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래에 내일의 일을 미리 알고 있는 꿀꿀이바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밤벌레라고 불렀다. 밤벌레는 하루하루 먹는 것에 힘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밤도 나날이 단 맛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벌레는 내일 다른 벌레가 자신의 밤으로 오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엔 시험에 합격할 거야. 걱정 붙들어 매.”
“벌써 여러 번 떨어졌어요. 이번에는 붙는 거죠?”
“걱정 안해도 된다니까. 그동안 남편 스트레스 주지 말고.”
“만약에 떨어지면 좋은 직장도 놓치게 되요. 다시 한번만 봐주세요.”
두시간이 넘도록 손님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같은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다.
토요일이고 약속도 있는 터라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왜 운전면허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져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든대? 그것좀 한번에 붙지. 양심이 있다면 세 번 떨어졌으면 이번에는 붙겠지 그걸 왜 물어봐?’
“찬 음식은 되도록 피해. 안 그럼 떨어진다. 냉면이나 냉국 같은 거 잘못 먹으면 몸 상한다고 나오네. 알았지? 이만 가 봐.”
초보 점쟁이인지라 할 말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손님 나가신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야 진정한 주말이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소개팅이 잡혀있는 토요일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기필코 남자친구를 만들어 아름다운 스무살 봄을 보내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시간도 남는데 점괘나 뽑아볼까? 그러다 만약 폭탄을 만날 운이라고 하면 어쩌지? 그럼 기분만 나빠질 것 같은데. 일단은 그냥 나가자.’
하지만 자꾸 유혹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늦순아! 오늘도 늦으면 죽음이야. 오늘 애들 무지 킹카래.]
오늘 소개팅을 함께 할 친구 주리의 문자였다.
‘그래 킹카라고 믿어보자고. 그럼 옷이나 골라볼까? 너무 튀고 싶지는 않은데 뭘 입을까?’ 좀 짧은 듯한 청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늘어트렸다.
‘역시 나이스 바디야. 그래도 이 정도는 되야 주리한테 기죽지 않겠지.’
거울 속의 모습에 만족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늦순이 빨리 왔네.”
내 별명 늦순이.
시간약속에 번번히 늦는 것도 그렇지만 주리의 말로는 내가 참 늦되단다.
일찍 이성에 눈 뜬 주리에 비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서야 겨우 꽃미남에 눈을 뜬 것도 그렇고 모든 면에 빠릿빠릿하고 빠른 주리에 비하면 내가 조금씩 늦은 것은 사실이니까 반박할 수 없는 별명이었다.
“너 신경 좀 썼다. 좀 이쁘다.”
“너도 만만치 않은데.”
항상 주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어제 통화 때만 해도 뭐 대충 나가지 뭐 하던 주리였다.
비틀릴 데로 비틀어져 올린 머리 꼴은 적어도 거울 앞에서 3시간은 보낸 게 분명했고,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앞이 좀 야하게 파진 분홍 정장을 입은 걸보면 신경을 꽤 많이 썼나보다.
거기다 아끼는 향수까지. 미팅해서 결혼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인건지.
약속장소인 혜화동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혜림아! 요즘 이 역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대. 이번 달만 2명이나 자살했다고 하더라.”
“어머, 왜?”
“다 학생이라고 하던데. 요즘 입시제도가 문제라니까.”
“입시제도가 진짜 큰 문제지. 너 같은 애 대학 들어가는 것 보면.”
“그렇긴 하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오늘만큼은 즐겁고 싶은 생각에 우울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장소인 카페에 들어서자 미팅 주선자인 미진과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왔네? 나 가볼게. 오늘 재미있게 놀아. 실수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라는 저 말.
주리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제발 무당 짓 좀 하지 말라는.
오늘도 역시나 미진이는 날 보자마자 자리를 피해 버린다.중학교 때는 꽤 친했었는데.
“그래. 잘가! 재미있게 놀게. 오늘 고맙다.”
대꾸를 할 시간을 놓쳐 멈칫하고 있을 때 큰 소리로 인사한 건 주리가 아니라 앉아 있어도 키가 꽤 커보이는 남자애였다.
