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 위해 병가 내러 간 직원에 "야근 하고 가라"문주현 입력 2016.08.22 20:23댓글691요약보기SNS 공유하기글씨크기 작게글씨크기 크게한솔케미칼 근무중 급성백혈병 발병해 숨진 청년 노동자, 그의 유족들을 만났다
[오마이뉴스 글:문주현, 편집:박정훈]
지난 3일 새벽, 급성 백혈병으로 10개월 가까이 투병 중이던 청년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결국 숨을 거뒀다. 전북 완주군 봉동공단의 화학공장 한솔케미칼에서 3년 가까이 일한 이씨는 3살 딸과 이제 100일을 갓 넘긴 아들, 부인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관련 기사: '백혈병 산재' 신청 노동자, 역학조사 못 받고 숨져).
그 꿈은 급성백혈병으로 깨졌다. 이씨는 백혈병의 원인이 회사에서 다뤘던 유해물질과 장시간 노동 때문이라며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함께 지난 5월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산재 조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현장 조사를 비롯한 구체적인 역학조사 계획도 공개되지 않았다.
▲ 지난 4월 28일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 아무개씨의 산재를 신청하며 기자회견을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 앞에서 열었다. ⓒ 문주현지난 4일 고인의 장례식장을 찾아 유족들을 만났다. 유족들은 이씨가 죽기 전, 산재 결과를 무척 기다렸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그는 역학조사가 시작되는 것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남편은 지난 3개월 동안 많이 기다렸어요. 몸이 좀 좋아져 말을 하게 되면 꼭 (산재에 대한) 말을 했죠. 아이들 때문이라도 꼭 산재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일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꼭 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본인이 아픈 것은 100% 유해물질 노출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조사 결과가 안 나오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본인이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가봐야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 이씨의 부인 A씨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난 6월 30일 역학조사 의뢰를 받았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구체적인 역학조사 계획을 말해줄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조사는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한솔케미칼에 2012년 1월 입사하여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난 10월 말일까지 3년 가까이 근무했다. 유족들은 이씨가 장시간 노동에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한솔케미칼은 LCD 등 전자제품 생산공정에 필요한 전극보호제와 세정제 등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다.
"백혈병 의심 소견서 들고 갔는데 야근하고 가라고 했어요"
지난 5월 한솔케미칼은 이씨의 백혈병 발병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휴직하고 치료에 전념 중인 이씨의 회복과 복직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한솔케미칼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르다"고 봤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백혈병 검사를 위해 입원 수속을 밟은 지난해 11월 초, 입원 당일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사정은 이렇다. 10월 중순 이씨는 심한 기침 등 감기 기운에 몇 차례 병원에 다녔다. 감기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밤중에는 이불 두세 겹을 덮고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혈액 수치 검사 결과가 나왔다. 백혈구 수치가 6만을 넘어선다는 것. 정상 수치가 6천~1만이라는 점을 비춰볼 때 심각한 상황이었다
"혈액의 염증 수치가 높다는 소견서를 받고 당장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사위는 소견서를 가지고 회사에 병가 신청을 하려고 했죠. 전화로 해도 될 것을 직접 찾아가서 말을 해야 한다기에 제가 짐을 싸서 같이 갔어요. 경비실에서 저의 출입은 막더군요. 사위가 자기가 말하고 오겠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가라고 그랬답니다. 결국 그날 야근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전주의 큰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 이씨의 장인
그의 말이 끝나자 부인 A씨가 "(회사 관리자가) 휴가 요청을 하면 대체가 없지 않으냐, 피곤하면 항생제 맞으면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하루 기본 8시간 근무에 많게는 12시간까지 일을 했다. 월 잔업이 100시간을 넘어가기도 했다. 장모는 "회사가 돈도 좋지만 사람을 죽이려고 하냐"며 사위 걱정을 했다. 이씨는 지난 4월 28일 산재 신청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편지를 통해 "첫 아이가 태어난 무렵부터 제품의 출하량이 급격히 늘었고 거의 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근무도 많았고,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내 A씨는 "근무시간에 교육이 있었다고는 해요. 그러나 일지에 사인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눈에 물질이 들어가면 물로 씻고 안과 치료를 받았어요. 입사 전 1.2였던 시력이 0.5까지 떨어졌어요. 옆에서 보기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족 측 "산재 신청 하지말라고 했다"... 사측 "그런 적 없다"
유족들은 이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회사가 보인 태도에도 분노했다.
