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1)

정동석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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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별과 달한테 절하며 당신의 소원을 비는 샤머니즘 불교신자였다. 종교를 물으면 절에도 안 가면서 불교라 말했다. 아주 교만했고 동네친구가 교회 나오라하면 예수쟁이하며 무시하고 따돌렸다. 그 후 십 년이 지나서였다.

세월은 나를 자고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어느새 꿈은 현실과 멀어졌고 공허만 자주 찾아왔다.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찾기 시작했다. 세 여섯 달 만에 먹어도 끝장내는 버릇이 있었다.

예수 믿기 여섯 달 전이였다. 술을 끊지 못해서 고민하던 중 어머니와 함께 경남 진주시 소재 점쟁이한테 점을 쳤다. 점쟁이는 나보고 장군신이 내렸다며 신 받으라했다.

나는 신 받기 위해 점쟁이 신내림 장소, 경남 산청군 삼장면 소재 지리산 계곡에 갔다. 거기서 밤새도록 신 받으려고 힘을 다한 적이 있었는데 오후1시쯤 신 내림준비를 다 마친 후 남자는 북을 치고, 여자는 꽹과리를 치고, 다른 여자는 주문을 중얼거리며 시작되었다.

새벽에 내 키보다 세 배나 긴 대나무를 들고 쉴 새 없이 하늘을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숨차거나 지치지도 않아 정말 신은 있다 생각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는 점쟁이점괘가 안 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나한테 신 받게 한 점쟁이에게 물어 보고 사실임을 확인했다. 술 끊기 위해서 신 받기 하고 별별 방법 다 해보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우연히 이집 저집 학습지영업 하던 고향 후배를 만났다. 처음 만난 후배는 교회로 초청했다. 태어나 처음 교회에 갔는데 모든 게 생소하고 어리벙벙했다. 줄곧 언제 예배 끝나지? 빨리 마치지 않고 뭐 하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루하고 머리 아프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교회는 술 끊게 하고 모든 일도 잘 되고 복 받는다했다. 다 좋다했으니 죽을 것 같아도 계속 있어보기로 했다. 두 달, 교회에 다녔지만 증세는 더했다. 손 떨리고 마음이 쿵쿵거리고 술주정도 했다. 이대로는 살 희망이 없다 생각한1986.2월. 기도원에 갔고 산기도도 경험했다. 금주는 희망에 불과했고 단지 과음하지 않고 실수 안 하면 된다생각했다. 절주하려고 애쓰다가 만취하곤 했다. 만취하면 하늘이 노래지고 빙글빙글 돌고 어질어질해 한 걸음도 더 옮기지 못했다. 창피를 무릅쓰고 길목에 주저앉아 정신들 때까지 꼬꾸라져 있다 간신히 일어났어도 술 끊지 못했다. 그 후 마음이 하나님께 뜨거워지고 또 하나님을 조금조금 알아가자 좋아하는 성경구절을 암송해 자랑하며 간절히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열심히 새벽기도에 나갈 때였다. 교회100개 건축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기도 했다. 그 후 나는 1991.10월. 서울시 관악구 소재 관악산에서 이사와 나한테 방문할 친구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절히 찾았다. 그때 하나님은 “동석아! 하며 내 이름을 부르시고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도우고 인도하리라”는 음성을 주셨다.

그때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세 시간이나 하나님을 부르며 말하고 찬송하다가 하산했다. 시간이 흐르자 그때 하나님을 만난 감격은 서서히 잊어갔다. 그러다가 1993.3월.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소재 충현교회 본당지하1층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이스라엘의 목동 다윗을 세워 왕이 되게 하신 것처럼 나를 다윗과 같이 영화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 나는 하나님을 찾아 여러 기도원과 산을 다니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술 끊지 못했다. 1993.12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술 먹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한 채 습관으로 교회 여러 부서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종교인이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하나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오직 내 유익을 위해서 교회에 출입했다.

그럼에도 나에게 한 의가 나타났다. 내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고 또한 교인들 문제 해결에 내 일보다 더 열심히 애썼다는 의였다.

