

"..........."

"먼일이야?"

"그냥가라"

누가 그랬던가 직감과 육감의 비율은 정확 하다고 폭풍같이옴몸에 전율이 넘쳐 흘렷고

일이 잡희이 않아 덜덜덜 떨려 있을때 간이 일하던 근수형이 다가와서

"무슨 일이니?"

"저....저....형이....형이...."

그때 내가 말하던 순간 근수형 야수를 보았다고 한다.

나에게서 두번째 그 눈빛을 보는순간을 잊을수 없었다고 한다.

"알았다 얼렁 가봐라 돈은 있냐?

"네 있어요 "

"없의면 형이 줄께"

"있어요 나 갈꺼에요"

 

옷을 갈아입고  택시를 타고 의정부 북부역의로 가서 영등포행 지하철에 몸을 싣고

신길4동에 위취한 작은 아버지댁을 향해 갔다.

띵동

"아이고 이녀석아 어쩌면 좋의냐"

아~ 직감이틀리면 좋의련만 맞구나

뒤도 안돌아 보고 근처 슈퍼로 가서 소주 한병을 원샛해버렸다

술취한에 따라 능력이 떨어지는 신체에도 불구하고 정신만은 오희려 또렷해진다.

"이게 먼일이라니? 아이고 00아 내가 미안하다"

"내가 그일을 소개시켜 줘서 멀쩡한 내조카를 ..............."

작은 아버지가 울면서 나오신다.

그 순간 만큼 작은 아버지가 싫었던건 솔직하게  처음 이였다.

"아이고 형수 머가 그리 서러워서 아들 데리고 가요"

"아이고 형수 00이좀 살펴 주시지..."

그말 듣기가 변명처럼만 들렸다.

'쳇 왜 엄마탓을해'

그렇게 군산 의료원에 도착해서 본것은 형의 영정 사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것만 같앗다.

그렇게 밉도록 싸웠던 형이였건만 어머니의 죽음보다 더 크게 가슴을 울렸다.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을 울다보니 어느덧 회사 출근 시간이였고

회사에 보고 해야 갰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건다.

"네 어니 회사 누굽니다"

"누나 나 00이에요"

"어 그래 어디니"

"여기 군산인데요 형이...................형이...............형이............."

똑바로 말하려 했지만 왠지 오열이 따라올라와서

형 담에 이야기를 할수 없었다.

한참을 울면서 붙들었던 수화기에

"형이..............주...........거...........ㅅ어.......요............................"

그뒤에도 한참을 더 울엇어야 햇고 부보모다 더한 슬픔이 형제구나 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형의 장례를 마치고 아버지는 고향집에 내려올것을 권유 하였고 난 방황이라는 무기력한 이유를 내세워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집에서 두달 머물다가 다시 목포에 나아갔다.

형의 죽을을 어렴풋이 느끼던 동생은 밤에 잘때면 옆에 붙어서 물었다.

"형 형은 봤어?형 편안했어?"

"머......넌 그때 머했냐?"

"수학 여행 가기 전날 이였는데 아빠가 술만 먹고 나보고 그냥 수학여행 끝나면 말해준데"

"그만하자"

"나 이제 어린애 아냐"

"그만자라"

그렇게 동생을 재우고 나면 형의 유품들이 날 맞이한다.

아무도 없는 새벽 아버지의 소주를 훔쳐 마시고 유품들을 들고 나와 하염없이 눈 물을 흘리는 모습을

나의 그 모습들을 아마 아버지는 보셧을까?

그런 날이면 아버지는 캔맥주를 나에게 권 하셧다.

"니돈 맨날 내가 가져다가 쓰는거 싫지?"

"미안하다"

"아빠도 니들 잘돼라고 그러는건데 니형..........미안하다...."

"이집 말고 저 아랫집 알지? 그거 밭이랑 논이랑 해서 싸게 나왔어야~ 나가 살란다.걱정하지말어~ 인제 니둘 남았는디 머라도 해볼랑께"

"거기 안사면 안돼요?"

불김함이 먼저 다가온다 고향집보다 더 불길한 기운이 다가온다.

"싸게 나왔의니 사야제 안그람 못사~"

"느낌이 않좋아요"

"걱정하지 말어 넌 인자 너 허고 싶은 공부 마저하고 아님 인자는 놀아도돼"

"애기적부터 엄마없이 너 키우면서 니가 반찬이며 밥이며 빨래 다했잔어 인자는 쫌 놀아"

그말을 들은 나는 너무 놀아 버렸다.