"(회사 관계자들이) 집까지 찾아왔어요. 산재 신청을 못 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불안해 했어요. 온 사람들이 다 윗사람들이잖아요. 당연히 부담스러워했죠. 가고 나면 손도 떨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 이씨의 부인 A씨
이씨는 애타게 기다렸던 산재 결과는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눈을 감기 1주일 전에)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기운이 없어 작은 목소리로 '엄마, 나야! 이제 산소호흡기 뺐어'라고 말했어요. 제가 좋아지면 차 한 대 사줄 테니까 가족들하고 여행도 하라고 했지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느리에게) 무슨 차 살지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 이씨의 어머니
이씨의 어머니 B씨는 간암을 앓고 있는 이씨의 아버지와 함께 광주광역시에 머물고 있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간암 치료를 중단하고 이씨의 산재 신청 등을 도맡아 진행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씨의 아버지였다.
A씨와도 영상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아이들 기 안 죽이게 잘 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평상시와 비슷했는데, 그때는 눈물을 흘렸어요."
한편, 한솔케미칼 관계자는 이씨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야근을 한 것에 대해 "당시 관리자와 상호 간에 이해하고 근무에 임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당시 고인은 야간 근무자였고 응급실 외에는 (문을 연 곳이) 없어 근무를 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또한, 유족과 이씨를 만나 산재 신청 중단을 종용했다는 것에 대해 "상호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어떤 것이 불편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라면서 "한솔케미칼은 이씨의 병 치료를 위한 의료비 전액을 다 지원했고 급여도 대부분 지원하여 생계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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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인터넷대안언론 참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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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아빠를 두달만에 떠나보내고....
네이트 기사중에 스크린도어로 죽은 20살짜리 남성분의 기사를 보면서 정말 그 어머니 말에 공감을 하면서 바보같이 착실하다가 죽은 우리오빠가 생각나서 글을 씁니다...
작년10월 저희오빠는 백혈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오빠의 회사는 화약품 케미컬로 우리나라 대기업 S사에 휴대폰 소독제를 납품을 하는 회사였습니다...
1년중에 감기도 한번 잘 안걸리던 건강한오빠였습니다. 하지만 작년 중순부터 오빠는 감기기운과 피부병처럼 빨개지는등 이상증상이있었지만...
감기가 나아지지 않아서 10월 중 병원을 갔더니 백혈구수치가 6만이 나와서 병원측에서는 큰병원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회사에 근무를 빠지고 큰병원을 가야된다고하니...회사에서는 항생제 맞으면서 일하래요....
어떻게든 병원에 데리고 갈려고 장인어른까지 회사에 동행해서갔지만 미친놈의 상급자라는 놈이 항생제맞으면서 일하라면서 병원을 안보내줬습니다
백혈병의심으로 큰병원가라고했는데....미친놈이죠 지금도 죽이고 싶도록 저주스럽습니다
그다음 오빠가 야간까지하고 다음날 나온수치는 8만....................
몸이 지칠데로 지쳤죠...그렇게 오빠는 이미 몸이 약해진상태에서 투병생활하던중 8월3일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회사측에서는 본인사망으로 나오는 보험금등 지급절차에있어서 갖은 핑계를 대면서 지급을 지연하고있으며, 보험사측으로 개인적으로 확인한서류 이외 추가서류를 지속요구하면서 회사에서 별도 사망보험금을 타서 줘야된다며 지속 말을 바꾸며 미루고있습니다...참더럽죠???
애기들 키우겠다고...먹고 살겠다고 바보처럼....
오빠가 자필로 쓴편지 보면 눈물만나고 내가 할수일은 병신같이 이렇게 하소연글이나 올리고 주변에 조금씩알리는 것뿐....
