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ㅇㅇ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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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았던 시간이 없지 않았지만 날 괴롭히는 시간들도 꽤 있었어.
특히 너무나 일상적이라 하루하루가 상처 투성이었어.
안 할 수 없는 일들이었는데 그래서 난 그런 당연한 일상이 무서웠고 버거웠어

비가오면 고추 따야하는데 걱정하고
해가 좋으면 빨래 안하고 나온 나를 탓해
겨울에 김장을 400포기 하면서 손이 떨려도
첫차타고 시험보러가면서 그 무거운 부담감으로 애써 내 손을 억눌렀어.
남에게 밥해주는 엄마가 안쓰러워서 한끼는 내가 해서 먹으면 좋겠다했는데
5시의 신데렐라처럼 밥밥거리는 누구때문에 엄마한테 화내서 미안.
하루의 4분의1을 통학으로 쓴 대학생활 동안
부러웠어. 서울, 용돈가득한 친구들, 언제나 당당한 걸음
자격지심이겠지만
10000원 중 차비빼면 5000원도 안남는 나에게
자존심은 저 먼 사치란걸 난 잘 알아.
그래도 졸업하면 괜찮아지겠지 했어.


그렇게 내 주변에 나와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때쯤.
나는 참 나를 많이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도 내가 농사일에, 집안일에 치여서 허덕인다는걸 공감하지 못하더라고.
그런데 그건 다 내 탓이야
내가 지나치치 못한 탓이야

스트레스 받고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들로 설명할 수 없어서
내가 이렇게 멍청했구나 하며 웃어
차라리 아예 모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엄마
나도 김장날 보쌈 먹길 기다리고 싶었어.
명절에 전부치는거 구경하고 같이 하하호호 웃고싶었어
땡볕에 모기에 뜯겨가며 풀 뽑고 싶지 않았고
나도 취준생이니까 취업 준비만 하고 싶었어.

다정한 아빠밑에서 자란 막내딸
언제나 잘 웃는 자랑스러운 딸
다 싫어
누가 대신 해준다고 하면 나 정말 오늘 당장 죽어도 좋아.
다정하지 않자나, 그런 척이었잖아.
나 한번도 제대로 웃은 적 없어
그대들의 자랑이고 싶었던 적도 없어
지금 24의 나로 살고 싶었어, 조금 이기적이더라도.

즐거울 때 즐겁고 슬플 때 우는
그냥 사람이고 싶었어
그런데 그냥
매일 울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