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글 처음 써보는거라 필력 떨어져도 이해부탁드려요.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문제입니다. 주작이라고 생각은 말아주세요.
일단 저는 한 중학교에 다니는 16살 여자입니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 이곳에 써봅니다.
저는 일단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원래 2급이라는 뇌병변 장애를 가졌지만, 인대수술로인해 6급으로 되었습니다.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머릿속 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여기까진 뭔가 평범해보이실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중국분이십니다. 그리하여 한국에 돈을 벌기위해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16살이나 많은 저희 아버지와 예쁜연애를하다가 결혼을하여 이곳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한국의 땅을 밟았습니다. 2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저를 임신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임신하신 저희 어머니는 저를 낙태하려 했으나 저희 아버지께서 외할머니께 조그마한 돈을 쥐어드리며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며 제발 저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재혼하여 돈을벌려고 한국에 오신것이기에 돈의 유혹을 버티지못한채 저를 낳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다 책임지겠다고 한 이유가 다있습니다. 친가쪽은 돈이 꽤 많았습니다. 빌라 한채, 두채? 정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빌라는 사신것은 저희 친할아버지셨습니다. 친할아버지는 도박으로 인해 빌라를 사들이신겁니다. 사실 이 얘긴 저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도박으로 인해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 힘들어하셨다는 것도 말입니다.
사실 자신의 어머니가 힘들어한걸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하지 않기 마련이지만, 저희 아버지는 도박중독이셨습니다. 거기에 분노조절장애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전 어머니께서 21살 꽃다운 나이이실때 조산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어리시다보니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어렵게 취직을 했습니다. 그로인해 어쩔수없어 직장동료분들 전화번호는 저희어머니 전화기에 저장되었고 그중엔 남자번호도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나이도 나이 이신지라 어머니께서 젊은 남자를 찾는다고 생각했던건지 남자번호라는게 보이면 바로 가정폭력을 해오셨고, 어머니가 장보러간사이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저와함께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도박을 하러가겠다했지만 어머니는 제가 있으니 가지말라고 말리셔서 화가 나신 상태로 저의 왼쪽얼굴을 가격했습니다.
얼굴엔 피멍이생기고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그때 제 뇌속의 신경이 망가져 장애가 생겼습니다. 그 이후 제 기억은 5살때부터입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계속 때리셨습니다. 몸전체가 피멍이 들때까지요. 전 그장면들을 유년기 시절 다 보았습니다. 티브이는 물론 가구들도 다 망가졌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안때리시더군요. 아무리 화나도 말이죠. 절 장애아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휩싸여 저는 맞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어머니는 이때부터 이혼서류를 준비하였습니다.
전 가정폭력으로 인해 어머니께서 제가 힘들까봐 친할머니댁에 저를 맞기셨습니다. 자신의 얼굴엔 흉터가 지고 몸에도 흉터가 생겼지만 저를 우선시 하였죠. 전 그렇게 부모님 사랑은 받지못한채 할머니댁에서 자랐습니다. 아, 도박으로 빌라는 다팔렸고, 할머니댁은 저를 데리고 비좁고 벌레들이 많은 곳으로 이사갔죠. 그땐 갓 초딩이였습니다.
또한 저는 행복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시절 모든 가정이 저같은줄 알았으니까요.
어느덧 9살이 된 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 몰래 이혼하셨다는 것을요. 4년에 걸쳐 힘들게한 이혼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대로 친할머니댁에서 살았죠. 부모사랑? 있을리가요ㅎ
그리고 저희 어머닌 핸드폰을 하나를 더 장만하여 저와도 연락이 안되도록 9개월동안 저와 친가쪽을 피해다녔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연락조차 되지않자 울기 바빴고 9개월이 지난 어느날 어머니는 저에게 연락을했고 어머니는 10살 제생일인 12월 ㅇㅇ일에 오시게ㅣㅆ다고 했습니다.