그런 와중에...아빠도 암말기였습니다... 오빠안테 가고싶었나..9월26일 아빠마저 보내야했습니다
오빠가 안아팠다면 치료도 받고 중국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하지만 아들이 아픈데 본인도 투병생활을 하면 가족이 병간호하는데 있어서 부담되기에 포기하고.....정년퇴직후 해외여행중 엄마와 중국을 가고싶어했지만..........안되었네요
오빠가 아프고 난뒤 아빠도 급격히 몸이 안좋아지는게 눈에 보일정도 힘들어했고...
오빠가 하늘나라로 간뒤로는 정말 하루하루가 다르게 안좋아지는게 눈에 보이더니...결국 전 사랑하는 가족 2명을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바보 머저리 병신같이 아무것도 못하고 글이나 쓰고있는 내가 정말 밉고 세상 정유라처럼 금수저 가지고태어났으면 우리오빠 그 고생하면서 일을 다녔을까싶고...
금수저로 안태어나면 세상 병신같이 당하고 살아야하는 이사회가 정말 싫네요...
아래는 저희오빠 기사입니다..
죽도록 싫고 저주스럽고 죽이고싶고 정말 사람이 왜 가족을 원치 않게 잃으면 나도 따라가고싶고 죽고싶은지 알꺼같아요...
진짜 남은식구 챙길려고 죽지못해서 살지만 정말....매일같이 기도합니다...
오빠랑 아빠가 곁으로 하루빨리 가고싶다고....안일어났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한번만 꿈에서 나오라고 너무보고싶다고....
===================
http://v.media.daum.net/v/20160822202303480?f=m
입원 위해 병가 내러 간 직원에 "야근 하고 가라"문주현 입력 2016.08.22 20:23댓글691요약보기SNS 공유하기글씨크기 작게글씨크기 크게한솔케미칼 근무중 급성백혈병 발병해 숨진 청년 노동자, 그의 유족들을 만났다[오마이뉴스 글:문주현, 편집:박정훈]
지난 3일 새벽, 급성 백혈병으로 10개월 가까이 투병 중이던 청년 노동자 이아무개씨가 결국 숨을 거뒀다. 전북 완주군 봉동공단의 화학공장 한솔케미칼에서 3년 가까이 일한 이씨는 3살 딸과 이제 100일을 갓 넘긴 아들, 부인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다(관련 기사: '백혈병 산재' 신청 노동자, 역학조사 못 받고 숨져).
그 꿈은 급성백혈병으로 깨졌다. 이씨는 백혈병의 원인이 회사에서 다뤘던 유해물질과 장시간 노동 때문이라며 민주노총 전북본부와 함께 지난 5월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산재 조사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현장 조사를 비롯한 구체적인 역학조사 계획도 공개되지 않았다.
"남편은 지난 3개월 동안 많이 기다렸어요. 몸이 좀 좋아져 말을 하게 되면 꼭 (산재에 대한) 말을 했죠. 아이들 때문이라도 꼭 산재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일한 것이 억울해서라도 꼭 받아야 한다고... 그리고 본인이 아픈 것은 100% 유해물질 노출 때문이라고 그랬어요. 조사 결과가 안 나오니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모르겠다고 본인이 직접 근로복지공단에 가봐야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가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 이씨의 부인 A씨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지난 6월 30일 역학조사 의뢰를 받았다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구체적인 역학조사 계획을 말해줄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나 조사는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한솔케미칼에 2012년 1월 입사하여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난 10월 말일까지 3년 가까이 근무했다. 유족들은 이씨가 장시간 노동에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한솔케미칼은 LCD 등 전자제품 생산공정에 필요한 전극보호제와 세정제 등을 생산하는 화학공장이다.