킹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미지가 깔끔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호감이 느껴졌다.
근데 다른 한명은 음... 끔찍했다.
우리가 들어온 걸 보고도 관심 없다는 듯 눈빛 한 번 주지 않는 저 거만함.
길에서 마주친다면 잘 생긴 얼굴을 보다 전봇대에 박치기를 해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조각상이였지만 내 눈에는 얼굴에 나 ‘바람’이라고 씌여져 있는 무서운 애였다.
주리의 눈에는 바람의 무서움이 보이지 않는지 미진이가 나가자 금새 비비꼬인 꽈배기가 되버렸다.
머리도 꽈배기 몸도 꽈배기.
‘다음엔 꽈배기라 놀려 줘야지.’
“난 민여봉.”
가까이서 보니 처진 두 눈과 곧은 콧날이 참으로 선한 인상이었다.
키가 너무 큰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한눈에 호감이 갔다.
“난 차정우.”
가까이서 보니 바람이란 것이 더욱더 확연했다.
연살이 들어 있는 관상이었다.
연살, 다른 말로 하면 도화살이 있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성이 꼬이는 살이 들어있는데다가 본인도 색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문제가 끊이지 않을 게 뻔했다.
‘주리와 바람이 엮이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겠어.’
“너는 무슨 과 다녀?”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주리는 눈에 하트를 그리고 바람에게 물었다.
“국문과.”
“언변술이 뛰어나니 잘 어울리겠다.”
‘윽!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조심해야지.’
“뭐라고?”
“응. 잘 어울리겠다고.”
“진짜 잘 어울려. 왠지 문학적이잖아.”
별 것도 아닌 것에 맞장구를 치는 주리.
우리의 시선이 바람에게만 쏠려있는 것을 본 멀대는 별 반응이 없었다.
‘바람이랑 같이 다니면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였겠니? 암울한 청소년기였겠구나. 나도 이해한단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전해져왔다.
“너 여자친구들 많지?”
답이 뻔한 질문을 바람에게 던졌다.
“아니. 아직 한번도 못 사궈 봤는데. 나 여자 손도 못 잡아본 순둥이야. 얘도 그렇고”
‘이게 누굴 속이려고. 꽃신이 아주 십리밖까지 줄을 서있는데. 벌써 울린 여자가 한 트럭도 넘겠구만. 어린 놈이 팔자 하나는 세게 태어났구나.’
“너 고등학교 때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을 거 같은데?”
‘너 같은 얼짱을 애들이 가만뒀겠니. 바보 아닌 이상 다 안다고 빨리 솔직히 말해.’
“여자 친구 있다면 내가 여기 왜 나와?”
‘어쭈, 가증스런 연기하며. 이정도로 넘어갈 얘가 아니란 말이지. 주리야 이 폭탄은 내가 제거 할게. 너는 멀대랑 행복해라.’
“그럼 여자 친구로 나는 어때?”
최대한 귀여운 척. 나는 꽈배기가 되어 친구를 위해 몸을 불사른다.
‘전생에 주리는 날 위해 뭘했을까? 오늘 꼭 한번 보리라.’
하지만 나의 꽈배기 연기에도 바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너 진짜로 여자친구 없어?”
또 다른 꽈배기가 끼어들었다.
“응”
“다행이다”
‘아니 주리가 저렇게 용감했다니. 오늘 남친을 꼭 만들고 말겠다고 며칠 전부터 굳은 각오한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과감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남자친구 있어?”
나는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가증스런 바람은 주리에게 물어보고 앉았다.
가증스러운 건 둘이 잘 어울렸다.
“나도 없어.”
수줍어하는 연기. 연기에 물이 올랐는지 자유자재로 얼굴도 빨개진다.
“얘 남자친구 없긴 없어. 일주일전부터.”
“무슨 소리야. 일주일 더 됐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없으면 된 거지.”
주리를 향한 바람의 느끼한 눈빛. 벌써 늦은 건가?
“난 오늘의 폭탄인 거야?”
멀대가 말했다.