10살때 생일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선 절 위해 미역국 케이크 다준비했죠. 어머니만 오시면 완벽한 생일인데 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서러워서 몰래 운다고 울었는데 저희 할머니께서 그걸 보셨는지 저희 어머니께 전화를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는 종종 절 보러 왔었습니다.
2012년 2월경 쯤입니다. 갓 11살이되었고, 대학병원에 매주 월요일 재활치료를 다녔습니다. 그날도 월요일이었으며 시간이 늦어서 횡단보도를 뛰어야하는 상황에 저 혼자 뛰었고 할머니께 오지말라고 하였지만, 급하신 나머지 신호위반을 하셔서 콘크리트차아시죠? 교통사고에요. 갑작스러웠죠. 울음밖에 나오질않았고, 장례식장에선 의젓한척 씩씩한척 혼자 다했어요ㅎ
그날이후 아버진 중국에 일하러 2년동안 가셨고 전 엄마와 살게되었습니다. 저로선 드디어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수 있구나 하고 좋아했지만 환상이였습니다.
어머니 옆을 항상 쫒아다니며 도와줄려 노력하는 딸이자 11살 장애아가 귀찮았나 봅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디ㅡ하시면서도 이모님껜 제가 젖먹는 애새끼도 아니고 너무 따라다녀 귀찮디ㅡ고 하신걸 들어버린 저는 빨래를 너는것을 도와드리려다 그만두었고, 어머니의 성적 집착은 나날이 심해졌습니다.
초등학교때이지만, 3번 집을 쫒겨나 5시간씩을 돌아다녔으며, 70점대가 나오면 자가 뿌러지고 온몸에 피멍이들고 머리채도 잡혔습니다. 베란다로 밀쳐지기도 했습니다.호흡곤란도 왔었고 쓰러질뻔도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자해도 했습니다. 그러기엔 제 용기가 부족 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전 외할머니께 초등학생이란 신분에 집안일을 똑바로 안한다는 이유로 많이혼났습니다. 물건들이 저에게로 날라오기도 하며 날카로운것으로 협박도 받았습니다. 제 책상에 있는 물건을 저에게 던지자 제가 소리른ㅅ 질러버렸고 할머니께선 저에게 미안하다며 다신 안그러겠다 하셨지만 어머니와 집을 나와 이사하였습니다.
중학교때 입니다. 이때는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일이죠.
그냥 한마디로 짐승쳐맞듯이 맞았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 개한테 물렸냐, 넘어졌냐 소리도 들었습니다. 한번은 자해한거 들켜서 그냥 넘어졌다고만 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절 짐승대하듯 하셔서 맞다가 한번은 어머니앞에서 칼들고 자살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하면 다 끝날줄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칼 가져오라며 자신이 죽여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집도 쫒겨난적도 있습니다. 8시간정도는 밖에서 맴돌았습니다. 자해고 뭐고 다해본 시기였습니다. 유서도 써봤고 온라인 가정폭력 신고서도 써봤습니다.
전 애정결핍이 있습니다. 지금도요. 페이스북이란 곳에선 절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호기심에 밤 9시쯤 밤일 하시는 어머니몰래 남자를 만났습니다. 섹스는 안했습니다. 스킨쉽따위 없었습니다. 그저 저보다 한살많은 그오빠가 틴트사주고 커피마신게 전부입니다. 그러곤11시에 들어왔습니다.
그이후 어머니에게 그것을 들켜 집안에서 날아다녔다고 비유할만큼 맞았습니다. 어머니말에 대답할 시간도 없이 그냥 맞았습니다. 3시간을 서있었습니다. 어머닌 말했죠. 병원에서 아무일없던거 증명할수 있냐면서요. 전 정신병원인줄 알았더니 산부인과라고 하더군요. 진짜 신선한 충격에 하루종일 멍만 때렸고, 몸에 베어진 피멍들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앞에서 자해했을때로 잠깐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때 어쩌다가 아버지얘기가 나왔습니다. 전 그전에 아버지가 제 생일선물 사준다고 나오라하더군요. 나갔죠. 그러더니 차에 절 냅두고 일 마무리만 하고 오겠다고 하셨죠.