아버지 계획 대로 이사한 담 설날 새어머니는 음독 자살을 했다.

 

그소식을 듣고 시골에 내려간 난 너무 어이가 없었다.

가격이 싼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크리스천 이였고 나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감당하기 힘든 기류가 있었다.

그때가 1997년이였다.

당시 아이엠 에프로 소를 36마리 키우던 우리집은 형의 유산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시골집의 상황은 창담 그 자체였다.

음독 자살 현장 그대로 남아있고 아버지는 미쳐 있었다.

"아빠"

"어 으으으허허헝 ㅏ00아 아빠가 잘못했다."

마무리는 지어야 한다.

"식사는?"

"술좀 주라"

"저랑 마십시다"

바다로 향해 갔다 지천에 널려 있는 굴을 채취해서 김을 쌀작 구워 해후를 만든 다음소금과

 깨소금 그리고 참기울방울로 마무리한다.  

"어째요?"

"자기아들(새어머니 큰아들)지원 안해준다고 ..........."

"돈이 무슨 상관 이라고 해주지.............."

"그돈이 어떤 돈인데.........."

"그라믄 머라 결혼 했소? 그분 자식도 자식이지"

"많이 해줬어야"

"나가 이집 사지 말라 했지않소 느낌이 않좋응께? 귀신나옹께? 하지말라믄 하지좀 마쑈"

 

"주님이 지켜 주신다"

할말은업없다.

나도 믿기에

 문제는 어려워진 나라 경제력 때문에 소 사료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였고 동네 인심을 잃은 아버지

가 볕집을 사는건 더 어려웠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고모들은 열혈한 지지자들이였다.

볕집 콩남은것을을 (옆섬이고 다리가 있었다)소들을 죽이지않게 하기 위해 노력해 주셧다.

드러던 12월 목포 경찰소에서 아버지를 소환 하였다. 밤중에 와서 000씨 참고인 자격의로 가시죠

그리고 잡아갔다.

"00아 소들좀 잘부탁한다."

그리곤 가셧다.

아버지가 가신 다음날 부터 난 많은 영혼들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당시 난 2가지의 기타를 가지고 있었다.

하난 세고삐아의 통기타였고 하난 전기 기타였다.

교회  에서 배운 모난 기타 솜씨로 그냥 기타줄을 팅길줄 안다고 뻐기던 시절 이엿다.

책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속주를 할까 어떻게 하면 이빨로 팅길까?

그런걸로 일상의 탈주를 꿈꾸없다

밤중에 버젓이 그런 말도 안돼는 연주를 한 까닭일까?

아버지가 없는하루도 돼지 않아서 눈의로 보고 싶지 않는 광경들이 일어났다.

우물터가 있었던 자리에는 얼굴이 없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나란이 출몰하엿고 공통점은 색동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화장실엔 할매 처녀 남자 이런것들이 나타났다.

그러던중 고등학교 다니던 동생이 방학이라고 내려 왓다.

그순간 만큼이나 그놈이 든든한적이 없었다.

"야 여기 많다."

"응 여가 장씨 선산이라서 더 많아"

"너도 봤냐?"

"애들 봤어?"

"..............."

"그래도 형이 있어서 인잔 부억까진 안오는 갑제?"

"??????????"

"형 방언 하잔아"

"그전엔 부억 다 때려 부수고 난리도 아니였어야~"

"나 담주에 올라간다."

:왜야?"

"학교"

그렇게 열약한 환경에 내 팽계쳐친 형제는 스스로가 알아서 끼니를 챙겼고 그러던중 떨감을

 홍시가 돼도록 내버려 두었것이 생각이 나서

곱게 익은 홍시를 아무 생각없이 먹었다가 뒤가 막혀 버렸다.

그냥 마려워서 뒷간을 갔는데 얼글이 달아오를대로 올라서 힘을 주는데 (옛날 화장실은 가끔 옆이 뚫려 있읍니다.)할머니다 쓰윽보시더니 내가 도와줄까?

"헉"

잠시 맘을 가다듬고 다시가면 사람이 바뀌어서 오고

그러던중 동생은 다시 올라가고  그 집에 또 다시 혼자만 남음 밤

눈이 아득하게 많이 쏟아져 내렵답니다.

무서움과 외로움을 이겨 내고자 짝사랑을 하던 여자에게 친근함을 빌미로 편지를 쓰고

눈을 감상하고져 방문을 열었지여

그리고 술을 찾아와서 술한잔 마시고 있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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