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아랍민족의 전쟁 종식, 평화는 요원한 일이 아니다!

아레스2014.07.21
조회183

 

 

이스라엘과 아랍민족의 전쟁 종식,

 평화는 요원한 일이 아니다!

 

 

 

 

유대민족이라 일컬어지는 이스라엘과 이슬람민족으로

 일컬어지는 아랍인의 갈등은 그 역사가 깊고도 복잡다기하다.


본디 두 민족은 하나의 뿌리를 두고 있는데 어찌하여

 한 뿌리에서 발원된 혈통이 마치 사생결단의 원수처럼 싸우고 있을까?
그 이유에 대해 조금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성경을 상고하면, 두 민족은 원래 하나의 조상인 아브라함에서 시작된다.


즉, 유대민족인 이스라엘은 신(여호와)이

 인정한 적자(이삭)의 후손이 세운 나라요,
이슬람 민족은 아브라함의 정식 아내(사라)의

몸종(하갈)에게서 태어난 서자(이스마엘)의 후손이 세운 민족이다.
말하자면 이복 형제들의 후손인 셈이다.


창세기에 기록된바 아브라함의 아내는

 나이가 많도록 후손을 생산치 못했던 것 같다.
이에 그 남편에게 자신의 여종과 동침하기를 원했고,
그 연고로 생산된 후손이 장자 이스마엘이며 그 후 여호와가 약속한대로,
늙은 사라에게서 아브라함의 적자가 생산되었으니 이가 이삭이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나이 차는 14년이 되는데,

왜 하필 14년인가..는 상당한 비유가 숨겨져 있으나..

여기서는  논하지 않기로 한다.


 어느날,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기로 사라가 하갈을 내어 쫒기를 원하고
아브라함은 아내의 말을 들어 하갈과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쫒는다.


여기서 중요한 여호와의 예언이 한가지가 있는데 그 예언이란 다름아닌,
'이스마엘이 사람 중에 들나귀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또한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라고 한 예언이 그것인바(창 16:12. 창 21:18)
 이는 차후에 중요한 증표가 될 것이니 기억해 두기 바란다.

아브라함의 적자, 이삭은 그 후 야곱을 낳는다.


이러한 계보는 신약의 처음인

 마태복음의 서두를 장식하게 되며 여호와가

인정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계보는 예수까지 이어져
오늘날 기독교라 칭해지는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유대인이나 아랍인들은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면서도 자신들의 계보-즉, 족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 인정하지 않는게 아니라

아예 모르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문을 강하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유대민족인 이스라엘은 한 마디로 골치 아픈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 이유는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알터인데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배반의 역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기에 가히 골치 아픈 민족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다.


성경의 시작을 보면 여호와라는

하나님과 아담은 언약(하나님의 명령)을 맺는데

 그것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명령,
즉 언약이었고 노아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 모세의 후손..
심지어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의 후손들에게까지

 그 배반의 역사는 줄기차게 이어져 왔으니

 가히 골치 아픈 민족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신약의 내용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예수라는 존재 자체를 그저 선지자 중의 하나 쯤으로 치부한다.


심지어 예수가 출현했을 당시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짓 선지자,
이단의 괴수라는 오명을 뒤집어 씌우고는 

‘이 사람 예수는 죄가 없다. 

이 사람의 피값은 너희들이 담당하라’ 

하던 빌라도에게 당당히 외치기까지 했는데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마 27:24~25) 라고 한 말이 그것이다.
그 당당함의 죄과인지는 몰라도 그로부터 약 1900년이 흐른뒤..
유럽에 반유대주의가 팽배하였고 급기야는

 세계전쟁을 일으킨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라 일컬어지는 인종청소의 제물이 되고 만다.

 


여기에도 어떠한 알지 못하는

 역사가 작용하는 것은 이러한 히든 스토리가 있다고 한다. 


유대인에게 매몰찬 냉대를 당했던

어느 독일의 무명 작곡가(후에 이 사람은 유명한 작곡가-바그너라 알려진다)와
독일의 유명 철학자들이 신봉한 ‘반유대주의’에 지독히 심취했던 히틀러가,
청소해야만하는 인종으로 유대민족을 지목해서 벌어진 참극이었다고 말이다.