아버진 자신의 핸드폰을 만져도 된다고 하시기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 카톡을 들어가니 여자가 생긴게 보였습니다. 그여자와 톡을ㅇ한것을 보니 그여자가 아버지께 제가 아버지딸이 맞냐며 친자검사를 해보았냐는 소리까지 나오더군요 수치스러워서 폰을 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 말하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우시더군요. 아버지는 생활비 30만원조차도 이젠 그여자 눈치보여서 못주겠다고 하시고요. 그리곤 저와 연락을 끊었고 제 수술날 도박하느라 늦게오셨습니다.
다시 어머니얘기로 돌아오자면,
어머니는 그날이후 계속 맞는 저에게 넌 낳으면 안됬어. 너 집나가. 내딸아닌걸로 살꺼야. 고아원 알아봐줄께. 등등 소리를 하시며 진짜로 네이버에 고아원을 알아봤더라고요. 그러면서 화푸시면 사랑한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전 그소리를 들은이후 더욱더 자해를 했으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또한 학교에선 장애아인 저의 걸음마를 따라하는 아이도 있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과도를 들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제감정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매일밤 느낍니다. 저는 잘못태어난 것 같다고 말이죠. 어머니께 맞은건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신고하려고도 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제가 죽어나갈꺼 같아서요. 하지만 했다간 전 그냥 가족이 없어져버리기에 포기했습니다. 어쩌면 좋죠. 이대로 살다간 제 손목은 남아나질 않을꺼갇ㅈ아요..
10대의 가정사이야기입니다..꼭 봐주세요!!ㅜㅠ
어.. 글 처음 써보는거라 필력 떨어져도 이해부탁드려요.
길어도 끝까지 읽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달린문제입니다. 주작이라고 생각은 말아주세요.
일단 저는 한 중학교에 다니는 16살 여자입니다.
사는게 너무 힘들어 이곳에 써봅니다.
저는 일단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원래 2급이라는 뇌병변 장애를 가졌지만, 인대수술로인해 6급으로 되었습니다.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머릿속 신경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여기까진 뭔가 평범해보이실겁니다.
저희 어머니는 중국분이십니다. 그리하여 한국에 돈을 벌기위해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에 16살이나 많은 저희 아버지와 예쁜연애를하다가 결혼을하여 이곳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고 한국의 땅을 밟았습니다. 20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저를 임신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임신하신 저희 어머니는 저를 낙태하려 했으나 저희 아버지께서 외할머니께 조그마한 돈을 쥐어드리며 자신이 다 책임지겠다며 제발 저를 낳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재혼하여 돈을벌려고 한국에 오신것이기에 돈의 유혹을 버티지못한채 저를 낳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다 책임지겠다고 한 이유가 다있습니다. 친가쪽은 돈이 꽤 많았습니다. 빌라 한채, 두채? 정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빌라는 사신것은 저희 친할아버지셨습니다. 친할아버지는 도박으로 인해 빌라를 사들이신겁니다. 사실 이 얘긴 저도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도박으로 인해 돌아가신 친할머니께서 힘들어하셨다는 것도 말입니다.
사실 자신의 어머니가 힘들어한걸 보면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하지 않기 마련이지만, 저희 아버지는 도박중독이셨습니다. 거기에 분노조절장애도 있었던거 같습니다.
그렇게 전 어머니께서 21살 꽃다운 나이이실때 조산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저희 어머니도 어리시다보니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에 어렵게 취직을 했습니다. 그로인해 어쩔수없어 직장동료분들 전화번호는 저희어머니 전화기에 저장되었고 그중엔 남자번호도 있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나이도 나이 이신지라 어머니께서 젊은 남자를 찾는다고 생각했던건지 남자번호라는게 보이면 바로 가정폭력을 해오셨고, 어머니가 장보러간사이 기어다니지도 못하는 저와함께 있던 아버지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도박을 하러가겠다했지만 어머니는 제가 있으니 가지말라고 말리셔서 화가 나신 상태로 저의 왼쪽얼굴을 가격했습니다.
