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독교안티들은 성경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황당한 불경은 그냥 두고 성경만 걸고 넘어지는것이 웬지 찜찜하다. 안티불교라는 사이트는 몇년 전부터 업데이트가 중지되었는데 중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불경은 부처가 죽고 한참 후에 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겼다. 해탈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종교를 유지하기에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넣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토카레프가 지은 "세계의 종교"라는 책을 보자
[극락은 본래 없던 것] 이 열반이라는 실제적 이상상은 현학적 철학자들과 명철한 지성인들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분명한 것이 되지 못했다. 대중들은 보다 심정에 직접 와닿는 무엇인가를 원했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본래 불교에는 전혀 없던 극락이라는 곳에 대한 교설을 전개시켰다. 불교도들은 극락이라는 것에 덧붙여 지옥이라는 관념도 고안해 냈다. 신자들은 불법을 어김으로써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겪는 무시무시하고 현학적인 고통의 이야기에 완저히 겁에 질려버렸다. 대승불교가 여러 나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은 이러한 불교의 유연한 형태를 통해서였다. 불경은 성경과 달리 아무나 추가해서 계속 넣을 수가 있다. 그래서 중국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불경은 늘어났으며 8만 대장경도 모자랄 정도로 많아지게 된 것이다. 불교는 계속해서 종교화 되었다.
[인간부처가 신으로 대접받게 된 배경] 대중들은 보다 쉽고 넓은 길을 필요로 했다. 신 또는 신들이 없는 종교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즉 신자들은 신이나 신들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를 지혜의 스승이던 위치에서 하나의 신으로 격상시켰다. 따라서 점차 불타에 대한 숭배가 발전되어갔다. 인도불교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승불교에는 원시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협잡물이 포함되어 있다." (17페이지) "불교는 힌두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8페이지)
[불교에 주술이 생긴 이유] 대승불교 속에는 처음부터 주술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이것은 민중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미 "반야경을 수지함으로써 위난을 면할 수 있다." 고 강조되고 있으며 관음보살을 신앙함으로써 모든 재해를 면할 수 있다. 고 설해지고 있다. 이러한 주술적인 요소가 우세해서 밀교(주술적인 불교의 일종으로 한국에 뿌리내렸음)가 왕성해 졌다. 한국 불교에서 밀교를 빼놓고는 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곳곳에 뿌리내린 것 또한 사실이다 ("인도불교의 역사" 히라가와 아끼라 지음, 민족사, 17)
[불경은 온전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 불타(부처)가 입멸한 후 가르침이 수집되었다. 이것들은 기억에 의해 전래되었기 때문에, 전승되는 동안에 제자들의 이해나 해석이 부가되고 증보되어 불가피하게 옛 가르침이 변화하게 되었다. .. 가장 변형되지 않은 아함경 조차도 불타의 가르침 그대로가 아니다. (인도불교의 역사 상, 민족사, P59)
[불경의 과장된 이유] 대승불교 속에는 처음부터 주술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이것은 민중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술적인 요소가 대승불교속에서 점차 우세해져 AD6세기 경부터 차츰 밀교가 왕성해 지는 것이다. (인도불교의 역사, 민족사, 17) 불타가 살았던 시대와 용수의 시대 사이에는 많은 교리들이 가지를 치면서 발전하였다. 교리들의 일부는 불타의 최초의 설법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에서부터 나타난 것이며(주관적인 1차 변형), 또 그 중 일부는 불타가 걸었던 도정을 힌두교의 여러 형이상학적 교설과 대비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개는 불타가 본래 의도했던 바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의 공과", 하나님 한스 발덴펠스, 서울:대원정사, 1993.) [가공된 불교의 전설] 불교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불교의 전설(과장되기 전)들은 이 종교의 교조인 불타가 자신의 교리를 가르쳤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한다. 후에 순수하게 가공된 전설은 불타를 위대한 신으로 묘사했으며, 그의 탄생과 삶에 관련된 기적들과 그의 전생들에 대해 얘기한다.