‘그럴 리가. 너 폭탄 아니야. 너처럼 멋진 폭탄이 어디 있니?’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저 못난 기집애를 위해서.
“나 화장실 가야겠다. 주리는 안 갈래?”
이대로 상황을 지켜볼 수 없는 난 긴급 소집을 안 할 수 없었다.
“주리야, 나 정우 찍었어. 너 여봉이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도 찍었어. 네가 포기해.”
의외로 단호하다.
“친구위해 한번만 양보해라. 내가 보기엔 여봉이 괜찮던데.”
“괜찮으면 네가 하면 되잖아.”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란다.’
주리의 이름은 남주리.
이상하게 자기가 남에 드는 건 남의 차지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아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간만에 맘에 든다는 남자를 뺏어버리는 건 싫었지만 다 주리를 위해서니 나중에 이해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정우 나한테 관심있는 거 같던데. 너 못봤어?”
‘잘난 척은. 네가 나보다 좀 더 이쁜 거지 네가 절대적으로 예쁜 건 아니라고. 너는 바람한테 한입거리도 안된다 말이야. 그나저나 이를 어쩌나? 이럴 땐 얼레벌레 작전이 최고야.’
1. 꿀꿀이 바구미 1장 (01)
처음부터 다시하는 연재라 지루하실지 모르겠어요.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도 있고, 혜림이의 마음이 너무 갈팡질팔한 것 같아
수정했답니다.
이번에는 속도감있게 연재할 예정이니 함께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심령 러브스토리]
꿀꿀이 바구미
1
어느 미래에 내일의 일을 미리 알고 있는 꿀꿀이바구미가 있었다. 사람들은 흔히 밤벌레라고 불렀다. 밤벌레는 하루하루 먹는 것에 힘쓰며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밤도 나날이 단 맛이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벌레는 내일 다른 벌레가 자신의 밤으로 오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날 밤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번엔 시험에 합격할 거야. 걱정 붙들어 매.”
“벌써 여러 번 떨어졌어요. 이번에는 붙는 거죠?”
“걱정 안해도 된다니까. 그동안 남편 스트레스 주지 말고.”
“만약에 떨어지면 좋은 직장도 놓치게 되요. 다시 한번만 봐주세요.”
두시간이 넘도록 손님은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같은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다.
토요일이고 약속도 있는 터라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 아저씨는 왜 운전면허 시험에 세 번이나 떨어져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든대? 그것좀 한번에 붙지. 양심이 있다면 세 번 떨어졌으면 이번에는 붙겠지 그걸 왜 물어봐?’
“찬 음식은 되도록 피해. 안 그럼 떨어진다. 냉면이나 냉국 같은 거 잘못 먹으면 몸 상한다고 나오네. 알았지? 이만 가 봐.”
초보 점쟁이인지라 할 말도 거의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에 억지로 내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손님 나가신다.”
손님이 나가고 나서야 진정한 주말이 시작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소개팅이 잡혀있는 토요일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기필코 남자친구를 만들어 아름다운 스무살 봄을 보내보자고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시간도 남는데 점괘나 뽑아볼까? 그러다 만약 폭탄을 만날 운이라고 하면 어쩌지? 그럼 기분만 나빠질 것 같은데. 일단은 그냥 나가자.’
하지만 자꾸 유혹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늦순아! 오늘도 늦으면 죽음이야. 오늘 애들 무지 킹카래.]
오늘 소개팅을 함께 할 친구 주리의 문자였다.
‘그래 킹카라고 믿어보자고. 그럼 옷이나 골라볼까? 너무 튀고 싶지는 않은데 뭘 입을까?’ 좀 짧은 듯한 청치마에 검은 스타킹을 신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늘어트렸다.
‘역시 나이스 바디야. 그래도 이 정도는 되야 주리한테 기죽지 않겠지.’
거울 속의 모습에 만족하며 집 밖으로 나섰다.
“늦순이 빨리 왔네.”
내 별명 늦순이.
시간약속에 번번히 늦는 것도 그렇지만 주리의 말로는 내가 참 늦되단다.