그 후 2006.2월. 고난주간 40일 새벽기도에서 하나님과 조금 회복되는 것 같았으나 부활절 후 되돌아가고 말았다. 이러자 나는 이전에 하나님 영광을 위한다며 베풀고 구제했던 일을 나의 의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리 저리 따지다 보니 하나님께 “나한테 왜?”하고 불평했다. 자주자주 불평하고 불만을 품어 내다보니 어느새 하나님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이쯤 되니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며 거침없이 “하나님이 두려워서 교회 가는 것이 아니고 좋아서 가고 그저 습관일 뿐이라고”말했다. 게다가 하나님이 조금도 무섭지 않으니 죽이려면 죽여봐요 하고 대들었으나 형편은 나빠져만갔다. 형편을 좋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떼를 쓰는 사이 마음에 하나님도 밉고 아내도 미운 감정이 들어왔고 이럴 땐 중 되는 것이 최상일 거라는 악한 생각도 들었다. 순간 이 마음을 굳게굳게 잡는 게 통쾌할 거라 생각했다. 하나님한테 중 되겠다 말했다. 내가 중 할 것이라 해도 하나님은 침묵만 하셨다. 2006.6월. 조계사에 입문하기 위해서 봉은사에 갔다. 조계사 사 십년 이상 수도한 스님 세 사람께 입문절차를 상담했다. 한 스님은 나이가 많아서 중 안 된다하셨고, 다른 스님은 손 보여 달라 하여 보여 주었더니 역마살이 끼어서 중 될 팔자가 아니라고 돌아가라셨다. 중 되려는 일념으로 또 다른 스님에게 부탁을 했더니 나이 많고 결혼해서 조계사 중은 될 수 없다하며 이것저것 안 따지는 시골 작은 절로 가라셨다. 중 되려고 고향으로 갔다. 여든 다섯, 어머니한테 조그만 암자 승 하려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내가 예순 네 살까지 엄동설한 추운 날도 찬물로 머리감고 정성스레 믿었던 불교를 자식 잘 된다기에 예수로 바꾸었는데 이제 내 나이에 뭘 좋은 것 보겠다고 내가 다시 절로 가”하며 나는 예수 믿다가 죽을란다.”하셨다. 그럼에도 나는 남자가 칼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꽂아야지 하며 중 될 결심을 굳히며 그 길을 계속 찾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자 이미 나는 하나님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 후 9월. 하나님이 새벽에 나를 꿈에서 깨우셨다.

꿈에 찬송을 부르다가 깨었을 때 상쾌하고 몸도 가뿐하여 방금 꿈에 부른 찬송을 찬양하며 새벽기도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찬송을 부르지 않고 꿈에서 깨면 잠 와서 다시 누었다. 두 달 이렇게 하자 나는 새벽사람으로 되어가고 있었다. 그럭저럭 열한 달쯤 뒤 나는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고 일어나자마자 세수하고 맑은 정신을 찾는 버릇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세수하러 가다가 문이나 벽에 부딪쳐 다치는 일이 일쑤였다. 아직 새벽기도의 사람이 되지 않았을 2007.5월. 아침7시경이었다. 잠이 깨었는데 몸이 너무너무 무겁고 눈도 뜨기 싫고 일어나기도 싫었다. 만사가 귀찮고 허탈하니 더더욱 일어나기 싫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나님 살고 싶지 않아요. 나 같은 놈 살아서 뭐해요, 살 필요 없으니 죽는 것이 낫겠으니 차라리 죽어주세요.”하고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였다. 내 머리 뒤에서 아주 또렷하고 우렁찬 음성으로 “너는 이 세상에서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나 나는 네가 필요하다”하는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이미 일어나 있었고 또한 삶에 강렬한 욕구가 용솟음쳐 오르고 있었다.