얼굴엔 피멍이생기고 저는 계속 울었습니다. 그때 제 뇌속의 신경이 망가져 장애가 생겼습니다. 그 이후 제 기억은 5살때부터입니다. 원인은 모르지만 아버지가 어머니를 계속 때리셨습니다. 몸전체가 피멍이 들때까지요. 전 그장면들을 유년기 시절 다 보았습니다. 티브이는 물론 가구들도 다 망가졌습니다.
그땐 몰랐습니다. 유일하게 저를 안때리시더군요. 아무리 화나도 말이죠. 절 장애아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죄책감에 휩싸여 저는 맞지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몰랐던 사실은 어머니는 이때부터 이혼서류를 준비하였습니다.
전 가정폭력으로 인해 어머니께서 제가 힘들까봐 친할머니댁에 저를 맞기셨습니다. 자신의 얼굴엔 흉터가 지고 몸에도 흉터가 생겼지만 저를 우선시 하였죠. 전 그렇게 부모님 사랑은 받지못한채 할머니댁에서 자랐습니다. 아, 도박으로 빌라는 다팔렸고, 할머니댁은 저를 데리고 비좁고 벌레들이 많은 곳으로 이사갔죠. 그땐 갓 초딩이였습니다.
또한 저는 행복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시절 모든 가정이 저같은줄 알았으니까요.
어느덧 9살이 된 저는 알았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저 몰래 이혼하셨다는 것을요. 4년에 걸쳐 힘들게한 이혼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대로 친할머니댁에서 살았죠. 부모사랑? 있을리가요ㅎ
그리고 저희 어머닌 핸드폰을 하나를 더 장만하여 저와도 연락이 안되도록 9개월동안 저와 친가쪽을 피해다녔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연락조차 되지않자 울기 바빴고 9개월이 지난 어느날 어머니는 저에게 연락을했고 어머니는 10살 제생일인 12월 ㅇㅇ일에 오시게ㅣㅆ다고 했습니다.
10살때 생일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선 절 위해 미역국 케이크 다준비했죠. 어머니만 오시면 완벽한 생일인데 오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서러워서 몰래 운다고 울었는데 저희 할머니께서 그걸 보셨는지 저희 어머니께 전화를 했었다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는 종종 절 보러 왔었습니다.
2012년 2월경 쯤입니다. 갓 11살이되었고, 대학병원에 매주 월요일 재활치료를 다녔습니다. 그날도 월요일이었으며 시간이 늦어서 횡단보도를 뛰어야하는 상황에 저 혼자 뛰었고 할머니께 오지말라고 하였지만, 급하신 나머지 신호위반을 하셔서 콘크리트차아시죠? 교통사고에요. 갑작스러웠죠. 울음밖에 나오질않았고, 장례식장에선 의젓한척 씩씩한척 혼자 다했어요ㅎ
그날이후 아버진 중국에 일하러 2년동안 가셨고 전 엄마와 살게되었습니다. 저로선 드디어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수 있구나 하고 좋아했지만 환상이였습니다.
어머니 옆을 항상 쫒아다니며 도와줄려 노력하는 딸이자 11살 장애아가 귀찮았나 봅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디ㅡ하시면서도 이모님껜 제가 젖먹는 애새끼도 아니고 너무 따라다녀 귀찮디ㅡ고 하신걸 들어버린 저는 빨래를 너는것을 도와드리려다 그만두었고, 어머니의 성적 집착은 나날이 심해졌습니다.
초등학교때이지만, 3번 집을 쫒겨나 5시간씩을 돌아다녔으며, 70점대가 나오면 자가 뿌러지고 온몸에 피멍이들고 머리채도 잡혔습니다. 베란다로 밀쳐지기도 했습니다.호흡곤란도 왔었고 쓰러질뻔도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 자해도 했습니다. 그러기엔 제 용기가 부족 했던거 같아요.
