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별로 인해, 무려 3년전이라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나의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은 아니고
그 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내가 오랫동안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그 시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누구나 하는 말로 위로를 해 줬다.
"시간이 약이야. 정말 시간 앞에서 무뎌지더라."
"자유의 몸이니까, 이제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어. 좋게 생각하자."
"그냥 좋은 남자가 아니라 이번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좋고 자상하고 잘생긴 남자 만나게 될 거야."
그런데ㅡ
사실 이런 말들이 지금 들어올 리가 없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생각보다 자신이 너무 남자친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고 말하길래, 당연한 거라고 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해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말해줬다. 당연하지. 사귄 기간도 길었고 그만큼 쌓인 추억도 많으니까.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21살때 지지리도 궁상맞던 나 자신을.
어찌 보면 흑역사라고 생각해서 묻어두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 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던 중요한 고통의 과정을 오랜만에 머릿속의 해 묵은 상자 속에서 꺼내보았다.
이제는 그 때의 감정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내가 이별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면서 얼마나 힘들어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니,
친구와의 대화가 한결 수월해졌다.
여자의 특징은 그런 거겠지? 공감, 감정이입이 훨씬 더 잘 된다.
그리고 그걸 아무런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남자들에 비하면, 그 고통을 전부 말로 승화시키다보니 훨씬 더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이별 앞에서.
1년 조금 넘게 사귀었던 그 친구와 다투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머리가 멍해졌다. 모든 것의 이유니까.
"너 왜 이렇게 나한테 잘 못해줘, 왜 이러는거냐고, 이럴거면 나랑 왜 사귀냐"며 칼을 갈던 나에게
그 칼을 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임을 일깨워줬고,
그렇게 헤어졌다.
남의 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던 타입인 나는, 처음에 남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 '듯 해보였다'.'
하지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가슴에 돌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아팠다고 표현했던, 이별을 먼저 겪은 언니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나는 그게 호흡 곤란으로 표현된 것만 같았다.
숨쉬는 방법을 까먹은 것마냥 숨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산소없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사실 그 아이가 없어도 살고 있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도 못 쉬게 아팠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밥도 제대로 잘 넘기지를 못하다보니
일주일만에 4kg가 빠져서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그 이후로도 천천히 더 빠져서 거의 8kg가 빠졌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세상 모든 노래가 이렇게 슬픈거였구나-를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래 실력이 좋아진다. 왜냐고?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그 '이별 당한 자'의 폭발적 감상을 누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겠나.
또?
술먹다가 "내 매력의 유통기한이 이것 밖에 안돼?"라면서 펑펑 울면서 친구들을 당황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그렇게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우울해하며 그리워도 해봤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괜찮다.
잘 살고 있다.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때의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덮어줄 정도로 2배 이상의 긴 시간을 만나고 있으며, 그만큼 더 추억도 많고 나눈 이야기도 많다.
이제는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서 편하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20살에는 캠퍼스의 추억을 안겨다주었고, 21살에는 이를 복기하며 수련하는 과정이었구나 싶다.
즉, 그 때의 고통이 무색하게 나는 잘 살고 있단 말이다.
다만, 그 경험을 덕택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ㅡ보편적 인간사의 한 부분인 사랑과 그 끝의 이별을 체험함으로써.
이러한 나의 오늘과 과거를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겪었던 그 지난한 과정, 마음에서 모두 비워내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의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이별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반적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였다.
긴 시간이 지나면서 체감한 이별의 교훈.
마음 속에 이별로 인해 쓰나미가 덮친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 파도가 잠잠해진 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약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말하는구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가끔 추억도 되뇌이고, 곱씹고,
정신 차리면서 보란듯이 잘 살아야 겠단 마음으로 독하게 먹고 다른 일들에 몰두하면서 서서히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나가다보면,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이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어떠한 점이 부족했는지, 어떠한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는 것에 지쳐서 떠나가게 된 걸까. 수많은 가능한 이유들을 생각해보고, 그 오답노트를 토대로 다음 연애에서 더 잘 해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별하고 힘든 그대는 분명, 상대방이 잘해줬던 것만 생각나고, 나 자신이 잘 해주지 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서 힘들 것이다.
분명 자책하고 있겠지.
"그 아인 좋았는데, 내가 나빠서, 그래서 지친 거야. 그래서 헤어진거야."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나의 단점만을 찾아내는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에 함몰되면,
헤어진 상대방이 내 머릿속에서 이상화되면서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날 것만 같아'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지며 더 힘들어지고, 나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진다.
좋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군대를 이유로, 시험을 이유로, 장거리를 이유로, 성격 차이를 이유로.
