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죄를 용서하러 오신 주님

주품이2017.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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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큐티 ^ ^

{마가복음 1 : 29 ~ 34}

[근본 죄 용서를 위해 오신 주님]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원어해설:
수종드니라:diakonevw(1247, 디아코네오)
섬기다, 봉사하다.
우리가 봉사나 섬기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은 자발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행한 일과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생길 이익을 의미한다. 봉사라고 해서 보수(Reward)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섬기는 행위는 지배하는 것과 대조가 된다.
성실한 봉사는 교만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자가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자는 종속적 위치에 있으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죄의 지배와 율법에서 자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므로서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 디아코네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코나리와 어원이 같은 단어이다.
(d) 디아코네오는 헌금의 모금과 관련된 직무수행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 벧전 1:10 - 벧전 1:12 고후 3:3에서 디아코네오는 복음의 선포를 표현한다.
이 단어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며,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단어로써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 FeIIowship)의 완성을 묘사하기도 한다.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집없는 자에게 피난처를, 헐벗은 자에게 의복을 제공하며, 또는 병들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수종 받으시는 예수님을 보며 느낀 것은 우리를 향하신 강건함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병약하고 굶어 죽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하기란 불가능할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자족할 수 있는 건강과 부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자칫 기복신앙으로 오해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아니라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복음이 아니라 내가 복을 받았으면 그 강건한 힘을 가지고 남에게 복음을 나누어 준다면 그것은 주님을 위한 복음인 것입니다.

실제로 걷지도 못한 병자가 억지로라도 전도지를 돌리며 걸어 다녔더니 회복되었다라는 간증이 있으며 의학적으로도 주일성수하는 사람이 일반 사람에 비해 5 ~ 10년은 더 산다는 통계도 있으며 이보다 더 건강한 사람은 성가대를 봉사하는 사람이었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섬기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더 행복을 주셔서 더 마음껏 봉사할 수 있도록 건강과 삶의 평안을 허락 하십니다.

이와 달리 이슬람의 비극은 다른 나라에 더 이상 전달되어서는 안됩니다. 테러로 인한 가난과 불행은 자기도 남을 돌아 볼 수도 없는 환경이며 좋지 못한 비보는 남들도 받아들이지 않는 꺼리는 이슬람의 조작된 종교로 드러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세계 2번째로 많은 선교를 하는 우리나라는 남을 마음껏 돕고 계시된 참진리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부와 평화와 능력을 부여 받게 됩니다. 주님을 마음껏 섬길 수 있도록 우리에게 주시는 행복과 평안은 꼭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이나 호주의 이슬람권 2세들이 is에 지원하다 가보니 두가지 선택을 하랍니다. 자폭테러를 하겠느냐 전투요원이 되겠느냐 가장 전방의 위험한 두곳을 선택하란 것입니다. 여자들과 주택등을 준다는 예기는 모두 거짓말이고 자기 폭탄에 죽거나 미군폭탄에 죽을 거냐는 두가지 선택을 하란다고 합니다. 그중 자기와 동행한 동료는 첩자로 오인 받아 목을 자르고 자기 감방에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그들 감방은 피바다가 되고 죽기 전 참수할 때 동료의 비명 소리는 여기 기록 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합니다.

자폭 테러는 상대방의 적진에서 활동하기에 탈출할 기회가 많으므로 자폭테러를 선택하고 본국 유럽으로 돌아 왔다 합니다. 그가 와서 하는 말이 유럽감방이 is의 자유인 보다 낫다고 하더랍니다. 자기 동료는 자기들 군기를 잡기 위해 누명을 씌워 참수 시키고요