이 일 후 날마다 새벽 기도드리며 하나님 은혜 입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던 가운데 꿈에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허리 옆에 앉으셨고 손을 배꼽 위에다 얹으시고 내게 죽게 되었다하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나는 배안에서 하얀 솜털 같기도 한 것이 온통 배안을 덮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것외는 내 배안에서 5장6부 즉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가 만나고 보았던 예수님 기억이 서서히 잊혀져갔다. 그 뒤 벤치프레스를 한 후였다. 허벅지 안쪽 부분에 타원형 반점 두 개를 보았을 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역도할 때 벤치프레스에 닿아서 생기지 않았을까? 아니야 “10년 동안 헬스를 해왔는데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럼 혹시 병들지 않았냐?”하는 생각이 스칠 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이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잊혀져버렸다. 이런 일 후 새벽기도 가려고 하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 3시였다. 새벽기도 가야 하는데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기에 마음도 초조해졌다. 이럴 때 화장실에 자주 가게 마련이다. 화장실에서 이를 닦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어둡고 섬뜩한 느낌이 감돌았다. 양치질을 멈추니 입안 잇몸과 혓바닥이 보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잇몸에는 피가 흐르고 혓바닥에는 타원형 반점이 두개 보였다. 마치 괴물 같았다. 아니 괴물이 따로 없었다. 그 순간 두 귀는 위로 당겨져 치켜지고 머리끝은 곳곳하게 섰다. 겁에 질려서 방으로 돌아와 눕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함께 이 생각 저 생각에 시달렸다. 이제 죽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 나이 이제 쉰 둘. 너무나 젊다 생각할 때 “사람이 세상에 나왔으면 천하를 손안에 넣어보고 죽어야 하는데 그러하지 못하고 죽는 게 아쉽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생각과 함께 내가 예수 믿는다하고서 예수를 제대로 믿지 못하고 죽는구나하고 생각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 아내와 두 아들이 생각났다. 아내와 스무 두 살 장남은 별 걱정 없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열두 살 막내가 마음에 걸렸다. 그순간 간절히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아니, 죽어서라도 살고 싶었다. 그때 눈앞에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모습이 보였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 하나님께 드렸던 기도를 드리면 죽지 않고 살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을 따라서 하나님! 제가 제대로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살고 싶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다시 생명을 주신다면 이제는 제대로 믿겠습니다. 하오나 제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시기를 원하옵나이다하고 기도를 드렸더니 그 즉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온해졌고 곧 잠이 올 것 같았다. 그리하여 아버지! 지금 잠자면 3시간이나 지나면 7시쯤 될 테인데 그때 일어나면 사는 것이고 안 일어나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좋사오나 죽음의 고통만은 싫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예수 믿는 자가 죽을 때 고통을 호소한다면 이도 아버지의 영광을 가릴 수 있사오니 고통 없이 잠자는 중에 데려가소서! 하며 기도하다가 잠들었다. 그 후 토요일 오후3시경이었다. 벤치 프레스를 하는데 옆 벤치 사람이 말을 건넸다. 얼굴이 창백해 보인다며 종합병원에 검진해 보라는 거였다. 나보다 대여섯 위같이 보였다. 팔십을 바라보는 형부는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도 삼년간 꾸준히 치료하여 지금도 살아계신다하셨다. 아울려 종합병원진료 받으려면 빨라도 석 달은 기다려야지만 담당의사한테 부탁하면 적어도 이 삼 일안에 진료 받을 수 있다고 속사정도 알려주셨다. 형부도 그렇게 하여 빨리 진료 받았다하셨다. 다음날 인터넷에 저절로 멍드는 병으로 검색한 결과 내가 백혈병임을 알았다.

월요일 근무 중 나는 출. 퇴근하며 치료 받기에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그결과 서울성모병원임을 알았고 귀가 길에 내일 예약을 위해 병원에 들렀다. 접수자는 나한테 예약하지 말고 오늘 진료 받고 결과를 알고가라고 권유하셨다. 접수자한테 예약하지 않고는 오늘 병원 진료 받지 못할 것 같아 예약하고 내일 진료 받겠다말했다. 그러자 오늘이 박교수님 진료일인데 상황 따라 한 시간이나 대기하면 진료 받을 수 있다강권하시기에 그러기로했다.

나는 교수님에게 증세가 “저절로 멍들고, 잇몸에 피나고, 혓바닥에 타원형의 반점이 생겼다”말하고 아울려 어제 인터넷 검색 결과 백혈병 임을 알았다말했다. 교수님은 나보고 정확한 병명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물으셨다. 또 조금 있으면 퇴근인데 퇴근 안 하시고 진료실에 한 시간 기다려 줄 테니 나한테 엑스레이. 혈액검사. 심전도검사하고서 다시 교수님한테 오라하셨다. 검사결과는 두개는 나왔고 하나는 3일 후에야 알 수 있다며 나보고 빨리 응급실에 입원하라셨다. 뜻밖에 응급실에 입원하라기에 교수님한테 집에 가서 일 좀 정리하고서 내일 입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은 지금 바로 입원하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 쓰러지면 백혈암이 뇌에 간다면 즉사하던지 아니면 살더라도 전신마비가 될 수 있어 위험하니 당장 입원하라고 강권하셨지만 또 거절했다. 그러자 교수님이 나보고 입원하지 말고 응급조치로 링거 주사2대만 맞고 가라하셨다. 응급조치에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 물었더니 3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셨다. 두 대 중 중요한 링거 한 대만 맞고 가겠다했더니 그러하라고 하여 응급실로 갔다. 그런데 응급실에 가자마자 응급실에서 입원준비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혈액내과. 흉부내과 인턴한테 링거주사 한 대 맞고 퇴원했다가 집안일 정리하고서 내일 입원하겠다 요청했으나 세 번 다 거절당했다.