갖은 이별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상황을 견딜만큼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상황도 견뎌주지 못한 사람에게 내 인생을 걸고 사랑할 필요는 없다.
편하게 생각하자.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때, 나중에는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다시 붙잡은 적이 있다.
그런데 곧 군대를 가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서로를 이해 못해서 그 상황에서 더 안좋게 헤어질 바에야 지금 좋게 끝내는 것이 낫다고 말했던 그 친구의 대답은
매우 합리적인 듯 했지만, 곱씹고 곱씹으며 생각하다보니 냉정한 결론에 다다랐다.
"어쨌든 군대를 가서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줘서 그 이후의 미래를 함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결국 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를 먼저 내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친구라면, 나와의 미래를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 친구라면,
나도 내 인생을 걸고 이렇게 힘들어하며 좋아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머릿속에서 이러한 사고의 결론에 다다랐다고 해서 마음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밝은 척, 더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도 했지만 사실 헤어지고 나서 반년은 가끔 자다가 운 적도 있었고,
나는 계속 힘든데 이렇게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구나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친구로 인해 힘들지 않게 될 때까지,
다소 씁쓸한 뒷맛을 남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 풍미가 나쁘지 않았던 연애지만,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될 때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다시하게 되었다.
즉, 지나간 사람을 어느 정도는 내 마음에서 보내줘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틈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 주고 싶은 말은.
마음 정리를 잘 하고, 추억에 대한 되새김질도 하면서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라는 것.
어느 순간, '아,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날이 온다.
나는, 전 남자친구를 포함하여 캠퍼스 친구들 20명이 다같이 만나는 동창회 자리에서 재회했을 때, 느꼈다.
미워서도 아니고, 눈에 콩깍지가 벗겨져서도 아니다. 그냥 느껴졌다. "더 이상 이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겠다."
그 이후에 그렇게 힘들었던 10개월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급속도로 마음에 평화를 되찾았고, 나는 그 뒤로 여유가 생겼다.
정말 새로운 연애를 할 수 있겠다는.
그러니, 말하건대,
당신의 마음만 열릴 준비가 되면, 알아서 멋진 남자가 다가올테니, 걱정말아달라.
물론 지금, 머릿속으로 다 아는데도 힘든건 어쩔 수 없는 일일테지.
심지어 나는 헤어지기 전,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도 전남자친구에 대해 욕을 많이 하며 힘들다고 징징댔는데도,
이별선고를 당하니 모든 것이 내 잘못과 몰이해인것만 같았고,
시간이 약이라는 소리는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느끼며 때아닌 '이별의 콩깍지'로 인해 힘들어했다.
이렇게 힘들 필요가 없는 것도 뻔히 아는데 힘들다.
다 나도 겪었던 일이고, 다른 사람들도 지금 겪으면서 수많은 이별 관련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공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다 지나갈 일이다. 지금 힘든데 '힘들어 하지 말라', '쉽게 생각해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충분한 시간동안 그와의 추억과 과거를 정리하고,이제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미련'이라 불러야 하는 그러한, 마치 서자 신세와도 같은 그러한 처지의 감정의 잔해들도 분해를 시키며 비워내고,힘들어할 때에는 힘들어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내가 다음 연애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이 고쳐져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전적으로 잘해주었으며 내가 부족했던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지는 말자는 것이다.결국 그 사람이 떠나간 것은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확실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를 상기하며,그러므로 나 역시 떠나간 그 사람에게 혼자 남아 내 인생에의 사랑을 그 사람에게 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직은 너무나도 아득한 미래의 일일 것만 같은 다음 사람과의 연애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더 따듯한 말을 더 많이 해주고, 더 오랜 기간동안 식지 않고 당신을 아껴주고 예뻐해주며 사랑해줄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 말고, 또 기운내서, 사랑하자. 아니, 사랑할 준비를 하자. 우리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별에 대한 단상, 그리고 사랑에의 의지
친구의 이별로 인해, 무려 3년전이라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나의 전 남자친구와의 이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은 아니고
그 친구와의 이별로 인해 내가 오랫동안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던 그 시간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에게 누구나 하는 말로 위로를 해 줬다.
"시간이 약이야. 정말 시간 앞에서 무뎌지더라."
"자유의 몸이니까, 이제 더 신나게 즐길 수 있어. 좋게 생각하자."
"그냥 좋은 남자가 아니라 이번 남자친구보다 훨씬 더 좋고 자상하고 잘생긴 남자 만나게 될 거야."
그런데ㅡ
사실 이런 말들이 지금 들어올 리가 없다. 왜냐면 나도 그랬으니까.
생각보다 자신이 너무 남자친구를 좋아했던 것 같다고 말하길래, 당연한 거라고 했다.