세상에 유일하게 교회와 목사와 크리스찬이 없는 곳은 북한과 is 이슬람 나라 뿐입니다. 바로 교회 목사 크리스찬이 없는 곳은 이 땅의 지옥이 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성령도 없고 그들을 돌보지도 않겠지요 하나님의 나라의 소중함을 여기서 나마 뭔지를 느끼게 할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 이단 이슬람과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대인은 당시 인간이 만든 잘못된 족쇄 율법관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장로의 유전에 얽매이어 억압을 받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본문의 날은 안식일인데 안식일의 끝은 해질 때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법은 낮에도 얼마든지 병자를 고칠 수 있는데 해가 지고 등이 발달되지 않은 어두운 시각에 서로 피곤하게 병을 고침 받으러 몰려옵니다. 이는 인자함이 없는 장로의 유전으로 인한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법칙입니다. 예수님이 오실 당시 유대교는 변질되어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율법의 근본 사랑을 잃어 버린 인간적 생각을 더한 족쇄인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어느 신학자가 여자들 치마는 몇센티가 되면 좋고 그 이하면 나쁘고 그 신학자가 하나님의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 올 땐 뭘 입어야하고 뭘 입지 말아야 하고 애매모호한 부분도 어느 지역(사마리아와 유다지역 비교) 사람은 좋고 안좋고 인자함이 없는 엄한 자기가 만든 율법으로 남을 정죄하고 억압을 합니다. 그런 성경에도 없는 구체적인 부분은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잣대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직 인자와 자비 이해 가운데 받아 들여야 합니다. 그런 것은 현정치관에도 있지만 말을 줄이겠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구체적으로 사랑도 없이 성도의 모든 삶을 구체적으로 정죄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만약 그것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누구에겐 상황에 따라 자유를 주시거나 사랑하셔서 실제적으로 허락하고 계신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신학자는 하나님 보다 높아지려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 목회자는 그런 분들이 없지만 일반 성도 중에 지역감정이 있는 분은 분열을 일으키는 큰 문제입니다.

전에 지역감정이 있는 댓글을 보았는데 대화 중 그가 기독교인인 것에 놀랐습니다. 편파적인 그의 견해를 듣던 중 결국 지역 감정을 드러내고 내가 기독교인임을 고백하자 그도 같은 형제라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 사과도 내가 같은 지역인이라고 할 때 그 때 사과 하던군요 천국에서는 오직 하나님께 연고를 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양자 양녀로서 모두가 한 자녀의 소속이 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가는 사람이라면 이 땅의 썩어질 것에 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 성령 충만한 자라면 그것에 매일 필요도 없었을 겁입니다. 이 땅의 지역은 모두 불에 타 사라지는 것입니다. 오직 천국 소속 천국의 자녀만 남게 됩니다. 사랑없는 지역출신성분에 매이며 살지 맙시다.

다음 예수님은 창조주이시기에 병자를 고치시고 악령을 멸하기도 하십니다. 주님은 이 소문이 더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것은 하나님과의 화목제물로 오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다른 분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강한 능력으로 유대인의 왕이 되시거나 유명한 의원으로 변질된 해석의 소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 왕이 되려다 실패했다 유명한 의사가 되려다 시기 받아 실패하였다는 마귀가 좋아하는 변질된 복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이비들이 전파 받은 변질된 복음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기복(하나님께 희생없이 자기만 복 받기 바람)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삶의 여유, 병고침, 축귀(귀신을 쫓음)등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뒤집혀서 이런 것이 해결 안되면 복음이 잘못된 것으로 여기거나 소망을 잃어 버립니다. 이것은 십자가 중심, 예수님 중심이 아닌 나중심 돈 중심, 치유 중심의 변질된 복음관으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십자가에 예수님만을 전하기 원하는 바울의 온전한 복음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근본 오신 것입니다. 그 외 부수적인 것은 이 복음을 더 잘 전하기 위해 이 땅의 축복을 덤으로 주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 부수적인 것을 위해 예수님이 근본 오신 걸로 알고 부귀와 치료만을 위해 예수님을 믿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부하고 못하고 건강하지 못하면 복음을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죄를 사함 못 받고 천국도 갈 수 없는 변질된 복음이 되버리는 것이지요

참 복음은 이런 것입니다. 충분조건(부귀, 강건)에 매이지 말고 필요조건(죄사함)인 십자가 예수님의 대속의 복음만을 중심으로 믿고 영생천국에 이를 수 있는 소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을 신앙 속에 믿음을 지키시고 평안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모두를 축복합니다. 아멘!


창조주 하나님, 진리와 역사되는 성경 속에 일들을 통해 삶의 평안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삶의 고난이 올지라도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길을 가신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복음으로 나와 이웃을 바라보아 잘못되고 편파된 율법주의 관으로 남과 나를 쓸데없이 족쇄에 매이어 살지 않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나라에 늘 필요함을 채워 주시고 우리나라 각 지역과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은혜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에 무리하고 악한 세력으로부터 늘 맘 조리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옵소서 이 세상에 모든 풍파에 휩쓸리지 안도록 모든 가족과 친지 지인등을 지켜주시고 모두 구원의 예수님을 믿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생천국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 하신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화목케하신 큰일을 늘 감사하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