응급실입원 후 아내한테 전화 걸고 침대에 누워 있는데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교차하였다. 어렴풋이 죽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으나 처량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에 한없이 서러웠다.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제 내가 살아도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사나 죽으나 다 주의 것이로다고 기도했더니 곧바로 평온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때 아내와 막내아들이 왔다. 아내와 막내를 보니 마음이 매우 아파왔다. 그 후 병원생활에 매우 바빴다. 골수검사. 염색체검사. MRI검사 이런저런 검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검사결과가 나왔다. 급성전골수구성백혈병이고 치료받지 않으면 세 달 이나 여섯 달 살고, 치료는 항암치료 두세 번 받고 경과 좋을 때 조혈모이식하고 조혈모이식후 경과가 좋다면 골수이식 하는 3단계 과정이 있는데 모두 성공한다면 앞으로 오년 내지 칠년 더 살 수 있다하셨다. 최고 오래 살아봤자 칠 년이라는 말에 너무 허무하고 덧없기만 했다.

하지만 그때 내 속에서 “교수님이 이번만은 실수 하신다. 난 죽지 않아, 내가 죽으면 하나님만 손해지”하며 나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과 함께 죽음은 이미 나와는 무관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항암치료는 받되 조혈모이식과 골수이식 받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후로 단 한 번도 내가 죽는다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해 11월1일 새벽기도를 드리고 있을 오전 다섯 시경이었다. 내 머리 뒤에서는 또렷하고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너를 지었나니 천하에 나를 높이라. 히스기야에게는 십 오년의 생명을 주었으나 네게는 삼십 년의 부활의 생명을 주노라고 하시는 음성이었다. 이러한 하나님 음성을 들은 다음 나는 죽지 않는다는 확신에 찼고 골수검사결과 암세포 하나 없는 기적이 일어났다. 서울성모병원 전문의와 간호사님들도 나같은 기적은 서울성모병원 암 병동개원이후에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하시며 나보고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대단한 사람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시라며 즉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도 병원을 출입하며 암환자한테 내가 만난 하나님을 알리고 전도하였다. 암세포가 완전 관해 되었을 때 수간호사와 간호사님들은 나보고 혈액 암동 환자들을 방문하고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병원에서는 전도하기가 쉽다. 죽음 앞에 강한 사람은 없고 다들 살기 위해서 실오라기라도 잡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 밖 전도는 만만치 않았다. 공원 벤치에 앉아 전도하기 쉬운 상대를 찾는다. 한 두 시간 준비하고 용기를 내어 전도하러 가는데 상대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버린다. 그곳에서 너 댓 시간을 전도하려해도 입도 떼지 못했다. 2000년 2월 무렵이었다. 우연히 사랑의 교회에서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네가 온 천하에 나의 복음을 전파하리라”하시기에 전도하기 싫어요. 요한이나 베드로전도월례회모임 때 교회근처의 4영리로 전도하는 것도 싫어하는데 내가 무슨 하나님 복음 전파한다고 그러십니까? 했더니 내가 너를 풀무 불에서 연단한 후에 너를 정금같이 나오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이후로도 네가 나의 복음을 전파하리라는 말씀을 많이도 해 주셨는데 나는 전도하다가 대상자로부터 불쾌한 말을 들을까봐 입도 떼지 못했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하여 고민하며 노력했고 그러던 가운데 하나님은 나보고 지난 번 네가 기도했던 청계산기도처로 가라는 마음을 주셨다. 마실 물 한 병이라도 준비해서 가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성령님은 곧바로 가라는 마음을 주셨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40일간 기도한 장소로 한 달이 지난 후에 찾아갔고 거기는 이미 다른 사람이 기도하고 있었다. 밑에서 기도하다가 그분과 이런 저런 대화를 했다. 그분은 인천시 소재 모 교회 목사님이고 월요일은 정기 성경공부모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 목사님이 미국 강연 가시게 되어 성경공부 못하고 대신에 오늘 하루는 아무데서나 8시간 기도하라는 숙제 때문에 오셨다말씀하셨다.

목사님과 대화하는 가운데 전도하기가 힘들다했다. 내 말을 다 들으신 다음 목사님은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고 복 많이 받으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무척 사랑하십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더불어 목사님은 여기서부터 버스정류장으로 갈 때 만나는 사람마다 바로 그대로 전도하라하셨다. 나는 귀가하는 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이 말씀대로 전도하였다. 그 후 날마다 나의 전부를 드리기를 소원하며 강남세브란스. 서울성모병원과 공원. 서울역. 강남역 등지를 다니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있습니다.

 

간증인 전도자 정 동 석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