좋아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관계를 지속해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친구에게 말해줬다. 당연하지. 사귄 기간도 길었고 그만큼 쌓인 추억도 많으니까.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보니, 문득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21살때 지지리도 궁상맞던 나 자신을.
어찌 보면 흑역사라고 생각해서 묻어두고 싶기도 하지만,
지금 나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에 제일 많은 영향을 끼친 사건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던 중요한 고통의 과정을 오랜만에 머릿속의 해 묵은 상자 속에서 꺼내보았다.
이제는 그 때의 감정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내가 이별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오면서 얼마나 힘들어했었는지를 다시 생각해보니,
친구와의 대화가 한결 수월해졌다.
여자의 특징은 그런 거겠지? 공감, 감정이입이 훨씬 더 잘 된다.
그리고 그걸 아무런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남자들에 비하면, 그 고통을 전부 말로 승화시키다보니 훨씬 더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
이별 앞에서.
1년 조금 넘게 사귀었던 그 친구와 다투다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 머리가 멍해졌다. 모든 것의 이유니까.
"너 왜 이렇게 나한테 잘 못해줘, 왜 이러는거냐고, 이럴거면 나랑 왜 사귀냐"며 칼을 갈던 나에게
그 칼을 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임을 일깨워줬고,
그렇게 헤어졌다.
남의 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던 타입인 나는, 처음에 남들 앞에서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하는 '듯 해보였다'.'
하지만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가슴에 돌이 굴러다니는 것처럼 아팠다고 표현했던, 이별을 먼저 겪은 언니의 말이 새삼 와닿았다. 나는 그게 호흡 곤란으로 표현된 것만 같았다.
숨쉬는 방법을 까먹은 것마냥 숨을 제대로 쉬지를 못했다.
산소없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처럼, 내가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머릿속으로는 사실 그 아이가 없어도 살고 있고, 지금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도 못 쉬게 아팠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이 아니었다.
밥도 제대로 잘 넘기지를 못하다보니
일주일만에 4kg가 빠져서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그 이후로도 천천히 더 빠져서 거의 8kg가 빠졌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면, 세상 모든 노래가 이렇게 슬픈거였구나-를 새삼 깨닫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노래 실력이 좋아진다. 왜냐고? 노래는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인데, 그 '이별 당한 자'의 폭발적 감상을 누가 감히 따라잡을 수 있겠나.
또?
술먹다가 "내 매력의 유통기한이 이것 밖에 안돼?"라면서 펑펑 울면서 친구들을 당황하게 하는 찌질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그렇게 미워하고, 슬퍼하고, 화를 내고, 우울해하며 그리워도 해봤다.
그렇게 힘들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괜찮다.
잘 살고 있다.
또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때의 남자친구와의 추억을 덮어줄 정도로 2배 이상의 긴 시간을 만나고 있으며, 그만큼 더 추억도 많고 나눈 이야기도 많다.
이제는 나의 대학생활에 대해서 편하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20살에는 캠퍼스의 추억을 안겨다주었고, 21살에는 이를 복기하며 수련하는 과정이었구나 싶다.
즉, 그 때의 고통이 무색하게 나는 잘 살고 있단 말이다.
다만, 그 경험을 덕택에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ㅡ보편적 인간사의 한 부분인 사랑과 그 끝의 이별을 체험함으로써.
이러한 나의 오늘과 과거를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내가 겪었던 그 지난한 과정, 마음에서 모두 비워내기까지 걸렸던 수많은 시간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또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각자의 특수한 상황을 통해 '이별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의 일반적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였다.
긴 시간이 지나면서 체감한 이별의 교훈.
마음 속에 이별로 인해 쓰나미가 덮친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 파도가 잠잠해진 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약이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말하는구나.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가끔 추억도 되뇌이고, 곱씹고,
정신 차리면서 보란듯이 잘 살아야 겠단 마음으로 독하게 먹고 다른 일들에 몰두하면서 서서히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워나가다보면, 그렇게 시간은 지나간다.
이별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내가 어떠한 점이 부족했는지, 어떠한 행동으로 인해 상대방이 나와 함께 있는 것에 지쳐서 떠나가게 된 걸까. 수많은 가능한 이유들을 생각해보고, 그 오답노트를 토대로 다음 연애에서 더 잘 해 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별하고 힘든 그대는 분명, 상대방이 잘해줬던 것만 생각나고, 나 자신이 잘 해주지 못했던 것들만 생각나서 힘들 것이다.
분명 자책하고 있겠지.
