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련한 기억은 있기 마련이겠지만꼭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이렇게 센치해지고 해서 글을 써본다. 욕을해도 좋고 위로를 해주면 더 좋고.. 대학졸업한 나이가 27살, 막막한 앞날에 취업준비를 하면서 계약직으로 있던 그 회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사립대학 교직원을 준비하던 나와 승무원을 준비하던 그녀 당시 다 부숴져가던 내 소형똥차로 같은동네의 집까지 몇번 바래다준게 인연이 되어 각박한 세상속에 한줄기 빛처럼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돈이 없어도, 고급차가 없어도 그녀와 함께라면 1분1초가 아까울만큼 좋았다. 그녀도 좋았을것이라는 것은 성급한 내 합리화일줄 모르겠다만 그렇게 3년을 내 옆에 있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2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드디어 교직원으로 정규채용이 되었다. 나는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생각보다 이제 좀더 그녀에게 듬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뻐했고 그녀 또한 세상을 다가진 눈빛으로 나를 축하해주었다. "이제 나만 취업하면 되네" "오빠 취업했다고 나 버리면 학교 올라가서 진상부릴꺼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여자이자 내 사랑이었다. 그렇게 4개월 후 그녀는 메이저 항공사는 아니었지만 하늘을 누비는 멋진 승무원이 되었고 서울-부산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만 멀어졌을뿐 결혼과 행복한 삶이라는 곳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꺼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고 했던가. 2달만에 만난 그녀는 나만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붉은 입술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단언컨데 그날만큼은 나는 아프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았으며 매우 담담했다. "그래 타지에서 건강 잘챙기고 잘지내" "........""그만 일어나자 너랑 나랑은 이런 모습 어울리지 않아" 마치 내가 헤어지자고 한 것처럼 쿨하고 씩씩하게 뒤돌아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부터 장장 1년이라는 시간을 아파해야만 했다. 죽으려고 노력했던것 같기도 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건 1년 사이 간간히 오던 그녀의 연락..-잘지내??-밥 챙겨 먹고 다녀.. 오빠-좋은 사람 생겼어?? 모두 무시하고 살아볼려고 아둥바둥 노력했고서서히 그녀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처음으로 걸려온 그녀의 전화 난 다른건 모르겠고 그냥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너무 서럽고 서글퍼서 밥먹다 만채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말 ...........오빠.. 미안한데 나 오빠너무 보고 싶어 .................너무.......... 그길로 난 차를 몰았다. 그녀와 처음만나 타고다닌 소형똥차도 아니고 처음만난 그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냥 출발했다.일요일 저녁, 다음날 출근 이런생각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5시간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좋아하던 웨이브 머리도 하얀 얼굴도 그대로였지만 너무 낯설었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만나자 마자 안아줘야지, 눈물 닦아주고 예전처럼 웃겨줘야지 그리고 "좀 돌아오긴 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온거 축하해" 라고 말해줘야지 하는 온갖 영화 대사는 다 떠올렸는데.. 안되더라, 5시간의 생각보다 한 순간 든 생각이 날 가로막았어 우린 이미 늦었다는걸.. 니가 싫어진게 아닌데, 난 여전히 힘들고 아픈데 근데 그건 우리 함께한 날들을 그리워 하던거였어 니가 다시 내옆으로 돌아올거란 상상 그거 하나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했는데 ----------------------------------------------------------------- 이제서야 말해줄게. 일단 미안했다. 흐느끼는 니 어깨 따뜻이 안아주지 못해서. 서울에서 새롭게 씩씩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 서로 한때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던 사이였다는거 그거 하나는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해 적어도 누군가 한명쯤은 아련하게 그리워 하는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는거니까. 눈물이 나네.이게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래 그리고 너도 더이상 울지마. 2014년 코끝시린 어느겨울날 -오빠가- 2
그리고 그녀가 돌아왔다.
누구나 아련한 기억은 있기 마련이겠지만
꼭 크리스마스시즌이 되면 이렇게 센치해지고 해서 글을 써본다.
욕을해도 좋고 위로를 해주면 더 좋고..