일찍 이성에 눈 뜬 주리에 비해 나는 고등학생이 되서야 겨우 꽃미남에 눈을 뜬 것도 그렇고 모든 면에 빠릿빠릿하고 빠른 주리에 비하면 내가 조금씩 늦은 것은 사실이니까 반박할 수 없는 별명이었다.
“너 신경 좀 썼다. 좀 이쁘다.”
“너도 만만치 않은데.”
항상 주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다.
어제 통화 때만 해도 뭐 대충 나가지 뭐 하던 주리였다.
비틀릴 데로 비틀어져 올린 머리 꼴은 적어도 거울 앞에서 3시간은 보낸 게 분명했고, 평소에 잘 입지 않는 앞이 좀 야하게 파진 분홍 정장을 입은 걸보면 신경을 꽤 많이 썼나보다.
거기다 아끼는 향수까지. 미팅해서 결혼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인건지.
약속장소인 혜화동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혜림아! 요즘 이 역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많대. 이번 달만 2명이나 자살했다고 하더라.”
“어머, 왜?”
“다 학생이라고 하던데. 요즘 입시제도가 문제라니까.”
“입시제도가 진짜 큰 문제지. 너 같은 애 대학 들어가는 것 보면.”
“그렇긴 하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오늘만큼은 즐겁고 싶은 생각에 우울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약속장소인 카페에 들어서자 미팅 주선자인 미진과 남자 둘이 앉아 있었다.
“왔네? 나 가볼게. 오늘 재미있게 놀아. 실수하지 말고.”
실수하지 말라는 저 말.
주리가 아닌 나에게 하는 말이다.
제발 무당 짓 좀 하지 말라는.
오늘도 역시나 미진이는 날 보자마자 자리를 피해 버린다.중학교 때는 꽤 친했었는데.
“그래. 잘가! 재미있게 놀게. 오늘 고맙다.”
대꾸를 할 시간을 놓쳐 멈칫하고 있을 때 큰 소리로 인사한 건 주리가 아니라 앉아 있어도 키가 꽤 커보이는 남자애였다.
킹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미지가 깔끔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에 호감이 느껴졌다.
근데 다른 한명은 음... 끔찍했다.
우리가 들어온 걸 보고도 관심 없다는 듯 눈빛 한 번 주지 않는 저 거만함.
길에서 마주친다면 잘 생긴 얼굴을 보다 전봇대에 박치기를 해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것 같은 조각상이였지만 내 눈에는 얼굴에 나 ‘바람’이라고 씌여져 있는 무서운 애였다.
주리의 눈에는 바람의 무서움이 보이지 않는지 미진이가 나가자 금새 비비꼬인 꽈배기가 되버렸다.
머리도 꽈배기 몸도 꽈배기.
‘다음엔 꽈배기라 놀려 줘야지.’
“난 민여봉.”
가까이서 보니 처진 두 눈과 곧은 콧날이 참으로 선한 인상이었다.
키가 너무 큰 점이 부담스러웠지만 한눈에 호감이 갔다.
“난 차정우.”
가까이서 보니 바람이란 것이 더욱더 확연했다.
연살이 들어 있는 관상이었다.
연살, 다른 말로 하면 도화살이 있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성이 꼬이는 살이 들어있는데다가 본인도 색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문제가 끊이지 않을 게 뻔했다.
‘주리와 바람이 엮이는 건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겠어.’
“너는 무슨 과 다녀?”
내가 말도 꺼내기 전에 주리는 눈에 하트를 그리고 바람에게 물었다.
“국문과.”
“언변술이 뛰어나니 잘 어울리겠다.”
‘윽! 나도 모르게 직업병이. 조심해야지.’
“뭐라고?”
“응. 잘 어울리겠다고.”
“진짜 잘 어울려. 왠지 문학적이잖아.”
별 것도 아닌 것에 맞장구를 치는 주리.
우리의 시선이 바람에게만 쏠려있는 것을 본 멀대는 별 반응이 없었다.
‘바람이랑 같이 다니면 이런 경우가 한 두 번이였겠니? 암울한 청소년기였겠구나. 나도 이해한단다.’