세계 최초의 불교서적 "삼장"에 따르면 후대의 전설적인 문학과 같이 초자연적인 내용들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부처의 생애만 있음) 후대에 문학적인 수식이 첨가되었으므로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류가 될 것이다. 가장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식은 불교의 창시자를 역사적 인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다음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의 태도일 것이다. 즉 그의 삶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그에 관한 수많은 전설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며, 오히려 그 전설들은 부분적으로 어떤 일정한 모양에 맞추어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세계의 종교, 세르게이 토카레프 지음, 한국 종교연구회 옮김, 사상사, 1991)
[고승들이 인정] 김모씨의 고승과의 대화에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타 종교의식을 모방하면서 왜 불교를 옛날처럼 변질시키고 있습니까? 고승의 대답을 들어 봅니다. 1. 불교와 타 종교와 핵심사상(무신론사상, 유일신사앙)이 완전히 다른 종교이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타 종교를 견제하기 위해서 종교는 어느 종교든지 다 똑 같다라는 의식을 국민들에게 시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기독교 의식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승들이 실토했습니다. 2. 미신불교 이대로 이끌어 가게 되면 30~40년안에 불자들이 타 종교로 개종되어 70%의 많은 불자들을 잃을 수밖에 없는 큰 위기를 맞게 될 불교가 크게 염려되어 또 다시 불교를 변질시키는 한이 있어도 타종교 의식을 모방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승들이 실토했습니다.
성경 반대운동 펼치는 안티들의 모순
성경 반대운동 펼치는 안티들의 모순
최근 기독교안티들은 성경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반대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황당한 불경은 그냥 두고 성경만 걸고 넘어지는것이 웬지 찜찜하다. 안티불교라는 사이트는 몇년 전부터 업데이트가 중지되었는데 중요한 내용이 많이 들어있다.
불경은 부처가 죽고 한참 후에 제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겼다. 해탈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으로 종교를 유지하기에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서 넣었다. 이에 대해 세르게이 토카레프가 지은 "세계의 종교"라는 책을 보자
[극락은 본래 없던 것]
이 열반이라는 실제적 이상상은 현학적 철학자들과 명철한 지성인들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분명한 것이 되지 못했다. 대중들은 보다 심정에 직접 와닿는 무엇인가를 원했다. 따라서 대승불교는 본래 불교에는 전혀 없던 극락이라는 곳에 대한 교설을 전개시켰다.
불교도들은 극락이라는 것에 덧붙여 지옥이라는 관념도 고안해 냈다. 신자들은 불법을 어김으로써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겪는 무시무시하고 현학적인 고통의 이야기에 완저히 겁에 질려버렸다. 대승불교가 여러 나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간 것은 이러한 불교의 유연한 형태를 통해서였다.
불경은 성경과 달리 아무나 추가해서 계속 넣을 수가 있다. 그래서 중국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불경은 늘어났으며 8만 대장경도 모자랄 정도로 많아지게 된 것이다. 불교는 계속해서 종교화 되었다.
[인간부처가 신으로 대접받게 된 배경]
대중들은 보다 쉽고 넓은 길을 필요로 했다. 신 또는 신들이 없는 종교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즉 신자들은 신이나 신들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불교의 창시자인 고타마를 지혜의 스승이던 위치에서 하나의 신으로 격상시켰다. 따라서 점차 불타에 대한 숭배가 발전되어갔다.
인도불교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대승불교에는 원시불교에서 볼 수 없었던 협잡물이 포함되어 있다." (17페이지)
"불교는 힌두교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졌다." (18페이지)
[불교에 주술이 생긴 이유]
대승불교 속에는 처음부터 주술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이것은 민중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것이었다.