대학졸업한 나이가 27살, 막막한 앞날에 취업준비를 하면서 계약직으로 있던 그 회사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사립대학 교직원을 준비하던 나와 승무원을 준비하던 그녀
당시 다 부숴져가던 내 소형똥차로 같은동네의 집까지 몇번 바래다준게 인연이 되어
각박한 세상속에 한줄기 빛처럼 그렇게 그녀와 나는 하나가 되었다.
돈이 없어도, 고급차가 없어도 그녀와 함께라면 1분1초가 아까울만큼 좋았다.
그녀도 좋았을것이라는 것은 성급한 내 합리화일줄 모르겠다만 그렇게 3년을 내 옆에 있었으니
그렇다고 치자.
2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드디어 교직원으로 정규채용이 되었다.
나는 안정된 직장을 가졌다는 생각보다 이제 좀더 그녀에게 듬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기뻐했고 그녀 또한 세상을 다가진 눈빛으로 나를 축하해주었다.
"이제 나만 취업하면 되네"
"오빠 취업했다고 나 버리면 학교 올라가서 진상부릴꺼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여자이자 내 사랑이었다.
그렇게 4개월 후 그녀는 메이저 항공사는 아니었지만 하늘을 누비는 멋진 승무원이 되었고
서울-부산이라는 물리적인 거리만 멀어졌을뿐 결혼과 행복한 삶이라는 곳과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꺼란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고 했던가.
2달만에 만난 그녀는 나만 사랑한다고 말하던 그 붉은 입술로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단언컨데 그날만큼은 나는 아프지 않았다. 슬프지도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았으며
매우 담담했다.
"그래 타지에서 건강 잘챙기고 잘지내"
"........"
"그만 일어나자 너랑 나랑은 이런 모습 어울리지 않아"
마치 내가 헤어지자고 한 것처럼 쿨하고 씩씩하게 뒤돌아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부터 장장 1년이라는 시간을 아파해야만 했다.
죽으려고 노력했던것 같기도 하고 저주를 퍼붓기도 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건 1년 사이 간간히 오던 그녀의 연락..
-잘지내??
-밥 챙겨 먹고 다녀.. 오빠
-좋은 사람 생겼어??
모두 무시하고 살아볼려고 아둥바둥 노력했고
서서히 그녀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질 무렵
처음으로 걸려온 그녀의 전화
난 다른건 모르겠고 그냥 그녀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너무 서럽고 서글퍼서 밥먹다 만채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그녀의 그말
...........오빠.. 미안한데 나 오빠너무 보고 싶어 .................너무..........
그길로 난 차를 몰았다.
그녀와 처음만나 타고다닌 소형똥차도 아니고 처음만난 그 나이도 아니었지만 그냥 출발했다.
일요일 저녁, 다음날 출근 이런생각 따위는 개나 줘버렸다.
5시간만에 도착한 그곳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좋아하던 웨이브 머리도 하얀 얼굴도 그대로였지만 너무 낯설었다.
서울까지 가는 길에 만나자 마자 안아줘야지, 눈물 닦아주고 예전처럼 웃겨줘야지
그리고 "좀 돌아오긴 했지만 제자리로 돌아온거 축하해" 라고 말해줘야지
하는 온갖 영화 대사는 다 떠올렸는데..
안되더라,
5시간의 생각보다 한 순간 든 생각이 날 가로막았어
우린 이미 늦었다는걸..
니가 싫어진게 아닌데, 난 여전히 힘들고 아픈데
근데 그건 우리 함께한 날들을 그리워 하던거였어
니가 다시 내옆으로 돌아올거란 상상 그거 하나만으로 하루를 보내고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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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말해줄게.
일단 미안했다.
흐느끼는 니 어깨 따뜻이 안아주지 못해서.
서울에서 새롭게 씩씩하게 잘 지내길 바랄게.
서로 한때는 세상에서 제일 가까웠던 사이였다는거 그거 하나는 오래 오래 기억했으면 해
적어도 누군가 한명쯤은 아련하게 그리워 하는 사람 정도는 있어야 하는거니까.
눈물이 나네.
이게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래
그리고 너도 더이상 울지마.
2014년 코끝시린 어느겨울날 -오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