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 같은 엄마가 될까봐 두렵습니다.

ㅇㅇ2019.08.14
조회2,175

 

작년 초에 결혼하고.. 이제 1년 6개월 결혼 생활한 신혼입니다.

맞벌이로 신랑보다 달에 한 60만원 정도 덜 벌고... 둘이 합쳐 달에 550정도 버는 것 같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아이 하나 키우기에도 빠듯한 벌이라는거는 압니다.

다행이 제가 육아휴직과 복직이 보장된 직장이라 나중에 외벌이가 될 가능성은 적어보이기에

맘잡고 계산기 두드려보고, 신랑과 저의 앞으로의 벌이를 생각했을때

경제적으로 아이에게 못할짓 하는 부모는 아닐 듯 합니다..

 

신랑은 참 좋은 사람입니다. 외동아들로 사랑 넘치는 시부모님께서 잘 보듬어 기르셔서

아량도 넓고, 자존감도 높고, 무엇보다 참 저를 많이 사랑해 줍니다.

얼마나 좋은 아빠가 될지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느껴집니다.

그런 신랑과 늘 저를 존중해주시는 시부모님을 보고 있자면

하루빨리 사랑스러운 아기와 함께 하는 풍경을 상상하게 됩니다.

 

신혼도 아쉽지 않을 만큼 즐겼고, 신랑도 아이를 갖자고 저한테 강요하지는 않지만

지나가는 말로, 여보와 나를 닮았다면 얼마나 예쁜 아이가 태어날까

여보가 고생하지 않으려면 여름, 겨울 보다는 봄, 가을에 아이가 태어나는게 낫지 않을까

산후조리원에 할머니 할아버지 못 들어오게 하는거 진짜 좋은 거 같다.

울 엄마아빠(시부모님) 등살

하는 소소한 말들을 하곤 합니다. 그런 이야길 듣고 있으면 저도 내심 기대가 생기구요.

 

그런데... 그래서 정말 진지하게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고

그에 맞춰서 보험이며, 직장이며, 재테크며, 저축이며...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변화시키고 있는데

막상 가지려고 생각하니... 물론 제가 아이를 원한다고 해서 와주는것도 아니란것도 알지만..

너무 두렵습니다... 단순히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확률적으로, 제가 제 엄마의 딸인 이상 엄마같은 엄마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

내가 내 아이에게, 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아마도 아빠의 사업실패로 비참해진 현실과 딸린 삼남매에 대한 부담을

맏이이자 유일한 딸이었던 저에게 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울증이었겠죠. 무기력증이었겠죠. 분노조절이 잘 안되는 말 그대로 아픈 사람이었겠죠.

 

그래서 정기적으로 용돈도 받지 못하고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지내다가

서랍에서 엄마 외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어른들이 주신 용돈을 모아둔걸 보고서

어디서 도둑질을 했느냐며 내가 너한테 돈을 준 적이 없는데 이게 뭐냐며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치고 배를 발로 차면서

제가 너무 아파 컥컥 거리며 침을 흘리자 "쇼한다"며 비아냥 거렸던 거겠죠.

그때 할머니가 쓰라고 준 돈을 왜 서랍에 이렇게 모아두느냐고

할머니가 매주 3천원씩 줄테니 이제는 이렇게 안해도 된다며

마실 나가시느라 제가 맞는데 지켜주질 못하셨다고 미안하다며 끌어안아주셨어요.

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냐면... 집이 넘어갔으니까요.

모시고 산게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오갈데 없는 저희를 거둬주신거죠..

 

늘 전셋집을 2년마다 전전하느라 제가 초등학교를 3군데를 다녀서

한군데 정착하고, 친구와 오랜 유대관계를 가지는걸 배우기가 어려웠는데

결국 중학교 입학할때도 전혀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와서 진학했어요.

한창 예민할 시기에 초등학교 같은 곳 나온 애들끼리 몰려다니며 그룹을 형성하는데

저는 말한번 제대로 붙여보기가 힘들었네요.

그때 아버지 사업은 정말 제일 힘들었고, 엄마도 가계를 살리려고 노력 많이 한건 알아요.

녹즙배달도 하고, 보험도 팔고, 학습지 선생님도 하고... 힘들었겠죠.