동병상련의 아픔이 전해져왔다.
“너 여자친구들 많지?”
답이 뻔한 질문을 바람에게 던졌다.
“아니. 아직 한번도 못 사궈 봤는데. 나 여자 손도 못 잡아본 순둥이야. 얘도 그렇고”
‘이게 누굴 속이려고. 꽃신이 아주 십리밖까지 줄을 서있는데. 벌써 울린 여자가 한 트럭도 넘겠구만. 어린 놈이 팔자 하나는 세게 태어났구나.’
“너 고등학교 때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을 거 같은데?”
‘너 같은 얼짱을 애들이 가만뒀겠니. 바보 아닌 이상 다 안다고 빨리 솔직히 말해.’
“여자 친구 있다면 내가 여기 왜 나와?”
‘어쭈, 가증스런 연기하며. 이정도로 넘어갈 얘가 아니란 말이지. 주리야 이 폭탄은 내가 제거 할게. 너는 멀대랑 행복해라.’
“그럼 여자 친구로 나는 어때?”
최대한 귀여운 척. 나는 꽈배기가 되어 친구를 위해 몸을 불사른다.
‘전생에 주리는 날 위해 뭘했을까? 오늘 꼭 한번 보리라.’
하지만 나의 꽈배기 연기에도 바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너 진짜로 여자친구 없어?”
또 다른 꽈배기가 끼어들었다.
“응”
“다행이다”
‘아니 주리가 저렇게 용감했다니. 오늘 남친을 꼭 만들고 말겠다고 며칠 전부터 굳은 각오한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과감하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너는 남자친구 있어?”
나는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가증스런 바람은 주리에게 물어보고 앉았다.
가증스러운 건 둘이 잘 어울렸다.
“나도 없어.”
수줍어하는 연기. 연기에 물이 올랐는지 자유자재로 얼굴도 빨개진다.
“얘 남자친구 없긴 없어. 일주일전부터.”
“무슨 소리야. 일주일 더 됐잖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지금 없으면 된 거지.”
주리를 향한 바람의 느끼한 눈빛. 벌써 늦은 건가?
“난 오늘의 폭탄인 거야?”
멀대가 말했다.
‘그럴 리가. 너 폭탄 아니야. 너처럼 멋진 폭탄이 어디 있니?’
목구멍까지 나오는 말을 누를 수 밖에 없었다. 저 못난 기집애를 위해서.
“나 화장실 가야겠다. 주리는 안 갈래?”
이대로 상황을 지켜볼 수 없는 난 긴급 소집을 안 할 수 없었다.
“주리야, 나 정우 찍었어. 너 여봉이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도 찍었어. 네가 포기해.”
의외로 단호하다.
“친구위해 한번만 양보해라. 내가 보기엔 여봉이 괜찮던데.”
“괜찮으면 네가 하면 되잖아.”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란다.’
주리의 이름은 남주리.
이상하게 자기가 남에 드는 건 남의 차지가 되어버리는 이상한 아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내가 간만에 맘에 든다는 남자를 뺏어버리는 건 싫었지만 다 주리를 위해서니 나중에 이해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정우 나한테 관심있는 거 같던데. 너 못봤어?”
‘잘난 척은. 네가 나보다 좀 더 이쁜 거지 네가 절대적으로 예쁜 건 아니라고. 너는 바람한테 한입거리도 안된다 말이야. 그나저나 이를 어쩌나? 이럴 땐 얼레벌레 작전이 최고야.’
“우리 남자 때문에 이러지 말자. 그냥 술이나 마시러 가는 건 어때?”
“알았어. 대신 둘 다 페어 플레이 하는 거다. 먼저 엥기기 없기.”
“너나 꽈배기 하지마.”
“꽈배기?”
의아해하는 주리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바람과 멀대는 계산대에 서 있었다.
“술 마시러 갈래? 폭탄이 쏠게.”
우리가 화장실 간 사이 둘 사이도 얘기가 된 모양이다.
‘좋아 좋아. 멀대 멋져! 말 한마디에도 카리스마가 묻어나네.’
멀대의 말에 주저함 없이 우린 술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