"백혈병 의심 소견서 들고 갔는데 야근하고 가라고 했어요"
지난 5월 한솔케미칼은 이씨의 백혈병 발병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휴직하고 치료에 전념 중인 이씨의 회복과 복직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족들은 한솔케미칼의 이 같은 반응에 대해 "겉과 속이 다르다"고 봤다. 무엇보다 유족들은 백혈병 검사를 위해 입원 수속을 밟은 지난해 11월 초, 입원 당일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사정은 이렇다. 10월 중순 이씨는 심한 기침 등 감기 기운에 몇 차례 병원에 다녔다. 감기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밤중에는 이불 두세 겹을 덮고 잠을 청했다. 그러던 중 병원에서 혈액 수치 검사 결과가 나왔다. 백혈구 수치가 6만을 넘어선다는 것. 정상 수치가 6천~1만이라는 점을 비춰볼 때 심각한 상황이었다
"혈액의 염증 수치가 높다는 소견서를 받고 당장 큰 병원에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어요. 사위는 소견서를 가지고 회사에 병가 신청을 하려고 했죠. 전화로 해도 될 것을 직접 찾아가서 말을 해야 한다기에 제가 짐을 싸서 같이 갔어요. 경비실에서 저의 출입은 막더군요. 사위가 자기가 말하고 오겠다고 해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가라고 그랬답니다. 결국 그날 야근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전주의 큰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 이씨의 장인
그의 말이 끝나자 부인 A씨가 "(회사 관리자가) 휴가 요청을 하면 대체가 없지 않으냐, 피곤하면 항생제 맞으면서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해요"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하루 기본 8시간 근무에 많게는 12시간까지 일을 했다. 월 잔업이 100시간을 넘어가기도 했다. 장모는 "회사가 돈도 좋지만 사람을 죽이려고 하냐"며 사위 걱정을 했다. 이씨는 지난 4월 28일 산재 신청에 앞선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편지를 통해 "첫 아이가 태어난 무렵부터 제품의 출하량이 급격히 늘었고 거의 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근무도 많았고,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아내 A씨는 "근무시간에 교육이 있었다고는 해요. 그러나 일지에 사인만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눈에 물질이 들어가면 물로 씻고 안과 치료를 받았어요. 입사 전 1.2였던 시력이 0.5까지 떨어졌어요. 옆에서 보기 정말 안타까울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유족 측 "산재 신청 하지말라고 했다"... 사측 "그런 적 없다"
유족들은 이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회사가 보인 태도에도 분노했다.
"(회사 관계자들이) 집까지 찾아왔어요. 산재 신청을 못 하게 이야기를 했어요. 백혈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불안해 했어요. 온 사람들이 다 윗사람들이잖아요. 당연히 부담스러워했죠. 가고 나면 손도 떨면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어요." - 이씨의 부인 A씨
이씨는 애타게 기다렸던 산재 결과는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
"(눈을 감기 1주일 전에) 전화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어요. 기운이 없어 작은 목소리로 '엄마, 나야! 이제 산소호흡기 뺐어'라고 말했어요. 제가 좋아지면 차 한 대 사줄 테니까 가족들하고 여행도 하라고 했지요.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며느리에게) 무슨 차 살지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 이씨의 어머니
이씨의 어머니 B씨는 간암을 앓고 있는 이씨의 아버지와 함께 광주광역시에 머물고 있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이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간암 치료를 중단하고 이씨의 산재 신청 등을 도맡아 진행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문을 두드린 것도 이씨의 아버지였다.
A씨와도 영상통화가 마지막이었다.
"아이들 기 안 죽이게 잘 해야 한다는 말을 했어요. 평상시와 비슷했는데, 그때는 눈물을 흘렸어요."
한편, 한솔케미칼 관계자는 이씨가 병원에 입원하기 전날, 야근을 한 것에 대해 "당시 관리자와 상호 간에 이해하고 근무에 임한 것으로 확인했다"면서 "당시 고인은 야간 근무자였고 응급실 외에는 (문을 연 곳이) 없어 근무를 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또한, 유족과 이씨를 만나 산재 신청 중단을 종용했다는 것에 대해 "상호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으며 어떤 것이 불편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대화를 나눈 것"이라면서 "한솔케미칼은 이씨의 병 치료를 위한 의료비 전액을 다 지원했고 급여도 대부분 지원하여 생계에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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