그래서 집에 오면 엄마는 늘 티비를 보면서 옆으로 누워 있었고...

남동생들이야 남자라서 그런지 점심시간에 공 몇번 차면 이미 다 친구인셈이라

다들 밖에 나가 놀기도 잘 놀더군요... 난 혼자 하교하는 길이 그렇게 힘들던데...

그렇게 혼자 돌아와서 눈길 한번 안주는 엄마의 모로 누운 등을 보면서

오늘 학교에서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고... 저 혼자 잘도 떠들었네요.

그러다가... 어느날 상을 받았어요. 학교 백일장에서. 제일 큰 상을.

그래서 그 얘기를 하는데... 여전히 모로 누워 있더군요.

그리고 선생님이 급식비 자동이체되는 계좌에 돈이 없는지 제 이번달 급식비가 안들어왔대서

그 얘기를 했더니.. 그제서야 신경질을 내면서 "얼만데?!" 하더라구요.

그래서 물었죠... 엄마는 나랑 할 얘기가.. 돈 얘기밖에 없냐고.

그렇다더군요.

 

한번 기운 집안 환경이 쉽게 좋아지나요... 대학가서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어요.

당연히 학자금대출로 대학 다녔고 학교갈 버스비가 월말쯤 떨어지면

과제가 너무 많아서 밤샌다고 하고 집에 안가고 알바비가 들어오는 매월 1일까지 버텼어요.

그런데 이제 아빠가 사업은 정말 털어 버리고 제대로 살아보려는지... 편의점을 하시겠다네요.

친척이 자본금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주셨거든요.

그런데 엄마 아빠 둘다 신용불량자였으니까 명의를 제 이름으로 내셨어요. 제 동의 없이.

그러니 신용카드도 제 명의로 쓰시고, 현금 서비스도 습관적으로 받더군요.

다행이 현금서비스를 받고 그걸 연체한 적은 없었어요.

하지만 전 너무 불안했고... 엄마 아빠의 경제적 능력에 대해서는 신뢰가 없었기 때문에

내 이름으로 된 카드 자체를 막아버리면 생활이 불가능하니까 그건 못하고

현금서비스 한도를 0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그 문자 올때마다 진짜 신물을 토했거든요.

그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분가해서 살고 있어서 직접 부딪힐 일이 없었지만

명의가 다 제 명의다 보니 늘 외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하루는 제가 휴학하고 학자금을 벌던 시기였는데

어느날 엄마한테 전화가 오더군요. 현금서비스한도 높여달라고.

절대 안된다 그랬어요.

그러자 엄마가... 그래 그럼 다 같이 죽자. 라고 하더군요.. 허..

전 거기서 또 바보처럼... 휴학하면서 학교 돌아갈때 쓰려고 모아뒀던 300만원.. 빌려줬어요.

그리고 원래 한학기만 휴하하려 했던걸.. 군대 다녀오는것 처럼 1년 반을 했죠.

 

이런 삶을 살다 보니, 살가운 딸도 아니었고 남들 눈엔 오히려 모질고

지 살길만 궁리하고 가족애는 없는 차가운 년이 되더군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는 바로 밑에 남동생은 꼴에 장남이라고

제가 부모도 모른척하고 힘든 엄마아빠한테 의지도 못하게 하는 __이라고 힐난하고..

동생이 그러는걸 들으면서도 엄마는 그런거 아니라는.. 말리는 작은 뉘앙스도 안풍기더군요.

난 그냥 나마저 엄마아빠한테 매달려 있으면 그게 더 고통을 주는 불효라 생각해서

진짜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하고, 일하고, 돈모으고 살았던건데

20대 중반을 지나고 보니... 네... 저는 그냥 엄마가 준 상처에 대한 피드백과 자기보호를 했던건데

싸가지없고, 말 함부로하고, 지 살 궁리만 하는 나쁜 딸이 되어 있더라구요.

 

그나마 다행인건... 아빠가 그 이후로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가게를 하셔서 집도 좀 안정되고

제가 취업할때쯤에는 명의를 할머니와 막내동생으로 바꾸고 카드 명의도 다 바꿔서

더이상 금전적으로는 엮일일 없었다는 거죠..