"그 아인 좋았는데, 내가 나빠서, 그래서 지친 거야. 그래서 헤어진거야."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만을 생각하며 나의 단점만을 찾아내는 그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에 함몰되면,
헤어진 상대방이 내 머릿속에서 이상화되면서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날 것만 같아'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지며 더 힘들어지고, 나의 자존감은 더욱 낮아진다.
좋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서,
군대를 이유로, 시험을 이유로, 장거리를 이유로, 성격 차이를 이유로.
갖은 이별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상황을 견딜만큼 나를 사랑해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상황도 견뎌주지 못한 사람에게 내 인생을 걸고 사랑할 필요는 없다.
편하게 생각하자.
나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을때, 나중에는 내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서 다시 붙잡은 적이 있다.
그런데 곧 군대를 가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서로를 이해 못해서 그 상황에서 더 안좋게 헤어질 바에야 지금 좋게 끝내는 것이 낫다고 말했던 그 친구의 대답은
매우 합리적인 듯 했지만, 곱씹고 곱씹으며 생각하다보니 냉정한 결론에 다다랐다.
"어쨌든 군대를 가서 제대할 때까지 기다려줘서 그 이후의 미래를 함꼐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결국 헤어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나를 먼저 내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던 친구라면, 나와의 미래를 더이상 고려하지 않는 친구라면,
나도 내 인생을 걸고 이렇게 힘들어하며 좋아할 필요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물론 머릿속에서 이러한 사고의 결론에 다다랐다고 해서 마음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밝은 척, 더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도 했지만 사실 헤어지고 나서 반년은 가끔 자다가 운 적도 있었고,
나는 계속 힘든데 이렇게 시간은 빨리 지나가는 구나 싶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정확히 그 친구로 인해 힘들지 않게 될 때까지,
다소 씁쓸한 뒷맛을 남기긴 했지만 그래도 그 풍미가 나쁘지 않았던 연애지만,
다시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정도의 여유를 갖게 될 때까지는 약 1년이 걸렸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다시하게 되었다.
즉, 지나간 사람을 어느 정도는 내 마음에서 보내줘야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틈이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 주고 싶은 말은.
마음 정리를 잘 하고, 추억에 대한 되새김질도 하면서 천천히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라는 것.
어느 순간, '아,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아니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날이 온다.
나는, 전 남자친구를 포함하여 캠퍼스 친구들 20명이 다같이 만나는 동창회 자리에서 재회했을 때, 느꼈다.
미워서도 아니고, 눈에 콩깍지가 벗겨져서도 아니다. 그냥 느껴졌다. "더 이상 이 아이와 다시 만나게 될 일은 없겠다."
그 이후에 그렇게 힘들었던 10개월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급속도로 마음에 평화를 되찾았고, 나는 그 뒤로 여유가 생겼다.
정말 새로운 연애를 할 수 있겠다는.
그러니, 말하건대,
당신의 마음만 열릴 준비가 되면, 알아서 멋진 남자가 다가올테니, 걱정말아달라.
물론 지금, 머릿속으로 다 아는데도 힘든건 어쩔 수 없는 일일테지.
심지어 나는 헤어지기 전, 연애를 하면서 그렇게도 전남자친구에 대해 욕을 많이 하며 힘들다고 징징댔는데도,
이별선고를 당하니 모든 것이 내 잘못과 몰이해인것만 같았고,
시간이 약이라는 소리는 개소리에 불과하다고 느끼며 때아닌 '이별의 콩깍지'로 인해 힘들어했다.
이렇게 힘들 필요가 없는 것도 뻔히 아는데 힘들다.다 나도 겪었던 일이고, 다른 사람들도 지금 겪으면서 수많은 이별 관련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고, 공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다 지나갈 일이다. 지금 힘든데 '힘들어 하지 말라', '쉽게 생각해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다만, 충분한 시간동안 그와의 추억과 과거를 정리하고,이제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고 '미련'이라 불러야 하는 그러한, 마치 서자 신세와도 같은 그러한 처지의 감정의 잔해들도 분해를 시키며 비워내고,힘들어할 때에는 힘들어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내가 다음 연애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이 고쳐져야 할 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이 전적으로 잘해주었으며 내가 부족했던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코너에 몰아넣지는 말자는 것이다.결국 그 사람이 떠나간 것은 나를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확실하고도 근본적인 이유를 상기하며,그러므로 나 역시 떠나간 그 사람에게 혼자 남아 내 인생에의 사랑을 그 사람에게 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아직은 너무나도 아득한 미래의 일일 것만 같은 다음 사람과의 연애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더 따듯한 말을 더 많이 해주고, 더 오랜 기간동안 식지 않고 당신을 아껴주고 예뻐해주며 사랑해줄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 말고, 또 기운내서, 사랑하자. 아니, 사랑할 준비를 하자. 우리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