그리고 전 외할머니께 초등학생이란 신분에 집안일을 똑바로 안한다는 이유로 많이혼났습니다. 물건들이 저에게로 날라오기도 하며 날카로운것으로 협박도 받았습니다. 제 책상에 있는 물건을 저에게 던지자 제가 소리른ㅅ 질러버렸고 할머니께선 저에게 미안하다며 다신 안그러겠다 하셨지만 어머니와 집을 나와 이사하였습니다.
중학교때 입니다. 이때는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일이죠.
그냥 한마디로 짐승쳐맞듯이 맞았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너 개한테 물렸냐, 넘어졌냐 소리도 들었습니다. 한번은 자해한거 들켜서 그냥 넘어졌다고만 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어머니가 절 짐승대하듯 하셔서 맞다가 한번은 어머니앞에서 칼들고 자살한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하면 다 끝날줄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칼 가져오라며 자신이 죽여주겠다고 하시더군요. 충격이었습니다.
집도 쫒겨난적도 있습니다. 8시간정도는 밖에서 맴돌았습니다. 자해고 뭐고 다해본 시기였습니다. 유서도 써봤고 온라인 가정폭력 신고서도 써봤습니다.
전 애정결핍이 있습니다. 지금도요. 페이스북이란 곳에선 절 좋아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호기심에 밤 9시쯤 밤일 하시는 어머니몰래 남자를 만났습니다. 섹스는 안했습니다. 스킨쉽따위 없었습니다. 그저 저보다 한살많은 그오빠가 틴트사주고 커피마신게 전부입니다. 그러곤11시에 들어왔습니다.
그이후 어머니에게 그것을 들켜 집안에서 날아다녔다고 비유할만큼 맞았습니다. 어머니말에 대답할 시간도 없이 그냥 맞았습니다. 3시간을 서있었습니다. 어머닌 말했죠. 병원에서 아무일없던거 증명할수 있냐면서요. 전 정신병원인줄 알았더니 산부인과라고 하더군요. 진짜 신선한 충격에 하루종일 멍만 때렸고, 몸에 베어진 피멍들은 일주일이 지나서야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어머니앞에서 자해했을때로 잠깐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때 어쩌다가 아버지얘기가 나왔습니다. 전 그전에 아버지가 제 생일선물 사준다고 나오라하더군요. 나갔죠. 그러더니 차에 절 냅두고 일 마무리만 하고 오겠다고 하셨죠.
아버진 자신의 핸드폰을 만져도 된다고 하시기에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 아버지 카톡을 들어가니 여자가 생긴게 보였습니다. 그여자와 톡을ㅇ한것을 보니 그여자가 아버지께 제가 아버지딸이 맞냐며 친자검사를 해보았냐는 소리까지 나오더군요 수치스러워서 폰을 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것을 어머니께 말하니 어머니와 아버지는 싸우시더군요. 아버지는 생활비 30만원조차도 이젠 그여자 눈치보여서 못주겠다고 하시고요. 그리곤 저와 연락을 끊었고 제 수술날 도박하느라 늦게오셨습니다.
다시 어머니얘기로 돌아오자면,
어머니는 그날이후 계속 맞는 저에게 넌 낳으면 안됬어. 너 집나가. 내딸아닌걸로 살꺼야. 고아원 알아봐줄께. 등등 소리를 하시며 진짜로 네이버에 고아원을 알아봤더라고요. 그러면서 화푸시면 사랑한다 하시는 분이십니다. 전 그소리를 들은이후 더욱더 자해를 했으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또한 학교에선 장애아인 저의 걸음마를 따라하는 아이도 있어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에서 과도를 들고 많이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이런 제감정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매일밤 느낍니다. 저는 잘못태어난 것 같다고 말이죠. 어머니께 맞은건 이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신고하려고도 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제가 죽어나갈꺼 같아서요. 하지만 했다간 전 그냥 가족이 없어져버리기에 포기했습니다. 어쩌면 좋죠. 이대로 살다간 제 손목은 남아나질 않을꺼갇ㅈ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