여기서는 이미 "반야경을 수지함으로써 위난을 면할 수 있다." 고 강조되고 있으며 관음보살을 신앙함으로써 모든 재해를 면할 수 있다. 고 설해지고 있다. 이러한 주술적인 요소가 우세해서 밀교(주술적인 불교의 일종으로 한국에 뿌리내렸음)가 왕성해 졌다. 한국 불교에서 밀교를 빼놓고는 불교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곳곳에 뿌리내린 것 또한 사실이다 ("인도불교의 역사" 히라가와 아끼라 지음, 민족사, 17)
[불경은 온전한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아니다]
불타(부처)가 입멸한 후 가르침이 수집되었다. 이것들은 기억에 의해 전래되었기 때문에, 전승되는 동안에 제자들의 이해나 해석이 부가되고 증보되어 불가피하게 옛 가르침이 변화하게 되었다. .. 가장 변형되지 않은 아함경 조차도 불타의 가르침 그대로가 아니다.
(인도불교의 역사 상, 민족사, P59)
[불경의 과장된 이유]
대승불교 속에는 처음부터 주술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이것은 민중의 종교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부득이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술적인 요소가 대승불교속에서 점차 우세해져 AD6세기 경부터 차츰 밀교가 왕성해 지는 것이다. (인도불교의 역사, 민족사, 17)
불타가 살았던 시대와 용수의 시대 사이에는 많은 교리들이 가지를 치면서 발전하였다. 교리들의 일부는 불타의 최초의 설법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에서부터 나타난 것이며(주관적인 1차 변형), 또 그 중 일부는 불타가 걸었던 도정을 힌두교의 여러 형이상학적 교설과 대비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개는 불타가 본래 의도했던 바를 위기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불교의 공과", 하나님 한스 발덴펠스, 서울:대원정사, 1993.)
[가공된 불교의 전설]
불교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가장 오래된 불교의 전설(과장되기 전)들은 이 종교의 교조인 불타가 자신의 교리를 가르쳤던 역사적 인물이라고 한다. 후에 순수하게 가공된 전설은 불타를 위대한 신으로 묘사했으며, 그의 탄생과 삶에 관련된 기적들과 그의 전생들에 대해 얘기한다.
세계 최초의 불교서적 "삼장"에 따르면 후대의 전설적인 문학과 같이 초자연적인 내용들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부처의 생애만 있음) 후대에 문학적인 수식이 첨가되었으므로 모든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류가 될 것이다. 가장 올바르게 이해하는 방식은 불교의 창시자를 역사적 인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다음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학자들의 태도일 것이다. 즉 그의 삶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고, 그에 관한 수많은 전설도 믿을 만한 것이 못되며, 오히려 그 전설들은 부분적으로 어떤 일정한 모양에 맞추어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세계의 종교, 세르게이 토카레프 지음, 한국 종교연구회 옮김, 사상사, 1991)
[고승들이 인정]
김모씨의 고승과의 대화에서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타 종교의식을 모방하면서 왜 불교를 옛날처럼 변질시키고 있습니까? 고승의 대답을 들어 봅니다.
1. 불교와 타 종교와 핵심사상(무신론사상, 유일신사앙)이 완전히 다른 종교이지만 급성장하고 있는 타 종교를 견제하기 위해서 종교는 어느 종교든지 다 똑 같다라는 의식을 국민들에게 시어주기 위한 방편으로 기독교 의식을 모방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승들이 실토했습니다.
2. 미신불교 이대로 이끌어 가게 되면 30~40년안에 불자들이 타 종교로 개종되어 70%의 많은 불자들을 잃을 수밖에 없는 큰 위기를 맞게 될 불교가 크게 염려되어 또 다시 불교를 변질시키는 한이 있어도 타종교 의식을 모방할 수 밖에 없었다고 고승들이 실토했습니다.
http://cafe.daum.net/sgs1009/Rsmj/19?q=%BA%D2%B0%E6%C0%CC+%BC%BA%B0%E6%C0%BB+%B8%F0%B9%E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