(출처-히틀러의 철학자들 2014.7.18일자.오마이 뉴스)

 

또한 아랍인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자체를 버리고 ‘마호멧’이라는

인간을 자신들의 신격 존재(알라)로 추앙하는데
그러한 아랍민족은 이슬람 제국을 세우고 역사적으로

 그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여왔던가?


중세의 십자군 전쟁을 비롯, 근래의 레바논 전쟁,

 이슬람 세력간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 등등..
가히 ‘들나귀와 같이 되겠고,

 저가 모든 손을 칠 것이며 모든 손이 저를 치겠다’

고 한 예언이 응한 것이라고 보여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줄기차게 배반(말씀을 등졌으니..이제부터 背道라고 칭한다)한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선조가 하나님의 약속의 대언자인

예수를 십자가에 매단 것도 모르니 이 어찌 選民이라 칭할 수 있으리오?


그 배도(예수의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릴찌어다)의

대가로 끔찍한 재앙을 맞고도 참회할 줄 모르며..
심지어는 자신들이 배도의 대가로 앗시리아와 바벨론과 로마에게 멸망당해
2000년~2800년 전에 쫒겨났던 팔레스타인

 지역을 지금에 와서 되찾겠다고 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일까?

중동 전쟁의 시발은 이러한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역사도 모른 채 그저 선민이라는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출애굽 후 신이 허락한 가나안 지역에의

수복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힌 결과라 하겠다.

 

가나안으로 일컬어지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권리는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전,
즉 모세와 여호수아 시절에 그 권리가 끝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은..
단지 신을 빙자한 자신들만의 공허한 외침일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러한 시오니즘을 푯대삼아 세계 각지로

디아스포라되었던 민족은, 지독한 민족성의 저력을 보여주며
오늘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지위에까지 올랐는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소위 강대국이라는

나라를 이용해 자신들의 이권과 세상권세에만 몰두되고 있는 터이다.


자신들의 아픈 과거와 역사를 망각한 채,
지금은 힘없고 약한 민족이 된

이슬람을 무자비하게 폭격하고 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따로 없다 하겠다.

 

이렇게 이스라엘과 아랍민족간의 전쟁을 대강 살펴본바,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하는 시시비비는 가릴 수도 없는 것은..
자신들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섬겼던 하나님의 말씀을 등 진 민족들이
어찌 누구 잘 못이 크냐하는 시비를 가릴 수가 있겠는가!


이미 자신들의 조상이 섬겼던 신(여호와 하나님)은

자신들을 떠난 상태인데 말이다.

이러한 전쟁-즉 이스라엘과 아랍민족간의

 전쟁을 종식시키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외엔 없다.
요원한 일이 아니다.


성경에 기록된바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표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라고 하는
대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인데 이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 52:7)

또한 2000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때에도

 천사들은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던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이와 같이, 이스라엘과 아립민족간의 전쟁만이 아닌!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가져오는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는 힘들다고 보여지며

 

 

 

 

 

오직 인간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만이 가능하다고 보여지는바!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음이다.


이스라엘이 시오니즘을 통하여 건국한 때가

 1948년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건국한 때와 동일하다는 것이 그 사실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태동된 예수의 씨가 세상 끝인

 대한민국에서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해도 그리 큰 과오는 아니지 않을까?


여러 가지 영적인 의미와 일들이 우리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때에..
그토록 신앙인들이 원하던 하나님의 역사가

 이 땅에서 ‘요한계시록’의 열어진 말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진정으로 확인하고 듣고 깨달을 일이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계 21:16)”

이스라엘과 아립민족간의 전쟁을

비롯한 오늘날의 모든 전쟁의 종식은 결코 요원한 일이 아니다!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님의 대언자,
그 사자가 누군지를 찾고!
그 증거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는(계 19:6)”..
전쟁이 종식된 평화의 세계에서 다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