그래도 언제나 빚은 있고, 빚을 빚으로 메꾸는 상황이긴 했어요.

대신 이제 자식들이 다 장성해서 교육비나 양육비가 안드니 두분은 두분의 일만 챙기시면 됐죠.

 

결혼할때... 아빠가 정말 애써주셨어요. 없는 살림인거 아는데도... 많이 애쓰셨죠.

저도 돈은 벌고 있었지만... 아빠가 해주고 싶어하셨어요. 가전제품, 살림살이, 가구 같은거.

신혼여행비용은 할머니가 해주셨어요. 집은 시댁에서 전세로 해주셨고

서울에서 전세대출 없이 살수 있다는 것 만으로 저는 엄청나게 행복했는데

18평짜리 오래된 빌라라고.. 이런데서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시부모님이세요.

예물이고 예단이고 욕심 부린거 하나도 없었어요 저희 부부 둘다.

그냥 어른들이 해주고 싶다 하시는거는 사양 않고 받았어요.

그냥 다~ 좋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하라시면 하구~ 말라시면 말구~

하고 있는 저희를 보면서 너넨 무슨 결혼하는 애들이 로망도 없냐고 하셨었네요..ㅎㅎ

 

근데.. 결혼하고, 신혼여행갔다가 돌아와서 친정에서 자는데

아빠는 이미 약주하시고 깊이 주무시고 계신 와중에 엄마가 절 부르네요.

빈 봉투와, 돈뭉치를 따로.

이 빈봉투가 내 하객들이고... 돈뭉치는 그 축의금에서 식대를 뺀거 계산했다구요.

우선 들고 다시 내 방으로 들어와서 신랑이랑 같이 봉투를 살피는데

난생 처음보는 사람 이름의 봉투도 껴있고...

봉투만 보내고 식은 못와서 밥은 못먹은 사람들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거 다시 잘 계산해 보는데 식대도 원래보다 높게 쳐서 뺐더라구요.

늘 그렇듯 엄마는 나랑 돈 얘기 말고는 할게 없는 사람이었고 이런건 확실히 하는게 좋으니

이 분은 내 하객이 아니고, 이 분은 오셔서 밥은 안드시고 가셨다.

계산해보니 20만원 정도 나한테 더 주면 된다. 라고 했죠.

그랬더니..

너 결혼시키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든줄 아냐며 역정이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응 몰라. 20만원 나한테 더 줘. 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시댁에 갔더니.. 시댁에서는 신랑한테 들어온 축의금 식대도 안빼고 다 주시더라구요.

그래요.. 이 부분은 키워주신 부모님한테 그 20만원이 아깝더냐.. 비난하실수도 있죠.

근데 그 돈 계산하는 모양새가.. 얼마나 저를 모멸감들게 했는지는 글로 표현하기 참 힘드네요.

 

다행이 그래도 할머니가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아빠가 늘 절 믿어주셔서

사랑 주고, 사랑 받을 줄 아는 사람으로는 자랐습니다.

물론 제 성격 기저에 얼룩처럼 남은 우울은... 몰아낼 방법이 없네요.

가끔 너무 우울해서 병원에 상담을 가기는 하지만 본격적으로 약물 치료를 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엄마에요.. 제 엄마는.

근데 딸은... 결국 엄마를 닮는다면서요.

저도 저런 엄마가 되면 어떡하나요..?

남편은 내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것 자체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부분 아니냐 하고

내가 마음에 두려움이 사라질때까지 아이를 가지지 않아도 좋고

결국에 아이 없이 우리 둘만 살더라도 자기는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무조건 무섭다, 낳기 싫다 라고 못 박아지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냥 알콩달콩 둘이서 이야기 하다 미래를 상상하면서 아이 얘기가 나올때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 집니다.

 

다들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친정엄마의 안좋은 모습을 닮은 엄마가 되고 있다는 느낌

받으신적 없으신가요..?

내가 엄마로 부터 멍들어 얼룩진 이 우울이 내 아이에게 옮겨 붙으면 어떡하나요..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건가요...? 아니면 정말 저는 아이없이 살아야 하나요..?

그렇다면 괜히 저같은 여자와 결혼해서 외동아들인데 아이도 없이 살게 하느니

제 신랑을 놔줘야 하는 걸까요...?