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의 기독교의 항일 운동 - 부산진 일신여학교

쯧쯧쯧2015.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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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진 일신여학교는 근대적 여성 교육기관으로 호주 장로교 선교회 여자전도부가 1895년 10월 5일 좌천동에서 한칸의 초가집에서 수업연한 3개년의 소학과장학교를 설치하였는데 이 학교가 부산진 일신여학교였다. 지금 부산장로회 신학교가 자리하고 있으며, 금정구 부곡동에 있는 동래 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다. 1905년에 지어진 2층 벽돌교사가 아직도 남아 있으며 3.1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즉, 겉으로는 종교적인 색채를 띤 덕분에 일제가 식민지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한 세계정세에 눌을 떴고 또 민족정신을 함양아혀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는 항일독립운동의 씨앗을 심고 있었다

 

이러한 민족주의 교육의 결과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3.1 운동 당시 부산지역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3월2일에 이미 부산에 독립선언서가 당도했다.

 

1919 년 3 월 11 일 새벽 일신여학교 교사 2명 과 학생 십수명은 준비한 태극기를 손에들고 '대한독립만세' 를 외치며 좌천동으로 나갔다. 일본 군경이 대거 출동하여 교사들을 체포하고 거의 한달가 휴교령이 내려졌고 붙잡혀간 학생들과 교사는 모진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 살먹은 아이도 제 밥그릇을 빼앗으면 달라고 운다. 하물며 우리나라를 돌려달라는데 무엇이 나쁘냐' 하면서 굴하지 않았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1900 년대 이전의 한반도는 정말 한심할 정도로 궁핍한 나라였다.  한심한 유교 사상과 썩어빠진 불교가 만연해서 매년 수백명이 아사하던 그런 나라였다.

 

조국의 근대화는 외국 선교사들의 헌신이 밑거름이 되었다는건 유치원만 나와도 다 알수 있는 기정 사실인데 이런 조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던 개신교를  인터넷에서 '박멸','멸종' 하라는 애들은 쪽바리들의 후예 아닐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